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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48화 (405/2,000)

# 648

648화. 감금 수련

허천정이 거대한 진법 중심으로 날아가 한립의 조종에 따라 거대 솥 문양 위에 안착했다. 그때 거대 솥 문양이 밝게 빛나며 푸른 빛기둥을 쏘아 올려 허천정을 휘감았다.

한립은 다시 한 번 허천정과의 의식 연계가 끊기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힐끔 은색 장삼 여인을 쳐다보았고 그녀가 별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자 다시 진법과 허천정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푸른 보호막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허천정이 웅웅 울어대며 몸집을 키웠다.

잠시 후 솥이 도안과 같은 크기로 켜지자 허천정 표면에 꽃과 곤충 물고기와 짐승 환영이 아름답게 피어났고 뜻밖에도 한립은 다시 의식이 연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법력이 솥으로 주입되었다.

한립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여인이 돌연 수결을 맺어 진법 중심을 가리켰고 하얀 영력이 빛기둥을 이루어 거대 솥 문양으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한립의 몸에서 법력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졌기에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계속 이런 속도로 법력이 빨려나갔다면 의심 많은 그가 진작 허천정을 거두어 들였을 것이다.

허천정은 밑 빠진 독처럼 그와 여인의 법력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은 법력의 절반을 잃었고 점점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쿠릉!

그리고 그때 진법이 진동하고 주술들이 미약하게 반짝이며 마치 곧 발동하려는 듯했다.

“안되겠습니다. 우리 둘의 법력으로는 진법을 발동할 수가 없겠어요!”

은색 장삼 여인이 이렇게 말하고는 먼저 법결을 거둬들였다. 이에 한립도 미간을 좁히며 법력을 끊었고 즉시 손을 뻗어 허천정을 가리켰다.

허천정이 흐릿해지더니 작게 수축해 그의 소매 속으로 날아들었다.

“법력의 문제가 아닌 듯 한데요. 이 통제 진법은 본래 화신기 수사가 조종하도록 고안 되었기에 원영 중기 수사와 후기 수사가 힘을 합쳐서 어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한립은 진법을 응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진법은 허천정이 사라지자 푸른 빛기둥과 반짝이던 빛이 사라지고 생기를 잃었다.

“……반드시 화신기 수사가 조종하라는 법은 없지요. 후기 수사 여럿이 힘을 합쳐도 가능할 겁니다.”

“농담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후기 수사 서넛이 화신기 수사 한 명을 막을 수 없듯 둘 사이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인이 침묵하다 내뱉은 말에 한립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박했다.

“신통이라면 천지원기를 움직일 수 있는 화신기 수사를 이길 수 없겠지만 법력이라면 말이 다르지요. 내가 원영 후기 수사 여럿의 법력을 잠시 융합해 허천정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비술을 알고 있다면 어떻습니까?”

은색 장삼 여인은 꽤나 자신 있어 보였다.

“그런 비술이 있다고요?  수사가 말하는 여러 원영 후기 수사가 제 오자동심마와 꼭두각시를 포함하는 것입니까.”

“머리 회전이 빠르군요. 바로 그 말입니다. 저 마귀들과 꼭두각시에 나까지 더해지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여인이 살짝 웃으니 냉랭하던 얼굴이 화사하게 변해 완전 딴 사람 같았다. 그러나 한립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은 안중에도 없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급급했다.

“방금 수사께서 저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수사는 이 비술을 펼칠 수 없습니다. 동급의 경지를 지닌 수사끼리만 가능한 술법이고 그 중에서 가장 수행이 높은 자가 혼합된 법력을 조종해야 하니까요. 수사의 수행이 보통 수사들 보다는 높다지만 그래도 원영 후기 수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허천정을 부리려면 반드시 먼저 통보결을 익혀야하는데, 수사가 진법을 조종하겠다면 허천정을 내놓으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르지요?”

“아무리 통천령보가 귀해도 평생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럴 일 없으니 쓸 데 없는 생각 마십시오. 전 절대 이런 조건에는 응하지 않을 겁니다.”

여인이 한립의 주저 없는 대답에 의아해했다. 그녀의 얼굴에 표독스런 표정이 어리며 무어라 쏘아붙이려는데 한립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미리 말씀 드리자면 이곳은 어차피 300년에 한번 자동으로 개방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세월이 흐르면 안전히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계획을 바꿔 급히 이곳을 떠나기 보다는 그냥 때를 기다리며 수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전에 요행히 원영 후기의 경지에 이르면 수사를 찾으러 오지요. 그럼 봉 수사께서도 좋을 대로 하십시오!”

말을 마친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순식간에 길을 따라 가버렸다.

“300년 마다 개방 된다고?”

여인이 희소식에 기뻐하며 원래 하려던 위협적인 말들을 삼켜버렸다. 상대의 보물을 손쉽게 빼앗을 기회를 잃었지만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한립이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2, 3백 년 정도는 그녀와 같은 천지영수에게는 별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수행을 화신기로 끌어 올려 한립을 죽이고 허천정을 빼앗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원신도 크게 상해 잘못하면 9급 또는 8급으로도 수행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화신기를 코앞에 둔 수사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녀도 참 답답한 상태였다. 본래 수명을 연장할 목적으로 일부러 화신기에 이르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데 차 요괴가 공간접점으로 유혹해 소극궁과의 전쟁에 끌어들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화신기 수사가 되면 한립을 죽이고 허천정을 빼앗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여러 신통이 있는 빙봉 일족은 본족의 성지인 빙연도에서 모종의 의식을 치러야만 화신기에 들 수 있었다.

물론 한립은 이런 사정을 몰랐기에 상대가 급한 마음에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일부러 허천전이 3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소식을 흘린 것이다.

