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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49화 (406/2,000)

# 649

649화. 원영 후기 달성

남색 장포 도사와 유생은 백여 년 만에 처음 보는 거대한 파도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늘 너머로 보이는 운무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들 뿐 아니라 항구 근처의 수도자들은 전부 안색이 급변했다. 수행이 낮은 이들은 심지어 날아가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릴 정도였다. 아름다운 노을빛 운무에서 뻗어 나오는 영기의 압력이 그만큼 굉장했던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확연히 느껴지는 거센 영기의 파동에 다들 상고 요수가 나타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는 항구가 아니라 섬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남색 장포 도사와 서생은 긴장해 입이 말랐다. 바로 그때 섬 안쪽에서 세 개의 빛줄기가 날아들어 하얀 누각 꼭대기로 들어왔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들은 여인과 사내 둘이었는데 각각 체구가 건장한 노란 장포 거한, 푸른 장삼의 노인 그리고 요염한 분위기를 내는 여인이었다.

“사백님들을 뵙습니다.”

세 수사를 본 도사와 서생은 바로 놀란 기색을 지우고 예를 올렸다.

“어찌 된 일이더냐?”

노란 장포 거한이 손을 저어 인사를 받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늘 저편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 안 그래도 사백님들께 전음부를 보내려던 참입니다.”

남색 장포 수사의 대답을 들으면서 세 결단기 수사들은 이미 노을빛 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계 요수가 나타난 벌이는 짓일까요?”

요염한 여인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물었다.

“그건 아닐 게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요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야. 게다가 저 정도 기세면 적어도 화형기 요수일 텐데 내해에 그런 고계 요수가 나타날 턱이 있느냐.”

푸른 청삼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원영기 선배께서 무슨 술법이라도 펼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닌 듯한데……. 몇몇 마공을 펼치는 원영기 마두들을 제외하면 저렇게 천기 변화를 일으키는 공법을 쓰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어떤 보물이 나타난 것은 아닐지!”

거한의 물음에 노인이 길게 탄식했다.

“그렇다면 정말 엄청난 보물일 수도 있겠네요! 본 문이 놓쳐서는 안 될 기회입니다.”

여인의 표정이 확 밝아졌고 거한도 금방 탐욕스러운 얼굴을 드러냈다.

“어느 보물이건 간에 너희가 나섰다가는 목숨만 잃을 것이다.”

돌연 나이든 이의 목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결단기 수사 셋이 화들짝 놀라 손을 모으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창문에서 남색 빛이 들어오더니 그 안에서 바짝 마른 중년인이 나타난 것이다.

“사숙님을 뵙습니다.”

남색 장포 도사와 서생이 더욱 깊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고 세 수사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중년인은 눈동자가 노랗고 두 눈은 회백색으로 물들어 뜻밖에도 장님처럼 보였다.

“담도 크구나! 엄청난 보물이 나타났으면 너희가 나설 틈이 있겠느냐?  분수에 맞지 않는 보물은 요행히 얻게 되어도 화를 부를 뿐이거늘. 내 알기로 혼 노마가 근방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인데 저런 진귀한 천기 현상을 두고 볼 리 없을 것이다.”

얼굴이 누렇게 뜬 중년인이 무표정하게 말하고는 회백색의 눈으로 노을 빛 운무를 응시했다. 거한 등은 혼 노마의 이름을 듣고는 식겁해 난색을 표했다.

“저희는 그렇다 치고 사숙께서도 보물을 얻을 수 없으신 것입니까?”

요염한 여인이 아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말했다.

“정말 보물이라면 혼 노마와 싸울 작정을 하고서라도 가보겠으나 안타깝게도 저건 보물이 출현할 때 나타나는 천기 현상과는 다르다.”

누각 3층의 수사들이 어안이 벙벙한 찰나 하늘 저편에서 눈을 찌를 듯 하얀 빛이 번져 중년인을 제외한 나머지 수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허공에서 하늘 절반을 뒤덮을 듯 커다란 파문이 일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영기의 압력이 내리누르더니 마치 궁전 같은 새하얀 건축물이 번뜩이며 나타난 것이다.

