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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24화 (381/2,000)

# 624

624화. 빙해 요수들

인영은 가볍게 웃더니 한 손을 뒤집어 은색 방패를 발동했고 마치 거울과 같은 은색 장벽이 나타났다. 불가사의한 일은 공격을 가한 붉은 빛들이 전부 폭발하며 튕겨 나갔다는 것이다.

뱀 요수는 화들짝 놀랐고 곁의 사내가 얼굴을 굳히며 소매를 털어 청록색 독무를 뿜어냈다. 짙은 청록색 안개 속에 초록빛이 번뜩이며 극독을 응결한 독침 법보를 숨겨 놓았다.

하지만 은색 벽 뒤의 사내도 소매를 털어 새빨간 솥을 분출했다. 솥이 번뜩이더니 맑게 울며 은색 방벽 밖에서 나타나 수많은 불덩이들을 내뿜었다.

불덩이들이 응결해 백여 마리에 달하는 새빨간 불까마귀로 변하자 주위의 공기가 건조해지며 날아들던 청록색 독무도 그 안의 독침도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흩날렸다.

인영의 정체는 한립이었고, 새빨간 솥은 곤오산에서 발견한 영성을 띤 거대 솥이었다.

솥은 극양의 성질을 지닌 불 까마귀 수천 마리를 부릴 수 있어 음기나 사악한 술법에는 효과가 상당했다. 한립이 솥의 위력을 확인하고 만족하며 소매를 털어 삼색빛의 무언가를 손에 들었다.

불까마귀들이 불바다를 이루며 나아가기 전에 한립이 먼저 풍뢰시를 이용해 은빛 뇌전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내는 독무가 사라진 것을 보고 분노하다가 크게 놀라 서둘러 의식을 방출했다. 동시에 수결을 맺어 녹색 그물을 내뿜었는데 그것이 마치 거미줄처럼 반경 열댓 장을 전부 감쌌다.

이때 천둥소리가 들리고 한립이 사내의 뒤에서 나타났다. 녹색 그물이 떨어져 금방이라도 갇힐 것 같았다.

쿠쾅!

금빛 뇌전의 그물이 한립의 몸에서 뻗어 나가 녹색 그물과 맞섰다. 그러나 녹색 그물은 금빛 뇌전에 닿자마자 사라져버려 요수 사내를 기겁하게 했다. 그는 즉시 달아나기로 마음먹고 둔술을 펼치려 했다.

그 순간 삼색의 화염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쾅!

삼색 화염이 부딪쳐 폭발하고 사내와 그의 보호막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비명이 터지고 보호막과 사내가 푸른 연기로 사라졌다.

삼염선의 위력은 은시야차도 함부로 대응하지 못했는데 겨우 8급 요수가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도와주려던 뱀 요수 여인이 그것을 보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한립이 손짓 몇 번에 자신의 일행을 멸살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것이다. 비록 그녀가 요수 사내보다 신통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녀가 상대할 이가 아니었다.

동시에 펑하고 여인의 붉은 빛이 스스로 폭발하며 무수히 많은 불뱀으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한립은 멈칫했지만 입 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명청령안을 발동했다.

그의 등 뒤로 풍뢰시가 펄럭이고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은빛이 번뜩이더니 불뱀 중 하나에 서늘한 눈빛의 한립이 나타났다.

그 불뱀이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뜨더니 입을 벌려 손톱만한 붉은 구슬을 분출했다. 고된 수련 끝에 얻은 불 속성 요단으로 필사의 공격을 한 것이다.

한립이 피식 냉소하더니 허공을 쥐었다.

촤륵.

보라색 화염이 나와 보라색 거대 손을 만들어 구슬을 단단히 쥐었다. 거대 손 안에서 폭음이 연달아 들리며 붉은빛이 요동치다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이에 불뱀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화염도 한층 어두워졌고 그녀는 겁을 집어 먹고 달아나려 했다.

일순 한립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보라색 거대 손이 거칠게 불뱀을 향해 날아들었는데 미처 닿기도 전에 뱀 요수는 엄청난 한기가 온 몸을 감고 있어 꼼짝 할 수 없었다.

