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17화 (374/2,000)

# 617

617화. 북명도(北冥島)

다시 주술을 읊는 소리가 이어지고 그의 입에서 푸른 기운이 다섯 개로 나뉘어 분출되었다. 푸른 기운과 주술 속에서 푸른 기운들이 난쟁이로 변했는데 얼굴을 제외하면 손과 발을 모두 갖춘 모양새였다.

한립이 푸른 난쟁이 모습을 보고 주술을 멈추었고 허공을 쥐어 밀실 지하에서 노란 땅의 기운을 뽑아 난쟁이의 체내에 융합시켜주었다.

“가라.”

푸른 난쟁이 다섯이 동시에 빛을 번뜩이더니 각각 다섯 개의 해골 속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

여기까지 마친 한립은 쉬지 않고 저물대에서 은색 고리 한 묶음을 꺼내 들었다. 마도 경전에 적힌 비술로 제련해낸 마물을 구속하는 법기였는데, 남은 강은(罡銀)을 이용해 만들어 보통 튼튼한 것이 아니었다.

쉭!

손을 젓자 스무 개가 넘은 고리들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 해골들의 목과 사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한립도 한시름 놓았다.

손을 젓자 금색 거품이 번뜩이며 급격히 작아졌고 저절로 그의 손바닥 위로 돌아왔다.

다섯 백골과 해골 머리들은 그대로 허공에 남아 회색빛을 번뜩였는데 그 위에 붙은 부적들이 하나씩 마염에 의해 사라져 갔다. 그러는 동안 금색 비검 다섯 자루도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자유를 되찾은 해골 머리들이 즉시 회백색 기운으로 변해 백골 속으로 흡수되었다.

한립이 속으로 마도 경전에서 익힌 법결을 읊으며 의식을 움직였다. 그러자 다섯 구의 백골들이 동시에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를 향해 날아왔는데 바람에 나부끼듯 가벼운 모습이었다.

그의 의식이 시키는 대로 백골들이 거리를 두고 멈추었지만 두 눈에 초록빛을 번뜩이는 것이 한립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어두워진 얼굴로 한립이 갑자기 주술을 외쳤다.

각각의 백골 위에 은색 고리 다섯 개가 나타나 푸른 화염을 불태웠다. 타는 냄새가 나자 다섯 마물은 뒷걸음질 치며 날카로운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주술 소리가 멎자 푸른 화염은 즉시 사라졌지만 마물들은 물러난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한립은 내심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음가는대로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으니 그의 명령에 따라 적을 공격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이어서 그가 통제 법결을 일으키자 오자동심마 백골들은 수축해 회백색 기운들로 변화했다. 그리고 검은 병 속으로 다섯 덩이의 회백색 기운들이 얌전히 들어갔다.

한립은 마지막 회백색 기운까지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뚜껑을 닫은 후에 금제 부적들을 붙여 봉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저물대에 보관할 수 있었다.

이제 일정한 간격으로 피를 먹이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한립처럼 원기를 보충할 단약이 많은 수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수행이 높아도 장기간 마물에게 자신의 피를 먹여 배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인간에게 피란 원기의 근원이었고 많은 양을 잃고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말이다. 마물을 길들이는데 성공한 한립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직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불 속성의 거대 솥에서 얻은 태음진화를 연화시켜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만 자락극화와 태음진화를 융합하는 일은 단시간 내로 할 수 없어 지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설련산이 하얀 안개로 휩싸인 후 십여 년이 흘렀다.

다들 신통이 대단한 고인이 수련 중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함부로 침입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립이 머물기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인근 세력들도 고인이 그저 조용히 수련할 곳을 찾아 왔을 뿐 다른 일에 관여하지 않자 크게 안심했고, 문하의 수사들에게 명해 이곳을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각자의 삶을 영위해나갔다.

이 날, 설련산 주변에 돌연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돌풍이 불어대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다른 색깔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날씨는 상군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었기에 저계 수사들은 밖으로 나서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설련산에서 푸른 빛줄기가 빠져나와 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반 시진 후 푸른 빛줄기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역을 벗어나 수만 리 밖의 산맥 위를 날고 있었다. 빛이 가시고 푸른 장포의 청년이 나타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평범한 생김새를 지닌 한립이었다.

수십 년의 폐관 수련을 통해 드디어 보물들을 연화시켰고 태음진화도 체내에 흡수해 기초적인 연화에는 성공한 상태였다.

이제는 원영 후기 수사들에게 포위를 당하거나 원살 성조의 분신과 같은 강적을 만나는 일만 없다면 인계에서는 목숨을 잃을 걱정이 없었다.

오자동심마와 인간형 꼭두각시의 협조에 곤오산을 다녀온 후 수행과 신통이 크게 늘어 원영 후기 수사 여럿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곤오산에서 벌어졌던 일도 차츰 잊힐 때라 눈보라가 치는 틈을 타 설련산을 빠져나와 북명도로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장장 보름이 지나서야 주변 수사들은 설련산의 하얀 안개가 흩어지는 것을 발견했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주변 세력들은 영산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일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북명빙도(北冥氷島)는 사실 대진 내륙에 붙어있는 땅덩이였다.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쪽이 내륙과 통해있어 상군과도 주(州)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다는 말은 삼면이 얼음으로 둘러싸였다는 말과 같았다. 그곳은 기온이 너무 낮아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며 벌써 얼기 시작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런 기후 속에 북명도를 둘러싼 바다는 빙하로 변한지 오래였고 광활한 빙산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북명도 자체는 백만 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섬 북부에 거대한 얼음 성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북쪽 지역의 제일 종문이라 불리는 북야소극궁(北夜小極宮)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종문의 세력으로는 대진의 정마 십종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북명도가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해 대진 수도계에서 잘 인정해 주지 않았다. 황무지에 있는 종문이라 비웃으며 대진 종문에서 빼놓고는 하였다.

