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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41화 (398/2,000)

# 641

641화. 세 눈 박이 요수

편전을 나온 한립은 한려 상인의 원영에게서 알아낸 위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여러 대청을 지나며 요수들과 소극궁 제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계속 보았는데 이미 허령전은 철저히 요수들에게 침략당한 듯했다.

몇몇 지능이 떨어지거나 주제를 모르는 요수들이 그에게 달려 들었다가 검기에 잘려나가거나 꼭두각시의 화살에 죽어 나갔다.

한립이 기다란 회랑을 지나고 있는데 돌연 두 명의 화형기 요수들이 그를 막아섰다.

하나는 남색 장포에 기다란 귀와 녹색 눈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하얀 백발에 붉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살기를 담은 눈길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한립 주변에 소극궁 수사들의 시체 두 구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영기의 파동이 혼란스러운 것으로 보아 이제 막 싸움을 끝낸 듯했다.

“비키거라! 난 소극궁 수사가 아니니 너희와 싸울 생각이 없다.”

한립이 냉랭히 소리쳤다. 녹색 눈의 요수는 체격이 우람했고 은빛이 찬란한 도끼를 두 개나 들고 있었다.

“비키라고?  우리를 머저리 취급하는 것이더냐! 인간 수사들은 전부 죽여야 한다. 게다가 방금 원영을 하나 잡아먹고 입맛이 돋았는데 너를 놓아 둘 성 싶으냐?”

녹색 눈 요수가 광소를 터트렸고 눈이 셋 달린 요수 역시 적의를 드러냈다. 하나는 8급 다른 하나는 막 9급이 된 고계 요수들이었으니 한립을 잡아먹겠다며 나선 것이다.

화형기 요수 두 마리가 자신을 밥상 위의 고기처럼 쳐다보는 것을 본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저 정도 요수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괜한 일에 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수결을 맺으며 등 뒤로 은색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은빛이 번뜩이며 그가 두 요수를 스쳐 지나려 한 것이다. 그때 세 눈 박이 9급 요수가 소리를 쳤다.

“어딜 가려는 것이냐?”

이어 그의 머리가 모호해 지더니 기이하게도 180도를 돌아 미간의 세 번째 눈에서 검은 빛을 방출했다.

쾅!

검은 빛이 부지불식간에 스무 장 밖의 허공을 가격했다. 검은 빛이 가시고 한립은 뇌둔술이 파훼 되어 강제로 모습이 드러났다.

“네 녀석이 정말 운이 없구나! 오 형의 파법천목(破法天目)은 각종 순간이동 의 둔술을 깨버리지! 우리 앞에서 달아날 생각일랑 말거라.”

긴 귀에 초록색 눈을 지닌 화형기 요수가 거만하게 웃어댔다.

“그런가요?  그런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니……. 신기한 요수의 재료를 위해서라면 무의미한 전투는 아니겠군요.”

한립이 신형을 멈추고 천천히 두 요수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에 떠 있는 은색 방패는 조금 전 폭발로 약간 타격을 입었는데 이로 인해 한립의 살심이 발동한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초록색 눈을 지닌 요수 뒤에서 은빛이 번뜩였고 은빛 찬란한 팔이 요수의 등을 꿰뚫었다.

동시에 세 눈 박이 요수의 세 번째 눈이 번뜩이며 무언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돌려 포효했고 손에서 노란색 고리를 분출해 푸른 인영을 공격하려 했다.

한립이 코웃음 치며 두 소매를 털어 36개의 금빛 검들을 세 눈 박이 요수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한 손을 뒤집어 노란 항마장을 내던지니 순식간에 커져 쏘아져 나갔다.

비검과 항마장이 손을 떠나자 한립이 입을 벌려 주먹 크기의 보라색 화염 덩어리를 뱉어냈다. 이에 그의 어깨에 멍하니 앉아 있던 태음진화의 불까마귀가 소리 없이 날개를 펼치고 새빨간 불덩이로 변해 날아올랐다.

뜻밖에도 한립의 모든 공격은 세 눈 박이 요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요수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그는 만요곡 출신으로 다른 요수들과의 전투경험이 아주 많았다. 비록 한립은 처음 보는 인간 수사였지만 36개의 비검과 항마장이 내뿜는 화려한 영기의 빛만 보아도 엄청난 공격임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허리춤을 스쳐 진한 노라색 빛줄기를 수십 개의 금빛 비검들에 쏘아 보냈다.

