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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43화 (400/2,000)

# 643

643화. 각자의 신통

요사스런 기운을 품은 바람이 몰아쳐 한립 주변의 불바다를 갈랐다. 한립은 고민할 것 없이 저물대 속의 항마장을 방출해 요수의 손을 향해 내던졌다.

꽝!

바람을 타고 열댓 장으로 커진 항마장이 검은 요수의 발톱과 부딪치며 하늘을 울릴 듯 굉음이 울렸다.

항마장이 뜻밖에도 거대한 요수 발톱을 잠시 막고는 튕겨나가고 만 것이다. 그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요수의 발톱에 한립이 입술을 꿈틀거렸다.

우웅!

그가 의식을 움직이자 주변의 36개 금빛 비검들이 머리 위로 응집했다. 금빛이 크게 번지고 비검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대여섯 장의 거검으로 합쳐졌다.

꽈과광!

거검 표면을 타고 굵은 금빛 뇌전들이 튀어 나가 떨어져 내리는 요수의 발톱을 가르려 했다.

서걱!

36개의 청죽봉운검이 응결된 거검은 한립이 법결로 북돋자 더없이 단단해 졌고 금빛을 번뜩이며 거대 요수 발톱을 둘로 갈랐다.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차 요괴도 약간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둘로 갈라진 요수 발톱은 흩어져 검은 요기 속으로 사라졌다.

한립은 눈이 남색으로 번뜩이더니 돌연 금색 빛줄기를 가리켜 방향을 틀게 했다. 금색 빛줄기가 구렁이처럼 변해 허공 어딘가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검은 빛이 번뜩이며 금빛 구렁이가 새까만 방패를 물어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방패 뒤로 작은 체구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빙성 바깥에 결집해 있던 차 요괴의 화신이었다.

어린 아이가 가슴에 은색 열쇠를 걸고는 방패에 막혀 있는 금색 구렁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경정! 비검에 이리 귀한 재료를 섞어 넣다니, 내 마천조(摩天爪)를 뚫을 만하구나!”

“예상대로 화신에 불과했군요.”

한립은 만요곡 곡주가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이가 화난 듯 갑자기 허공을 쥐어 회색의 작은 깃발을 손에 쥐었다.

“지금까지는 만요번의 위력 중 겨우 2성을 펼친 것이다. 이번 공격으로 노부가 네 육신과 혼백을 전부 멸해 만요번의 진정한 위력을 경험하게 해주마!”

차 요괴는 말을 마치고 작은 깃발을 펄럭였다. 아무래도 대단한 신통을 펼칠 모양이었다. 한립은 신중한 얼굴로 불바다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불까마귀들이 튀어나와 아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금색 거검도 스스로 폭발해 다시 36개의 비검으로 돌아갔다. 각각의 검들이 금빛을 요란하게 뿜어대며 환영을 만들어냈고 백여 개가 넘은 금빛으로 변해 아이를 휘감고 베어나갔다.

아이가 입을 비죽이며 깃발을 잠시 멈추더니 한 손으로 검은 방패를 가리키자 검은 방패가 몸을 떨며 거무튀튀한 보호막으로 변해 아이를 감싸 안았다.

금빛과 검은 빛이 번뜩이며 교전했지만 그렇게 많은 금빛들의 공격에도 검은 방어막은 일렁일 뿐 전혀 뚫리지 않았다. 아이는 그 뒤에 날아든 수십 마리 불까마귀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작은 깃발을 북돋는데 여념이 없었다.

불까마귀들은 화염의 정화가 변한 것으로 아이가 보기에는 무쇠 방패를 어찌할 능력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회색 깃발이 흐릿해진 순간, 공간 전체가 흔들리고 한립 주변의 불바다 속에서 회색 안개가 용솟음쳐 이상한 공간 파동을 만들어냈고 갑자기 네 개의 검은 구멍이 뚫려 무언가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한립은 구멍을 못 본 체하며 곧 검은 보호막에 다다를 불까마귀들을 바라보고는 등 뒤로 풍뢰시를 펼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불까마귀들이 입에서 붉은 화염을 뿜으며 검은 보호막을 공격했다.

그러나 아이의 예상대로 금색 검빛과 불덩이의 공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검은 보호막은 멀쩡했다. 아이가 한립이 뇌둔술을 이용해 불바다 속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는 냉소했다.

