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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37화 (394/2,000)
  • # 637

    637화. 원영을 구속하다

    소극궁 대장로는 마수찬 비도가 자신의 머리에 꽂힐까 간신히 목을 틀었다. 하지만 결국 새까만 비도가 한려 상인의 목을 그었고 그의 머리는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멀리서 공격하던 남색 얼음 교룡도 흩어져 사라졌다.

    ‘흠? ’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올리려다가 그대로 굳었다. 떨어져 내린 머리에서 돌연 금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머리를 감싸 기린 환영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괴이한 일에 한립도 놀랐지만 바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원영이 잘린 머릿속에 숨어 조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색을 굳히며 푸르스름한 빛을 한층 뿜어냈다.

    “찔러라!”

    한립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머릿속에 숨은 의식이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 격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린 머리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귀와 코에서 피를 쏟아냈다.

    육체를 잃고 원기를 크게 잃은 한려 상인은 한립의 실신자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공중에서 흐릿해지며 남색 화염이 일었다. 그때 새까만 비도가 다시 검은 빛을 번뜩이며 한려 상인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공포에 질린 머리를 앞에 두고 사라진 비도가 순식간에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가느다란 혈흔이 뺨을 타고 생겨나더니 점점 두꺼워졌다.

    그와 동시에 천둥소리가 울리며 은색 뇌전 속에서 한립이 나타나 한려 상인의 머리와 몇 장 거리에 서서는 두 손을 마주쳤다.

    꽈과광!

    그러자 거대한 뇌전 그물이 쏟아져 내렸다. 머리가 절반으로 갈라지며 남색 빛에 휩싸인 한려 상인의 원영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원영은 입을 벌려 남색 비검을 분출했다. 비검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한 장 크기로 커지더니 금빛 그물을 끊어내려 날아갔다.

    그러나 커다란 검이 그물에 닿기도 전에 엄청난 압력이 먼저 금색 그물을 뒤흔들었다. 한립이 미세하게 표정이 달라지자,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뇌전이 훨씬 굵어졌다.

    쿵! 쿵! 쿠쿵!

    남색과 금색 빛이 서로 충돌하며 굉음을 냈고 남색 거검도 위력이 만만치 않은지 몇 번의 칼질로 금색 그물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한 척 크기의 작은 구멍이었지만 원영이 빠져나가기에는 아주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슉!

    원영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금색 그물 열댓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났다. 순간이동을 해 그물을 빠져나온 것이다.

    죽다 살아난 원영은 오동통한 손으로 뒤쪽의 거검을 가리켰다. 남색 비검이 다시 작아져 그물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그 모습에 한립이 눈을 번뜩이며 코웃음을 쳤다.

    그가 수결을 맺자 금색 그물에서 천둥소리가 커졌고 순식간에 구멍을 메워버렸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금색 뇌전들이 남색 거검을 둘러싸고 빼곡히 터져나갔다.

    한려 상인이 오랜 세월 배양한 거검은 일반적인 법보에 비해 위력이 강력했지만 엄청난 양의 벽사신뢰를 맞으며 점점 빛을 잃어갔다.

    한립이 바로 한 손을 뒤집어 허천정을 꺼내고는 열댓 장 밖의 한려 상인의 원영에게 쏘아 보냈다. 그러나 본명 법보를 회수할 생각에 다급해진 한려 상인은 이를 악물고 다시 순간이동을 해 건람정 옆에 나타났다.

    이번에 그는 더 이상 본명 법보에 집착하지 하지 않고 기린 환영이 떠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비록 법결이 강제로 중단되었고 자신도 육신을 잃었지만 기린 환영 속의 현옥패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옆에 푸른 그림자가 냉랭한 눈길로 한려 상인의 원영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의 시선을 마주한 한려 상인은 고민 하다가 마지막 희망까지 포기했다.

    촤륵!

    원영이 그대로 솥 안으로 뛰어 들어 사라졌다. 이후 솥은 기괴한 소리로 울어대더니 스스로 허공에 떠올라 번뜩였고, 곧 동굴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원영을 뒤쫓던 푸른 실 뭉치들은 그를 따라잡지 못하고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한립이 벽사신뢰를 이용해 남색 비검을 단단히 잡아 두고는 달아나는 원영을 보며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등 뒤의 풍뢰시를 펄럭이고 은색 뇌전으로 변해 직접 쫓기 시작한 것이다. 한려 상인은 솥을 조종해 남색 빛기둥을 쏘더니 다시 두 번이나 순간이동을 해 동굴 입구에 가까워졌다.

