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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28화 (385/2,000)

# 628

628화. 요수 대군

한동안 고요하던 소극궁이 드디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대전을 앞두었다는 긴장감이 궁을 휩쓴 것이다. 대부분 진법이 금제를 펼쳤고 저계 제자들은 철수해 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부인과 백요이 등이 대화를 나누고 이틀 후, 허령전 내의 현옥동 석조 건물에 앉아 있던 한려 상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수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핵심 구결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자질이면 이틀간 충분히 익히셨겠지요?”

그 말에 다른 수사들도 조용히 눈을 떴다.

“빈승은 문제없습니다.”

“저도 반나절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립이 대답을 했고 백몽형과 중년인은 물을 것도 없었다.

“다들 되셨다고 하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며칠 내로 끝날지 혹은 한 달이 넘게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성공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솔직히 노부도 바깥의 일이 걱정되어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어 한려 상인과 그의 사제들이 저물대에서 진법 깃발과 원반 등을 여러 벌 꺼내 건물 밖으로 나가더니 동굴에 신묘하기 짝이 없는 진법을 여러 개 펼쳐 두었다.

외부 수사들은 도울 일이 없었지만 다른 종문의 비술을 살펴볼 기회라 다들 한염을 일으키며 건물을 나섰다. 한려 상인 등은 일다경도 되지 않아 진법 설치를 마쳤다.

돌무지를 중심으로 겹겹이 펼쳐진 결계는 삼엄하게 빛났고 그 표면을 따라 주술이 반짝였다. 한려 상인이 몸을 날려 도처를 살피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열댓 개의 법결들이 빠르게 날아가 진법에 흡수되었다.

웅!

진법들이 빛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현옥한기를 끌어 모아 소용돌이가 되었다. 유일하게 붉은 건물만이 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멀쩡하게 서 있었다.

“현옥한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그래야 고비를 뛰어 넘을 가능성이 올라갈 겁니다.”

한려 상인이 허공에 떠서 소용돌이를 확인하고 흡족하게 말했다.

그때 한립은 돌무지 가운데에서 진법의 힘으로 솟아 오른 다섯 개의 빛기둥을 쳐다보고 있었다. 빛기둥은 보라색, 붉은색, 하얀색, 검은색, 노란색으로 각각 정순한 영력을 품고 응결되어 있었다.

진법의 형상을 확인한 그가 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보라색 빛기둥 속으로 들어갔다. 노부인과 다른 수사들도 그와 비슷하게 움직여 각자 빛기둥을 차지하고 앉았다.

이제 한립은 체내의 영력을 미리 익혀둔 비술 구결에 따라 운용하며 전신에서 화려한 보라색 화염을 방출했다.

그가 수결을 맺으니 앉은 자리에 보라색 빛이 커다란 연꽃 한 송이로 탈바꿈했다. 부드럽고 얇은 연꽃잎은 보라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한립이 지닌 자라극화는 보라색 연꽃에 닿자 마치 자극을 받은 것처럼 커졌다. 의외였던지 그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한려 상인이 펼친 진법이 한염의 위력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만일 진법을 어떻게 펼치는지 알아낸다면 쓸모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라극화가 활활 타오르자 체내의 법력 소모가 배는 빨라졌다. 순간적으로 화염의 위력을 증폭시킨 대가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빛기둥 위에 앉은 수사들을 살폈다. 빛으로 만들어진 연꽃에 앉은 모습은 다들 비슷했지만 내뿜는 한염은 달랐다.

한립은 슬쩍 동굴 벽도 살폈다.

태음진화가 고요히 움직이며 현옥한기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허령전 자체에 의식을 제한하는 금제가 걸려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그가 시선을 거두기 전에 허공에서 한려 상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사들께서 지니신 한염의 위력이 상당하여 오래 버틸 수 있을 듯합니다. 안심하고 현옥한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미리 알려드린 구결대로 하시면 됩니다.”

한려 상인은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고 건람빙염에 둘러싸여 우윳빛 한기 구슬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쿠르릉!

남색 빛이 번쩍이다가 난쟁이의 몸이 그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 건람빙염과 현옥한기가 충돌하고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 그는 우윳빛 보호막을 하나 더 두른 것처럼 되었다.

이때, 푸른 장삼의 중년인과 백몽형이 동시에 손을 뒤집어 남색 진법 원반을 꺼냈다. 둘은 익숙하게 손짓을 하였고 진법에서 오색 보호막이 나타나 다른 수사들을 휘감게 했다.

이후 보호막 바깥에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며 하얀 돌풍이 생겨났지만 안에서는 밖을 살필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돌무지의 돌풍은 쉼 없이 몰아쳤다.

* * *

7, 8일이 지나고 북명도 밖에서 대량의 요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빙해 쪽에서 오는 무리와 내륙 쪽에서 오는 무리로 나뉘어 진격하는 중이었다.

요수들의 요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북명도 인근의 가문과 작은 종문들은 전혀 막을 생각도 없이 혼비백산하여 이주를 하거나 북명도를 떠나 달아났다.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니 소극궁도 바로 주변의 금제를 발동했다. 주변 온도가 평소보다 급격히 떨어지고 눈보라가 미친 듯이 몰아쳤다.

내륙에서 온 만요곡 요물들도 미리 대비를 하였는지 바로 대량의 저계 요수들이 먼저 달려가 한기를 소모하고 수십 마리의 7급 이상 요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빙해에서 몰려드는 요수 무리 대부분은 북명도의 한기와 눈보라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수천 마리 요수가 동시에 소극궁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수많은 요수들이 눈보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소극궁 고계 수사들은 그들이 얼음성으로 접근하게 두고 볼 리 없었다. 진법금제와 천연의 한기를 이용한 살육전이 펼쳐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해파리처럼 온 몸이 투명한 요수들이 눈보라를 뚫고 은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눈도깨비 혹은 한매(寒魅)라 불리는 요수들은 5, 6급에 불과했지만 잔혹한 빙설기후 속에서도 물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돌연 무리를 이끌던 6급 한매가 멈추더니 몸에 달린 몇 쌍의 붉은 눈으로 눈보라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휙!

