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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16화 (373/2,000)
  • # 616

    616화. 밀실의 보물들

    원영은 활기찬 기색으로 나타나 밀실을 반 시진 넘게 돌아다닌 후에야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몸속으로 돌아갔다.

    두 눈을 감고 있던 한립이 만족스럽게 눈을 떴다.

    듣기로는 화신 후기에 이르러서야 원영이 완전히 굳어 몸을 떠나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화신 후기에 영계로 승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배영단으로 연화되고 가장 놀라운 것은 백여 년만 수련하면 원영 중기 최고봉 수준으로 법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비록 그의 법력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아직 원영 중기 최고봉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 멀었는데 배영단 덕분에 고비 없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한립이 고대해 마지않던 일이었다.

    그가 원영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 체내의 원기를 가라앉히고 입을 벌려 금빛을 두 개 뿜어냈다. 허공을 선회해 나타난 금색 비검들은 빛을 잃고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고마가 가져가 일정기간 마화를 시키려 했던 청죽봉운검이었다. 아직 영성은 남아 있어 대경검진을 이룰 수는 있겠지만 위력이 이전만 못할 것이 분명했다.

    따로 시간을 내어 두 비검을 다시 제련할 생각이었다. 그가 입을 벌려 푸른 영화를 분출하자 순식간에 금빛 비검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푸른 화염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소매를 털어내니 작은 옥함들이 나와 저절로 뚜껑이 열렸다.

    일단 소량의 가루가 불길로 들어가 두 비검이 융합되기 시작했다. 한립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연달아 법결을 날려 제련 과정을 통제했다.

    비검 제련은 이렇게 3일 밤낮으로 진행되었다.

    그가 얼굴이 창백해져 피를 내뱉자 두 갈래로 갈라져 비검 속으로 사라지며 제련이 끝이 났다. 이제 청죽봉운검은 다시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며 마기의 흔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두 비검을 삼킨 한립은 바로 가부좌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법력이 회복되었다.

    충만한 법력을 느끼고 한립이 생각에 잠겼다가, 손에서 녹색 빛을 번뜩이며 반 척 길이의 비취색 나무 자를 꺼내들었다.

    그는 손끝으로 자 표면의 고풍스러운 문양을 어루만져 보았다. 그것은 바로 통천령보 팔령척이었다.

    진마탑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보통의 영력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신묘하다고는 생각했었다.

    물론 그때는 상황이 긴박하여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한립이 팔령척을 들고 다섯 손가락에서 푸른 기운을 불어 넣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10분의 1의 영력을 주입하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한립은 일단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돌연 그가 한 손가락을 펼쳐 들었다.

    손끝에서 일곱 빛깔의 빛이 번뜩였는데 바로 금강조를 통해 분출한 불광(佛光)이었다. 불광이 번뜩이며 나무 자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던 팔령척이 갑자기 푸른빛을 발산하며 허공에 비취색 글자들을 적어 내려갔다. 마치 어떤 구결을 형상화하는 것 같았다.

    한립은 흠칫 놀라 즉시 정신을 집중했다.

    “과연!”

    잠시 살폈을 뿐인데 한숨을 푹 쉬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눈치였다. 팔령척은 불가의 보물이었으니 불광으로 발동할 수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불광을 흡수하고 만들어낸 비취색 글귀는 팔령척의 통보결이었다.

    한립이 수련한 공법은 줄곧 도문 공법 위주였고 몇몇 마도의 비술을 익혀오곤 했다. 불문 공법은 명왕결이 유일했다.

    명왕결이 불문 공법 중의 최상급이긴 했으나 육체 단련 위주였고 수련하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한립도 겨우 제 2성을 익혔을 뿐인데 불광을 만들어낼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금강조의 불광이 풍족한 덕에 팔령척의 통보결 중 제 1성을 익히기에는 충분할 듯했다.

    한립은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팔령척이 신통 중 극히 일부만 사용할 수 있더라도 통천령보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가 나무 자에 불광을 더 주입하자 비취색 글귀가 더욱 선명해졌고 정신을 집중해 외우기 시작했다.