    이때 그와 한립은 7, 8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소극궁 대장로가 겨우 한 시름을 놓고 다시 한 번 순간이동을 해 건람정으로 입구를 열어 나가려는데 인근의 현옥광맥에서 돌연 몇 줄기의 한기의 빛이 날아들었다.

    한려 상인은 현옥한기라 생각해 솥 속의 남색 화염으로 한기의 빛을 쫓으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현옥한기의 색이 하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고 건람빙염과 접촉해 녹아들더니 번개처럼 솥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건람정이 부르르 몸을 떨자 한려 상인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콰쾅! 쾅!

    남색과 붉은색이 섞인 기이한 화염이 솥에서 나타나 얽히며 폭음이 일어났다. 작은 솥의 빛이 크게 번지며 별안간 몇 척 크기로 변했고 남색 빛과 붉은 빛이 솥을 양분해 점거했다.

    남색 빛 속에서 한려 상인의 원영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분노한 얼굴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붉은 화염 속에서는 주먹 크기의 불까마귀가 떠서 깍깍 울어댔다.

    생사의 기로에 선 한려 상인은 괴성을 지르며 남색 불길을 따라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반대편의 불까마귀도 겁먹은 기색 없이 한쪽 날개를 펄럭여 붉은 화염을 타고 날아들었다.

    빛이 크게 터지고 격렬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붉은 화염 속의 불까마귀는 바로 태음진화 한 줄기가 변화한 것이었다. 한립이 진법 속에서 소환하자 동굴 속 현옥한기 속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한 것이다.

    태음진화의 양이 워낙 적어서 솥을 단번에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한려 상인의 원영도 태음진화를 어쩔 수 없었기에 솥을 조종할 수 없게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립은 즉시 뇌둔술을 사용해 솥 가까이에 이르렀고 남색 화염 속의 원영이 그것을 보고는 공포에 질려 떨었다.

    돌연 남색 빛이 솥을 떠나 허공으로 치솟았다. 솥을 움직일 수 없자 원영만이라도 탈출하려고 한 것이다. 한립이 눈을 번뜩이며 한 손을 뒤집자 청록색 작은 자가 나타났다.

    그가 주술을 읊자 손에서 일곱 빛깔의 불광(佛光)이 번뜩였고 청록색 자가 몸을 떨며 사라졌다가 원영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원영이 화들짝 놀라 다시 순간이동을 하려했다. 하지만 녹색 자에서 피어난 사발 크기의 은색 연꽃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연꽃에서 뿜어져 나온 일곱 빛깔의 불광에 닿은 원영은 마치 체내의 원기가 응결한 듯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원영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은색 뇌전이 번뜩이고 한립이 뒤따라 허공에 나타났다. 청록색 자는 한립이 곤오산에서 얻은 팔령척이었다.

    아직 통보결을 1성 밖에 익히지 못했지만 공격 능력으로는 허천정 이상인 영보(靈寶)였다. 상대가 육체를 잃은 데다 현옥동 한기를 모으는 비술을 펼치려 법력과 원기를 크게 허비한 탓에 단번에 상대를 붙들 수 있었다.

    한립은 곧바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금빛이 번뜩이더니 금색 뇌전들이 뱀처럼 변해 일곱 빛깔 불광 속의 원영을 꽁꽁 포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장의 금제 부적을 꺼내 원영의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는 저물대를 뒤져 열댓 개의 은침까지 꺼내들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은침 법기를 원영의 몸 구석구석의 요혈에 박아 넣었다.

    “흐윽!”

    원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눈빛이 암담해졌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그제야 안심을 하고 두 손을 털어냈다.

    한립이 청록색 자를 회수하는 것을 보고 원영의 표정에 원한이 그득했다.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립을 쏘아보았지만 입은 꾹 다문 채였다.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살려달라고 비는 것은 구차한 행동이었다.

    유일하게 후회되는 것은 구속당하기 전에 비술을 이용해 스스로의 원영을 폭파시키지 못한 것이었다. 한립은 한려 상인의 원영을 보고 미소 짓고는 소매 속에서 청록색 병을 꺼내 기울였다.

