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26화 (383/2,000)

# 626

626화. 빙백한렬진(氷魄寒烈陣)

한립은 자라극화를 지니고 있었기에 이정도 한기에는 끄떡없었다. 하얀 바람은 그의 전신을 덮은 보라색 화염에 흡수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주변을 살피니 전당 전체가 빙하로 뒤덮였는데 극한의 화염을 보유한 수사들은 멀쩡해보였다. 백몽형은 하얀 화염을 방출했고, 한려 상인은 작은 솥을 꺼내 건람화염으로 몸을 보호했다.

푸른 장삼의 중년인은 검은 빙염으로 보호막을 만들고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노부인은 한 손에 노란 지팡이를 들고 그 끝에서 노란 화염을 분출한 뒤 그 뒤에 숨어 있었고, 회색 장포 승려는 두 손을 모아 연한 녹색 화염이 변한 교룡으로 온 몸을 감싸 한기를 막았다.

돌연 석문 안에서 괴성이 잦아들고 한기의 바람도 기세를 잃고 흩어졌다. 그러자 전당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한립은 수결을 맺어 몸에 두른 보라색 화염을 체내로 되돌리고는 석문 안쪽을 응시했다. 새하얀 공간은 수많은 얼음기둥이 솟아 있어 미궁처럼 보였다.

한립이 바로 의식을 이용해 탐색하려 했으나 석문에 이르기 전에 실패했다. 의식을 제한하는 특수한 금제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노부인 등도 다들 석문 안쪽을 살피고 있었는데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다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허령전은 노부도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라 대부분의 금제는 제어할 수 있어도 전부 장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 뒤를 쫓아와 주시고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금제를 발동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한려 상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진지하게 당부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희도 귀 궁의 금지에서 함부로 돌아다닐 마음은 없으니까요.”

노부인이 담담히 답했고 한립과 승려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한려 상인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백요이 등 다른 소극궁 장로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이번 일은 짧으면 사나흘, 길면 보름 정도 걸릴 것이네. 그 동안 요물들이 쳐들어온다면 원래 계획대로 대비하게. 변고가 생겨 두 달이 지나도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때를 위해 준비한 계획을 시행하도록 하고!”

“예, 대장로님!”

장로들이 일사분란하게 대답했다.

“이제 들어갑시다.”

한려 상인은 주먹만 한 새하얀 진법 원반을 꺼내 들고 즉시 석문 안으로 걸어갔다. 한립 등 나머지 수사들도 그 뒤를 따라 갔다.

석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한려 상인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들고 있는 원반에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쿠릉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석문이 다시 닫혔고 주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 빛을 뿜었다.

노부인과 승려가 시선을 마주쳤다.·

“다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령전은 바깥에서 들어오기가 힘들지 내부에서 열고 나가는 것은 간단합니다. 혹시 비술에 방해를 받을까 문을 잠시 봉쇄한 것입니다.”

수사들의 눈빛에 한려 상인이 곧바로 해명했다.

열댓 장을 걸어가 얼음 기둥을 가까이에서 보자 번뜩이는 빛에 눈이 부셨다.

“이곳의 만년현빙 기둥은 총 1008개로, 상고 수사가 공을 들여 당시 유명했던 빙백한렬진(氷魄寒烈陣)을 펼쳐 놓은 것입니다. 관련 법기를 들고 들어가지 않으면 진법의 한기에 얼음덩이가 될 수도 있지요.

방금 불어 닥친 한기의 바람도 진법이 저절로 만들어낸 냉기가 수천 년간 봉인되어 있다 한 번에 터져 나온 것입니다. 우리 같은 한염을 지닌 수사들도 진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려 상인이 차분히 설명했다. 노부인과 승려는 만년현빙으로 만들었다는 기둥을 보며 반신반의 하는 얼굴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이 진법의 위력을 직접 체험해볼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요.”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려 상인도 웃음을 터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진법 원반을 빛기둥들 사이로 던졌다.

