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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59화 (416/2,000)
  • # 659

    659화. 극음의 소식

    “한립?  ……그 사이 원영을 응결했다니.”

    한립과 노인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묘학도 그를 알아보고 옛일을 떠올렸다.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 귀신을 본 것 같았다.

    한립은 허공에 뒷짐을 쥐고 서서 서늘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묘학 형, 도대체 저 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노란 장포 노인이 분노를 억누르며 전음으로 물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싸워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정체를 아는 것이 유리했다. 상대가 원영 중기 수사라 해도 원영 초기 수사 둘이 모였으니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황 수사, 저 자가 바로 당시 허천정을 가져간 수사입니다. 그간 원영을 응결 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뭐라고요! 맹에서 추살령을 내린 자는 결단기 수사가 아니었습니까?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원영 중기가 되었단 말입니까?”

    노란 장포 노인이 소리를 높였다.

    “빈도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난성해 제일의 보물로 이름 높은 허천정 안에서 어떤 신묘한 영약을 얻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차피 아무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한 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상대가 수행도 높고 허천정까지 지녔다는 말이니 우리 둘로는 상대하기 어렵겠습니다.”

    “저 자와 싸워 이기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마음먹고 달아난다면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묘학 진인은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듯 슬쩍 웃었다. 결단기 제자들이야 정말 위기가 찾아오면 버리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노란 장포 노인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야기는 다 하셨습니까?  그럼 제가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지요. 허나 도망갈 생각이라면 접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 상대가 전음을 엿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한립의 말에 노란 장포 노인의 안색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묘학 진인도 당황한 순간 한립의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은색 날개가 펄럭였다. 그리고 이내 은빛이 번뜩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법보로 뇌둔술을 쓰는 자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예전에 그의 풍뢰시를 본 적 있는 묘학이 서둘러 말하고는 초록색 옥 망치를 휘둘러 보호막을 만들고 다른 손으로 붉은 방패를 꺼내들었다.

    노란 장포 노인이 수결을 맺자 주변의 하얀 바늘들이 빛을 발산하며 촘촘한 그물로 변해 그를 둘러쌌다.

    그들이 방어 태세를 마쳤을 때 열댓 장 밖에서 은빛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났다. 그는 비웃는 기색의 얼굴로 보물을 꺼내들지도 않고 두 팔을 뻗었다.

    촤르륵!

    보라색 화염이 그의 몸으로 타올랐고 그는 보라색 불덩이가 되어 노란 장포 노인을 덮쳤다. 노인은 이내 하얀 바늘의 방향을 틀어 전부 불덩이로 쇄도하게 했다.

    묘학 진인도 옥 망치를 이용하여 빛을 사방으로 발산시키더니 화려한 청록색 빛줄기로 변해 한립을 공격하러 날아갔다.

    한립은 두 수사들의 공격에도 태연하게 하얀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하얀 바늘이 만들어낸 궤적이 보라색 화염에 닿자마자 제 기능을 상실하고 그대로 멈춰 버렸다. 한립이 팔을 휘젓자 보라색 화염이 더욱 거세지며 순식간에 바늘들을 삼켰다.

    보라색 화염에 휩싸인 바늘들은 영성을 잃은 것처럼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때 날아들던 청록색 옥 망치는 한립이 팔을 휘두르자 보라색 빛이 번뜩이며 날아가 튕겨버렸다.

    묘학 진인이 서둘러 수결을 맺으며 회수하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망치는 빛을 깜빡이며 보라색 얼음 속에 갇히고 말았다.

    도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노란 장포 노인도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지극히 아끼던 보물들이 이렇게 쉽게 망가지다니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한립이 다시 공격해오자 노인은 황급히 소매를 털어 은빛을 뿜어냈다.

    그러나 한립은 바람처럼 날아들어 이미 그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노인의 은빛 수레는 금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소리 없이 두 조각이 나 떨어져 내렸다.