콰콰쾅!

열댓 장에 이르는 진한 노란색 빛줄기가 폭음을 내며 금색 비검들과 부딪쳤는데 순간이나마 밀리지 않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립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대한 항마장이 날아들어 세 눈 박이 요수의 머리 위에서 작은 산처럼 기세를 뿜어댔다.

그러자 세 눈 박이 요수가 굳은 얼굴로 괴성을 질렀고 옷이 갈가리 찢겨나가 검푸른 몸이 드러났다. 양 어깨가 거대한 기둥처럼 변해 항마장을 받쳐 들었다.

쿠쿵!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고 검은 빛과 노란 빛이 교전하는 와중에도 요수는 육체의 힘만으로 항마장을 버텨냈다. 하지만 한립의 법력이 많이 소모되어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 해도 항마장은 곤오삼노의 보물이었다.

요수는 자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어깨가 저리자 내심 화들짝 놀랐다. 그는 희귀한 만황 요수의 후손으로 태생적으로 세 번째 눈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맨 손으로 호랑이와 표범을 찢어 버릴 만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수련을 통해 수천 근의 압력을 버티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항마장 때문에 어깨가 저려오자 기함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와 세 눈 박이 요수의 이목을 끌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초록 눈 요수가 이미 머리를 잃고 시체 옆에서 새까만 칼날이 날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그가 발견했던 파란 인영은 다시 완전히 종적을 감춘 후였다.

세 눈 박이 요수가 기습이 있음을 알려주고 은색 고리를 던져 공격을 막아 주었지만 8급 요수가 분노해 반격을 가하다 주변에서 기다리던 마수찬 비도에 목이 잘리고 만 것이다.

머리를 잃은 요수의 몸에서 초록색 빛이 빠져나와 달아났다. 하지만 푸른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앞을 막았다. 요수의 혼백은 즉시 방향을 틀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푸른 인영이 한손으로 녹색 불덩이를 쥐고 비틀어 버린 것이다. 8급 요수가 죽임을 당하고 혼백까지 연기로 흩어지기까지는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이제 푸른 인영이 세 눈 박이 요수를 보고 전신에 은빛을 방출했다. 허공에서 그와 새까만 비도가 동시에 사라졌다.

요수가 안색이 급변해 겁에 질렸다. 그는 푸른 인영이 꼭두각시라는 것은 몰랐기에 눈앞의 두 수사들과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세 번째 눈이 기이하게 반짝이며 인간형 꼭두각시의 위치를 찾아 내려했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서 자라극화가 변한 불덩이와 태음진화가 좌우에서 가볍게 날아들었다.

9급 요수는 세 번째 눈으로 술법을 펼치면서도 두 개의 불덩이를 보며 입에서 노란 요기를 뿜어 양쪽으로 날렸다. 그가 희색을 드러내며 허공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두 개의 불덩이가 폭발했다.

쿠르르! 콰쾅!

보라색 불길이 맹렬하게 번지며 열댓 장 높이의 불기둥으로 변해 요기를 뚫고 세 눈 박이 요수를 덮쳐왔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불기둥에서 전해지는 한기 때문에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새빨간 불덩이는 폭발 직후 불까마귀의 형태로 돌아가 눈앞의 요기를 단숨에 삼키고 날개를 펼쳐 보라색 불기둥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놀란 세 눈 박이 요수가 안색이 창백해져 입에서 노란빛들을 무수히 뿜어 댔다.

노란빛이 요동치며 상반신은 지네이고 하반신은 전갈인 기이한 곤충으로 변해 날아올랐고 그것들이 입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노란 안개로 변해 잠시 불기둥을 막아냈다.

9급 요수는 그 사이 전신의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항마장을 밀어내고 서둘러 몸을 피할 계획이었다. 이제 한립과 맞서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빨리 달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때 노란 안개가 보라색 화염과 접촉하자마자 알갱이로 변해 분분히 떨어져 내렸고 뒤쪽의 무수히 많은 영충들이 불기둥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색 불기둥 안에서 날카로운 새소리가 들리더니 화염이 응결해 열댓 장 크기의 거대한 불까마귀를 만들어냈다.

