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09화 (366/2,000)
  • # 609

    609화. 소용돌이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삼두육비의 거대한 마물의 비리비리한 모습을 살피다가 다시 돌기둥과 제단의 마기를 살펴보았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가 두 손을 부딪쳤다가 열손가락을 펼쳤다. 그러자 금빛이 반짝이며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열댓 개의 금빛 뇌전이 마기로 만들어진 기둥으로 날아갔다.

    꽈광! 콰르릉!

    뇌전이 닿자마자 검은 기운으로 재생된 기둥이 와르르 무너졌다. 처음부터 환영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한립뿐 아니라 다른 수사들도 그것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그와 동시에 제단 속에서 은발여인의 얼음장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원살 성조! 과연 이곳에 있었군요!”

    “본 성조의 천륜화마대법이 어떤가요?  그 자의 자질이 나쁘지 않아 비술을 이용해 봉인 속에 숨겨둔 보람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마기를 주입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진정한 가륜 전마(戰魔)의 형상을 하지는 못했지만요. 그래도 제 갑옷을 입고 제 화신들과 융합하니 화신기 수사 정도의 실력은 되었습니다. 마기만 충분했다면 이곳에 모인 자들 쯤이야 단번에 죽였을 텐데요.”

    놀랍게도 제단 속에서 검은 갑옷 여인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삼두육비의 마물을 상대하던 칠묘 진인, 규령 등의 수사들은 아연실색했다.

    잠시 후 마물의 몸에서 검은 빛이 크게 번지고 세 머리가 원형을 드러냈다.

    중간은 머리에 뿔이 달린 사내의 얼굴로 변했는데 눈에서 자홍빛을 번뜩이는 대두 괴인이었고 나머지 두 머리는 매의 날개를 달고 있던 고마의 화신들의 얼굴이었다. 셋이 기묘하게 하나의 몸을 쓰며 융합되었던 것이다.

    경악스러운 몰골로 나타난 엽 가 대두괴인을 보고 경험이 많은 수사들조차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때 진면목을 드러낸 마물의 중간 머리가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더니 입고 있던 검은 갑옷이 커지며 전신을 뒤덮었다.

    세 머리는 검은 갑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동시에 검은 장도, 창, 검 두 자가 각각 여섯 개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때 멀리 마기 속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려오며 제단이 진동했다.

    “원살 성조 뭐 하려는 것입니까!”

    은발 여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십니까?  이 봉인을 부tu야만 본 성조의 임무를 완수 할 수 있습니다. 영계의 간섭이 없는 한 진마기를 다시 봉인할 자가 인계에 있을 리 없지요. 이곳도 고마계의 일부분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입니다!”

    검은 갑옷 여인의 조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제단 인근의 마기가 휘몰아쳐 빨려 들어갔다.

    거의 한 호흡 만에 마기가 사라지고 제단 위에 서 있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갑옷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에 검은 구슬을 들고 있었다.

    구슬은 검은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속에 오색의 영기의 빛이 번뜩였다. 그 모습을 보니 영서공작의 몸에서 꺼낸 오색빛 구슬이 생각났다.

    흑의 여인은 전신에게 귀이한 마기를 줄줄 뿜어내며 구슬을 이용해 주술을 외웠다. 그러자 몸에서 그림자가 뿜어 나왔는데 고마 형상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림자는 여인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며 한 손으로 허공을 바치고 다른 손으로는 수결을 맺었다.

    이때 령롱이 제단 옆에서 나타나 허공을 쳐다보더니 분노한 기색이 다분했다. 한립이 의아한 마음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허공에 팔령척이 흑풍기를 상대로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검은 구렁이로 변한 통천령보가 검은 기운의 거대한 바람구슬로 변해 있었고 거의 웬만한 누각만큼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났는데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거대한 연꽃에서 흘러내린 은색 주술이 검은 구슬 표면에 닿아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두 구슬이 각기 다른 곳에 나타나자 한립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흑의 여인이 들고 있는 검은 구슬이나 허공의 거대한 바람 구슬이나 품고 있는 기운이 엄청났던 것이다.

    한립은 순식간에 결정을 내리고 곁에 있던 꼭두각시를 이용해 거대한 바람 구슬을 목표로 검은 빛을 날리게 했다.

