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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34화 (391/2,000)

# 634

634화. 전투의 시작

건람정과 닮은 작은 솥은 바로 허천정이었고, 푸른 실 뭉치는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한립은 건람정을 수중에 넣은 즉시 허천정을 허공에 띄웠다.

당!

맑은 울림이 들리며 솥에서 푸른 실들이 무더기로 나와 건람정을 완전히 감쌌다. 푸른 구슬을 소매 속에 넣은 한립이 그제야 한려 상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허, 좋습니다. 이렇게 빨리 허천정을 쓸 줄이야. 그래도 당신의 수행에 겨우 통보결 1성을 익혔겠지요! 그런데 마구 대사는 어찌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신 겁니까?  이렇게 되면 노부가 수사에게도 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한려 상인은 건람정을 빼앗기고도 크게 노하지 않았지만 승려를 향해서는 혀를 찼다.

“빈승이 한려 형과 백여 년 넘게 친분을 쌓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귀 궁이 한 수사를 죽이고 제 입을 막을 것이 두려워서 말입니다. 저는 일개 산수라 용 수사처럼 귀 궁과 연이 깊지 못하지 않습니까?”

노승은 소매 속에서 초록빛의 목탁을 꺼내들며 서늘하게 답했다.

“마구 대사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연이 깊다니요?”

후퇴해서 상황을 관망하던 노부인이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언제까지 숨길 작정이십니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노승은 소극궁의 일에 대해 아는 바가 꽤 됩니다. 용 수사가 이끄는 류취파(柳翠派)가 사실은 소극궁의 지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를 줄 아셨습니까?  그러니 용 수사는 소극궁의 외문 장로 중 하나인 것이지요! 빈승의 말이 틀렸습니까?”

“대사께서 그 일까지 알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용 장로 이제는 더는 기다릴 것 없이 같이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게으름을 피울 틈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대장로께서도 너무 하셨습니다. 외문 장로인 제게도 허천정에 대해서 입을 다무시다니. 덕분에 제가 적잖이 놀라지 않았습니까?”

노부인이 노란 빛을 번뜩이며 용머리가 새겨진 지팡이를 들고 말했다.

“전부 비밀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일단 저 둘을 제압해 솥을 빼앗도록 하시지요! 본 궁의 보물을 회수하면 앞으로 어떤 강적을 마주해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려 상인은 화제를 돌리며 외문 장로인 노부인을 달랬다.

“그럼, 마구 수사는 제게 맡기시지요! 세 분께서는 저 자를 제압해 허천정을 빼앗으십시오.”

노부인이 만면에 주름을 꿈틀거리며 불만스런 기색을 드러냈지만 결국에는 대장로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한려 상인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한 손을 움직여 남색 진법 원반을 꺼내 들고 법결을 던져댔다.

“이런, 진법을 발동하려 합니다. 막아야 해요!”

노승이 안색이 변해 급히 비취색 빛덩이를 던졌는데 손에 들고 있던 목탁이었다.

탁탁탁탁!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졌다. 그윽한 목탁 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며 혼백이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수사들은 누구하나 신통이 평범한 이가 없었으니 노부인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지팡이로 목탁을 가리키며 굵직한 노란 검기를 분출했다.

노승이 그것을 보고 이번에는 목탁에 법력을 주입했다. 목탁이 허공에서 빙글 돌아 순식간에 한 장 크기로 커져 커다란 바위처럼 검기를 내려친 것이다.

동시에 폭음이 터져 나오며 목탁과 검기가 얽혀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려 상인은 쉬지 않고 원반에 법결을 던져 넣어 진법원반이 눈을 찌를 듯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립은 그저 한숨이 나왔다.

그도 한려 상인이 진법 원반을 발동하게 나둘 수는 없었기에 한손을 들어 열댓 개의 푸른 검기들을 날려 보냈다.

목표는 진법 원반에 법결을 날려 대는 한려 상인이었다. 그의 청원검기는 열댓 개의 푸른 빛줄기로 변했고 도중에 하얀 검기와 두 개의 검은 빛과 충돌해 교전했다.

소극궁 대장로를 위해 나선 백몽형과 중년인의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검기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본 한립은 슬쩍 인상을 찡그렸지만 급한 기색 없이 소매를 털어 수십 개의 금빛 비검들을 우르르 불러내 몸을 보호했다.

쿠콰콰쾅!