그러나 대진 북부 지역에서 북야소극궁의 위명은 태일문과 천마종 이상이었고 누구에게 물어도 이곳 제일의 종문이라 대답할 것이다.

북부 지역에서는 북야소극궁을 북선궁(北仙宮)이라 부르며 추앙했고 문하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산수와 저계 수사들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북야소극궁 제자들도 내궁과 외궁 제자로 나뉘었는데, 내궁 제자들은 북명도에 위치한 거대 수도세가들 출신이었고 외궁 제자들은 북명도 밖 작은 가문이나 산수 중에서 선발된 자들이었다.

물론 자질이 엄청나거나 큰 공을 세우면 외궁 제자도 내궁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만일 자질이 빼어나지 않음에도 북야소극궁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걸어서 십만 리에 이르는 광활한 극한의 땅을 지나야했다.

북야소극궁 십만 리 내로 금제가 걸려 있어 저계 수사들은 법기를 이용해 비행할 수 없었고 그저 수행과 신통에 의지해 추위를 참으며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북야소극궁에 도착한 이들은 외궁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수행 덕분이든 아니면 법기나 단약 때문이든 십만 리의 극한의 땅을 지날 정도면 분명 쓰임이 있는 자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적잖은 수사들이 도전하여 얼어 죽었지만 앞으로의 전도를 위해 매년 많은 저계 수사들이 이 길을 걸어갔다.

이 날도 북야소극궁 수 만 리 밖의 어딘가를 열댓 명의 수사들이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피풍의를 걸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몸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숨쉬기도 힘든 눈보라를 뚫고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극악한 기후 속에서 거의 보름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벌써 안색이 창백하고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쉬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에 든 영석으로 법력을 회복하며 버틸 뿐, 이런 곳에서 어디 쉴 때가 있겠는가?

그중 특히 안색이 좋지 않던 한 명이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잠시 후 그가 견디지 못하고 품에서 약병을 꺼내 새빨간 단약을 삼켰다. 그러자 창백했던 얼굴에 바로 약간의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화양단이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먹어대다가는 소극궁까지 못 버팁니다. 앞으로 지나야할 우박 지역은 훨씬 더 지나기 어렵단 말입니다.”

노란 보호막으로 온 몸을 가리고 앞서 걸어가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곡 형, 저는 아직 한 병 더 남아 있으니 괜찮습니다. 반드시 이곳을 통과하고 말 테고요.”

단약을 먹던 수사는 스무 살 초반의 청년으로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행입니다. 저는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와는 함께 가고 싶지 않으니까요.”

중년인이 청년의 대답에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방향을 아는 것처럼 걸음걸이가 거침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 긴장하며 그 뒤를 쫓았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못해 중년인이 먼저 걸음을 멈추었고 놀란 눈빛으로 하늘 위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이들도 서둘러 고개를 들더니 하얀 눈보라 속에서 푸른 그림자가 허공에 떠 있는것을 보았다. 기이한 것은 그 자의 3, 4장 내로는 눈보라가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듯 전혀 들이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년인도 그것 때문에 허공의 푸른빛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놀라 안색이 달라졌다. 이곳은 비행 금지 금제가 걸려있는 곳이라 결단기 수사도 저렇게 자유롭게 떠있을 수는 없었다.

‘설마 원영기 수사!’

다들 눈치를 보며 불안해했다.

“북야소극궁에 입문하고자 찾아가는 중이더냐?”

푸른빛에 얼굴이 가려진 누군가가 돌연 입을 열었다.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그다지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중년인은 수행은 높지 않았지만 고계 수사들을 마주친 경험이 있었기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깊이 예를 올렸다.

“저는 곡천계라 하옵고, 말씀대로 시험에 참가하고자 소극궁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저희에게 내리실 분부라도 있으신지요?”

중년인은 서둘러 대답을 하면서도 아주 공손한 얼굴을 했다.

“네가 그래도 눈치가 있구나. 별 다른 것은 아니고 이곳이 이상해서 말이다. 나조차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데 너희는 어찌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냐?  방향을 인도해 주는 법기 같은 것이 있는 것이더냐?”

푸른빛의 인영은 덤덤히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중년인의 안색이 한결 편해  지며 지체 없이 대답했다.

“선배님께서는 북명도를 처음 찾아오셨나 봅니다. 북명도의 다른 구역은 몰라도 이곳은 소극궁의 금단대진(禁斷大陣)이 펼쳐진 지역입니다. 수도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보 신루석(蜃樓石)을 진법의 눈으로 하여 펼쳐진 금제라서 수사들의 의식으로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지요. 만일 의식을 퍼트려 소극궁에 가고자 하신다면 영영 가실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북명도 입구에서 정원반(定元盤)이라는 것을 구해 길을 잃지 않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원반이라!”

“예, 정원반은 진귀한 법기는 아니지만 신분이 명확하고 그 자의 신분을 보증해 줄 수사가 있어야 소극궁이 관할하는 상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매년 딱 30개만 판매하는데 1년이 지나면 효력을 상실하게 되지요. 저는 만일을 대비해 2개를 구해 두었으니 이것은 선배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중년인이 돌연 소매를 털어 노란색 원반을 꺼내 두 손을 받쳐 들었다. 푸른 인영이 턱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흘리고는 주저 없이 허공을 쥐었다. 노란 빛이 번뜩이더니 정원반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푸른빛 속의 수사는 당연히 보름 동안 북명빙도를 향해 날아온 한립이었다.

자신의 능력이면 비행 금지 구역 쯤은 상관없다 여겼는데 일단 이 구역에 들어오자 의식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는 와중에 다행히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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