동시에 우윳빛이 원반에서 분출되어 몇몇 얼음 기둥들이 환영처럼 미끄러져 길을 만들어냈다. 한려 상인이 원반을 불러들이고는 먼저 통로로 들어갔고 다른 이들도 그와 거리를 벌리지 못하고 그 뒤를 쫓았다.

한립은 가장 마지막에 걸어가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만년현빙 기둥들은 두 사람이 팔을 펼쳐 껴안아야 할 만큼 두꺼웠고 표면이 기이하게 매끄러웠는데 기이한 주술이 떠다녔다. 어떤 주술인지 살피려고 하면 순식간에 사라지니 기묘했다.

고개를 들면 대여섯 장 높이부터 하얀 안개가 짙게 껴서 얼음 기둥 위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려 상인이 자신 있어 할 만한 진법이었다.

한립이 살펴보는 동안 일행들은 수백 장을 걸어갔는데 여전히 주변에는 빽빽한 얼음 기둥들이 가득했다. 얼음 기둥들이 1008개가 아니라 수천 개가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다경쯤 걸어가자 눈앞이 밝아지며 얼음 기둥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스무 장 높이에 너비가 백여 장은 되는 제단이 타나났다.

높은 제단은 옥처럼 하얗고 남색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양쪽에 금색 문이 달려 있었고 상고 부적들이 여러 장 붙어 문을 봉쇄하고 있었다.

한려 상인은 남색 기운을 감상하다가 진법 원반을 회수하고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건람빙염으로 얇게 두른 두 손을 들어 제단의 남색 보호막에 가져다 댄 것이다.

남색 화염과 보호막이 닿자 제단이 진동하며 눈부신 빛을 방출했다.

펑!

제단을 두른 보호막이 산산이 부서져 내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려 상인은 곧바로 몸을 날려 제단 위에 섰다. 그리고 한립 등도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라 그의 곁에 도착했다.

한려 상인은 뒷짐을 지고 아래쪽 지면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제단을 중심으로 기괴한 진법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중간에 거대한 솥의 문양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가 지닌 허천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문양이었다.

한립은 미묘하게 안색이 달라졌지만 즉시 무표정하게 돌아왔다.

“한 수사 이런 종류의 진법을 본 일이 있으십니까?”

한려 상인은 무슨 일인지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이렇게 물었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한립은 차분히 대답했다.

“예전에 상고 수사의 거처에서 비슷한 진법을 본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다른 종류 같군요.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그런가요?”

한려 상인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 꼬리를 꿈틀거렸다. 그의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건람빙염을 품은 작은 솥이 한려 상인의 소매에서 빠져 나와 진법 중앙으로 날아갔다. 다들 눈도 제대로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을 주시했다.

쿠쿵.

작은 솥이 빠르게 커지며 강렬한 건람빙염을 뿜어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거대 솥으로 돌아왔다.

곁에 서 있던 백몽형과 푸른 장삼 중년인이 동시에 앞으로 나서 한 손을 들고는 하얀 화염과 검은 화염을 지면의 진법 양쪽으로 뿜어냈다.

쿠콰쾅!

두 줄기의 강력한 한염에 진법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빛 속에서 남색빛의 솥을 만들어냈다. 원래 허공에 떠있던 거대 솥은 한려 상인의 조종을 받아 빛의 솥과 하나가 되었고 쿵 소리를 내며 진법 중앙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려 상인이 읊는 이상한 주술 소리에 건람빙염이 화산이 폭발하듯 솥에서 용솟음쳐 진법 전체를 뒤덮었다. 진법이 맹렬히 흔들리고 거대 솥을 중심으로 천천히 틈이 갈라져 점점 깊고 넓어져갔다.

