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46화 (403/2,000)

# 646

646화. 전송진 전투

소극궁 쪽에서 현옥동의 이상을 알아차리기 전에 탈출하려면 시간을 오래 끌 수 없었다. 미부인은 미묘한 한립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곳에 한립만 나타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강적을 앞에 두고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미부인이 단호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황천귀모가 녹색 안개 속에서 번뜩이며 신형이 모호해졌고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초록 실들이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종적을 감추었다.

녹색 실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지만 아래쪽의 빙봉은 무언가를 감지한 듯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감히 어딜!”

요수가 또 다른 전송진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튕기니 하얀 검기 다섯 줄기가 날아갔다. 동시에 그 위를 날아다니던 지네도 곧장 고개를 숙여 하얀 한기를 분출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표정이 달라져 등 뒤로 천둥소리를 울리며 은색 뇌전을 번뜩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격을 받은 전송진에서 녹색빛이 번뜩이더니 전신이 녹색 기운으로 자욱한 황천귀모가 나타났다. 다섯 줄기의 검기와 한기의 공격에 여인은 음산하게 웃었고 검기와 한기 쪽으로 각각 손바닥을 펼쳤다.

검기 다섯 개가 한 장 밖에서 조각나 흩어졌고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한기는 무형의 압력을 만난 것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때 은빛이 번뜩이며 한립이 작은 전송진 안에서 나타나 지체 없이 법결을 던지고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었다. 그 뒤로 인영이 흐릿하게 나타나 붉은 궁으로 하늘을 뒤덮을 듯 대량의 불화살을 빙봉에게 쏘아 보냈다.

멀리서 아이를 공격하던 백골이 돌연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더니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섯 마귀로 갈라져 출렁이는 마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회백색 기운 다섯 개가 한립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수레바퀴만한 해골 머리로 변했다. 한립이 법결을 이용해 그것들을 강제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제 전송진이 하얗게 빛나며 발동하려는데 한립은 멀리 서 있는 빙봉을 노려보며 신중한 얼굴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한립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미부인과 빙봉 모두 깜짝 놀랐다. 미부인은 표정이 달라져 몸을 날리며 동시에 소리쳤다.

“전송진을 없애 절대 달아나지 못하게 하세요!”

비록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전송진 위에 서 있는 한립을 일컫는 것이 확실했다. 어쨌든 한립이 무슨 짓을 했든 안 했든 이렇게 사라지면 황천귀모의 도움이 있어도 그녀 홀로 두 요수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진법 아래쪽에 있던 황천귀모가 낮게 키득 이더니 전송진 방향으로 입을 벌려 무언가를 하려했다. 그때 한립이 손을 뻗어 녹색 나무 자를 들어올리자 희미하게 은색 연꽃이 피어나 일곱 가지 색깔의 불광이 번져나갔다.

“불문의 통천령보!”

나른한 기색으로 일관하던 황천귀모가 기겁을 하고는 냉큼 녹색 실 뭉치로 응결해 사라져 버렸다. 이미 전송진에서는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미부인이  빨리 움직여도 막기에는 늦었다.

한립이 희색을 드러내다가 돌연 표정이 달라졌다.

불화살이 쇄도하는 와중에 빙봉이 공간을 찢어내고 그 사이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립은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전신에서 엄청난 수의 금빛 검기를 방출했다.

찰나의 순간 고슴도치처럼 변해 10급 빙봉이 접근해도 그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빙봉은 스무 장 밖의 또 다른 전송진 위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냉소하며 전신에서 하얀 빛을 터트렸고 한 손을 한립이 있는 방향으로 쥐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반투명한 기운이 서서히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곧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기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머리 위의 기운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금색 검기들이 반투명한 기운을 찔러 들어갔는데 마치 환영을 가르듯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립은 크게 놀라 팔령척을 이용해 막아 보려는데, 멀리서 빙봉도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갑자기 허공에 뻗은 다섯 손가락을 굳세게 쥐고 천만근에 달하는 물건을 당기듯 천천히 끌어당겼다.

동시에 반투명한 기운이 한립의 머리 위에 나타나 전송진 전체를 휘감았다.

‘이런!’

우웅!

