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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39화 (396/2,000)

# 639

639화. 침수(沈水)와 만년현옥

꼭두각시는 손바닥에서 은빛을 쏟아내며 가볍게 괴조의 환영을 베어냈지만 그래도 속도가 느려져 노승이 피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노승은 어깨가 길게 갈라져 피를 흘렸고 그가 들고 있던 붉은 구슬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때 노부인이 분출한 노란빛이 인간형 꼭두각시 앞에 도착했고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가느다란 바늘이었다.  노란 바늘이 인간형 꼭두각시의 머리를 공격했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오!”

노승과 노부인의 입에서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붉은 구슬이 사라지자 놀란 노승과 상대가 자신이 수백 년간 갈고 닦은 본명법보를 전혀 막을 생각이 없자 신이 난 노부인의 목소리였다.

인간형 꼭두각시는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서 중심을 잡고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노부인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태양혈에 가느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은빛이 번뜩이고 상처가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갔다.

그것을 본 노부인은 멍하니 눈을 부릅뜨다가 갑자기 무엇을 느꼈는지 날카롭게 소리쳤다.

“황매침(黃梅針), 내 황매침을 어쩐 것이냐!”

인간형 꼭두각시가 천천히 손바닥을 펼치자 그 안에 노란 바늘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은색빛에 휩싸여 전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노부인이 안색이 창백해 져서는 입을 떼려는데 돌연 꼭두각시가 두 손을 마주쳤다.

쩡!

두 손바닥 사이에서 은빛이 크게 번지며 노란 바늘이 영성을 크게 잃고 암담해졌다. 본명법보의 의식이 연결되어 있던 노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해냈는데 원기를 적잖이 상한 것이 분명했다.

회색 장포 승려가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는 상처를 수습할 틈도 없이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주먹 크기의 은빛들이 그의 손에서 셀 수 없이 흘러나왔는데 희미하게 폭풍우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기세가 엄청났다.

멀리서 지켜보던 한립이 웃음을 흘리며 의식을 움직였다. 인간형 꼭두각시가 멍하니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온 몸에서 은빛이 치솟았고 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소실되었다.

노승의 은빛들이 분분히 허공을 강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승려와 노부인은 시선을 마주치고는 서로가 절망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미 검진을 이루는 금실들이 그들과 7, 8장 거리까지 몰려와있었으니 아무리 대단한 신통을 지녔어도 이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한립은 뒷짐을 지고 떠서는 냉랭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대경검진이 결국 합쳐졌고 금빛 실들이 거대한 금색 구슬이 되어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금빛 기운이 요동을 치고 그 안에서 노승과 노부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명청령안으로 두 원영 중기 수사의 육신이 난도질당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육신 속에 숨어 있던 원영들은 그나마 잠시 버텼지만 수많은 금실들이 베고 또 베어내자 결국 빛으로 흩어져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저물대는 물론이고 부리던 보물까지 남김없이 사라졌고 오직 노란색과 녹색의 한염 덩어리만이 허공에 남아 있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은 싸움이 완전히 끝나자 오히려 씁쓸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용히 침묵하던 그의 곁에 은빛이 번뜩이며 꼭두각시가 나타나 붉은 구슬을 건넸다.

한립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살피니 아주 작은 불새가 구슬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 주변에 오색찬란한 주술들이 떠다녔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전혀 모르는 고대 문자들이었다.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유형의 상고 문자였다. 원영기 수사들이 목숨에 경각에 달했을 때 꺼낸 보물이었으니 위력이 대단할 것이다.

구슬은 신묘했고 함유한 불 속성의 영력도 적지 않았으니 그 정도로 대경검진을 파훼하려 했다면 우스운 일이었다. 아마 구슬의 진짜 위력은 상고 문자들로 이뤄진 주술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문자를 알아 볼 수 없으니 지금은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었다.

지금은 이런 것을 오래 연구할 때도 아니었기에 한립은 저물대에 여러 장의 금제 부적을 꺼내 구슬에 붙이고는 목갑(木匣)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한립이 다시 기린 환영을 바라보았을 때는 환영이 크게 줄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날아다니는 불까마귀는 3분의 1이상 커지고 기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급히 태음진화를 회수하기 보다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었다. 그러자 아래쪽에서 백 개가 넘는 금빛들이 번뜩이며 사라져 36개의 금빛 검들로 돌아갔다.