    노란 장포 노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신의 본명 법보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 순간 한립이 음산하게 웃으며 흐릿하게 사라졌고 동시에 노인의 뒷목이 뻣뻣해졌다. 얼음장 같은 손바닥이 어느새 뒷목에 닿아 있었고 보라색 빛이 번뜩이며 분출한 법보들과의 연계가 줄줄이 끊겨나갔다.

    “헛!”

    노인이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목에서부터 퍼져나간 보라색 얼음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한립은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거대한 얼음 조각을 받치고는 시선을 다른 이들에게로 돌렸다.

    네 명의 결단기 수사들은 원영기 수사들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음을 알고 진작 법보로 몸을 보호하고 조심스레 멀리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서 원영기 노인이 한립에게 제압당하는 것을 보고 모두 흩어져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다. 묘학 진인 역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노인이 잡히기 직전 한립의 실력을 깨닫고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즉시 몸을 피했다.

    묘학 진인은 주변의 금색 딱정벌레들을 어떻게 떼어 내야 할지 걱정하면서 날아갔는데 놀랍게도 영충들이 그가 포위를 뚫고 지나가도록 가만두었다.

    기쁜 마음에 그곳을 빠져나온 묘학은 순식간에 백여 장 밖을 날아가고 있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곤 네 결단기 수사들에게 소매를 털어 금빛 네 줄기를 뿜었다.

    금빛은 빠른 속도로 네 수사들을 따라잡았고 참혹한 비명이 뒤를 이어 들려왔다. 금빛이 결단기 수사들의 보호막을 뚫고 들어가자 시체와 법보들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이제 한립은 오직 묘학 진인이 사라진 방향만을 보고 있었다. 그는 예상외로 묘학을 쫓지 않았다. 그는 손에서 굵직한 금빛 뇌전을 뿜어 보라색 얼음덩이를 금빛 그물로 뒤덮었다. 얼음 조각이 흩어지고 자그마한 노란 원영이 나타났는데 노인과 똑같이 생긴 아이의 모습이었다. 원영은 크게 당황해 수결을 맺으며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금빛 그물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자 원영은 벽사신뢰 안에 갇혀 순간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한립이 손을 움켜쥐자 금빛그물이 수축해 노인의 원영을 구속했다.

    이어 그의 손에서 날아간 부적들이 원영의 몸에 달라붙어 영력을 전혀 쓸 수 없게 만들었다. 한립은 뒷짐을 쥐고 묘학 진인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이때 이미 수백 장 밖으로 달아난 묘학 진인은 한립이 쫓아오지 않을까 겁에 질려 법력을 미친 듯이 불어넣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뒤쪽에서 ㅤㅉㅗㅈ아오는 기척이 없자 그는 조금 안심하며 푸른 부적을 꺼내들었다.

    묘학은 몰랐지만 그가 뒤쪽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뒤로 은빛이 번뜩이며 푸른 인영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상대를 따라가는 인영은 한립이 은밀히 방출해 둔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묘학은 아무 것도 눈치 채고 못하고 부적으로 술법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인간형 꼭두각시의 주먹이 소리 없이 뻗어나갔다.

    촤악!

    그러자 묘학의 붉은 방패로 만든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며 은색 주먹이 날아들었다. 법력으로 형성된 보호막은 바로 부서졌고 등 뒤로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갑자기 주먹이 그의 앞가슴을 뚫고 나왔다.

    푹!

    묘학은 괴성을 지르며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인간형 꼭두각시가 두 팔을 펼치니 은색 그물이 묘학을 덮쳤다.

    * * *

    어느 산꼭대기에 내려선 한립은 은색 빛줄기를 보며 미소 지었다.

    툭.

    은색 그물로 뒤덮인 채 전신에 대여섯 개의 부적을 붙인 묘학 진인이 그의 발치에 떨어져 내렸다. 이어 흐릿한 그림자가 번뜩이며 인간형 꼭두각시가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한립은 그제야 피떡이 되어 죽어가는 묘학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두 시진 후, 푸른 빛줄기가 뇌공도 위로 조용히 날아올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빛줄기 속의 한립은 저물대 두 개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저물대는 묘학과 노란 장포 노인의 것으로, 그들은 원래 백여 개의 고계 영석을 가지고 몰래 벽령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묘학은 사실 은밀히 역성맹의 지원을 받아 벽령도 인근의 섬들을 장악하고 있었고 뇌공도는 그 목표 중 하나였던 것이다.