그가 잠시 주술을 멈추고 한 손을 뒤집어 검푸른 색깔의 얇은 줄을 꺼내 던지니 여러 개의 밧줄로 늘어나 대여섯 장 밖의 어딘가를 덮쳤다.

그 다음 순간 은빛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났는데 바로 검푸른 밧줄들이 떨어져 내린 곳이었다.

‘이런!’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밧줄이 그를 휘감아 수축해 들어갔고 단단히 구속했다. 아이가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입에서 검은 빛을 번뜩였다.

한립이 꼼짝 못하는 틈을 타 강력한 보물을 내뿜어 목숨을 거둘 생각이었다.

이번 일은 한립도 전혀 예상을 못한 것이었다. 미리 위치를 파악해 날아드는 보물이 있을 줄이야!

그가 낮게 소리치며 수결을 맺자 비취색 빛이 전신에 퍼져 검푸른 밧줄과 충돌했고 한립의 몸이 신기하게도 사라지고 푸른 부적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즉시 한립은 열댓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났으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아직 연화를 끝마치지 못한 화령부(化靈符)를 이용한 것이었다.

푸른 부적은 밧줄 속에서 흐릿해졌고 결국에는 비취색 빛으로 흩어지고는 한립을 향해 날아와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이번에는 아이가 난색을 표하다 검은 빛을 번뜩이며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 순간 검은 보호막의 다른 쪽에서 은빛이 번뜩이며 푸른 인영이 나타났다. 인간형 꼭두각시가 귀신처럼 접근해 붉은 궁을 들고는 수없이 많은 불화살들을 근거리에서 쏘아 보냈다.

같은 시각 아이의 머리 쪽으로 새까만 비검이 번뜩이며 수많은 금빛과 붉은 화염으로 몸을 숨기고 조용히 파고들었다. 비록 아이는 차 요괴의 화신이었지만 의식은 청배창랑이 변한 노인보다도 위였다.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졌지만 머리 위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은 빛이 가장 치명적이라 판단한 아이는 불가사의한 속도로 무쇠 방패를 내리쳤다.

이후 고개를 돌려 입에서 지폐 모양의 법보를 검은 기운에 싸서 뿜어냈다.

불화살들이 응결해 굵은 불기둥이 되어 검은 방패를 내리쳤다. 그러자 아이가 손을 뻗어 무쇠 방패를 가리키자 검은 보호막이 순식간에 몇 배로 두꺼워졌다.

쿠쿵!

화염이 보호막을 타고 번졌고 드디어 검은 보호막도 흔들렸다. 그 순간 위쪽의 마수찬 비도가 보호막 위쪽에서 내리 꽂혔다.

스걱!

놀랍게도 마수찬 비도는 가느다란 틈을 내고 두꺼운 보호막 속으로 침입했다. 그때 지폐 형태의 법보가 날아들어 탕! 하고 비도를 공격했다.

기이한 빛이 번뜩이고 두 보물이 동시에 종적을 감추었다.

‘뭐지? ’

한립은 흠칫 놀라 인간형 꼭두각시 속의 의식을 확인했고 마수찬 비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근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까악!

검은 보호막에 막혀 있던 수십 마리의 불까마귀 중 한 마리가 돌연 날개를 펼치며 울부짖더니 몸이 몇 배로 불어나 입에서 하얀 한기를 분출했다.

오늘 현옥동에서 태음진화가 변한 불까마귀를 이용해 흡수해둔 현옥한기(玄玉寒氣)였다.

대량을 흡수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연화를 거치지 않으면 태음진화로 완전히 흡수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중 적잖은 양을 태음화아가 한립의 명에 따라 내뿜고 있었다.

하얀 한기가 보호막을 타고 흘렀고 수정처럼 얼음이 덮이기 시작하더니 한 호흡 만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형성되었다. 놀랍게도 검은 보호막은 물론이고 그 안의 아이까지 얼음 속에 봉인되었다. 한립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희색을 드러냈다.

그는 겨우 이 정도로 10급 요수를 어쩌지 못할 것은 알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바로 수결을 맺으며 얼음 주변의 백여 개의 검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빛들이 높이 치솟아 한 바퀴 돌고는 동시에 공명하며 도처로 괴이하게 흩어졌다. 차 요괴의 화신이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기에 대경검진을 펼쳐 요수를 멸살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검진을 절반도 펼쳐지지 못했는데 얼음덩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고 무수히 많은 은색 실들이 뚫고 나와 당장이라도 얼음 전체를 깨트릴 기세였다.