비검들은 금빛 빛줄기로 변해 그의 소매 속으로 순식간에 돌아갔고 그 자리에는 작은 한염 덩어리들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립은 바로 한염들을 어찌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돌연 그가 눈을 빛내며 뒤쪽의 마귀들을 훑더니 다시 한염 덩이를 살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거대한 동굴에 메아리치며 퍼져나갔다.

“이번에도 수확이 풍성하구나!”

웃음소리가 뚝 끊기고 낮게 중얼거린 그가 손을 뻗어 한염 두 덩이를 끌어당겼다.

꽈광!

가느다란 금빛 뇌전을 쏘아 보내 한염들을 금색 구슬로 뭉치고는 역시 현빙합에 넣어두었다.

다음으로 그가 검은 옥병을 꺼내 주술을 외며 오자동심마들을 다시 가두려했다. 그러나 다섯 마귀들은 병 안으로 들어가기 싫어 우물쭈물했다.

한립이 얼굴을 굳히며 낮게 일갈하자 오자동심마들의 사지와 목에서 강은으로 만든 고리가 푸른빛을 뿜어냈다.

이미 고리 때문에 크게 고통을 당했던 터라 더는 한립의 명을 어기지 못하고 처량한 소리를 내며 회백색 기운으로 변해 병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한립이 소매를 펄럭이며 병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인간형 꼭두각시는 회수하지 않고 저물대에서 비취색 고계 영석을 꺼내 던져주었다. 이미 영력을 다한 고계 영석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꼭두각시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영석 소모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그가 이번에는 신형을 움직여 돌무지 어딘가에 내려섰다.

돌덩이 표면에는 비교적 커다란 만년현옥 알갱이가 박혀서 은은하게 하얀 빛을 내고 있었다.

‘흠…….’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저물대에서 목이 긴 병 하나를 꺼냈다. 그가 병을 기울이자 저절로 뚜껑이 열렸고 먹같이 검은 액체가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회색 기운을 내뿜는 검은 액체는 놀랍게도 백몽형이 만년현옥을 채석할 때 사용하던 음령수(陰靈水)와 똑같아 보였다. 이것은 한립이 귀무 속에 들어가 음명의 땅에 갇혔을 때 채집해온 침수(沈水)였다. 당시 호기심에 필요할 때가 있을까 싶어 가득 채워온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아도 별 쓸모가 없어 계속 저물대에 두고만 있었는데 현옥동에서 백몽형의 음령수라는 것을 보고 침수를 떠올렸다. 한려 상인 등 다른 수사들 앞이라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혼자 남았으니 정말 침수가 음령수가 맞는지 확인 해볼 때였다. 한립이 검은 액체를 따라내자 천천히 돌덩이로 이동하더니 작은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과연 모든 것이 백몽형이 만년현옥을 채석할 때와 똑같았다. 검은 액체는 만년현옥으로 스며들었고 회색 기운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한립이 기뻐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콩알 만 한 푸른빛이 쏘아져 나가 만년현옥을 맞추었다.

펑!

만년현옥이 스스로 돌덩이에서 떨어져 나와 그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잠시 그것을 살피던 한립이 동굴 전체에서 번뜩이는 만년현옥 광맥을 보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가 지닌 침수의 양이면 이곳 광맥을 전부 파내지는 못해도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뽑아가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곧바로 저물대를 스쳐 목이 긴 병을 더 꺼냈고 곁에 있는 인간형 꼭두각시에게 나눠주었다. 꼭두각시는 병을 들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저물대에 만년현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몇 시진이 흐른 후에는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도 현옥동 안의 현옥한기가 크게 줄어 있었고 동굴 벽에서 반짝이던 하얀 빛들도 3분의 2는 사라졌다.

한립은 마지막 한 방울로 만년현옥을 빼내 저물대에 담고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보며 아쉬워했다. 물론 이미 어마어마한 수량을 모아 천여 개가 넘었다.

그가 수량을 파악하고 있을 때 인간형 꼭두각시가 날아와 빵빵하게 차오른 저물대를 던져주었다. 의식으로 세어보니 역시 천여 개가 넘었다.