불까마귀가 날개를 펄럭이자 불기둥의 화염이 배로 치솟아 노란 안개는 물론이고 괴이한 곤충들까지 얼음 덩어리로 봉해버렸다.

붉은 눈을 번뜩인 불까마귀가 엄청난 한기를 타고 세 눈 박이 요수에게 달려든 것이다. 아직 항마장에 짓눌려 있던 요수는 그저 세 번째 눈에서 검은 빛을 뿜어낼 뿐이었다.

하지만 검은 빛은 불까마귀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고 불까마귀는 그대로 9급 요수를 덮쳤다. 활활 타오르는 극한의 화염에 휩싸인 요수는 비명을 질려댔고 공포에 질린채 보라색 얼음 속에 갇혀 버렸다.

요기로 만들어낸 보호막은 자라극화를 조금도 이겨내지 못했다. 커다란 얼음 옆에 인간형 꼭두각시가 나타나 두 손을 교차했다가 펼쳤다.

꽈광!

금색 뇌전이 천둥소리를 내며 얼음덩이를 공격했고 보라색 얼음 알갱이가 9 급 요수의 몸과 함께 부서져 흩날렸다. 그 안에서 녹색빛이 번뜩이며 초록 눈 요수보다 조금 더 커다란 불덩이가 빠져나왔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한립이 웃는 둥 마는 둥한 얼굴로 요수의 혼백을 바라보았다. 9급 요수의 혼백이 재빨리 달아나려는데 한립이 한 손에 녹색 자를 꺼내 그것을 가리켰다.

빛이 번뜩이고 요수의 혼백 아래로 한 척 크기의 은색 연꽃이 피어나더니 순간이동 비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런!’

은색 꽃잎들이 일곱 색깔의 불광을 발산하며 혼백을 감싸 안아버렸다. 안에서 겁에 질린 절규가 들려왔으나 은빛이 몇 번 번뜩이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한립이 그제야 탄식하며 손에 들고 있던 녹색 나무 자를 거둬들였다.

이때 인간형 꼭두각시가 두 개의 저물대와 은색 고리 고보 그리고 손톱만한 검은 구슬을 들고 날아왔다.

그 중 검은 구슬은 세 눈 박이 요수의 세 번째 눈인 것 같았다. 한립은 눈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윽한 검은 빛을 머금은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점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요수의 눈알을 보다가 순간 표정이 달라져 그것과 은색 고리를 저물대에 넣었다. 그의 비검들과 맞서던 노란 빛줄기들은 주인을 잃고 기이한 칼날로 변했고 이것들을 전부 저물대에 주워 담았다.

한립은 자신의 비검과 항마장까지 회수하고는 즉시 인간형 꼭두각시와 함께 회랑의 끝을 향해 날아갔다.

확실히 대전에 가까워질수록 요수와 소극궁 제자들의 수는 줄었지만 수행은 높아져 원영기 수사들과 화형기 요수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며 입구를 막고 있지 않는 동안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몇 개의 대청과 정원을 지나 커다란 광장까지 지나서야 한립은 드디어 허령전 대전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대전은 백옥으로 만든 거대한 담이 쳐져 있었지만 멀리 보이는 문은 열댓 장 높이로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마 정문이 아니라 쪽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앞에서 두 수사와 요수 하나가 각종 신통을 발휘해 싸우고 있었는데 금방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사내는 이전에 보았던 소극궁 감찰 장로 엽 노인이었고 아름다운 여인은 궁장 차림의 백요이였다.

그들의 상대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미색 장포의 노인으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예리하게 빛나는 눈에서 위엄이 느껴졌다. 백요이와 엽 노인이 은색 비검 두 개와 흑백 기운을 내뿜은 괴이한 옥병을 이용해 노인과 싸우고 있었다.

노인은 한 손으로 푸른빛이 번뜩이는 그물을 다뤘는데 그 안에서 푸른 구름이 일어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기세가 흉흉했고 다른 손으로는 쇠몽둥이 같은 검은 보물을 휘둘러 수십 개의 환영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찰 장로 수중의 옥병의 위력도 만만치 않아서 각각 검은색과 흰색의 기운들이 몽둥이 환영 절반을 받아냈고 나머지는 백요이가 은색 비검 두 자루로 처리했다.

한립이 남색 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노인을 훑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노인은 놀랍게도 10급의 요수였다. 명청령안으로도 그의 본체가 무슨 요수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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