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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55화 (412/2,000)

# 655

655화. 윤회

한립은 수중의 빛덩이를 가지고 놀며 천천히 석실 문으로 빠져나갔다. 바깥에서 지키고 있던 네 명의 축기기 수사들이 한립을 보더니 황송하다는 듯 예를 올렸다.

그가 대충 손을 저어 주고는 정원의 한쪽으로 가서 양손을 마주쳤다. 그러자 손바닥 사이에서 금빛이 크게 일며 천동소리가 울려 퍼졌고, 푸른 빛덩이는 반짝이다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비린내가 천천히 퍼지는데 정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제야 뒷짐을 지고 하늘을 쳐다본 그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그의 뒤쪽으로 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한립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이 체내의 독을 거의 제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백로어의 요단을 찾아 해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래야 말끔히 독을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

“큰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음 생에라도 선배님께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있어야 할 텐데요.”

“다음 생이라……. 수도하는 자들이 정말 윤회를 한다고 생각하느냐?”

“예?  그 말씀은…….”

그녀가 당황해 그의 의중을 살피고자 했다.

“별 생각 없이 물은 것이다. 음기가 강한 영력을 체내에 불어 넣어 용음지체의 발작을 잠시 억눌러 두었다. 당장은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일단 체내의 양기가 강해져 영력이 음양의 조화를 잃으면 발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두거라.”

“선배님께서도 용음지체의 발작을 해결할 방법은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아이의 수명이 겨우 백여 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너희가 실행하기에 어려운 것뿐이지.”

“딸아이가 계속 수행을 쌓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무엇이든 해줄 것입니다.”

문사월은 이를 악물고 답했다.

“겨우 결단기 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원영기 수사는 되어야 한다. 사실 해결 방법은 원영기 수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네 여식의 체내에 음기를 불어 넣어 양기가 폭발하지 않게 조화를 이뤄주면 그만이다. 물론 보조 단약도 대량으로 복용해야 하고 법력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단약도 더 진귀해 지겠지. 아마 일단 축기에 성공하면 너희 결단기 수사들로서는 오래 버티지 못 할 것이다.”

“원영기 수사가 필요하다니!”

문사월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전금아를 아끼는 지와 상관없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부부가 몇 번은 원영기 수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원영기 수사들이 결단기 부부를 위해 장시간 시간을 내어주겠는가?  게다가 전금아가 원영기 수사를 따르게 하는 것도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일단 원영기 수사들이 제자로 들이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결단기 수사였다. 물론 전금아의 미색이 엄청나게 빼어나거나 천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자질을 지녔다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를 알고 있는 문사월은 절망에 빠졌다.

이때 전 씨 사내가 한 걸음에 한립에게 다가와 깊이 예를 올리고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큰 욕심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려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저 축기기 수사로 살아가도 좋으니 저희 부부가 힘을 합쳐 양기의 발작을 막을 수는 없을까요?”

“결단 초기인 너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후기 정도 된다면 스스로의 수행을 깎아 먹는 일이 있더라도 시도해 볼만 하겠지.”

한립이 사내를 힐끗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고상한 사내마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더 이상 한립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는데 아무리 딸이 귀해도 염치가 없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부부의 예상을 깨고 한립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말을 했다.

“이건 진법에 관한 서책인데 딸에게 주거라. 다음번에 다시 만났을 때 만족할 만큼 이것을 익힌다면 그녀를 받아줄 수도 있다. 허나 내가 흡족할 만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지는 아이의 운명에 맡겨야겠지. 미리 말해 두지만 진법서는 딸아이가 스스로 익히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문사월 부부에게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 같았다.

“정말이십니까?”

문사월이 믿기 어려워 소리쳤다. 한립은 그저 미소 지으며 소매를 털어 옥갑을 여인에게 날아가게 했다.

“안에 든 진법요결(陣法要訣)은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나름 독특한 진법들을 담고 있다. 아이의 진법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기에는 안성맞춤이겠지.”

옥갑 속의 진법요결은 예전에 신여음이 그에게 선물한 진법경전들 중 한 권이었다.

“감사합니다. 금아가 진법에 대해서는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어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딸아이가 언제 선배님을 다시 뵐 수 있을까요?”

“글쎄,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1년 후 아니라면 몇 년 후겠지. 그동안 절대 어떤 공법도 수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 수행이 늘면 나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이건 자음환(紫陰丸)인데 매달 먹이거라. 그럼 다른 단약으로 연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저물대를 스쳐 몇 촌 크기의 자기 병을 꺼내 던져주었다. 이번에는 고상한 얼굴의 사내가 받으며 감격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되었으니 너희는 어서 백로어의 요단을 찾으러 가 보거라. 1년 후에 괴성도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내 알아서 찾아갈 것이야. 나는 다른 급한 일이 있어 오래 머물 수 없다.”

말을 마치 한립의 몸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고, 문사월과 사내는 놀랐지만 끝까지 한립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들은 푸른 빛줄기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고개를 들어 서로의 눈에서 희망을 찾았다.

만일 오늘 한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딸은 독을 해결했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방으로 돌아와 백로단을 찾는 일과 전금아가 진법서를 깨우치게 하는 일에 대해 상의했다.