그가 불길한 예감에 대비하기도 전에 하얀 빛이 전신을 감쌌다. 한립은 작은 전송진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오자동심마와 인간형 꼭두각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전송진 위는 텅텅 비었고 운용을 멈춰 하얀 빛도 자연히 사그라졌다. 괴이한 일에 그쪽으로 달려들던 소극궁 궁주가 가슴이 서늘해져 빙봉을 살폈다.

빙봉이 변한 여인은 뻗었던 손을 거두는 중이었는데 두 뺨이 기이하게 붉었고 전신의 빛이 번뜩이는 것이 무리에서 힘을 쓰는 듯 했다. 그 모습에 미부인은 주저하지 않고 열손가락을 튕겨 날카로운 은색 못 열댓 개를 날렸다.

빙봉은 분노했지만 사용 중인 비술은 워낙 막대한 힘을 소모해야 하는 신통이었다.

이런 공간 계열 비술은 아마 화신기에 이르러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텐데 한립이 눈앞에서 사라지려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져 사용하고 말았다.

미부인의 공격에 어찌할 도리가 없자 그녀는 팔을 끌어당기던 것을 멈추고 한 손을 아래쪽으로 떨쳤다.

쾅!

아래의 커다란 전송진 속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며 반투명한 기운 속에서 한립과 꼭두각시, 오자동심마를 토해냈다. 그는 순간 강제로 공간 이동을 당한 현기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틀거렸다.

빙봉이 반짝이는 비단 두루마기를 펼쳐 열댓 개의 은색 못을 막고는 동시에 아래쪽으로 소매를 털어 한립을 향해 투명한 비검들을 미친 듯이 쏟아 부었다.

한립이 급히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더니 입에서 고풍스러운 솥을 뿜어냈다. 작은 솥은 데구루루 굴러 표면에서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푸른 실을 만들어 냈고 거대한 그물을 형성해 스스로를 감쌌다.

그리고 다섯 마귀가 변한 해골들은 입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며 회백색 기운을 뿜어냈고 인간형 꼭두각시는 신형이 흐릿해져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아이가 수중의 만요번을 다시 허공에 발동해 다시 거대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깃발 안에서 요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고 새까만 요수의 환영들이 생성되어 점점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립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풍뢰시를 펼쳐 뇌둔술로 곧장 작은 전송진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전송진을 보호해 다른 이들이 쉽게 망가트릴 수 없게 할 계획이었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을 뿜어내던 허천정이 그의 조종도 받지 않고 불현 듯 빛을 내뿜더니 보물과의 의식 연계가 끊기고 말았다.

본래 투명한 검기들을 막던 푸른 실들이 돌연 방향을 틀더니 한립이 있는 대형 전송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쿠르릉!

진법이 푸른빛을 머금고 운용되기 시작했고 한립과 오자동심마 등을 전부 집어 삼켰다.

“허천정!”

소극궁 궁주가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빙봉은 개의치 않고 한립을 향해 열 손가락을 마구 튕겨댔다.

그러자 열댓 개의 날카로운 은빛이 쇄도했다. 대형 전송진 상공에 있던 빙봉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형 전송진이 한립을 어디로 보낼지는 몰라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동시에 투명한 검기들이 빽빽하게 아래쪽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대형 전송진을 휘감은 푸른 기운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소극궁 궁주의 열댓 개의 은색 빛줄기나 백여 개가 넘는 빙봉의 투명 검기를 맞고도 파문이 일지 않았다.

이에 미부인과 빙봉이 동시에 넋을 놓았다. 사실 그들보다 대형 전송진 안에 갇힌 한립이 더 놀라고 있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금색 비검으로 주변의 푸른 보호막을 마구 베어대는 중이었다.

한려 상인의 원영에게 추혼술을 사용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세 번째 대형 전송진은 줄곧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단방향 상고 전송진이었다.

비록 어떻게 발동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방향이라면 절대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 만일 또 귀무 속의 음명의 땅 같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면 낭패가 아닌가!

그는 푸른 보호막을 비검으로 베어대도 성과가 없자 이를 악물고 삼색의 빛을 손에 들었다. 결국 삼염선으로 뚫고 나갈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무턱대고 전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한립 자신도 깃털 부채의 위력에 말려들 것이다. 그가 부채를 살짝 펄럭이자 삼색 화염이 마치 칼날처럼 보호막을 갈랐다.

