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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51화 (408/2,000)
  • # 651

    651화. 밀담(密談)

    소문은 점점 이상하게 바뀌어 빙봉이 원영기 수사 한 명을 단숨에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가서는 혼 노마가 중상을 입고 떠돌다가 두 수사의 협공에 당해 죽었다는 소식으로 퍼져나갔다.

    이 소식만으로도 인근 해역은 떠들썩했지만 몇몇 수사들은 한립이 허천전에서 나왔다는 것과 거대한 솥을 부렸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체를 눈치 챘고 적잖은 원영기 수사들이 욕심으로 눈이 벌게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천성성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가는 동안 여러 섬들을 지나쳤고 그때마다 시장에 들려 고계 영석을 구매하거나 보물을 이용해 진귀한 재료를 교환했다.

    단숨에 고계 영석이 스무 개 남짓이 되자 크게 만족한 한립은 영석 광맥에 들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한 달 정도를 날아가자 먼 바다 위로 검은 점이 보였고, 몇 시진을 더 가자 우뚝 솟은 천성성의 성산(聖山)이 보이자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돌연 정면에서 열댓 개의 빛들이 한 무리를 이루며 날아들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무리를 훑고는 멈칫했다.

    무리 중 결단기 수사만 네다섯에 심지어 한 명은 원영 초기였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결국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서 기운을 숨겼다.

    한립이 기척을 숨기지 않고 날아가고 있었기에 성궁 수사의 무리는 벌써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이 기운을 숨겨 수행을 철저히 감추었기에 축기기 수사들이나 결단기 수사들은 의식으로 훑어보아도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정확한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러 바라보니 하얀 삿갓을 쓴 수사였다. 커다란 피풍의를 둘러 성별을 분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삿갓 안의 얼굴도 확인할 수 없었다.

    ‘흠? ’

    그러나 유일한 원영기 수사의 기운이 무척 낯익었다. 그가 명청령안을 이용해 삿갓 안을 살피려 하자 상대가 먼저 웃으며 백옥처럼 새하얀 얼굴을 드러냈다.

    “한 수사셨군요!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는데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릉옥령!”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한립이 중얼거렸다. 예전에 천성성 바깥에서 구해준 적이 있는 성궁의 집사였다.

    “세월이 꽤 지났는데 한 형께서 한 눈에 저를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또한 원영을 이루신 것도 축하드려야겠군요!”

    릉옥령이 가늘고 긴 꼬리를 접으며 미소 지었다. 정확한 수행을 살필 수는 없어도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직감했기에 그녀는 더욱 살갑게 대했다.

    “릉 소저 역시 원영을 응결하지 않았습니까.”

    한립의 말에 그녀가 바로 답을 하려다가 고개를 돌려 다른 수사들에게 서늘히 분부했다.

    “너희는 먼저 출발하거라. 나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따라가겠다.”

    “예! 릉 장로님!”

    결단기와 축기기 수사들이 즉시 허리를 굽히고는 명을 받들었다. 한립이 그것을 지켜보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단 후기 노인이 무리를 이끌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제가 역성맹의 공격을 받고 있는 섬에 지원을 나가는 터라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겠어요.”

    릉옥령이 그를 돌아보며 탄식했다.

    “귀 궁과 역성맹 사이에 일은 들었습니다.”

    그 말에 릉옥령은 쓴웃음으로 답하더니 한립을 살피며 표정이 묘해졌다.

    “한 형께서는 초기의 경지가 아니시군요?”

    “릉 소저보다 조금 앞서 있을 뿐이니, 수사의 자질이면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이 웃음을 흘리며 애매하게 답했다. 그 말에 릉옥령은 내심 크게 놀랐다. 지난번 보았을 때에서 겨우 이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결단에서 원영 중기라니 엄청난 진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다가 결국에는 평정을 되찾았지만 부러운 마음만은 숨기지 못했다.

    “정말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기재(奇才)이신가 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연달아 경지를 뛰어 넘으셨다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에요!”

    “기재랄 것 까지는 없고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외해에 다녀오려 합니다. 아무래도 귀 궁의 전송진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최근 역성맹 수사들의 침입을 염려해 외해 전송진 대부분을 폐쇄했거든요. 딱 두 군데만 남겨두고 있는데 이 영패를 가져가시면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릉옥령이 빙그레 웃으니 눈이 별처럼 빛났다. 그녀의 도움 없이도 금제나 수비병이 두려워 천성성에 잠입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상대가 먼저 편한 길을 제시해주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한립은 미소 지으며 그녀가 건넨 영패를 받아 들었다. 이어 그들은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한립이 먼저 푸른 빛줄기로 변해 저 멀리 보이는 섬으로 날아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롱옥령의 얼굴에 미소가 가셨고 잠시 후 저물대에서 은색 전음부를 꺼내들었다. 몇 마디를 남기고 손을 뻗으니 부적이 불덩이가 되어 사라졌다.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녀는 삿갓을 고쳐 쓰고 빛줄기가 되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릉옥령의 빛줄기가 멀어지고 인근에서 은빛이 번뜩이더니 전음부가 날아간 방향에서 푸른 인영이 나타났다.

