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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45화 (402/2,000)
  • # 645

    645화. 공간 신통

    한립은 전속력으로 제단으로 날아가 상공에 도착했고 바짝 뒤쫓던 지네가 분출하는 한기를 피하려 아래로 하강했다.

    그런데 그때 그와 머지않은 곳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며 빙봉이 제단에 나타나 고개를 들고 냉랭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는 소극궁 수사도 아니고 요족과 아무런 은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를 죽기 살기로 막는 것입니까!”

    한립도 그녀를 마주보며 거북한 마음을 표출했다.

    “네가 누군지 상관없이 빙백 선자의 건람빙염을 전승한 자는 곧 우리 빙봉(氷鳳) 일족의 적이다. 감히 본 궁 앞에서 어딜 도망가려고!”

    “거만한 분이군요. 공간 신통을 이용해 절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기십니까?  좋습니다, 그럼 저도 빙해의 주인에게 잠시 가르침을 받아 볼까요.”

    한립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꽈광! 콰르릉!

    그가 손을 뻗자 금색 검빛과 불까마귀들이 주변으로 날아들며 검기와 화염에서 엄청난 소리가 퍼졌고 동시에 은빛이 번뜩이며 그 옆에 인간형 꼭두각시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저물대를 스쳐 검은 옥병이 나타나자 그 안으로 법결들을 때려 넣었다. 작은 병이 몸을 떨더니 회백색 기운 다섯 개가 흘러나오며 백골들이 기괴한 울음을 흘렸다.

    음산한 눈빛으로 빙봉을 노려보는 백골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피에 굶주린 모습이었다.

    “오자동심마!”

    빙봉이 멈칫하다가 시선을 인간형 꼭두각시로 돌렸다.

    “기관괴뢰라니, 인계에 이런 등급의 꼭두각시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단 말인가?  보아하니 두 화신을 불러들여도 널 죽일 가능성이 크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잠시 너를 이곳에 잡아 두는 것은 가능하겠지. 전송진을 함부로 사용하다 사단이 나고 싶지 않다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테니 말이야.”

    여인이 뜻밖에도 그의 전력을 내비쳤다.

    “화신을 불러들인다고요. 직접 조종하지 않아 겨우 적들을 상대하고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있을까요?  홀로 오자동심마와 꼭두각시의 도움을 받는 나를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립은 의식으로 이미 대청 중앙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빙봉의 화신들은 소극궁 수사 셋에게 확실히 밀리고 있었다.

    아마 두 화신도 극한의 화염을 부릴 수 없었다면 진작 당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미부인이 때때로 한립 쪽을 살피며 의문을 드러냈지만 일부러 도움을 주러 날아오지는 않았다.

    소극궁 궁주 입장에서는 한립이 혼자 빙봉의 본체와 죽어라 싸우는 동안 그들은 화신들을 멸하는 것이 나았다.

    반대로 그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낯선 수사를 도우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립도 그들의 속셈을 알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빙봉이 냉소하는 것을 보니 위협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한립이 한숨을 쉬며 드디어 대화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접고 수결을 맺었다.

    중상을 입히거나 죽여야 안심을 하고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 동시에 다섯 마귀들과 꼭두각시를 이용해 빙봉을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인의 표정이 돌연 달라지더니 한 시름을 놓은 것 같았다. 한립이 흠칫 놀라 상대가 왜 저러나 생각하는데 허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노부를 만날 때로구나!”

    한립 주변의 영기의 흐름이 변하며 회색빛으로 풍경이 흐릿해졌다. 화들짝 놀란 그가 소매를 털자 파계부가 튀어 나와 노란빛을 번뜩였고 주위의 풍경이 멈칫하며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콰콰쾅!

    그 틈을 타 한립 주위의 금색 검빛과 불까마귀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회색빛을 흩어버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십 장 위에 어느새 백여 장 크기의 거대 만요번이 나타나 회색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까 만요번 금제를 깨고 나올 때 파계부의 전력을 다하지 않아 다시 써먹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난감한 상황에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이곳에서 달아나는 것이 무척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만요번의 금제에 다시 갇힐 수는 없었다.