곧 아래에서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그가 빛기둥 위로 솟구쳤다. 아래에 있던 보라색 빛기둥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원형 진법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주위의 풍경이 달라지며 그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허공에 떠있게 되었다. 폭설이 쏟아지는 빙하 위였다.

‘환술! 의외인데.’

한립은 빙하로 내려서며 낮게 웃음을 흘렸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의 몸에 전해지는 금제의 압력이 강해서 만일 명왕결을 익히지 않았다면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곤오산에서 금자영목(金磁靈木)의 엄청난 압력도 견뎌낸 그에게 이까짓 환술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가 곧바로 몸 주변을 금빛 검기로 베어내자 엄청난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금빛으로 몸을 두르고 천천히 다시 떠올랐는데 주위를 둘러보는 눈이 남색으로 일렁였다.

주변은 하얀 눈보라와 빙하로 가득해서 온 세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그 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니 거대한 눈덩이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남색 빛이 강해지더니 주위를 돌던 금빛 속에서 열댓 개의 검기들이 허공의 어딘가로 날아갔다. 분명히 허공이었는데 무엇과 부딪친 듯 연달아 폭발하더니, 금빛 속에서 열댓 개의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촌 길이의 반짝이는 검들이 눈보라 속에 숨어 조용히 한립에게 날아드는 중이었다.

“흠?”

누군가 이상하게 여기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단번에 백몽형의 냉랭한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열댓 개의 비검들이 다시 눈보라 속으로 모습을 감추려했다.

한립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수결을 맺자 전신에서 금빛이 진동을 했고 동시에 열댓 개의 금빛 검들을 방출했는데 금빛 찬란한 검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굉장했다.

작은 검들이 허공을 선회해 주위로 흩어지더니 한동안 금속성의 충돌하는 소리가 계속되었고 금빛 검들이 조준한 곳마다 상대의 비검들이 강제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우웅!

한립이 법결로 비검들을 북돋자 투명한 검들과 맞서던 금빛이 더욱 짙어졌다. 이를 확인한 한립의 눈빛이 달라졌고 돌연 기괴한 주술을 중얼거렸다.

갑자기 낮은 신음을 흘리며 눈보라 속에서 하얀 의복을 입은 여인이 머리를 감싸고 나타났다. 아름다운 얼굴은 고통 속에 일그러져 있었다.

한립의 실신자(失神刺) 비술에 당한 백몽형이었다.

여인의 의식이 혼란해지자 한립의 비검들과 막상막하를 이루던 투명한 비검의 빛이 한층 암담해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한립이 법결을 발동하자 열댓 자루의 청죽봉운검들에서 금빛이 터져 나왔고 상대의 빙검(氷劍)을 휘감았다.

챙캉!

열댓 개의 비검들이 그 자리에서 금빛 비검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남은 비검들 역시 즉시 빛이 약해져 애달피 우는 것이 영성을 크게 다친 듯했다.

막 실신자에서 벗어나려던 백의 여인은 본명법보들이 훼손당하자 크게 놀라 피를 토했고 서둘러 나머지 비검들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한립이 그렇게 놔둘 리 없었다.

그는 재빨리 비검들을 가리켰고 청죽봉운검들이 남은 빙검들을 가로막았다. 이미 상대의 빙검을 두 동강낸 검들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나머지 비검을 도왔다.

한립이 다시 법결로 비검을 북돋아 여인의 본명법보들을 철저히 망가트리려는데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네가 감히!”

이어 두 개의 검은 빛줄기가 눈보라를 뚫고 날아들었다. 7, 8장 정도 되는 새까만 교룡들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수결을 맺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붉은 빛이 찬란한 두루마리를 던졌다.

붉은 빛이 허공을 밝히며 두루마리가 펼쳐졌는데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백여 개가 넘는 은백색 고대 문자들이 흘러나와 무수히 많은 빛덩이로 변해 검은 교룡들을 맞이했다.

검은 교룡들은 입에서 검은 기운을 분출하며 거침없이 고대 문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콰르릉!

금은색의 빛이 교룡의 몸에서 연달아 폭발해 검은 기운은 물론이고 검은 교룡들까지 아주 조각낼 기세였다. 결국 검은 교룡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원형을 드러냈는데 중년인이 발동한 검은 창들이었다.