    일다경이 지나 수십 리 밖의 허공에 떠서 사내 하나가 꼼짝 않고 서 있었는데 바로 한립이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뒷짐을 지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으로 인영이 번뜩이며 인간형 꼭두각시가 나타나 손을 펼치자 불뱀 같은 화염이 은색 빛에 갇혀 달아나지 못했다.

    훅!

    미간을 좁힌 한립이 허공을 쥐자 불뱀이 빨려 들어와 폭발하더니 활활 타올랐다. 의식으로 빠르게 내용을 훑은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불덩이를 쥐어 멸한 그가 천성성 방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난성해에서 내가 허천정을 지녔다는 소식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니. 아무래도 용모를 바꾸고 돌아다녀야겠구나!”

    퍼퍽! 뿌득!

    그의 얼굴이 푸른빛에 휩싸이자 동시에 몸 곳곳에서 뼈가 다시 맞춰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그는 검푸른 얼굴의 체구가 건장한 사내로 변해 꼭두각시를 회수해 천성성으로 날아갔다.

    “……!”

    하지만 그 시각 천성성 성산의 지하 동굴에서 가부좌를 하던 인영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그는 한 손에 불덩이를 쥐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한립이 없애버린 전음부였다.

    인영은 묵묵히 불덩이 속의 소식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부적을 멸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옥령이 둔음부(遁音符)를 사용하다니, 그리 귀한 것을 아무 이유 없이 사용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직 천성성에서 멀리 떠나지도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 난 것은 아니겠죠?”

    돌연 동굴의 다른 쪽에서 어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니고 근처에서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다하오. 그래서 우리에게 특별히 소개하고 싶고, 성궁으로 끌어들였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소!”

    부적을 받은 사내는 느릿하게 답했는데 목소리가 탁한 것이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 흥미로운 인물이라고요?”

    여인은 릉옥령이 무사하다는 소리에 안심하고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백여 년 전에 있었던 허천정에 대해 기억하오?”

    “기억하죠. 설마 이 일과 허천정이 관련이 있는 건가요?”

    “만호자, 만천명의 코앞에서 보물을 가져간 자와 옥령이를 구해준 자가 사실 동일인이었다고 하는군. 오늘 천성성의 전송진을 이용해 외해로 넘어가려다가 우연히 옥령과 마주쳤다 하오.”

    “제 기억으로는 겨우 결단기 수행을 지닌 인물로 기억하는데, 우리 쪽으로 포섭할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옥령이는 그 자가 이미 원영 중기에 이른 것은 아닌가 짐작 하고 있소! 사실이라면 이백 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한 것이니 만만히 볼 인물은 아니오.”

    “원영 중기라니……. 당시 허천전에서 허천정이 사라지고 우리도 따로 수사들을 보내 조사를 했었죠. 십중팔구 난성해 출신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혹여 대진 거대 종파의 수사였던 걸까요?  제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 해도 배후에서 누군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원영 중기에 이르기는 어려웠을 텐데요.”

    여인은 놀랍게도 대진에 대해 잘 아는 듯했다.

    “그가 대진 수사든 아니든 허천정을 가져갔을 때부터 운을 타고 난 것이오. 우리가 수련한 원자신광(元磁神光)이 오행의 기운이 담긴 보물을 밀어내는 데다 허천잔도가 후기 수사에게는 무용지물만 아니었다면 이 자가 허천정을 갖고 달아날 기회 따위는 없었을 테니.”

    사내의 말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원자신광을 대성하면 오행의 힘을 이용할 수 있으니 오행의 기운이 담긴 보물도 부릴 수 있었겠지만……. 우리야 대성할 수 없으니 어쩌겠어요.”

    “진작 알았다면 당신에게 절대 원자신광을 함께 수련하자고 하지 않았을 거요. 따지고 보면 내가 당신에게 미안하오.”

    “아니에요. 난 어차피 다른 길을 선택했어도 이번 생에는 화신기에 이르지 못했을 테니까요. 마지막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둘 다 동시에 화신기에 들었을 텐데요. 그럼 적어도 천여 년은 더 살 수 있었겠죠.”