    다 외운 후에는 소매를 저어 푸른 기운으로 팔령척을 회수했고 손바닥을 뒤집어 이번에는 반 토막이 난 흑풍기를 꺼냈다.

    깃대가 대부분 잘려나가고 깃발도 얼마 남지 않아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검은빛을 번뜩이며 살아 있는 것이 보물의 영성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한립은 흑풍기를 복구하려는 것보다 공간 계열 보물에 흥미가 있어 살펴보려고 꺼낸 것이다.

    공간 계열 보물은 통천령보가 아니라 일반적인 보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타깝게도 통천령보 급의 보물은 그가 살펴봐도 깨달음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며칠간 흑풍기의 잔해를 들고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립은 아쉬운 마음으로 깃발을 회수하고 이번에는 화령전에서 얻은 거대한 솥을 꺼내 관찰해 보았다.

    거대 솥은 우연히 영성을 얻게 되었지만 보기 드문 최상급 고보였고 그 안에서 만들어내는 수천 마리의 불 까마귀 떼는 위력이 대단했다.

    물론 이 솥에서 얻어낸 이름 모를 투명한 재료나 열댓 개의 불기둥 그리고 음양굴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세 개의 검은 수정은 다들 재료일 뿐이라 지금은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곤오전에서 얻은 두루마리와 건 노마의 저물대에서 얻은 황토색 항마장은 전부 곤오삼노의 보물이었으니 그만큼 위력도 뛰어날 것이다.

    그런데 기대하던 핏빛 칼날은 실망이었다.

    핏빛 칼날은 확실히 마수찬으로 제련한 것으로 지하 경매회에서 매입해간 마수찬 두 개 중 하나를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영 수사들의 피와 살 그리고 혼백을 잡아먹고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던 핏빛 칼날이 지금은 그저 평범한 보물로 변하고 말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고민해 본 결과 한립은 드디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룡인의 모조품인 핏빛 칼날은 수사들을 잡아먹고 위력이 급증했지만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모조품은 모조품인지라 진정한 마룡인과 달리 이런 단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크게 실망한 한립은 그것을 챙겨 넣었다.

    고개를 숙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그가 입을 벌려 금색 거품을 뿜어냈다. 금강사리로 만들어낸 금강조였는데 지금은 그 안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구슬을 다섯 개나 품고 있었다.

    한립은 거품 속의 구슬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 다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금강조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금색 거품이 진동하며 커져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다섯 개의 금색 구슬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빛 뇌전 속으로 부적에 둘러싸인 백골 다섯 개가 드러났다. 그것은 음라종 대장로 건 노마가 수련하던 오자동심마의 화신들이었다.

    백골의 가슴에는 새까만 해골머리가 있었고 이것들 또한 부적에 둘러싸여 꼼짝을 하지 못했다.

    “오자동심마는 각각이 원영 초기의 수행을 지녔고 다섯 마물들이 협공에 능하니 원영 후기 수사를 상대해도 크게 밀리지 않겠지. 만일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허나 포악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고 이미 주인을 먹어치우려 한 적이 있어 쉽지 않겠어.”

    한립이 탄식하며 중얼거리다가 저물대를 스쳐 검은 옥간을 꺼내들었다. 그는 뜻밖에도 금강조 속에 다섯 마물들을 두고 옥간 속으로 의식을 불어넣었다.

    벽사신뢰가 아직 흩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금강조의 불광 안에 갇혀 있다 보니 흉악한 본성이 많이 씻겨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식을 회수한 한립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검은 옥간은 건 노마의 저물대에서 찾아낸 이름 없는 마도 경전의 일부였는데 누락되어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혀 있는 몇몇 마공, 비술이 상당히 강력했고 오자동심마의 수련 방법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마도 경전에 따르면 오자동심마를 수련하려면 반드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원영기 수사들의 시체 다섯 구가 필요했다. 원영이 사라지고 원기가 가득한 시체라면 더욱 좋은 재료였다.

