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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08화 (365/2,000)
  • # 608

    608화. 대대적인 전투

    원반은 수정들이 날아오자 빙글 돌며 울어댔고 강한 흡입력으로 고마의 의식 결정체들이 방향을 틀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별안간 위쪽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었다.

    “역성반(逆星盤)!”

    고마 형상이 그것을 보고 놀란 기색이 확연해졌다.

    멀리서 육체만 남은 화천기를 지키고 있던 만년시웅 역시 역성반이라는 소리를 듣고 경악해 눈을 부릅떴다.

    현청자와 칠묘 진인 등은 은발 여인이 나타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가 역성반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탐욕스런 눈길을 보냈다.

    “넌 요족 칠대 요왕과 무슨 관계더냐! 역성반은 칠대 요왕과 인간 수사 중 삼황을 제외하면 아무도 지닐 수 없는 것이거늘!”

    고마 형상이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일갈했다.

    “내가 알려줄 거라 보십니까?”

    은발 여인은 원반을 가리키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요족이니 인류 삼황과 무슨 관련이 있을 리 없고. 칠대 요왕이 연합해  고마계(古魔界)로 쳐들어와 죽인 성족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들과 관련된 자라면 오소 노조의 체면이고 뭐고 너를 죽이겠다!”

    고마 형상은 살심이 치솟는지 두 손을 부딪쳐 사방팔방으로 투명한 기운을 뻗어냈다. 그러나 투명한 빛들은 고마 형상의 손에서 튀어나가 은발 여인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몸에 달라붙었다.

    별안간 고마 형상은 더욱 커다란 수정 거인처럼 변했고 보라색 눈에서 야수의 포악함이 진해졌다.

    “역성반으로 본 성조 앞에서 거만 떨지 말거라. 그리고 이 공격을 받아 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거인이 음산하게 말하며 손에서 수정 광채를 쏟아냈다. 그러나 령롱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피식 웃어버렸다.

    “이곳에 오래오래 머물 수 있을 줄 아시나 봅니다.”

    “무슨 소리냐?”

    수정 거인이 눈을 번뜩이다 흠칫 놀라 물었다.

    그때 제단 주위의 돌기둥을 돌연 열댓 개의 빛이 가르더니 어둠이 몰려왔다. 그 즉시 진법도 운용을 멈추었고 제단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던 칠흑 같은 마기도 뚝 끊겼다.

    이 같은 모습에 수정 거인은 놀라고 분노했다. 방금 의식을 수정화 시켜 몸을 강화하느라 지니고 있던 진마기를 거의 다 소모했는데 이대로 가면 정말 어떻게 될지 뻔했다.

    고함을 내지른 고마 형상의 손에서 빛이 번뜩이며 사발 굵기의 수정 기둥이 분출되었다. 그러나 수정 기둥이 절반 밖에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고마 형상의 육체가 갈라지기 시작하며 흩어졌다.

    그래도 절반가량의 수정 기둥이 번뜩하며 은발 여인에게 날아들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여인이 재빨리 손을 놀려 원반에 은색 법결을 때려 넣었다.

    동시에 원반이 몸을 키웠다. 빛이 번뜩이고 절반의 수정기둥도 흡입력에 이끌려 방향을 틀었다. 이전 공격과 수준이 달랐지만 그래도 미완성의 공격이었다.

    역성반이 웅웅 울어대다가 뒤로 튕겨나갔다.

    뒤쪽의 령롱이 안색이 달라져 한 손으로 은빛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원반의 뒷부분을 내리쳤다.

    원반은 잠시 멈칫하더니 빛을 크게 터트리며 괴상하게도 수정 기둥 절반이 원반 뒤로 튀어나와 령롱의 아랫배를 공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그녀가 전신의 은빛을 끌어올렸지만 수정 기둥 절반이 막힘없이 은발 여인의 배를 꿰뚫었다.

    “……!”

    여인은 신음을 삼키며 고통스런 표정으로 은빛이 반짝이는 손을 상처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 볼 수 없었다.

    사실 강력한 의식을 응집해 형성한 육체라 보통의 공격으로는 부상을 입히기 어려웠는데 상대가 더욱 강대한 의식을 응집해 수정기둥을 쏘아 보내 이렇게 된 것이다.