이 정도면 72개의 비검에 전부 넣어 제련을 하고도 따로 만년현옥을 이용한 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이었다. 게다가 남은 만년현옥은 그 안에 함유한 한기를 이용해 극한의 화염들을 정련하는데 쓸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한립은 저물대들을 잘 챙기고 다시 허공의 태음진화가 변한 불까마귀를 쳐다보았다. 조그맣던 불까마귀는 이전보다 대여섯 배는 커져 사람 머리통 만해졌고 기린 환영은 형태를 잃고 얇은 기운만 남아 하얗게 불까마귀를 감싸고 있었다.

현옥패는 불까마귀가 입에 물고 이리저리 던져대며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한립이 손을 뻗자 현옥패가 불까마귀의 부리를 벗어나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현옥패가 사라지니 하얀 기운도 버티지 못하고 흩어졌고 불까마귀는 날개를 펄럭이며 마지막까지 하얀 기운을 빨아들였다.

일을 마친 불까마귀가 기운차게 날아와 한립의 어깨에 앉더니 부리로 고운 붉은 깃털들을 정리했다. 한립은 불까마귀를 보며 이채를 띄었다. 태음진화의 영성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이다.

그는 현옥패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허공에 손을 쥐어 주변의 현옥한기를 끌어왔다.

보라색 자라극화로 칭칭 감아 명청령안으로 살피니 이전과는 달리 일반적인 한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그가 현옥패를 보며 혀를 차더니 저물대에 잘 넣어 두었다.

현옥동 전체를 샅샅이 뒤져 더 챙길 것이 없자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와 어깨의 불까마귀를 데리고 입구로 날아갔다. 입구는 여전히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한립이 입구의 각양각색의 비술 주문을 살피다가 소매 속에서 작은 남색 솥을 뿜어냈다. 건람빙염을 다룰 수 없는 수사는 쉽게 건람정을 조종할 수 없었지만 한립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가 수결을 맺어 전신에 자라극화를 끌어올렸는데 곧 신기하게도 색이 변했다. 별안간 보라색 화염이 점차 남색으로 변해 건람빙염의 형태로 돌아간 것이다.

남색 빛으로 뒤덮인 손으로 작은 솥을 가리키자 남색 화염이 뱀처럼 날아갔다. 동시에 건람정이 몸을 떨며 울어댔고 안에서 남색 화염을 일으키며 몸을 키웠다.

한립이 수결을 맺다가 낮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쾅!

동시에 서너 장으로 불어난 솥이 그대로 뻗어 나가 입구에 부딪치려 했다. 거대 솥이 입구에 닿기 직전 봉인을 위해 흐르던 비술 주문들이 알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가듯 솥의 남색 화염 속으로 사라져갔다.

쿠르릉!

입구가 천천히 갈라지며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꼭두각시와 불새를 데리고 틈을 빠져나간 한립은 허령전 제단 위에서 나타났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짓해 건람정을 소매 속으로 넣었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옥동 입구가 다시 봉인되었다.

한립이 주변을 훑었지만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고 현옥동 입구를 지키는 수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시름을 놓은 그가 제단 앞쪽의 빽빽한 얼음 기둥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빙백한령진(氷魄寒烈陣)이 만만치 않겠구나!’

한기에 크게 위협을 받지 않는 그라도 상고 진법에 속하는 대형 진법을 얕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빙백한령진 뿐만 아니라 허령전 대문 자체를 어찌 열고 나갈지도 걱정이었다.

들어 올 때는 한려 상인이 쉽게 나갈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십중팔구 거짓말일 것이다.

그가 저물대를 스쳐 진법 법기들을 꺼내 쏘아 보냈다.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이 제단 주변의 허공을 가르더니 하얀 기운이 용솟음쳐 주변 열댓 장을 뒤덮었다.

임시 금제를 친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한려 상인의 원영이 담긴 병 형태의 법기를 꺼내들었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에 소극궁 대장로의 원신에서 허령전에 대한 정보를 빼낼 작정이었다.

물론 그 김에 태양정화에 관한 소식도 얻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그가 병을 쥐고 유유히 하강했고, 잠시 후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족히 한 시진이 지나 진법 속의 하얀 안개들이 요동을 치더니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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