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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38화 (395/2,000)

# 638

638화. 다시 펼쳐진 대경검진

한립은 검기를 쏘아 보내려던 손을 내려놓고 불까마귀가 아닌 멀리 보이는 오색 보호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제 속에서 여전히 폭음과 진동이 들려오며 회색 장포의 승려와 노부인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금제의 장막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의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실 원영 중기의 한립이 원영 후기 수사 한 명과 동급 수사 둘을 순식간에 죽였다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오색의 장막으로 날아올랐다.

인간형 꼭두각시와 다섯 구의 백골들을 불러들인 그가 소매를 털어 36자루의 금색 검들을 줄줄이 방출했다. 그리고 연달아 법결을 허공의 비검들에 던져 넣었다.

금빛이 번뜩이더니 곧 수가 불어나 백여 개가 넘는 검빛들이 도처로 흩어졌다. 괴이하게도 검빛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종적을 감추었다.

한립은 대경검진을 펼쳐 오색 장막 주변을 검진의 통제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노란 빛의 항마장을 허공에 던졌다.

무표정하게 눈을 감은 그가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어 항마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곧 항마장이 진동을 하며 노란빛 속에서 몸을 키워 열댓 장 길이의 방대한 몸을 드러냈다.

한립이 주술을 멈추고 거대한 물체를 향해 일곱 빛깔 불광을 뿜어냈다. 노란 빛을 뿜어내던 보물이 일곱 빛깔의 빛에 휩싸였다.

“가라!”

한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대한 항마장이 오색 장막에 떨어져 내렸다.

쾅!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고 쿠르릉하며 오색 장막이 부서져 내렸다. 부서져 내린 영기의 빛에 잠시 주위가 보이지 않았는데 눈앞이 밝아지며 안의 상황을 본 한립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두 분께서 연기를 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무대에 올라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지요?”

한립이 빠르게 평정을 회복하고 덤덤히 물었다.

장막 아래의 노승과 노부인은 열댓 장 거리를 두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고 그들 중간에는 늙은 쥐처럼 생긴 이상한 영수가 배를 부풀렸다 말았다 하며 싸우는 듯한 폭음을 내고 있었다.

노승과 용 부인은 놀랍게도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주먹 크기의 영수를 시켜 장막 바깥 수사들의 이목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장막이 부서져 나가자 가부좌를 하고 있던 노승과 노부인도 눈을 번쩍 떴고 허공의 한립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때 푸른색과 노란색이 섞인 보호막이 펼쳐져 노승과 노부인을 감쌌는데 이전에 있던 오색 장막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보일 듯 말 듯한 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중간에는 반투명한 손수건이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당신은!”

노부인은 얼굴을 구기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노승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립은 상대가 손수건에서 새로운 보호막을 뿜어냈는데도 그저 입 꼬리를 말아 올릴 뿐이었다.

“쯧쯧, 어쩐지 제 눈으로도 겨우 환술 금제를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두 분이 어부지리를 노리고 계획한 것이었군요.”

한립은 감탄했다는 듯 말했지만 눈빛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그 말에 회색 장포 승려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한 수사의 신통이 대단해 한려 상인과 그 사제들마저 한수사를 제압하지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려 형과 다른 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벌써 동굴을 떠난 것입니까?”

승려는 동굴 속에서 다른 수사들을 찾을 수 없자 불현듯 불안해졌다. 그래도 한립이 그들 모두를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괜히 시간 끌지 마십시오. 한려 상인과 다른 수사들이 동굴을 빠져 나갔다면 소극궁 수사들이 몰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우리 셋도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부인이 참다못해 눈을 부릅뜨고 쏘아 붙였다.

“그들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럴 것 없습니다. 제가 이미 전부 죽였으니까요. 한려 형께서는 아직 원영이 남아 있으니 원하시면 한번 뵙게 해드리고 두 분을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한려 상인이 수사의 손에 죽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는 두 분이 무슨 사이인지 또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극궁 수사들과 싸우는 틈에 좋지 않은 의도로 숨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요! 제가 평생 끔찍이 싫어하는 것이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라 서요. 게다가 통천령보의 비밀을 지키려면 두 분은 이제 그만 인계에서 사라져 주셔야겠습니다.”

한립은 말을 마치자마자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외워댔다.

노승이 흠칫 놀라 주위의 영기의 파동을 감지하고는 두리번거렸는데 수십 장 밖에서부터 수많은 금빛들이 어른거리며 가느다란 금색 실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아무런 규칙도 찾아 볼 수 없이 공간을 넘나들며 다가오는 금실들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검진!”

노부인이 주위를 살피고는 소리쳤다.

“한 형,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희는 수사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허령전 밖에 몰려 있는 소극궁 수사들이 한 형이 한려 상인과 같이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할까요?  저희와 손을 잡고 이곳을 빠져나가시겠다면 통천령보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피의 맹세를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본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한립이 노승의 말에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마구 형, 구구절절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 자의 뒤를 보아하니 이미 믿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요.”

노부인이 한 손을 뒤집어 노란 지팡이를 꺼내더니 냉랭히 소리쳤다. 승려가 흠칫 놀라 자세히 살피자 한립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던 인간형 꼭두각시와 나란히 선 다섯 구의 백골들을 발견했다.

“저것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  저 자는 또 누구고요?”

“백골들은 소문으로 듣던 오자동심마 같고, 또 다른 수사는 누군지 알게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저 자의 힘을 빌려 한려 노인네도 죽인 것이겠지요. 정말 건 노마의 오자동심마라면 우리의 적수가 아닙니다. 유일한 방법은 속전속결로 주인인 수사를 죽이고 백골들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니 일단 검진이나 깨고 이야기 하십시다.