    여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원자신광의 마지막 단계를 익히려면 오행 영근을 지녀야 한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그렇게 혼잡한 영근 자질을 지닌 자라면 원영이 아니라 축기나 결단도 어려웠을 텐데 어찌 원자신광을 익힐 자격이나 갖추겠냔 말이오.

    어쩐지 오래 전에 만들어진 원자신광을 한 명도 대성한 이가 없다 했더니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 줄이야……. 역대 성궁 주인들과 비교해도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난 나 릉천뢰가 그 어렵다는 원자신광의 3가지 난관을 극복하고도 이런 꼴이 될 줄 누가 알았겠소.

    원자신광을 만든 상고 수사가 일부러 후인들을 골탕 먹이려 파 놓은 함정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요. 이렇게 완벽히 모순되는 조건을 걸고 어찌 대성하라는 것인지!”

    사내는 말을 하다 스스로 격분해 원자신광을 만든 상고 수사에 대한 원한을 드러냈다. 여인은 그저 깊이 한숨을 쉬며 그를 달랬다.

    “됐어요. 상고 수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공법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나마 일찍 이런 사실을 알아내 원자산(元磁山) 수행을 멈춰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체내 오행의 기운이 발작해 죽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육도와 만고삼이 우리를 도운 셈이지요. 우리가 폐관 수련을 깨고 나와 공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도록 해주었으니까요.”

    “흥, 육도와 만고삼은 오래 전 이미 내게 꺾인 자들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소. 원자산의 한계만 아니면 그들 소굴로 쳐들어가서 진작 끝을 보았을 것이오. 사실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서 아쉽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근 자질을 완전히 바꿀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문제가 생기고 백년 넘게 상고 경전과 관련 기록을 뒤져 보았소. 결국 상고 비술 중 하나를 발견했는데 영근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정순한 속성을 지니는 보물을 제련해 부족한 영근을 보하는 술법이었지.”

    “그렇게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다고요?”

    “당연히 제련 방법도 난해하고 적합한 보물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오. 관건은 비술을 단 한 번밖에 펼칠 수 없다는 것이오. 두 번째 보물을 제련하려 들다가는 원영이 이겨내지 못할 테고 육신도 비술의 반서를 당해 붕괴될 테니. 우리가 처음부터 네 가지 영근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 방법도 쓸 수 없다는 말이오.”

    “그랬군요. 확실히 우리 같이 천령근(天靈根)을 지닌 수사에게는 무용지물인 술법이었네요.”

    여인은 들떴던 마음이 확 가라앉았다.

    “됐어요! 이제 원자신광을 대성할 기대는 그냥 버려요. 정말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수명이 백 년도 남지 않았으니……. 그보다는 옥령이를 돕는데 신경 써야죠. 이미 원영에는 성공했으니 수십 년간 관정법(灌頂法)을 이용해 억지로라도 경지를 뚫게 하면 그럭저럭 성궁을 맡길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 전에 육도와 만삼고를 반드시 없애 후환을 제거해야 하겠지만요!”

    여인이 돌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살기를 드러냈다.

    “우리가 목숨을 버릴 각오로 나선다면 그 둘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소.”

    “그럼 한 가 녀석은 어찌 처리 할까요?  허천정을 지닌 원영 중기 수사라니, 만일 우리가 없을 때 그런 자가 난성해를 좌지우지 하려 든다면 큰일일 텐데요. 물론 옥령이는 그 자에 대해 좋은 인상을 지닌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런 천부적인 자질의 원영 중기 수사라면 우리가 직접 나서 포섭할 만 하오. 일단 그가 성궁에 들어올 마음이 있는지 봅시다. 금제를 걸어 제어하고 허천정은 빼앗아 옥령이가 부리게 하면 되겠지. 그리고 나서 다른 보물들로 충분한 보상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소. 다만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나서서 후환을 제거 합시다.”

    사내의 어조도 냉혹해졌다.

    “좋은 생각이네요.”

    “허나 전음부가 이미 훼손된 것으로 보아 상대가 눈치 챈 것 같으니 그냥 장로를 보내 처리할 일은 아닌 것 같소. 우리가 나섭시다.”

    “아무리 통천령보를 지녔다고 해도 겨우 중기 수사를 우리 둘이나 나설 것 있나요?  내가 다녀올게요. 원자산 영향권 내에서라면 후기 수사라 해도 내 적수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시오! 그래도 난성해에서 이름난 허천정을 지닌 자이니 너무 얕보지는 말고.”

    사내가 딱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여인을 염려하며 당부했다.

    “오행의 기운을 지닌 보물이라면 아무리 대단해도 원자산 영향권 내에서는 제 위력을 못 내잖아요. 걱정 마요.”

    여인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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