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35화 (392/2,000)

# 635

635화. 동굴 속 전투

대장로의 말에 중년인과 백몽형은 불안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려 상인이 한손을 뒤집자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는 영패가 나타났다.

영패 위쪽에는 주술이 반짝였고 아래쪽에는 입에서 눈보라를 뿜어내는 얼음 기린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막 영패를 발동하려다가 무의식중에 한립을 보고는 표정이 달라졌다.

“벌써 금제 진법의 눈을 찾다니! 무슨 수를 쓰든 둘이 시간을 끌어 주어야겠네!”

대장로의 말에 중년인도 놀라 먼 곳을 바라보았다.

환술 속의 한립이 수결을 맺으며 금색 거대 검을 만들었는데, 검의 표면에 금빛 뇌전이 흐르며 금제의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년인이 곧바로 소매 속에서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빛구슬을 뿜어냈다. 백몽형도 조용히 손을 뻗어 하얀 거울을 움직였고 한립을 향해 다시 하얀 빛기둥을 분출했다. 한려 상인도 주술을 읊는 속도를 높이며 현옥패(玄玉牌)를 허공에 발동했다.

하지만 한립은 이미 이곳을 어찌 빠져 나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원래도 진법에 능통한데다 명청령안의 도움이 있으니 환술을 깨고 나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빛구슬과 하얀 빛기둥이 그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보고는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빛은 주먹 크기의 구슬을 품고 있었는데 담황색의 이보(異寶)였다. 그러나 한립은 거검을 멈출 마음이 없었고 도리어 더욱 재빨리 수결을 맺었다.

쇄액!

거대해진 금빛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그때 우윳빛 빛기둥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찬 한립은 입에서 보라색 화염을 분출했다. 자라극화 덩어리가 그의 몸을 빠져나와 순식간에 수레바퀴 만하게 몸을 키웠다.

펑!

보라색 불덩이는 스스로 폭발해 작은 불꽃들이 우윳빛 빛기둥을 막아섰다.

쿠쾅!

보랏빛 불꽃과 하얀 빛기둥이 빛을 번쩍이며 충돌하자 순식간에 허공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곧 하늘이 뒤흔들릴 듯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고 금빛 거검이 흔들림 없이 담황색 구슬을 가르려 하고 있었다.

검날과 구슬의 충돌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거검과 구슬 표면에 금빛과 푸른빛의 괴이한 뇌전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직경 십여 장의 거대한 뇌전 덩어리로 변해 엄청난 소리를 뿜어낸 것이다.

구슬 역시 희귀한 뇌전 속성의 고보였다. 한립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한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전신에 보라색 불길을 일으켰지만 거대한 뇌전 덩어리의 등장에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벽사신뢰와 비슷한 위력을 내다니!’

한립은 거검에 법력을 불어넣기 보다는 한 손으로 앞에 떠있는 허천정을 가리켰다.

텅!

푸른 실 뭉텅이가 갑자기 날아들어 뇌전 덩어리를 감싸더니 뜻밖에도 상대의 구슬을 강제로 끌어당기려 한 것이다.

“이런!”

놀란 중년인이 기겁해 법력을 아낌없이 구슬로 불어 넣으며 법결을 던져댔다. 구슬은 그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이보로 아직 위력의 전부를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등하게 겨루던 두 뇌전 덩어리의 형세가 달라져 푸른빛이 크게 번지며 금색 뇌전 덩어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립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거검은 열댓 개의 비검을 합쳐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그만한 벽사신뢰로 상대의 구슬 하나가 함유한 푸른 뇌전을 이길 수 없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그가 곧바로 의식을 움직여 거검에서 다시 굵직한 금빛 뇌전 몇 줄기를 일으켰고 이어 뇌전이 변한 거대한 금빛 구렁이로 아래쪽의 뇌전 구슬들을 공격하게 했다.