한기만으로 9급 요수인 그녀를 구속할 수는 없었지만 찰나의 순간은 붙들어둘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뱀 요수는 피를 분출해 온 몸의 불길을 북돋았지만 결국 보라색 거대 손에 잡히자마자 불길이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덩이만이 보랏빛으로 반짝이며 허공에 남았다. 한립이 소매를 털어 열댓 개의 금빛을 분출해 얼음덩이를 스치자 금빛이 몇 번 반짝이더니 얼음덩이 속의 뱀 요수가 조각조각 떨어져 내렸다.

잠시 후 그 안에서 초록빛이 빠져나왔는데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립이 열댓 개의 비검들에서 금빛 뇌전을 분출하자 금빛 그물이 수축하며 초록빛을 싸매 구슬모양으로 뭉쳐버렸다.

한립이 유유히 손을 들어 검은 옥병을 방출했다. 병 입구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금색 구슬을 빨아들이며 사라졌고 그는 차분히 검은 옥병을 회수했다.

빙하 협곡 아래 남색 기운 속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백요이가 위로 빠져나와 상황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주 잠시 기운을 고르고 다시 나왔는데 이미 화형기 요수 두 마리가 한립의 손에 격살당해 있었던 것이다.

두 요수가 비록 8급과 9급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전투에 임하면 각각이 원영 중기 수사와 맞먹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낭패를 당하지 않았던가!

한립의 실력이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두 요수를 순식간에 죽이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요이가 멍하니 있는 동안 한립은 지네와 서금충을 영수대로 회수하고 돌아왔다.

“백 수사, 중독이 심한 것 같습니다.”

“저도 요물의 독무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습니다. 보호막을 침투해 들어와 중독시킬 줄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그래도 바로 백초단(白草丹)을 복용했으니 반나절만 운기조식을 하면 독을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요이가 놀란 기색을 지우고 온화하게 말했다.

“막 단약 제련을 마쳐서 다행이지 수사께서 조금만 일찍 도착했으면 제때에 도와드리기 어려울 뻔했습니다.”

“그럼 제 운이 좋은 건가요?”

한립의 말에 백요이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백 선자는 어쩌다 화형기 요수를 둘이나 마주치게 된 것입니까?  북명도 인근에는 고계 요수들이 출몰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하자면 이야기가 깁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일단 출발하시지요. 가는 길에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돌연 백요이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주변에 다른 요물들이 있는 것입니까?  몇 마리나 있습니까?”

“몇 마리 정도가 아닙니다. 아마 이번에 저희 소극궁에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여인의 대답에 한립도 흠칫 놀랐지만 내색 하지 않았다.

“그리 말씀하시니 어서 귀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허나 수사가 극독에 중독이 되었으니 당장 출발하기는 어렵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백요이가 반갑게 도움을 받아들이자 둘은 다시 남색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빙하 협곡이 고요해졌다.

두 시진 후 푸른색, 은색 두 개의 빛줄기가 빙하 협곡 아래에서 솟아올라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다시 반나절이 지나고 새까만 먹구름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빙하 협곡 몇 리를 뒤덮었다.

잠시 후, 분노한 괴성이 먹구름 속에서 들려오며 검은 기운들이 요동치고 천둥과 벼락이 난무했지만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먹구름과 소리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며칠 후 소극궁에 돌아온 백요이는 한려 상인이 머무는 곳에 서 있었다.

“백 사매, 정말 제대로 본 것이 맞는가?  정말 그들이 손을 잡았다고?”

“청배창랑(靑背蒼狼)은 만요곡에서 만년시웅과 동급의 부곡주입니다. 제가 그런 자를 잘못 볼 리가요! 게다가 저를 쫓아와 죽이려던 요수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빙해 출신이었습니다.”

백요이도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만요곡과 빙해 요수들이 연합을 한 것이 확실하구나! 한 형, 이번에 백 사매를 구해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피곤하실 텐데 먼저 귀빈루(貴賓樓)로 돌아가 쉬시지요.”

한려 상인은 한립에게 온화한 얼굴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한립도 괜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에 담담히 몸을 일으켜 나가려했다.

“이틀 후 수사 두 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대진에서 유명한 분들이니 친분을 쌓아 두시면 좋을 겁니다.”