    한립이 의식을 움직여 주술을 읊자 다섯 백골들을 통제하는 법결이 발동되었다. 다섯 마귀들은 풀썩 뛰어 올라 회색 빛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었고 곧 키가 서른 장 가까이 되는 거대 백골로 다시 태어났다.

    이어 백골의 텅 빈 눈두덩이 속에서 녹색빛이 번뜩였고 두 팔이 위쪽의 허공을 쥐자 갈비뼈 두 대가 빠져나와 십여 장 길이의 장도로 변했다.

    고개를 쳐들고 길게 포효한 백골이 쌍도를 십자(十字)로 갈랐고 엄청난 도광(刀光)이 회색 기운을 가르고 만요번을 공격해 들어갔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퍼지고 요기가 서늘한 도광과 뒤엉켰다. 거대 백골은 하늘로 날아올라 손에 든 쌍도를 미친 듯 휘두르며 초승달 형태의 기운을 잇달아 분출했다.

    뜻밖에도 단번에 거대 깃발을 없애 버릴 작정 같았다.

    만요번 속에서 차 요괴의 성난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 깃발이 순식간에 급속도로 작아져 한 척 길이로 줄어들었다.

    아이가 빛을 번뜩이며 허공에서 나타나 깃발을 쥐고는 수십 장 밖의 어딘가로 순간이동을 했다. 보아하니 만요번은 크면 이동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움직이기 편한 원형으로 되돌린 것 같았다.

    거대 백골이 그것을 보고 몸을 떨더니 회백색 마기 속에서 스스로 줄어들어 거대한 육체가 다시 두 장 크기로 돌아왔다.

    백골은 흐느껴 우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입에서 회백색 마기를 뿜어냈고 뼈로 만든 쌍도를 휘두르며 아이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아이는 눈앞의 오자동심마 때문에 약간 골치가 아팠다. 이런 특수한 제련을 받은 마귀는 만요번의 금제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고 전문으로 항마 작용을 하는 법기가 있거나 주인을 죽이지 않고는 불사의 몸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라 아무리 때려 부셔도 다시 회복될 것이 뻔 했다.

    만요번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주로 인류 수사를 대적하기에 좋았고 화신의 몸으로 다른 신통을 발휘해 마귀들을 죽이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터였다.

    그러나 이미 백골이 달려들고 있었기에 차 요괴의 화신은 그저 인상을 쓰면서도 만요번을 휘둘러 회색 기운을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식의 10분의 6은 여전히 한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와 나란히 서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빙봉은 여전히 옥으로 만든 높은 제단에 서서 공격해올 기미가 없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자리를 뜨면 한립이 전송진 속으로 사라져 버릴까 걱정하는 듯 했다. 날개 넷 달린 지네들도 좌우의 작은 전송진 위에 떠서 호시탐탐 한립을 주시하고 있었다.

    빙봉도 작은 전송진 두 개가 허령전을 탈출하는 유일한 출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립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빙봉의 공간을 찢어 내는 신통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돌연 대청 중앙에서 누군가 광소를 터트렸다.

    “드디어 나왔구나! 이번에는 어디 몸 좀 풀어 볼까?  약속한 대로 내 마음껏 즐기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야.”

    웃음소리는 여인의 것이었지만 거칠고 귀에 거슬렸다. 한립이 멈칫하며 의식으로 그쪽을 훑고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빙봉 화신 두 마리와 싸우던 미부인이 돌연 그쪽 전투를 버려두고 한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부인 뒤로 음기(陰氣) 속에 여인의 인영이 번뜩이며 웃어댔다.

    “무슨 일이…….”

    한립은 바로 음기 속의 여인에게서 강력하지만 음산한 힘을 느꼈고 놀랍게도 원영 후기의 수행을 지녔다는 것을 간파했다. 전신을 감싼 음산한 기운으로 보건데 엄청난 수행의 귀수(鬼修)가 확실했다.

    “본 궁주가 저들이 합심해 수사를 상대하게 두지 않을 것이니, 한 수사는 당황할 것 없습니다. 제가 수사를 돕지요!”