    꼭두각시가 날린 것은 마수찬으로 제련한 비도였는데 비도의 속도는 한립이 지니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빨랐다.

    비도가 번뜩이며 날아들자 바람구슬이 살아나기라도 한 듯 소용돌이들이 정신없이 요동치더니 쿠르릉하며 구슬 표면이 울룩불룩 난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엄청난 것들이 터져 나올 기세였다.

    그 모습에 흑의 여인의 웃음소리가 멎었고 은발 여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말도 안 돼. 겨우 비도 따위로 흑풍기를 교란해?”

    흑의 여인이 무슨 말을 하든 머리 위의 바람 구슬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녀가 황급히 수결을 맺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구슬을 가리켜 회색 법결을 던져 넣었다.

    촤륵.

    구슬이 몸을 떨며 안에서 검은 빛기둥을 방출해 바람 구슬로 들어갔다. 그러자 난리가 났던 거대 구슬이 안정을 되찾았다.

    한립이 안색을 굳히자 인간형 꼭두각시가 법결을 이용해 비도를 북돋았고 바람 구슬 속의 마수찬 비도가 몸을 부풀리며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안정을 찾아가던 바람구슬이 울룩불룩 불안정하게 변화하고 말았다.

    “죽고 싶으냐?”

    흑의 여인이 화가 나서 허공을 쥐자 거대한 영기의 압력이 한립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흠칫 놀란 한립이 몸을 피하려는데 제단 곁에 있던 령롱이 먼저 움직였다.

    한립 쪽으로 손짓을 한 것이다.

    쾅!

    검은 마수 발톱과 우윳빛 거대 손이 충돌해서 빛이 튕겨나갔고 츠츠츳 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내가 있는 한 저 자를 죽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겁니다.”

    은발 여인이 실소하며 흑의 여인을 응시했다. 흑의 여인의 얼굴이 가라앉았으나 무어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육체도 없는 신념체에 불과한데다 부상을 입고 원기가 크게 상했을 테지만 그래도 단번에 죽이기는 어려운 상대였다.

    “조금 더 기다리려 했으나 이제 안 되겠군요.”

    흑의 여인이 통제를 잃어가는 바람 구슬을 보며 무어라 중얼거리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령롱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은발을 휘날리자 수많은 은색 실들이 바람구슬 근처의 허공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은색 실들이 닿기도 전에 검은 기운이 불쑥 나타나 응집하더니 머리 둘 달린 늑대의 모습을 갖추었다.

    늑대는 만연한 은색 실들을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예상 밖의 공격이었지만 가볍게 몸을 털어 등의 검은 털들을 화살처럼 쏘아 올렸다.

    허공에서 부딪친 은색실과 검은 털 사이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듯한 금속성 폭음이 연발했고, 검은 늑대가 그 틈을 타 바람 구슬 속으로 사라졌다.

    꽝!

    바람구슬이 요동을 치더니 소용돌이가 내던 굉음이 멎고 고요해졌다.

    그러나 한립은 꼭두각시를 통해 조종하던 검은 칼날이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는 것을 감지했다.

    한립이 놀라 의식을 움직이니 인간형 꼭두각시가 영력을 쏟아 부어 마수찬 비도를 강제로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바람 구슬 속에서 누군가 코웃음을 치더니 검은 비도와의 의식 연결을 끊어 버렸다.

    큰일이었다!

    한립은 즉시 두 손을 마주쳐 두 줄기의 굵은 금빛 뇌전을 방출하자 동시에 주위를 떠도는 수많은 비검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금빛으로 번뜩였다.

    그러자 금빛들이 응결해 스무 장 가까이 되는 금빛 교룡으로 변화했다.

    풍뢰시를 사용할 마지막 벽사신뢰를 제외하고 청죽봉운검의 모든 뇌전을 전부 발동한 것이다.

    한립은 곧바로 뇌전 교룡이 만들어지자 아래쪽의 작은 구슬을 향해 날아가게 했다. 그것은 거대한 바람 구슬과 달리 정순한 마기의 결정체라 벽사신뢰의 공격을 받으면 분명 흩어지고 말 것이다.

    은발 여인이 은색 실을 조용해 검은 빛과 교전하다가 뇌전 교룡을 보고 경탄했다.