    혼란스런 상황이 지나고 다른 수사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청자 등은 고마 형상이 처리되자 크게 기뻐했고 원살 성조의 분신이 변한 검은 갑옷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고심 끝에 소환한 본체의 의식이 이렇게 쉽게 괴멸하다니! 검은 갑옷 여인은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열이 받았지만 훼손된 돌기둥들을 보며 한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보기에는 완전하던 기둥이 콰르르 무너져 내렸다. 현청자 등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모두 신경을 곤두세웠다.

    돌기둥 밑동은 울퉁불퉁해서 무언가에 물어뜯긴 모습이었다. 검은 갑옷 여인이 어두워진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며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돌들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는데 그 중에 금빛의 점들이 섞여 있었다.

    검은 갑옷 여인이 그 중 하나를 끌어와 손에 넣었다. 금빛 찬란한 딱정벌레를 본 그녀가 소리쳤다.

    “서금충! 언제 이런 것을 심어 놓은 것이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리 떠있는 창백한 안색의 령롱을 노려보았다. 령롱이 실소하며 아랫배에서 손을 거두니 구멍이 뚫렸던 배가 멀쩡해져 있었다.

    “역성반이라면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고 대부분의 영력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보물 아닌가!”

    “현청자 수사, 경거망동할 생각 마세요.”

    만년시웅이 핏빛 칼날을 허공에 띄우고 음산히 말했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아직 고마 성조의 혼백이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요. 일단 눈앞의 마물을 처리해야합니다. 본체의 의식을 소환했으니 마기를 거의 소모했을 테고 진법도 망가졌어요. 마물을 죽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모두 함께 칩시다!”

    칠묘 진인이 허허 웃으며 현청자를 대신해 해명하고는 검은 갑옷을 입은 여인을 주시했다. 원살 성조의 분신이 변한 여인이 그 말을 들었는지 대놓고 비웃었다.

    “요물 주제에 무엇이 그리 우스운 것입니까! 본체의 의식도 사라진 마당에 아직도 우리가 어쩌지 못할 거라 여기시냔 말입니다.”

    현청자가 얼굴을 굳히며 소리쳤다.

    “너희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벌써 본 성조를 공격했겠지 뭐 때문에 세치 혀만 움직이고 있겠느냐! 내 상황이 불리하기는 하다만 너희 역시 마찬가지다. 온갖 보물이며 비술은 이미 써버렸을 테고 법력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야. 기둥 몇 개 없앴다고 이곳의 진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검은 갑옷 여인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돌비석 앞에 나타나 다섯 손가락으로 화룡새를 쥐었다. 돌기둥들이 부서져서 안정을 찾았던 비석에 검은 빛이 번뜩이며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물어졌던 기둥에서 마기의 바람이 생겨나 지하에서 열댓 개의 검은 기운이 기둥처럼 솟아났다. 돌기둥들이 다시 영기의 빛을 머금고 있었으니 진법 전체가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어서 저 마물을 막아야 합니다!”

    현청자가 기함해서 곧바로 천아신검을 맹렬히 휘둘러 노란 검기를 방출하고 스스로도 빛줄기로 변해 제단으로 날아갔다.

    만년시웅과 칠묘 진인도 핏빛과 일곱 빛덩이를 대동하고 공격에 나섰다. 규령은 거대한 도끼를 내리치며 은빛을 층층이 내뿜었다.

    심지어 임은병도 소매를 털어 초승달처럼 굽은 붉은 칼날 한 쌍을 쏘아 보냈다.

    동급 수사가 무력하게 픽픽 죽어나가 벌벌 떨고 있는 것은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고마가 봉인을 해제해 또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를 소환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매의 날개를 지닌 두 마물들도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제단 인근은 마기가 용솟음치고 여러 영기의 빛이 퍼지며 대대적인 전투지대로 변했다.

    그런데 두 수사는 움직이지 않고 열댓 장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한립은 상대의 전음에 흠칫 놀랐다.