나가려는 한립에게 한려 상인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빛줄기로 변해 통로로 사라졌다.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한려 상인이 고개를 돌려 백요이를 바라보았다.

“사매, 전음부를 보내 소극궁에 남아 있는 장로들을 모아주게. 바로 수비를 배로 강화하고 말이야.”

“예, 대장로!”

백요이가 바로 손바닥을 뒤집어 전음부 한 뭉치를 꺼내들었다. 한립은 그대로 머물고 있던 누각으로 돌아와 2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돌아오는 길에 백요이는 그가 단약을 제련하는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는데 화형기 고계 요수들이 모여 있었고 놀랍게도 그 중에 빙해 출신과 내륙 출신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만요곡의 또 다른 부곡주인 청배창랑과 빙해의 유명한 흉수인 쌍두오교(雙頭烏蛟)였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염탐하기 전에 요수들에게 발각 당했고 그대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까 뒤를 쫓던 두 마리를 제외하곤 그녀를 추격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이 일에 대해 거듭 헤아려보았다.

한립의 예상과 달리 소극궁은 경비를 삼엄하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백요이는 다른 일을 맡았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그는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화신기 수사의 추격을 받거나 스스로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목숨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 진작 떠나버렸을 것이다.

물론 이미 한려 상인에게 화신기에 이르는 비술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정말 비술 전체가 어떻게 운용 되는지 정말 통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뜻밖에도 한려 상인이 그에게 넘겨준 비술은 일부에 불과해 직접 참가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야 이것을 알게 된 그는 약간 울적해졌다. 그밖에도 태양정화에 대한 실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훌쩍 떠나기에는 아쉬웠다.

그는 다시 장경각으로 가 남은 이틀의 시간을 사용했지만 아무리 뒤져보아도 태양정화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쉽게 태양정화를 찾아낸다면 놀랐을 것이다.

이후 그는 얌전히 귀빈루에 머물며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마치 소극궁이 자신의 동굴 거처인 것처럼 수련에만 매진한 것이다.

보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소극궁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이것이 폭풍 전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날 드디어 한립이 수련을 중단했다. 누군가 그를 방문했는데 원영 중기 최고봉의 수행을 지닌 여인이었다.

“백 선자와 사촌 지간이시라 들었습니다.”

한립은 뒷짐을 지고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예, 저는 내궁장로 백몽형이라 합니다. 내부에서 선발한 극한의 화염을 다루는 수사 중 하나이지요.”

“아, 한려 수사에게 들었습니다. 백 수사께서 갑자기 저를 찾아 주신 연유가 무엇인지요?”

그녀의 소개에 한립이 입 꼬리를 꿈틀하며 물었다.

무척 아름다웠지만 마치 얼음 조각처럼 굳은 얼굴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마 수련한 공법과 관련된 특성일 테니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별 다른 일은 아닙니다. 한 형이 신통이 대단해 원영 후기 대수사와 맞먹을 정도고 자라극화라는 묘한 화염을 지니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저의 풍리빙염과 수사의 극한의 화염을 겨뤄보아 가르침을 얻고 싶어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니 손가락 끝에 한기가 번뜩이며 하얀 빙염이 나타났다. 빙염은 희미한 푸른 연기가 감싸고 있어 위력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비슷한 극한의 화염을 다루는 한립은 은연중에 하얀 화염의 위력을 느끼고 있었다.

“좋습니다. 저도 귀 궁의 삼대 화염에 대해 소문을 들어왔으니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겨뤄보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립이 주위를 돌아보며 웃었다.

“안 됩니까?  저는 그저 화염의 위력을 확인하려는 것이지 수사와 싸우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훅!

백몽형의 얼굴에 드물게 담담한 미소가 어렸고 즉시 입에서 기운을 뿜어내 손끝의 하얀 화염을 날려 보냈다.

하얀 빙염은 순식간에 몇 배로 불어나 허공을 선회한 후 하얀 뱀으로 변해 한립을 물어뜯으려 했다. 미간을 좁힌 그가 소매를 사방으로 펄럭이니 다양한 색의 진법 깃발이 날아가 사라졌다.

붉은 보호막이 주위를 감싸며 금제를 형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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