한립이 그 모습에 기뻐하며 두루마리에 불어 넣던 법력을 더욱 늘리자 붉은 두루마리가 부르르 떨리고 더욱 많은 금은색 고대 문자들을 뿜어냈다. 놀랍게도 머리 위의 공간을 전부 메울만한 양이었다.

검은 빛이 번뜩이고 푸른 장삼의 중년인이 금은색 고대 문자들 속에 포위 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즉시 검은 창들을 회수하는 대신 한손을 뒤집어 푸른 깃발을 꺼냈다.

그가 작은 깃발을 흔들자 표면에 주술이 흘러 다녔고 광풍이 밀려들어 뜻밖에도 중년인을 숨겨주었다.

‘……? ’

고대 문자들이 허공을 덮치자 한립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백몽형에대한 공격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는데 그녀가 하얀 거울을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비검이 변한 금빛으로 겨냥했고, 우윳빛 빛줄기는 거울에서 빠져 나와 금빛들을 맞추었다. 순식간에 검의 표면에 한기가 어리며 대부분의 비검들이 얼음 덩어리 속에 봉인되었다.

그 틈에 살아남은 백의 여인의 빙검들이 달아나 그녀의 소매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립이 시선을 돌려 그것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손짓에 금빛 검들이 울어대더니 미세한 뇌전이 표면을 타고 번뜩이자 현빙들이 벽사신뢰의 위력에 조각났고 순식간에 비검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백몽형이 기겁하며 거울의 방향을 바꾸어 한립을 조준했다. 그러나 한립은 곧바로 등 뒤로 은색 날개를 펼쳐 사라졌다.

백몽형이 주저하는 순간 그녀 옆에서 광풍이 몰아치며 누군가의 팔이 그녀를 품고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은빛이 번뜩이며 한립이 그녀가 있던 허공에 나타났다.

그녀가 사라져 허공을 덮치자 그의 얼굴에 흉흉한 기세가 스쳤고 눈동자가 남색으로 일렁였다. 곧 그의 손에서 검은 빛이 빠져 나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수십 장 밖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팔 한쪽이 떨어져 내렸다. 팔의 주인은 바로 푸른 청삼의 중년이었다. 그 자는 한쪽 팔이 잘렸음에도 전광석화처럼 잘린 팔을 잡아채서는 다시 광풍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한립의 눈에 이채가 어리며 검은 빛으로 상대를 쫓지 않고 회수했다. 검은빛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한립 앞에 나타났는데 인간형 꼭두각시가 주었던 마수찬 비도 마수인(魔髓刃)이었다.

이후 그는 눈보라 속에 고요히 떠서 사방을 주시했다.

그동안 환술 밖에서는 중년인이 여러 장의 부적을 이용해 잘려나간 팔을 붙이고 있었다.

“정말 괴이한 법보가 아닌가……. 보아하니 요이 사매가 과장한 것이 아니었어. 몽형 사매는 괜찮은가?”

그는 잘린 팔을 대충 수습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백몽형을 걱정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비록 본명법보가 망가졌지만 거의 절반은 회수했으니까요. 그나저나 현빙검(玄氷劍)으로 상대할 수 없는 비검이라니 놀랍습니다. 그런데 한려 사형! 금제로 모습을 감추는 것은 저자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백몽형의 창백하기 그지없던 얼굴은 도리어 기이하게 핏기가 돌았고 목소리도 탁해져 있었다.

“나도 보았네. 저렇게 강한 상대라니 허천정만 아니었어도 결코 척을 져서는 안 될 자인데 말이야……. 허나 이미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지! 이미 천지원기의 반서로 인한 부상을 회복하는 중이니 곧 내가 저 자를 맡을 것이야. 지금의 수행과 현옥동의 한기를 이용하면 제아무리 대단한 상대라도 죽일 수 있겠지.”

한려 상인은 전신에서 남색 빛을 일으키며 차분히 말했다.

“이곳의 현옥한기를 써버리면 앞으로 천년 동안은 다시 현옥동을 개방할 수 없을 텐데요?”

중년인이 놀라 물었고 백몽형도 말은 안 했지만 안색이 달라졌다.

“그럼 방법이 있겠는가?  진법에 능통한데다 신통과 보물이 무궁무진한 자네. 허천정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통천령보 모조품인 부채까지 지니고 있다지! 허천정을 차지할 수 있다면 현옥동을 천 년간 봉인해야 한다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한려 상인이 금제 속의 한립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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