다시 눈을 부릅뜬 거한 등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장님처럼 보이는 중년인이 얼굴을 꿈틀거리다 소리쳤다.

“허천전이 어찌! 아직 300년이 지나지 않았거늘!”

그는 단번에 허공에 나타난 궁전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허천전이라는 이름에 남색 도사와 서생은 별 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결단기 수사들은 화들짝 놀랐다.

특히 거한은 너무 놀라 목소리가 다 떨릴 정도였다.

“허천전이라고요?  그 상고 시대 보물들이 무수히 많다는 그곳 말입니까?”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아직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는데 괴이한 일이구나. 하지만 아무리 허천전이 나타났어도 허천잔도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겠지. ……헛, 누가 지나갔구나!”

중년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불구름으로 뒤덮인 둔광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기이한 현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고계 수사 같았다.

중년인도 당장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고 서늘하게 눈을 번뜩였다.

불구름이 궁전 앞에 이르기 전에 하얀 빛 속에서 돌연 오색찬란한 빛이 쏟아지더니 굵직한 푸른 빛기둥이 분출되어 깊은 심해 속으로 쏟아져 내렸다.

해수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생겨났고 빛기둥을 중심으로 뻥 뚫려 바닷물이 소용돌이 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푸른 빛기둥 중간에 몇 장 크기의 하얀 진법이 형성되더니 그 안에서 뜬금없이 사내와 여인 그리고 푸른 솥이 나타난 것이다.

일순 둘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마치 빛기둥에 갇힌 듯 꼼짝을 하지 않았다. 불구름도 그것을 보고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듯했다.

하얀 빛덩이 속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고 거대한 궁전이 흐릿해지며 공간 파동이 폭발하는 찰나 허천정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푸른 빛기둥도 이내 흩어져 버렸고 이제 허공에는 사내와 여인 그리고 거대 솥만 남았다.

불구름 속의 수사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당장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했다.

그러나 여인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소매를 펄럭였다. 백 개가 넘는 투명한 검기들이 용솟음쳐 별안간 불구름을 향해 날아들었다. 불구름은 검기의 엄청난 속도에 달아나지 못하고 결국 난도질을 당하고 말았다.

누군가 분노에 찬 고함을 치며 불구름이 요동쳤는데 아마 그 안에서 수사가 어떤 보물을 발동한 모양이었다.

투명한 검기의 하얀 기운에 불구름은 천적을 만난 듯 사라졌고 몇 가지 보물들도 위세를 떨쳐보기도 전에 조각나 떨어져 내렸다.

불구름 속의 수사는 겁에 질려 달아나려 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백여 개의 비검들이 난무하자 원신도 탈출하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엄청난 피와 살을 흩날리며 순식간에 수사 하나가 멸살 당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결단기 수사들은 물론이고 줄곧 차분하던 중년인마저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사숙, 혹시 방금 죽은 것은 혼 노마의 제자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거한이 입술을 떨며 간신히 말했다.

“제자는 무슨, 혼 노마 본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분화대법(焚火大法)을 저리 선명하게 펼칠 수는 없다.”

깊게 심호흡을 한 중년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

“혼 노마는 사숙님과 같은 원영기 수사가 아니십니까. 어찌 저렇게 힘없이 당한단 말입니까?  원영도 달아날 틈도 없이요!”

요염한 여인이 멍하니 물었다. 푸른 장삼의 여인과 거한도 믿기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중년인은 더는 대답해 주지 않고 그저 상황을 지켜보았다.

허공의 남녀는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여인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비검을 휘수해 투명한 빛줄기로 먼저 날아가 버렸고,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항구를 바라보곤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왔다.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아 느긋해 보였다.

그러나 누각에 있던 중년인은 느긋할 수 없었다. 그가 서둘러 명을 내렸다.