    은월의 기억을 통해 그가 벽사신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부다 끌어내 공격한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뇌전 교룡의 위력이 그만큼 엄청났다.

    바람 구슬 속의 머리 둘 달린 늑대도 반투명한 무언가를 이용해 마수찬 비도를 제압하고 있다가 놀라 두 머리에서 각각 핏빛의 빛기둥을 분출했다.

    뇌전 교룡과 핏빛 기둥이 충돌해 뇌전이 튀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양의 벽사신뢰를 막아냈다.

    “감히 내 몸으로!”

    령롱이 핏빛 빛기둥을 보고는 눈썹이 끝없이 올라갔다.

    핏빛 빛기둥은 말 그대로 은색 늑대의 육체에서 정혈을 뽑아내 분출한 것이었으니 육체의 원주인인 은발 여인이 대노할 만 했다.

    “어차피 곧 사라질 것인데 육체에 연연해서 무엇 합니까.”

    바람 구슬 속에서 흑의 여인이 냉소했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기력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 말에 령롱은 분개하기보다 다시 냉정을 찾았다.

    “그리 자만할 것 없습니다. 겨우 화신기 수준으로 통천령보인 흑풍기를 폭발시키겠다니! 게다가 폭발에 성공해도 봉인을 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을 테지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둘 다 곧 알게 될 겁니다!”

    흑의 여인은 아래쪽의 구슬에서 모든 마기를 뿜어내 바람구슬에 흡수시키고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바람 구슬은 눈을 찌를 듯한 검은빛을 내뿜으며 날카롭게 울어댔고 내부의 소용돌이 들이 기묘하게 하나로 융합되더니 열댓 장 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모했다.

    머리 둘 달린 거대 늑대의 육체가 소용돌이 중심부에 나타나서 입에서 검은 빛에 휩싸인 작은 깃발을 뱉어냈다. 검은 깃발은 통천령보인 흑풍기였다.

    소용돌이의 형태가 변화하며 엄청난 영기의 압력이 밖으로 터져 나와 오색빛으로 흩날렸다. 오색빛이 흩어졌다가 소용돌이 중앙으로 스며들자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졌다.

    팔령척으로 만들어진 은색 연꽃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빛을 거두고 녹색 나무 자로 돌아갔다. 이후 웅 하고 울더니 여덟 마리의 영수의 환영이 둘러싼 와중에 위쪽으로 뻗어나가 사라졌다.

    령롱의 표정이 달라져서 수결을 맺으며 입에서 원반을 다시 불러냈다.

    그녀가 역성반을 가리키자 원반이 빙글빙글 돌며 몇 척 크기로 켜졌다.

    은발 여인이 원반에 손을 대고 등 뒤로 수정빛이 터져 나오자 역성반의 금색 별빛도 더욱 성대해져서 수많은 별자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소용돌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며 마치 종이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용돌이와 가까울수록 왜곡은 더욱 심하고 분명했다.

    한립이 급히 마른 숨을 들이마셨다.

    공간균열의 위용을 맛본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왜곡된 공간의 범위를 벗어나고자 튀어나갔고 인간형 꼭두각시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입을 달싹거리며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있지 않았다.

    대두 괴인이 변한 삼두육비의 마물과 격렬히 싸우던 규령과 임은병이 동시에 표정이 굳어서는 즉시 뒤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만년시웅과 칠묘 진인도 검은 늑대와 령롱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소용돌이의 괴이한 모습에 두 여인이 움직이자마자 역시 핏빛과 푸른빛줄기로 변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싸우던 수사들이 전부 달아나니 삼두육비의 마물만이 멍하게 있다가 즉시 신형을 날려 칠묘 진인의 둔광을 막아섰다.

    수중의 여섯 개 법기를 마구 휘두르며 칠묘 진인을 공격한 것이다. 칠묘 진인은 놀라 일곱 개의 보물을 전부 발동해 엄청난 공격으로 방어를 했고 그 틈에 다시 달아났다.

    대두 괴인은 마기를 주입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인지 인간 수사일 때보다 지능이 상당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중년 문사 한 명만을 노리고 기운을 아낌없이 쓰며 순간이동을 해댔다.

    덕분에 칠묘 진인만이 마물에 막혀 제단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했다.

    칠묘 진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