허공에서 붉은 실들이 뿜어져 나와 요수들 몸속의 요단을 순식간에 조각냈다. 그제야 눈보라 속에서 하얀 피풍의를 걸친 소극궁 여수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서늘한 눈빛이 죽은 요수들을 훑더니 다시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 * *

백 리 밖 모처, 소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요수가 홀로 얼음 호수를 걷고 있었다.

머리에는 새까만 뿔이 구부러져 있었고 전신의 털은 남색으로 빛났는데 커다란 도를 어깨에 메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 모습이 상당히 멍청해 보였다.

하지만 인간 수사들이 요수를 발견하면 결코 웃지 못 할 것이다. 그것은 화형기를 앞둔 7급 요수였기 때문이다.

북명도의 비행 금지 금제 때문에 8급 이상의 요수만이 자유롭게 날아 이동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걸어서 천천히 진격해야 했다. 그래서 둔술이 뛰어난 요수들도 급이 되지 않으면 성실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요수가 어깨에 두른 거대한 도를 휘둘렀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때려잡는 느낌이었다.

쾅!

동시에 참혹한 비명소리가 호수 아래에서 들려왔다. 빙하 표면에 몇 척 깊이로 난 기다란 흔적이 방금 일어난 일격의 위력을 말해주었다.

돌연 얼음 표면 아래의 호수에서 핏물이 올라오며 소극궁 복장을 한 사내가 떠올랐다. 수둔술(水遁術)을 펼쳐 물속에 숨어 있던 수사가 암습하기도 전에 걸려 일격에 당한 것이다.

흉악한 빛으로 눈을 번뜩인 요수는 허공에 손을 쥐어 토막 난 시체를 끌어올렸고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일다경이 지나 완전히 시체를 삼킨 요수가 기분 좋게 배를 문지르며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비슷한 일이 북명도 각지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전부 저계 요수와 결단 이하 수사들 간에 벌어지는 일이었고 원영기 수사들과 8급 이상 요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소극궁 원영기 수사들은 아예 빙성에서 나오지 않았고 8급 이상 요수들은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여하지 않고 눈보라 속을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요수들이 얼음성을 향해 다가 올 때, 한려비경 속의 어느 전당 안에는 류 씨 성의 미부인이 중앙 의자에 않아 원영기 장로들과 제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번에 파견한 백여 명 고계 제자의 본명패 중 37개가 소멸했습니다. 소식에 다르면 격살한 각계 요수들은 총 128마리로 대부분이 빙해 요수라 합니다. 두 번째 제자들을 이미 파견했으니 아마 한 시진 후에는 첫 번째 무리와 합류할 것입니다.”

“벌써 37명이나 죽다니 이제 때가 되었다. 빙성 십만 리 내로 적들이 진입했겠지. 엽 장로에게 알려 한 시진 후에 진해종(鎭海鐘)을 울리게 하라. 한 번에 빙해의 저계 요수들을 쓸어버려야지 그것들이 이곳까지 이르게 놔두면 큰 화가 될 것이야.”

미부인은 순식간에 분부를 내렸다.

“예, 궁주!”

혈색 좋은 노인이 그 말을 듣고 전음부를 꺼내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전당 밖으로 쏘아 보냈다.

“정 사제는 금제대진을 전부 발동하게. 아마 보물을 발동하면 빙해 고계 요수들이 동족들의 죽음에 발광할 것이야.”

“예!”

미부인의 말에 또 다른 장로가 허리를 굽히고는 빛줄기로 변해 전당을 빠져나갔다.

“궁 밖의 제자들에게 단단히 이르게. 진해종의 효과는 향 하나가 탈 정도밖에는 지속되지 않으니 그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이후 즉시 비밀 전송진을 전부 봉해 요수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존명!”

미부인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장로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 * *

빙성 수백 리 밖. 대량의 고계 요수들이 한 곳에 모여 빙산에 내려섰다.

전방은 소극궁의 강력한 금제가 시작되는 곳이라 하얀 기운에 앞이 보이지 않아 화형기 요수들도 표정이 신중해졌다.

요수의 무리는 둘로 나뉘었는데 열댓 명은 키가 큰 노인과 작은 어린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고, 나머지 스물 몇 명은 호리호리한 은색 장삼을 입은 여인 곁에 몰려 있었다.

이상하게도 인원이 적은 쪽은 마치 인간 수사들처럼 잘 차려 입고 외양이 다른 것을 제외하면 행동거지가 사람 같았다. 그들은 은근한 멸시가 담긴 눈빛으로 다른 요수 무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요수들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다들 생김새가 흉악했고 가죽과 모피 같은 것으로 대충 만든 옷을 걸치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그냥 웃통을 벗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장기와 비슷한 도, 검, 도끼, 철퇴 등을 메거나 들고 있었다. 역시 다른 무리를 보는 눈빛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단지 빙하와 산속에 살고 있을 뿐인데 물과 불처럼 섞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만일 인간 수사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하고 단지 덜덜 떨며 달아나기 바빴을 것이다.

그들은 전부 8급 이상의 화형기 요수들이었고 노인, 어린아이, 은발여인은 10급 요수였다.

미색 장포를 입은 늙은이는 각진 얼굴에 위엄이 있었고 눈빛이 형형했다. 그리고 예닐곱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는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준수했지만 눈동자가 붉고 얼굴에 붉은 기운이 어려 있는 것이 기이했다. 아이는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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