“너희 셋은 이곳을 지키고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내 금방 다녀오겠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중년인이 남색 빛줄기로 변해 누각을 떠나 푸른 빛줄기를 맞이하러 날아갔다.

지금 날아가고 있는 남색 빛줄기 속의 중년인은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 멀리서 지켜본 결과 여인은 천성쌍성 혹은 육도 성극과 비슷한 등급의 원영 후기 수사가 확실했다.

겨우 원영 초기 수사인 그로서는 격차가 너무 컸고 이미 상대의 눈에 띈 이상 도망갈 길도 요원했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상대의 경계심을 키우는 것보다 먼저 찾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 빛줄기가 서로를 향해 날아가니 잠시 후 허공에서 만났다. 중년인은 열댓 장 밖의 둔광을 신중히 쳐다보았다.

그 안에서 푸른 장포를 걸친 평범한 용모의 청년이 나타났는데 피부는 까만 편이었고 웃는 듯 마는 듯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의식으로 상대를 훑은 중년인이 동공을 움츠리며 얼른 포권을 했다.

“저는 감림이라 하고 황사문(黃沙門)의 장로입니다. 수사의 존성대명을 알 수 있을 지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급 수사를 대하는 말투였지만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청년이 그 말을 들으며 중년인을 훑고는 미소 지었다.

“저는 한 가이고, 황사문은 일전에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오래 전이라 정확히 어떤 곳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 섬은 귀 문의 영역입니까?”

“저희는 난성해의 작은 문파인지라 수사께서 들어 본 적이 없으실 만합니다. 한 형께서 괜찮으시다면 잠시 본 문으로 가 쉬었다 가시지요.”

중년인은 상대의 어투가 온화한 것에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상대는 정말 원영 후기의 대수사였으니 조심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푸른 장삼의 청년은 허천전에서 80여년을 수련해 겨우 빠져 나온 한립이었다. 그는 영안의 샘의 도움으로 60년 만에 원영 중기의 최고봉에 이를 수 있었고, 이후 스무 해 정도 경지를 다지다 단번에 경지를 넘어 후기에 이르렀다. 너무 쉽게 경지를 넘어 그 자신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중기에 이르기 위해 온갖 귀한 영단묘약을 전부 준비해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것에 비하면 후기에 이를 때는 평범한 단약 몇 개로 단숨에 성공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후기가 된 후 여러 차례 고민을 해봤지만 확실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 대연결을 수련하고 배영단을 복용한 덕분일 수도 있고, 이전에 먹은 보천단으로 영근 자질을 개선한 덕분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청원검결을 익혀서 일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수행이 다른 수사들보다 심후해서…….’

생각을 해봐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한립은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어쨌든 원영 후기에 이르기 위한 조건은 너무 복잡하고 개인차가 커서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웠다.

후기에 이른 그는 바로 팔령척과 허천정을 다시 제련하며 통보결 2성을 익혔고 그 후에 계속 폐관 수련 중이던 은색 장삼 여인을 찾아갔다.

10급 빙봉도 그 사이 후기에 이른 한립을 보더니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그녀는 한립을 처리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 대신 비술을 알려주게 되었다.

그녀와 비술을 사용해 법력을 혼합한 한립은 합심해 통제 진법을 조종했고 강제로 허천전을 잠시 난성해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둘은 다시 허천정으로 통제 진법을 이용해 스스로를 밖으로 전송시켰다.

빙봉은 원래도 난폭한 성정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백 년 가까이 허천전에 갇혀 있었고 눈앞에서 한립이 원영 후기에 이른 것을 보고 마음이 울적했었다. 그런데 그때 불구름 속의 마도 수사가 그들에게 다가왔으니 정말 운이 없었다.

그녀는 허천전을 빠져 나오자마자 불구름 속의 마도 수사를 죽여 화풀이를 하고는 대진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겠다며 떠나버렸다.

한립은 수행이 크게 늘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여인을 제압할 자신은 없었기에 그대로 그녀를 놓아 주었다. 물론 천남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고 전송진에 관한 소식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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