    미부인이 돌연 한립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한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더니 갑자기 한립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 이상했다.

    10급 요수들은 처음부터 소극궁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닌가!

    비록 미부인이 한 눈에 그의 신분을 알아 본 것이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정을 따져 물을 때가 아니었다. 원영 후기 수사 둘이 싸움을 돕겠다면 그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소극궁 궁주의 신통은 요수들보다 한참 떨어졌지만 녹색 기운 속의 귀수는 전해지는 영기의 압박부터 달랐다. 원영 후기의 최고봉에 이른 경지였던 것이다.

    “화천귀모(黃泉鬼母)! 감히 노부의 일에 끼어들다니!”

    거대 백골과 싸우던 아이가 녹색 기운 속의 여인을 보고 표정이 급변해 소리쳤다.

    “만일 수사께서 친히 나섰다면 끼어들지 못했겠지만 겨우 화신인데 뭐 어떤가요?  설마 당신이 날 잡아 먹을까 덜덜 떨고 있어야 할까요?”

    초록색 기운 속의 여인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리며 전혀 아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천귀모라면 홀로 수많은 수도 종문을 멸했다던 그 귀수?”

    빙봉의 얼굴이 미미하게 달라져 중얼거렸다.

    “오, 대 빙해의 주인께서 이 늙은이의 이름을 다 기억해 주시고 영광입니다. 본 귀모가 막 송장이 되었을 때 이미 화신기에 가까운 수행이라 들었는데 아직 10급에 머물러 있다니 인계의 원기 불균형 때문에 죽을 까봐 그랬나 봅니다. 그렇게 열심히 수행을 억누르느라 고생이 많았겠어요. 하지만 빙봉 일족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경지를 넘어서지 않고는 더 버티기 어려울 텐데요?”

    황천귀모는 뜻밖에도 빙봉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는 그녀의 비밀을 서슴없이 발설했다. 이에 빙봉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립이 마른 침을 삼키며 이제야 빙봉이 왜 그렇게 대적하기 어려웠는지 깨달았다.

    “제가 당신을 풀어 준 이유가 옛날이야기나 하며 노닥거리라는 뜻이었나요?”

    이때 미부인이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화신기 수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네 목숨을 지키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니 걱정 말거라. 그 전에 내게 약조한 것이나 잊지 말고! 게다가 혼석 없이 강제로 나를 부리는 것이니 음기가 몸에 침투해 이번 일이 끝나면 크게 앓게 될 것이야.”

    황천귀모가 녹색 기운 안에서 냉소했다. 미부인은 황천귀모의 말에 얼굴을 굳히며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황천귀모와 미부인은 이미 제단 근처로 다가와 한립과 두 요수 사이에서 대치했다.

    “한 형, 일단 빙해의 주인부터 보내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시지요!”

    미부인의 말에 한립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부인이 속으로 기뻐하며 황천귀모와 함께 움직이려는데 아래쪽의 빙봉이 돌연 한 손을 들어 하얀 빛 줄기를 분출했다.

    쿵!

    그녀 뒤쪽으로 작은 전송진 하나가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이에 한립과 미부인이 동시에 난색을 표했다.

    “굳이 그렇게 다들 몰려오겠다면 나머지 전송진 마저 부수겠다.”

    빙봉이 허공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선언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전송진을 전부 부수면 허령전에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미부인이 표정이 급변하다가 겨우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수사는 내가 어찌 허령전에 잠입했는지 잊지 말아야 할 텐데.”

    빙봉이 조그맣게 웃음을 흘리니 꽃이 만발한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두 눈은 무척 서늘했다.

    “한 수사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요물들이 전송진을 전부 없애도 수사와 본궁이 힘을 합치면 며칠 내로 금제를 뚫고 대전 정문으로 빠져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잠시 침음하던 미부인이 한립을 향해 말했지만 그의 좁혀진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만일 현옥동의 소극궁 수사 셋이 그의 손에 전부 살해당한 것을 알면 힘을 합쳐 금제를 뚫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부터 죽이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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