남색 화염을 분출하는 거대 솥이 허공에 떠올랐고 그 아래의 벌어진 틈에서 하얀 빛이 새어나와 주변을 밝혔다. 다른 수사들은 허공에 날아올라 놀란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이 허령전의 가장 큰 보물인 현옥동입니다. 저 안의 현옥(玄玉)은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상고 수사들이 막대한 법력을 소모해 현옥광맥 하나를 통째로 응결해 만든 동굴이라고 하더군요. 만년현옥(万年玄玉)과 만년현빙(万年玄氷)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이곳을 제외한 북부 지역 전체를 뒤져 보아도 만년현옥은 몇 덩이 찾아 내지 못하실 테니까요.”

한려 상인이 제단의 균열을 보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푸른 장삼 중년인과 백몽형도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수사가 현옥동을 미리 언급해 주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곳이 실재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을 겁니다. 만년현옥이 이렇게나 많다니……. 만년현옥을 조금만 법보에 녹여 넣어도 차가운 속성을 크게 키울 수 있는 재료 아닙니까!”

회색 장포의 승려는 균열을 보며 감탄했고 노부인도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한립은 소매 속의 금빛 비검의 매끄러운 표면을 문지르며 담담히 미소 지었다.

“이미 백 사매와 구양 사제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세 분이 최선을 다해 제가 화신기 경지에 이르는 것을 도와주신다면 만년현옥을 약간씩 드리기로요! 저희 소극궁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정말이십니까?”

냉랭하기 짝이 없는 노부인마저 그 말에는 희색을 드러냈다.

“소극궁 대장로인 제가 한 말인데 당연하지요.”

한려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회색 장포 승려도 반가운 기색이 확연했다. 만년현옥은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재료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한립은 그 말에 한려 상인의 큰 씀씀이에 탄복했다. 하지만 외부인인 그들이 최선을 다하게 하기 위한 보상일 것이다.

“이제 현옥동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현옥동은 한기가 엄청나니 일단 극한의 화염으로 몸을 보호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도 동굴 안에 따로 한기를 피할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법력을 회복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라 해도 안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한려 상인이 들어가기 전에 주의를 주었다. 이어 그가 입을 벌려 남색 불덩이를 분출했다. 불덩이가 커다란 남색 불새로 변하더니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남색 새의 환영이 한려 상인의 등 뒤로 사라졌을 때 남색 빙염이 폭발하듯 그를 감쌌다. 그리고 그 상태로 균열 안으로 진입했다.

백몽형과 노부인 등도 술법을 펼쳐 자신의 한염으로 몸을 보호하고 균열로 날아 들어갔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양쪽의 금색 문을 보다가 균열 위에 뜬 거대 솥을 올려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러나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피식 웃고는 보라색 빙염으로 몸을 감싸고 일행을 쫓았다.

츠츠츳.

균열에 들어가자마자 한기가 밀려들었고 한립을 감싼 보라색 화염과 접촉하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대립했다.

불안하게 떨리는 보라색 화염을 본 한립이 흠칫 놀라 체내의 자라극화를 끌어올려 보호막을 안정화시켰다. 그제야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현옥동은 지하 동굴이었다.

다만 세상에서 보기 드문 현옥 광맥을 이용해 만든 곳이라 만년현빙과 비교해도 몇 배는 강도 높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쌀알만 한 입자가 동굴 양쪽에서 우윳빛을 내며 반짝였고 지하로 깊이 내려갈수록 더욱 조밀해졌다.

‘흠? ’

한립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한기의 빛을 향해 손을 쥐자 강력한 법력에 힘입어 강제로 한기의 빛 한 줄기를 보라색 화염으로 감싸 응결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면 평범한 한기로 보였지만 눈동자가 남색으로 일렁이고 나서야 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우윳빛 한기의 빛이 명청령안으로 보자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보라색 화염 안에서 스스로 수축했다 늘어났다하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고 보라색 화염을 두려워하지도 융합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게 뭐지?  한기에 영성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군!’

극히 소량의 한기여서 망정이지 대량의 한기가 결집하면 자라극화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 손을 부딪혀 자라극화로 뒤덮인 손에 새빨간 무언가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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