    “네 허천정을 빌려 써야겠다고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한립은 콧방귀를 뀌며 거절했다. 눈앞의 여인은 은월의 기억을 지녔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낯선 강자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왜 그래야 하냐고?  솥 안의 천란 성수의 분신을 쓰려 한다. 본래 천란 성수란 것은 영계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지. 지금 내 신념체나 인류 수사의 몸보다는 훨씬 위력을 발휘하게 해줄 것이야.”

    “싫습니다!”

    한립의 대답은 령롱 선자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뭐라고?”

    은발 여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원살 성조 본체의 의식도 사라진 마당에 그래야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죽고 싶으냐?”

    령롱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자 손톱 끝에서 투명한 빛이 번뜩였다. 그때 돌연 제단 방향에서 괴성이 들리고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거대 마물이 출현했다.

    은발 여인은 마물을 보고 안색이 달라져서 손끝의 수정빛을 사라지게 했다.

    “마공을 이용해 강제로 수행을 높였다. 솥을 빌려 주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단 말이다!”

    령롱이 말을 마치자 마기 속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굵은 마기의 빛기둥이 현청자를 노리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노 도사가 기겁해서 검을 휘두르자 무수히 많은 노란 검기가 튀어나가 겨우 그것을 막았다.

    그 순간 마기 속에서 맹렬히 무언가 요동치며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와 사라졌다.

    현청자가 당황하는 사이 검은 빛이 소리 없이 번뜩이며 머리 셋 달린 마물의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하지만 현청자도 수많은 전투를 해본 노련한 늙은이였다. 마물의 그림자가 나타나자마자 주저 없이 뒤로 튕겨나가 검을 휘둘렀고 뱅글 돌아 빛줄기로 변해 달아났다.

    거대 마물의 그림자 중에 왼쪽과 오른쪽 머리가 기괴한 웃음을 흘리더니 두 줄기의 검은 빛기둥을 분출해 하나는 거검이 방출한 노란 검기를 흩어버렸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속도로 현청자가 변한 빛줄기를 따라잡았다.

    노 도사의 몸을 보호하던 팔괘경과 옥패가 만들어낸 보호막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화들짝 놀란 노 도사는 다급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둘러 검기로 몸을 층층이 에워쌌다.

    쾅!

    검은 빛에서 폭음이 들리고 노란빛이 번뜩인 후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검은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보물이나 원영조차 빛기둥을 이겨내지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이에 수사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랜 전투에서 잘 버티던 노 도사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지 몰랐던 것이다.

    상황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마물은 검은 갑옷을 입고 있던 여인이 변화한 모습 같았다.

    키가 서너 장은 되었고 중간의 머리는 본래의 것과 똑같이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양쪽 머리는 검은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어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마물도 원기를 크게 상했는지 두 늑대 머리는 멀쩡했지만 중간의 여인은 안색이 창백했고 보라색 눈도 혼탁해 보였다.

    마기를 토해내던 날개 달린 마물 두 마리가 삼두육비의 마물 뒤로 가 사라졌다. 아마 마물 화신을 유지할 여력이 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년시웅, 중년문사 등은 마물이 지쳐보이자 다시 공격에 들어갔다. 어찌 되었든 마물에게 각개 격파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순간 핏빛과 은빛, 붉은빛이 요동치며 마물을 둘러싸고 쇄도했다.

    방금 전 공격에 큰 힘을 썼는지 삼두육비 마물은 그저 입을 벌려 검은 기운을 내뿜고 여섯 개의 팔을 마구 휘둘러 공격들을 튕겨냈다.

    “뭔가 이상해!”

    한립에게 허천정을 달라던 은발 여인이 돌연 묘한 표정을 짓더니 마기로 둘러싸인 제단으로 사라져버렸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눈썹을 끌어올렸다. 사실 상대에게 강경하게 나간 것은 령롱 요비가 그를 해치지 못할 거라 믿어서였다.

    살펴보니 체내의 본명 비검에서 아직도 기령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융합된 은월의 원신이 아직도 기령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는 의식이 강대해서 그를 조종할 수는 없겠지만 한립을 해치는 것은 꺼릴 것이다. 한립을 죽인다면 무슨 사단이 날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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