한 줄기 희망이 생기면 괜히 그를 붙들고 죽자 사자 달려들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러나 마지막에 말한 원영 후기에 들면 다시 찾겠다는 말은 그냥 해본 소리였다.

경지를 뛰어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많은 원영 중기 수사들이 평생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은색 장삼 여인은 한참을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어차피 아직 수련을 마치지 못한 비술들이 몇 개 있으니 그동안 수련이나 실컷 해야겠구나. 그러고 나면 그 자를 상대할 때 더 유리해 질 테지.”

그녀가 투명한 빛줄기로 변해 한립과 정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적당한 석실을 찾아 폐관수련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반나절 후 한립도 3, 40장 크기의 밀실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의 곁에는 열댓 장 크기의 우윳빛 연못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영기가 자욱하게 일어 맑은 향기가 코를 찔렀다.

바로 예전에 원요를 만났던 2층의 비밀 밀실이었다. 아주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데다 커다란 영안의 샘까지 있어 수련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거기다 만일을 대비해 전송진을 봉인해 무력화 시켰고 진법 법기들로 밀실 전체를 가렸다. 탑 안에 의식을 제약하는 금제가 펼쳐져 있는 한 10급 빙봉이라도 이곳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립은 결코 이곳에 몇 백 년씩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천남으로 돌아가 남궁완의 봉혼주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허천정을 빙봉 여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빙봉은 원영 후기의 대수사였으니 통보결 2성을 익힐 수 있었고 그때가 되면 그가 꼭두각시와 다섯 마귀의 힘을 빌려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고 만다. 그러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은 그가 절대 할 리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남궁완이 이미 상고 요수 화섬의 내단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저절로 봉인이 풀리지 않더라도 저주가 발작하는 시기를 미뤄 2, 3백 년 간은  목숨을 잃을 걱정이 없었다.

그러면 그도 조용히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나았다. 이제 한립은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제외하면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반대로 영안의 샘이 발산하는 우윳빛 영기들은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그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루, 한 달, 일 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우윳빛 영기의 안개는 쉼 없이 몰려들어 둥글게 그를 에워쌌다. 눈 깜짝할 사이에 80년이나 지나갔다.

* * *

난성해 어느 섬의 항구에는 크고 작은 선박들과 수도자들이 바삐 드나들었다. 섬의 유일한 출입구를 빼고 전부 금제로 가려져 있어 번화한 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섬 안쪽에 작은 산에는 여러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크고 하얀 누각은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 꼭대기 3층에 남색 장포를 입은 수사와 문사 차림에 관모를 쓴 하얀 장포 서생이 항구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었다.

“명 사형, 역성맹과 성궁이 또 낙성도(落星島) 인근에서 크게 싸웠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역성맹 결단기 수사가 한 명 죽어나갔다고 하니 그쪽이 당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요 몇 년 사이 성궁과 역성맹의 충돌이 빈번해지기는 했네. 큰 전쟁이 머지않았음이야. 그러고 보니 역성맹은 이미 세력이 커질 대로 커졌고 내해의 36개 섬 중 이미 20개 넘게 차지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전투에서 성궁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니 이상한 일이야.”

서생이 늘어놓는 말에 남색 장포의 도사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그건 이상할 것이 없지요! 천성쌍성(天星雙聖)이 원자신광을 수련해 천성도를 떠나지만 않으면 거의 무적이 아닙니까. 최근 몇 번의 대규모 전투에서도 천성도 근처에서 육도 극성과 만삼고가 천성쌍성에게 대패했다는 소문도 자자하고요. 하지만 천성쌍성도 오랫동안 천성도를 떠날 수는 없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이 크게 떨어진 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니 우리 같은 작은 종문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지요.”

“그러게 말일세. 양쪽에서 수시로 수사들을 뽑아가는 것은 그나마 나아. 그냥 대충 저계 수사 몇 명을 보내면 되니까. 그런데 한 번만 내면 되던 공물을 양쪽에서 다 받아가니 이젠 정말 살기 어려워졌어!”

남색 장포 도사가 입을 비죽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명 사형은 그런 것도 신경 쓰십니까?  그런 일은 우리 같은 축기기 수사들이 아니라 사백님이나 사조님들이 고려할 문제입니다. 사조께서 계시는 동안은 아무리 성궁이나 역성맹이라도 본 문을 어쩌지 못할 테니까요. 그나저나 2년간의 집사 임무 기간이 끝나가니 힘이 납니다. 저번에 폐관수련에 꽤 성과가 있어 이제 곧 축기 중기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가?  백여 년 만에 축기 중기에 들 수 있다니 사제의 자질이 정말 뛰어나구만. 난 수십 년간 중기에 머물며 전혀 진보가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네.”

남색 장포 도사는 서생의 말에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초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것보다 축기 중기에 이르러 수련의 고비를 넘기는 것이 훨씬 어렸다는 것을 다 아는 것을요. 저도 중기에 이르면 십중팔구 사형과 상황이 비슷해 질 겁니다.”

남색 장포 도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무어라 입을 열려는 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 굉음이 울려 퍼지고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두 수사가 놀라 항구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항구의 십여 리 밖의 허공에서 희미하게 아름다운 색깔의 운무가 퍼져나가며 무언가 바다를 뚫고 튀어나올 듯 엄청난 굉음을 내며 해수면에 백여 장 높이의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항구를 드나들던 선박들은 난리가 나 필사적으로 항구로 돌아오려 했고 수많은 범인들은 배에서 뛰어 내려 해안가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거칠고 사나운 파도 앞에서 대부분의 배들이 서로 부딪쳐 조각났고 범인들은 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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