반투명한 얼음 속으로 검은 방패와 아이가 들고 있는 어떤 물체에서 은색 실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본래 아이가 가슴에 걸고 있던 은색 열쇠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대경검진을 완성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는 손을 뒤집자 초록색 나무 자가 나타나 멀리 있는 아이를 향해 비추었다.

아이 머리 위로 빛이 번뜩이더니 한 척 크기의 은색 연꽃이 빙그르 피어나 일곱 가지 색깔의 불광(佛光)을 퍼트렸다.

얼음을 뚫고 나오던 아이의 움직임이 불광 속에서 느려졌고 놀라 멍해진 것이 보였다. 그때 인간형 꼭두각시가 두 손을 마주쳤고 몇 척 길이의 긴 창을 손에 쥐었다.

아이가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수중의 회색 깃발을 날려 보냈다. 놀랍게도 일곱 빛깔로 펼쳐진 금제 속에서도 만요번을 발동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 아이를 중심으로 도처의 공간이 왜곡되며 회색 장벽이 생겨났다. 이때 은색 긴 창도 인간형 꼭두각시의 손을 벗어나 순식간에 아이 앞의 장벽을 공격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은색 긴 창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 앞의 장벽을 지나 아이의 옆을 지나치더니 또 다른 장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분명 아이는 갇혀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공간 왜곡!’

만요번이 만들어낸 장벽이 공간을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면 평범한 공격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 장벽 뒤에서 아이가 한 손에는 만요번을 다른 손에는 은색 열쇠를 들고 냉랭히 한립을 쳐다보았다.

검은 빛이 몸을 타고 번뜩이며 그를 구속하는 일곱 빛깔의 금제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대는 일반적인 원영 후기 수사도 아니었고, 만요번 금제 속에서 싸우는 것도 너무 불리했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그의 시선이 불바다에 형성된 네 개의 검은 구멍으로 향했다.

아이가 구속되어 술법을 펼치지 못해도 구멍들이 점점 넓어져 가고 있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요수의 포효 소리로 무언가 거대한 요마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콧방귀를 뀌며 마음을 굳히고 곧바로 팔령척을 회수하며 수결을 맺었다.

동시에 멀리 떠 있던 불솥, 불까마귀들, 인간형 꼭두각시, 36개의 비검 등이 몸을 떨며 그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고 오직 태음화아만이 공간 장벽을 한 바퀴 돌며 극한의 한기를 뿜어냈다.

대량의 한기 중 대부분이 공간 장벽에 의해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했지만 나머지는 아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은색 열쇠에서 은실을 뿜어내 다시 얼음을 깨트렸고 그 틈에 태음화아까지 한립에게 돌아왔다.

한립은 급히 한 손을 뒤집어 노란 부적을 꺼냈다.

표면에 주술이 넘실거리고 영기의 빛을 번뜩이는 부적은 령롱 선자가 떠나기 전에 주었던 파계부(破界符)였다.

금제 속의 공간을 빠져나가는 데에 특효인 부적이었지만 함부로 쓰기에는 무척 귀한 것이라 처음부터 꺼내들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만요번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고 상대가 알 수 없는 신통을 부리려 하자 더는 버티지 않고 과감히 부적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상대의 공간 장벽을 깨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 자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파계부를 쓸 예정이었다. 두 손가락 사이에 파계부를 든 그는 허공의 한 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부적에서 노란빛이 날카롭게 터져 나오고 공간에 파문이 일며 왜곡되어 하얀 빛덩이가 형성되었다.

한립은 기뻐하며 자신의 모든 보물들을 불러 모았다. 비검과 불까마귀들과 인간형 꼭두각시가 합세해 하얀 빛덩이를 공격했다.

쿠콰콰쾅!

하얀 구멍이 뚫리며 공간 바깥의 허령전 대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금제가 뚫린 것을 보고 안색이 달라져 급히 의식을 움직였다.

만요번에서 회색빛이 크게 일며 빛기둥이 빠져나와 위쪽의 은색 연꽃을 가격한 것이다.

펑!

둔탁한 폭음이 울리고 빛기둥과 연꽃이 동시에 허물어져 아이가 금제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때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빠르게 하얀 틈으로 사라졌고 그의 보물들이 그 뒤를 바짝 쫓아 나갔다.

아이가 회색 깃발을 들고 사납게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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