그러자 기세등등하게 금빛 구슬을 밀어내던 푸른 뇌전들이 구렁이들의 일격에 별안간 터져나갔다. 푸른 뇌전 구슬이 조각나고 그 안의 담황색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허천정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실들이 때마침 날아들어 구슬을 감싸 돌아갔다. 이에 중년인은 조급한 기색을 보이며 법력을 쏟아 부었고 구슬은 달아나려고 몸을 들썩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백몽형이 미간을 좁히며 재빨리 거울을 던지자 그녀의 머리 위에서 거울이 하얗게 빛났고 거침없이 피를 뿜어냈다.

거울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더니 녹색빛이 번득이며 거울 속에서 무언가 빠르게 움직였다.

허천정을 이용해 구슬을 끌어 들이던 한립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금빛 몇 줄기를 방출했다. 목표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꽝!

그런데 금빛이 놀랍게도 무언가에 부딪쳐 튕겨나갔다.

한립은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서둘러 푸른 실 뭉치에 휩싸인 구슬을 강제로 회수하고는 금빛이 폭발한 곳을 응시했다. 그러자 금빛 비검들이 괴이한 영충을 둘러싸고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전갈로 보이는 영충은 꼬리가 둘이었고 날개가 넉 장이었는데 가장 기이한 것은 등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지는 거대 전갈은 검은 기운을 드리워 몸을 보호하고는 청죽봉운검의 매서운 공격을 튕겨내고 있었다.

“쌍미인면갈(双尾人面蝎)!”

한립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쌍미인면갈이라면 기충방(奇蟲榜)에서 서열 29번째에 올라있는 영충이었다. 등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모습이 인상 깊어 한립은 단번에 영충을 알아보았다.

아직 사람의 얼굴이 모호한 것으로 보아 성충은 아닌 것 같았고 유충 상태로 보였는데 지금 그의 능력으로 상위 20위 권의 영충이라도 성충이 아니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평정을 되찾은 그가 영수대를 스치자 금색 딱정벌레들의 무리가 구름처럼 거대 전갈을 향해 날아갔다.

웽!

쌍미인면갈은 곤충 떼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울부짖으며 즉시 비검들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났는데 극히 빠른 속도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히 날개가 네 개나 달린 것이 아니었다.

웽웽웽웽.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금색 꽃잎들이 흩날리며 주변 백여 장을 뒤덮었고 금색 딱정벌레들이 흉흉한 기세로 전갈을 포위했다.

거울을 이용해 전갈을 조종하던 백몽형은 불길한 느낌에 바로 포위를 벗어나게 하려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서금충들이 순식간에 사방에서 몰려드니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달아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전갈들은 꼬리에서 뿜어내는 검은 기운으로 몸을 보호하고 서금충 무리를 뚫고 나가려 했다.

보통의 영충 떼였다면 분명히 효과가 있었겠지만 서금충 무리에게 그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죽을 길을 제 발로 찾아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꼬리를 흔들어대며 검은 기운을 뿜어내느라 전갈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 틈을 노려 딱정벌레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서금충은 전갈의 극독이든 단단한 껍질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쌍미인면갈은 금색으로 뒤덮여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거대 전갈이 금빛 물결에 휩쓸리듯 깨끗하게 먹혀 사라졌다.

서금충들이 한립의 의식에 따라 돌아왔을 때는 허공에 한 쌍의 독침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 단단하기도 하고 극독을 보유하고 있어 서금충들이 뜯어먹지 않고 남겨둔 것이었다.

한립은 흥미가 생겨 그것을 불러들여 챙겨 넣고는 멀리 떠 있는 거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의식으로 거검을 움직이자 금빛이 위력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굉음이 들리며 허공에서 하얀 빛이 크게 번져 하늘을 뒤덮고 있던 눈보라를 없애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위의 풍경이 다시 변해 원래 있던 진법 속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기뻐했지만 서둘러 주위를 훑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푸른 장삼의 중년인이 저물대에서 징처럼 생긴 보물을 꺼내고 있었고 영충을 잃은 백몽형은 얼음장 같은 얼굴로 하얀 거울에 법결을 던져 넣고 있었다. 아무래도 거울을 이용해 무언가 다른 신통을 발휘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오색광채가 번뜩이며 불경소리와 폭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회색 장포 승려가 노부인과 치열하게 다투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목을 끈 것은 아직도 암석 위에서 주술을 외워대는 한려 상인이었다.