    그러자 병 입구에서 하얀 기운이 새어나와 한려 상인의 원영을 빨아들였다.  그는 이제 멀리 있는 건람정을 향해 손짓했다. 태음진화가 휘감은 솥이 바로 날아왔고 그의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한립은 청녹색 병 법기를 회수하고는 바로 빛줄기가 되어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돌무지 위에 내려선 그가 미간을 좁히고 도처를 살폈다.

    은색 장막에 갇혀 있던 백몽형은 구석에 떨어져 선혈이 낭자했고 배에는 사발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인의 시체에서 정혈과 의식이 사라진 것이 원영이 탈출한 흔적이 보였다.

    허공의 기린 환영 옆에는 꼭두각시가 꼭 붙어 떠 있었는데 그 앞에 원강순과 마수찬 비도가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4, 50장 떨어진 곳에는 백골 다섯 개가 나란히 떠있었다. 이미 백골을 뒤덮던 회백색 마기는 사라졌고 한 마리는 뼈만 남은 손으로 푸른 저물대를 들고 있었고 또 다른 백골은 두 손으로 검은 한염 덩어리를 갖고 노는 중이었다.

    곧 인간형 꼭두각시 속의 분혼을 통해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한 한립이 표정을 풀었다. 백몽형은 한려 상인의 육신이 당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지니고 있던 여러 고보를 폭파시켰다.

    그녀가 원강순이 만들어낸 은색 장막을 뚫고 달아나려는 것을 본 인간형 꼭두각시는 한립이 미리 내려놓은 명에 따라 그녀를 막았다.

    마수찬 비도를 이용해 배를 뚫고 원영이 탈출하자 뇌화궁을 이용해 그것마저 없앤 것이다.

    푸른 장삼의 중년인은 더 간단했다. 다섯 마귀들의 협공을 이겨낼 수 없어 몸이고 원영이고 심지어 지니고 있던 보물까지 깨끗이 잡아먹히고는 저물대 하나와 극한의 화염만이 덩그러니 남고 말았다.

    상황을 파악한 한립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오자동심마들에게 손짓을 해 저물대와 검은 화염을 손에 넣었다. 그는 저물대를 대충 살피고 품에 넣어 버렸지만 검은 화염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두 손을 스치자 가느다란 금색 뇌전이 튀어나와 검은 한염을 구슬로 말아버렸다.

    한립은 한 손으로 냉기가 가득한 현빙합(玄氷盒)을 꺼내 금색 구슬을 넣고는 저물대에 챙겼다. 이제 그의 시선은 백몽형의 시신으로 향했다.

    “…….”

    조금 침음에 잠겨 있던 그가 소매를 털어 새빨간 불덩이를 날렸다.

    퍽!

    시체가 불덩이를 맞자 안에서 하얀 화염이 일어나 불을 끄고는 하얀 불덩이로 뭉쳐져 사라지려했다. 백몽형이 수련하던 봉리빙염(鳳離氷焰)이 주인이 죽은 뒤에도 시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립이 하얀 불덩이가 시체 속으로 숨게 놔둘 리 없었다. 그가 허공을 쥐자 자라극화가 변한 거대 손이 허공에 나타나 번개처럼 불덩이를 잡아챘다.

    단번에 하얀 화염을 잡아챈 거대 손이 즉시 돌아왔다. 한립이 손을 뻗어 시체가 지닌 저물대와 함께 하얀 불덩이를 빨아들였다.

    그는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벽사신뢰로 봉리빙염을 봉인한 다음 현빙합에 담아 회수했다. 원 주인이 죽어 대부분 흩어졌지만 남은 한염들이 상당히 정순해서 나중에 자라극화에 녹여 넣으면 위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립은 더욱 주의해서 한려 상인의 시체를 처리했다. 의외였던 것은 그가 가장 경계하던 한 쌍의 금풍리들이 든 영수대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해 세세히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략 일을 마친 그가 신중한 얼굴로 허공의 기린 환영과 그 안의 현옥패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닌 것이 엄청난 영력을 머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떤 한기가 응결해 형성된 것 같았다. 그가 고민을 하다가 손끝을 튕겨 검기로 환영을 시험해 보려했다.

    그런데 그때 돌연 소매 속에서 불길이 번뜩이고는 태음진화가 변한 불까마귀가 기린 환영 속으로 날아들었다. 불까마귀가 기린 환영 속에서 기분 좋게 날아다니더니 전신의 털을 반짝이며 환영의 하얀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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