그때 한립은 이미 은사도를 떠나 방향을 바꾸어 심해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신통에 고계 요수의 습격이나 포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둔광은 더없이 밝고 뚜렷했으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유유히 날아갔다.

그는 날아가며 줄곧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그가 갑자기 소녀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은 그녀의 진짜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기 위해서였다. 전금아가 용음지체라는 사실과 특유의 분위기가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거기다 진법에 대한 자질까지 비범해 손쉽게 진법요결을 이해한다면 정말 그녀가 신여음의 환생이거나 아니면 특별한 인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윤회하여 수사가 이전 생의 기억을 지니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기에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았고 음명계(陰冥界)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퍼져나갔다. 언제부터인가 망자들이 향하는 음명계가 영계와 비슷한 특별한 곳이라는 설이었다.

음명계가 독립된 차원이라는 설, 인계 모처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다는 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완전히 허구라고 믿었다. 한립은 윤회와 귀신들이 사는 세계에 대해 줄곧 확신을 갖지 못했다.

어차피 증명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거짓이든 사실이든 깊이 고민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제운소와 신여음은 어찌 보면 옛 친우들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신여음의 강직함에 대해서는 탄복하기도 했다. 정말 그녀의 환생이라면 이끌어줄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신여음은 겨우 축기기 수사라 제운소를 위한 저계 진법 법기를 위주로 연구했지만 만일 수명이 늘고 충분한 진법 경전이 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화신기를 향해 수련하면서 진법 연구에 오랜 시간을 쏟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진법에 탁월한 제자가 있어 전문적으로 진법종사로 육성한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한립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잠시 이 일에 대해서는 미루어두기로 했다.

그는 손을 저어 하얀 옥간을 꺼냈는데 의식을 불어 넣자 거대한 해역도가 펼쳐졌다. 바로 전송진을 지키던 성궁 수사가 알아서 상납한 은사도 주변의 해역도였다.

고계 영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섬은 원래 이름 없는 무인도였는데 이제는 벽령도(碧靈島)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었다. 듣기로는 채굴되는 영석 대부분이 나무 속성 영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벽령도는 은사도 북쪽 끝자락에 있었다. 결단기 수사들이 쉼 없이 날아가도 족히 몇 달은 걸릴 거리였고, 보통 수사들이 올라갈 수 있는 거의 최북단에 가까웠다.

그러니 영석 광산이 최근에서야 발견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본래 섬 자체가 요수들이 서식하던 곳이었는데 광맥이 발견되고 요수와 천성궁 그리고 역성맹이 공동으로 지역을 나눠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대량의 중, 고계 영석들이 나오니 인근 섬들도 점차 부흥해서 크고 작은 세력들과 산수들이 임시 시장이나 군락을 이루었다. 이렇게 되니 성궁과 역성맹 쪽에서도 인근 섬에 외해로 통하는 전송진을 새로 설치할 것을 고려중이라 했다.

한립은 벽령도의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며 문제가 없자 옥간을 회수하고 속도를 높였다. 그의 속도로는 세 달이면 충분했다. 바다 위의 풍경은 건조하기 짝이 없어서 쪽빛 바다를 제외하면 사방에 아무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한 달이 넘게 지나갔다. 한립은 날아가면서 잠시 작은 섬들에 내려 법력을 회복했고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외해를 돌아다니는 수사들을 보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 온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축기나 결단기 수사여서 한립의 둔광이 밝고 빠른 것을 보고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못했다.

오는 길에 6급 바다 요수가 갑자기 뛰어 올라 한 입에 그를 삼키려 한 일도 있었는데 빛이 번뜩이자 요수는 조각나 요단만 남기고 떨어져 내렸었다.

오늘 한립은 새까만 돌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섬을 발견했는데 해조류가 끼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그곳에 내려 암석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법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반나절이 지나 새빨간 석양이 질 무렵, 바닷바람이 급격히 서늘해졌다.

한립은 개의치 않고 푸른 보호막을 만들어 몸을 보호했고 결국 태양이 해수면 너머로 사라지며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때 작은 섬이 격렬히 흔들리며 해저에서 엄청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한립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지? ’

그의 강력한 의식으로 방원 수백 리를 샅샅이 살필 수 있어 섬에 내려 서기 전에 주변을 탐색했는데 어떤 요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의외의 상황에 그는 다시 의식을 방출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섬 아래쪽 바다를 살폈다. 잠시 후 그가 안색이 변해 강렬한 빛을 뿜으며 푸른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수백 장을 솟아 오른 그는 신중한 얼굴로 아래를 보았는데 그 순간 비릿한 바다냄새를 품은 해풍이 치며 인근 해수면에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열댓 장은 될 듯 높은 파도가 몰아치다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치기도 하고 해저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 사라지기도 했다.

갑자기 멀쩡하던 바다가 요동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립은 의식을 퍼트려 주변 백 리가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해저 깊숙한 곳을 탐색하려 의식을 천여 장 가까이 내려 보냈을 때, 놀랍게도 무언가가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았다.

기민하게 의식을 회수했지만 그 와중에 의식 한 줄기가 강제로 흡수되어 조금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래서 황급히 날아올라 해저 속의 괴물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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