    다섯 구의 시체는 각종 재료를 갖고 한 동안 제련한 다음 음기가 가득한 곳에 매장하고, 매월 음한한 속성의 공법을 수련한 수사를 한 명씩 죽여 그 피와 살, 그리고 영혼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백여 년이 지나야 오자동심마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다시 특수한 비술을 이용해 다섯 구의 시체를 수십 년간 제련해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낸 오자동심마는 겨우 결단기 수행을 지녔을 뿐이라 그 후에 수행을 늘리는 것은 제련하는 이의 피땀 어린 노력에 달려 있었다.

    원래는 결단 후기에 이르면 더 이상 수행에 정진이 없어야 했는데, 건 노마가 무슨 수를 썼는지 이것들이 원영 초기의 수행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다섯 마귀들에게 반서를 당해 죽음에 이르지 않았던가. 만일 결단기 수행의 마물이었다면 결코 건 노마가 통제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을 한립이 쓸 수는 없었다. 다만 마도 경전에 적힌 다른 통제 비술은 쓸 만했다.

    강제로 다섯 마물의 몸에 특수한 금제를 심고 자신의 피를 주어 기른 다음 일종의 특수한 법결을 이용하면 대충 마물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건 노마처럼 다섯 마물을 분신으로 활용해 언제든 원영을 옮길 수 있는 다섯 개의 육체로 만들 수 없다. 게다가 반서를 당할 가능성도 몇 배로 늘어서 수행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계속 피를 주어 배양할 수 없으면 바로 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이 유일하게 좋은 점은 다섯 마물의 혼백과 자신의 원영을 같이 제련할 필요가 없어 갑자기 돌변해서 공격한다면 피하면 그만이었다. 위험이 따르기는 했지만 다섯 마귀를 길들여 얻게 되는 이득이 매우 컸다.

    고민을 하던 한립이 결국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뱉어냈다.

    그리고 연달아 법결들을 던지니 핏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핏덩이가 이제 금빛 광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립은 피를 크게 쏟아 안색이 하얗게 질렸지만 기운을 정돈하기는커녕 바로 한 손을 저었다. 푸른빛이 반짝이고 핏덩이는 엄지손가락만 한 핏빛 구슬로 변했다.

    이후 그가 소매를 털자 핏빛 구슬이 스스로 다섯 마귀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의식을 움직이자 핏빛 구슬은 아무렇지 않게 금빛 거품을 통과했다.

    겨우 숨만 붙어 골골대던 검은 해골들이 구슬이 가까이 가자 그것을 쳐다보며 눈을 번뜩였다.

    마귀의 혼백이 변한 해골들은 무언가에 자극을 받은 듯 돌연 백골의 가슴 부위를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백골에 빼곡하게 붙은 각종 부적에 부딪쳐 튕겨나가자 그것들은 더욱 난폭하고 흉악해졌다.

    해골들이 이를 갈며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립이 차가운 눈길로 손을 들어 금빛 검 다섯 자루를 쏘아 보냈고 작은 비검들은 순식간에 검은 해골을 허공에 못 박듯 고정시켜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해골들은 그럼에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빛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수결을 맺자 천둥소리가 울리고 다섯 비검에서 벽사신뢰가 폭발했다. 가느다란 금빛이 번뜩였을 뿐인데 다섯 해골들이 내는 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난폭한 기세가 상당히 꺾인 듯 했다. 그제야 한립이 만족하며 핏빛 구슬들을 하나씩 해골 머리의 입 속으로 날려 보냈다.

    핏빛 구슬을 먹은 해골들의 눈에서 녹색빛이 넘실거렸고 즉시 적잖은 원기를 회복했다.

    한립은 두 눈을 감고 수결을 맺으며 천천히 의식을 방출했다. 자신의 피의 힘을 통해 다섯 마귀들과 의식으로 소통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다섯 마귀는 순식간에 유순하게 굴며 폭력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에 한립이 저물대를 뒤적여 침 형태의 법기 다섯 개를 꺼내 손을 뻗자 은색 빛줄기 다섯 개가 검은 해골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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