음산한 눈빛으로 한립을 쳐다보는 한려 상인의 머리 위에 기린의 환영이 이미 형태를 갖추어갔고 그 중심부에 처음 보는 영패가 둥실 떠 있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조용히 자신의 저물대를 스치자 검은 빛이 튀어나와 그 앞에 둥실 떴다. 바로 검은 옥병이었다.

한립이 수결을 맺으며 푸른 법결들을 검은 옥병에 집어넣었다.

검은 병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돌연 거꾸로 뒤집어 지니 그 안에서 포악한 괴성이 들여왔다. 이어 다섯 개의 회백색 기운이 병을 빠져나와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을 한 백골들로 변화했다.

백골들은 곧바로 두 장 가까이 커지며 회백색 기운에 휩싸였는데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기이한 점은 백골들의 목과 사지에 은빛 찬란한 고리들이 깊숙이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한립이 강제로 굴복시킨 오자동심마(五子同心魔)들이었다.

백골들이 몸을 키우자마자 적이 아니라 한립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며 마귀를 통제하는 법결을 운용했고 백골들의 몸에서 은색 고리들이 푸른 화염에 불타오르며 살을 태우는 냄새가 터져 나갔다.

마귀들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나 두려움에 떨었다.

이어 한립이 입에서 푸른 실을 뿜어 자신의 손목에 작은 상처를 냈고 그 안에서 떨어져 내린 핏방울들이 마귀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귀들이 온순해지며 그의 의식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가라!”

지체할 것 없이 한립은 멀리 보이는 푸른 장삼의 중년인을 가리켰다.

키에엑!

오자동심마들의 몸에서 마기가 끌어 오르고 흉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날아올라 수레 바퀴만한 해골 머리로 변하더니 섬뜩한 비명을 질러댔다.

“오자동심마! 건 노마가 정말 당신에게 죽었다니!”

중년인이 다섯 마귀를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곤오산 봉인 결계와 관련된 사안은 워낙 중대했기에 멀리 떨어진 북야소극궁에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곤오산의 일은 수많은 원영기 수사들이 죽어나가 천여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으로 그 일이 있은 후, 대진 제일 세가였던 엽 가는 멸문당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특히 음라종 대장로 건 노마의 죽음은 대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실 보통 수사들의 눈에는 원영 후기에 이른 수사는 수명이 다해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거의 불멸의 존재였다.

그리고 푸른 장삼의 중년인은 특히 일전에 건 노마가 오자동심마를 부리는 것을 보았기에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건 노마를 죽인 자라면 웬만한 원영 후기 수사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고민할 것 없이 수중의 징을 던지고는 다른 손을 뒤집어 노란색 옥 망치를 꺼내 징을 쳤다.

쩡!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중년인 주위로 노란빛이 일어나며 빛이 응결해 백여 개가 넘는 노란 비도로 변해 날아올랐다. 각각이 날카로운 도광이 번뜩이면서도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투명했다.

징 소리가 울려 퍼지자 비도도 빽빽하게 늘어나 푸른 장삼의 중년인을 완전히 감쌌다. 그러나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그는 양 소매를 펄럭여 두 개의 검은 창을 분출했다.

검은 빛줄기로 변한 창들은 또 하나의 보호막을 형성해 중년인을 거북이처럼 꽁꽁 숨겨 버렸다. 오자동심마의 등장에 상대를 꺾겠다는 투지가 사라지고 오직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다섯 마귀들이 음산한 귀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중년인 앞에 이르더니, 기다란 입에서 회백색 마기를 뿜어 모습을 감추었다.

귀곡성과 폭발하는 소리 속에 마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한립은 오자동심마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는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원영 후기 수사와 맞먹는 신통의 오자동심마가 겨우 원영 중기 수사를 어쩌지 못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