촤륵.

확실히 삼염선의 위력은 효과가 있어서 단단하기 그지없던 푸른 보호막에 틈이 벌어졌지만 고작 한 척 길이라 그 틈으로 달아날 수는 없었다.

한립이 기뻐하며 틈을 넓힐 궁리를 하는데 갑자기 빙봉이 공간을 찢고 나타나 한 손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꿔 그 틈으로 집어넣었다.

아무리 전송진으로 탈출하고 싶다지만 10급 요수 빙봉의 수중에 떨어질 수는 없었기에 한립이 삼염선으로 상대를 공격하려는 순간, 돌연 그가 안색이 급변해 삼염선을 회수하고 남색의 영패를 꺼내들었다.

바로 대나이령(大挪移令)이었다.

그가 영패를 쥐자마자 상고 전송진은 눈부신 빛을 방출했고 푸른 보호막도 허물어졌다. 빛이 가시고 그 안의 한립, 오자동심마 등이 전부 사라졌고 심지어 진법 외곽에 있던 10급 요수 빙봉까지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

그 광경에 소극궁 궁주가 멈칫 놀라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강적 하나가 사라진 것은 기뻐할 일이었으나 소극궁 창립 조사인 빙백 선자의 통천령보를 눈앞에서 놓친 것은 분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아이의 표정도 구겨졌지만 다시 미부인을 노려보더니 괴성을 지르며 만요번을 가리켰다. 동시에 깃발의 요기가 배로 진해지며 크기와 종류가 제각각인 요수의 환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새까맣게 대전을 뒤덮었다.

미부인은 얼굴이 굳었으나 뒤에서 녹색빛이 번뜩이며 황천귀모가 나타나 냉소했다. 그녀가 빙글 돌아 대량의 녹색 기운을 마구 풀어 놓으니 처량한 귀곡성이 하늘을 찔렀고 공간 전체가 녹색 귀무와 검은 요기로 가득 차 허공에서 충돌했다.

녹색 안개와 검은 기운이 밀고 밀리며 그 안에 요수의 환영과 귀물들이 번뜩였는데 황천귀모라 불리는 귀수는 호언장담한 대로 차 요괴의 화신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소극궁 궁주가 기뻐하며 일단 한립의 일을 잊고 두 손을 교차해 새빨간 뇌화로 허공의 요기를 갈랐다. 이제 대전 안은 엄청난 폭음 속에 귀무와 요기로 뒤덮여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 * *

서른 장 가까이 되는 석실 안. 허령전의 거대 전송진과 비슷하게 생긴 진법 위에서 한립은 허천정을 들고 무표정하게 절색의 가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인간형 꼭두각시가 서 있었고 오자동심마가 변한 해골 머리들이 허공에 떠서 피에 굶주린 눈빛으로 여인을 응시하며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한립의 명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여인을 해치울 기세였다. 정면에 서 있는 여인은 당연히 전송진에 함께 딸려온 10 급 요수 빙봉이었다.

푸른 보호막이 부서진 순간 여인도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공간을 찢어 달아나려 했는데 공간신통과 전송진이 기묘하게 영향을 미쳐 거꾸로 이곳으로 전송되고 만 것이다. 요수의 육체와 공간 관련 신통을 지니지 않았다면 벌써 공간의 압력에 갈기갈기 조각났을 것이다.

지금 여인의 처지는 그다지 좋지 못해서 석실 한쪽 구석에 서서 냉랭히 한립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눈앞의 인간 수사와 생사를 걸고 혈투를 벌이면 4대 6 정도로 자신에게 불리했다.

줄곧 경지를 억누르지 않았다면 벌써 화신기 경지에 이르렀을 그녀였지만 눈앞의 수사는 그녀가 만난 상대 중 가장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겨우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닌 주제에 대수사를 능가하는 신통을 발휘했고 오자동심마와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인간형 꼭두각시까지 겸비해 한 명이 아니라 원영후기 수사 셋과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빙봉이 한립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고 격퇴하려는 것이지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려 한다면 공간 신통을 지닌 그녀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