    묘학이 속한 종문이 뇌공도에서 판매하는 고계 영석은 역성맹 수사들이 벽령도에서 채굴해 직접 보내는 것으로 뇌공도에서 영향력을 키울 기반을 제공 받는 셈이었다.

    그리고 노란 장포 노인 역시 역성맹에 매수된 원영기 산수로 본래 한 섬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묘학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그들이 오늘 뇌공도를 떠나 움직인 것은 갑작스런 명령 때문이었다. 지니고 있는 모든 고계 영석을 즉시 회수해 벽령도로 모이라는 명이었는데 고계 영석과 원영기 수사들의 힘이 필요하니 서두르되 다른 세력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노란 장포 노인이 머무는 섬과 뇌공도가 가까워 묘학과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둘이 시장에서 영석을 회수하며 나누는 전음을 한립이 들었던 것이다.

    한립은 둘이 역성맹 소속이고 대량의 영석을 가지고 오늘 성을 출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이 성을 떠나기 전에 의식화천의 비술을 이용해 수많은 서금충을 풀어 묘학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원영 후기의 신통에 원영 초기 수사들을 포위해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원래 이 일을 마치면 바로 내성해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뜻밖에 중요한 소식을 들었다.

    예전에 그를 죽이려 했던 극음 사조가 벽령도에서 광맥을 보호하는 장로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극음 사조는 한립이 난성해에서 가장 이를 갈고있는 원수 중 한 명이었다.

    허천전에서 그가 운이 따라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극음 노마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극음 사조는 한립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런 노마가 가까운 벽령도에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추혼술을 통해 들은 바로는 역성맹에서 벽령도에 머물게 하는 원영기 수사는 네 명이었고 그 중 하나는 중기, 셋이 초기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다른 두 세력과 균형을 이룰 만 했지만 사실 한립에게는 상대하기에 어렵지 않은 전력이었다.

    그는 몰래 섬에 잠입해 쥐도 새도 모르게 극음 사조를 죽이고 떠날 자신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벽령도로 날아갔다.

    3일 후, 그는 드디어 벽령도 근처 바다에 도착했다.

    뇌공도도 작은 섬은 아니었지만 벽령도랑 비교하면 조그만 축에 속했다. 한립이 벽령도 수십 리 밖의 허공에서 섬을 살피보니 천성성과 비교해도 크게 작지 않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 섬에는 건물들이 많거나 성산처럼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지 않았고 거의 만 장 높이의 비슷비슷한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었다. 놀라운 점은 산맥들이 높고 험준하면서도 풀 한포기가 나지 않아 황량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립의 주의를 끈 것은 산들이 헐벗었을 뿐 아니라 섬 전체가 녹색이라곤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영기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영맥이라고는 없는 쓸모없는 황무지 같았다.

    거대한 영석 광산이 있는 곳에 영맥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영석 광산은 영맥의 부수적인 존재로 좋은 영맥이 흐르는 곳에서 품질 좋은 영석 광산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계 영석 광산이라면 인계 전체에서 보기 드문 최상품의 영맥이 흘러야 옳았다. 할 말을 잃고 있던 그가 깊이 생각을 하고는 실소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상고 수사들이 싹 채굴을 했을 테니, 섬이 최근에서야 발견된 이유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보아하니 섬의 모처에 무언가 숨겨진게 있어 영맥의 파동을 꽁꽁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결론을 내리고 태양을 살폈다. 지금은 정오였으니 아무리 둔술이 뛰어나도 잠입하기 좋은 때는 아니었다. 그는 방향을 틀어 날아가다 수면 위로 올라온 암초 위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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