그래도 불문 공법이 마도 공법과는 상극인 만큼 맞붙을 일이 있다면 제게 맡기시고요.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되는 대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검진을 깨고 한려 상인을 상대하려던 물건으로 저 자를 공격하시지요!”

노부인이 입술을 달싹이며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그 방법 밖에 없겠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얼음 속성 공법을 수련한 것도 아니라 아무리 그것이라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지…….”

노승이 탄식하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상대가 원영 후기 수사도 아니니 죽이지는 못해도 중상을 입힐 수는 있을 겁니다. 이번에 정말 우리가 계산을 잘못하였습니다. 한 가 녀석의 신통이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강적일 줄이야! 저 자가 한려 상인의 원기를 크게 상하게 하면 그때 기습해서 노인네를 죽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결코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노부인이 전음으로 말하면서 이를 갈았다.

“용 수사 이제 와 후회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 물건을 낭비하는 것은 아깝지만 통천령보와 오자동심마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래도 크게 남는 장사입니다.”

승려는 말로 한립을 설득할 수 없자 자비로운 표정을 싹 지우고 어두운 면모를 드러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노부인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허공에 투척했다.

노란빛은 말과 비슷하지만 날카로운 송곳니가 길게 자라난 괴수로 변해 입에서 무수히 많은 노란 빛을 뿜어냈다.

노란빛들이 놀랍게도 천여 개가 넘는 작은 칼날로 변해 도처로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노승은 두 손을 모았다 떼며 양 손에서 은색빛을 뿜어냈다. 곧 수레바퀴처럼 커진 은색 빛덩이가 흉흉한 기세로 날아갔다.

한립은 허공에 서서 눈을 깜빡이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노란 검들과 두 개의 은색 빛덩이들이 금실 속에 뛰어 들자 고철 조각으로 갈기갈기 잘려나갔다.

‘무슨 검진이기에 이런 위력을 내는 것인가!’

노부인과 승려가 놀라 숨을 들이마시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번 공격은 검진의 위력을 시험해 본 것에 불과했기에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노부인은 손바닥을 뒤집어 남색 벽돌 형태의 고보를 꺼내들었고, 그녀의 주술소리가 들리자 벽돌이 누각 만하게 불어나 날아갔다. 하지만 방금 전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허공에서 빼곡하게 밀려드는 금색 실들이 벽돌을 수많은 조각으로 잘라내 연기처럼 흩어버린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남금(藍金)의 정화로 제련해 더없이 강력한 남금전(藍金塼)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다니!”

노부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미간을 좁힌 노승이 낮게 일갈하며 늙은 쥐처럼 생긴 영수를 움직였다.

회색빛이 요수의 전신을 타고 흐르며 온몸이 불룩불룩 팽창하더니 털이 길어지고 몸이 커져 원래의 몇 배로 거대해졌다.

작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요수는 입을 벌려 회색의 음파를 분출했고, 마치 거대한 파도가 치듯 회색 물결이 금실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노승은 단단한 보물들이 통하지 않자 무형의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대경검진은 청원검결을 완전히 익히면 인계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신통이었다. 비록 경정을 첨가한 비검이 절반 밖에 없어 검진 역시 본래의 위력을 내지 못하지만 겨우 음파에 뚫릴 리 만무했다.

회색 음파가 금실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처음에는 금실들이 출렁이는 것 같았지만 음파마저 조각을 내 회색 기운으로 흩어버렸다.

주춤거리지 않고 밀려드는 금실들에 회색 장포의 승려는 드디어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검진의 위력이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그들은 이제 각자 다양한 보물을 꺼내 다가오는 금실들을 마구 공격하는 중이었다.

‘흠…….’

한립이 의식을 움직이자 뒤에 서 있던 인간형 꼭두각시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검진은 노승과 노부인을 스무 장 범위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들의 맹공에 검진이 다가오는 속도가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물러나게는 못했다.

“검진이 워낙 괴상해서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평범한 보물로는 부술 수 없는 것 같으니 그것을 사용하지요!”

노부인은 차츰차츰 다가오는 금실들을 보고 결국 두려움을 드러냈다.

“지금 사용하면 검진을 깨고 나가 저 자들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더 기다렸다가는 이 자리에서 죽게 생겼다고요.”

노승의 반대에 노부인이 소리쳤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금실들을 노려보며 노승이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준 그가 저물대를 스쳐 정체 모를 물건을 손에 들었다.

붉은 기운이 짙게 어려 있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구슬에 금색과 은색의 부적이 붙어있었다.

“마구 수사, 어서요! 너무 가까이에서 사용하면 우리도 말려들 수 있단 말입니다.”

노부인이 그를 다그치자 노승이 탄식하며 조심스럽게 구슬의 부적들을 떼어냈다. 그가 막 그것을 발동하려는데 뒤에서 은빛이 번뜩이며 누군가 귀신처럼 다가왔다.

회색 장포 승려의 정면에 있던 노부인이 그를 보고 기겁해 소리쳤다.

“뒤를 조심하세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승이 소매를 펄럭여 노란 빛을 날렸고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튀어 나가려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은 후였다.

원영 후기 수사의 신통을 지닌 인간형 꼭두각시가 그의 신형이 흐릿해 지는 순간 이미 한 손으로 노승을 등을 찔러 들어가 붉은 구슬을 잡아채려 한 것이다.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노승이 비틀거렸다.

인간형 꼭두각시가 은색 손으로 단번에 그의 보호막을 뚫었지만 노승의 등에서 순간 검은색 깃털을 지닌 괴조(怪鳥)의 환영이 나타나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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