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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07화 (364/2,000)
  • # 607

    607화. 고마 성조의 위력

    서 씨 청년은 마수의 발톱 안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오색 보호막 덕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고마가 보라색 눈을 사납게 번뜩이자 마수의 발톱 다섯 개가 오므라들자 오색 보호막이 그대로 일그러지며 쩡 하며 깨져나갔다.

    “안 돼!”

    청년의 간절한 외침에도 영서공작은 즉시 마수의 발톱에 노출되었다.

    푹!

    서 씨 청년의 원영이 기회를 보아 튀어나와서는 순간 스무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고마의 형상은 그곳으로 이동할 것이라 예상한 듯 이미 손가락을 튕겼다.

    결국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원영이 터져나갔다.

    이제 현청자와 칠묘 진인조차 당황스런 기색이 만연했다.

    고마의 형상은 너무 강해서 작은 일격도 받아 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순식간에 이곳에 모인 수사들 전부가 몰살당할 것이다.

    한립도 파랗게 질려있었지만 눈빛만은 평정을 유지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어서 설령을 내놓지 않으면 늦는단 말이다! 아무리 고마라 해도 령롱이라면 한동안 막아낼 수 있을 것이야. 우리 둘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분리될 것이니 안심하거라!”

    여인의 전음은 더욱 다급해 졌고 어서 은월을 내놓으라 닦달했다. 그러나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한립의 의식 속에서 은월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은월, 무슨 생각인 것이야! 융합한 이후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알고?  네 의식은 상대에 비해 훨씬 약한데 융합하면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다.”

    “주인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저와 롱몽이 원신융합을 하지 않으면 당장 죽게 될 텐데요. 그럴 바에야 모험을 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은월은 차분히 말하고 그의 소매에서 하얀 여우의 모습으로 튀어나갔다. 화천기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은월을 보며 반갑게 다가왔다.

    한립은 제자리에 서서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서 씨 청년의 원영이 사라지고 요단을 부려 달아나려던 영서 공작의 원신이 검은 빛을 번뜩이자 모습을 감추었다.

    공작새가 화염에 불타 재로 변하자 마수의 발톱이 그 안에서 오색 구슬을 꺼내 고마의 형상에게 돌아갔다.

    오색 구슬은 새까만 마기의 바람을 타고 고마 형상의 손에 떨어졌다.

    “내가 쓸 곳이 있으니 기회를 보아 상고마계로 보내거라.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검은 갑옷 여인이 그 말을 듣고 조심스레 구슬을 받아 들었다. 두 손을 부딪치자 검은 빛이 번뜩이며 구슬이 사라졌다.

    일을 마친 고마의 형상은 시선을 돌려 등 뒤에서 은빛 뇌전을 번뜩이는 한립을 쳐다보았다.

    상대가 손가락을 튕기려 하자 한립이 인간형 꼭두각시를 앞에 세웠고 한립 앞에 떠 있던 원강순이 날아가 꼭두각시 주변에 은빛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꼭두각시가 수결을 맺자 전신에 오색의 빛이 화려하게 번뜩였다.

    한립도 재빨리 한 손을 뒤집어 삼염선을 꺼냈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의 거검을 가리켰다.

    거검이 웅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금빛으로 흩어져 주위를 맴돌았는데 금빛이 차츰 거대한 연꽃의 모습을 만들어내 꽃잎으로 한립을 감싸 보호했다.

    금빛 연꽃의 꽃잎을 타고 천둥소리와 은빛 벼락이 번뜩였다. 한립은 이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주술을 읊어댔고 금색의 보호막이 펼쳐짐과 동시에 피부색도 연한 금색으로 물들었다.

    금강조의 위력을 발동해 명왕결 공법을 극성으로 발휘하고 스스로를 금강지체(金剛之體)로 만든 것이다.

    동시다발적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도 그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사실 어떤 대비를 해도 원살 성조에게 한순간에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적을 상대하며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은 체내에서 꿈틀거리는 두 물건이었다.

    “벽사신뢰!”

    고마의 형상이 눈을 빛내며 금색 연꽃을 타고 흐르는 금빛 뇌전을 응시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연달아 두 번이나 튕겼다.

    핑! 핑!

    첫 번째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청죽봉운검이 만들어낸 금색 연꽃이 이유 없이 틈이 벌어졌다. 거의 동시에 은색 보호막이 움푹 들어가며 산산 조각이 났고 마지막에는 금강조가 변한 보호막에 들이닥쳤다.

    금색 보호막은 미친 듯이 흔들거리다가 결국 쩡 하며 터져나갔다.

    그 순간 한립은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드디어 무엇이 공격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삼염선을 휘저으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금강조가 변한 보호막을 깨트린 물건은 콩알만 한 우윳빛 구슬이었다. 투명한 구슬은 원살 성조가 자신의 의식을 응결해서 만든 물질이었다. 상대의 의식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 수 있었다.

    고마의 형상이 손끝으로 튕기면 10급 요수나 원영 후기 수사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가 있었다.

    한립의 손에 들린 삼염선에서 삼색빛이 요동치며 화염이 응결해 불방패가 나타났다. 표면에 금은홍 주술이 흘러 다니는 방패는 신비했다.

    이어서 한립은 입을 벌려 푸른빛에 싸인 작은 솥을 분출했다. 그때 금색 보호막이 철저히 붕괴되며 우윳빛 구슬이 삼색 불방패와 맞닥뜨렸다.

    쿠쾅!

    불방패가 제 위력을 제대로 내기도 전에 흩어져버렸다. 삼색 화염은 우윳빛 구슬을 막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불방패를 지나 구슬은 계속해서 푸른 빛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작은 솥은 진동하며 빽빽하게 푸른 실을 분출해 그물을 만들어 구슬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 푸른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우윳빛 구슬을 막았다!

    한립이 기뻐하는 동안 고마의 형상은 눈을 부릅뜨고 조그만 허천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청자와 만년시웅은 멍하니 한립을 바라보았는데 당연히 은시야차 등과 마찬가지로 일격에 죽을 줄 알았던 자가 멀쩡히 살아 있어 무척 놀란 듯했다.

    심지어 현청자는 손에 누런 파계부를 들고 한립이 죽는 순간 공간 장벽을 뚫고 달아날까 생각 중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다가 오히려 시선을 끌어 고마의 공격을 받을까봐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 은월이 변한 작은 여우는 몸에서 은색빛이 빠져나와 화천기의 몸으로 들어갔다. 화천기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공에서 뻣뻣하게 굳어갔다.

    “재미있구나! 내 신념(神念) 공격을 막아내다니. 어디 어떤 보물인지 본 성조도 살펴보자꾸나!”

    고마의 형상이 담담히 말하고는 한립 보며 허공을 쥐었다.

    촤랏.

    거대 손이 검은 빛을 흩뿌리며 한립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

    등골이 오싹해진 한립이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뇌둔술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은빛이 터지기 직전 주위 영기가 응결하며 검은 기운이 날아들어 풍뢰시를 발동할 수가 없어졌다.

    다급해진 한립은 그제야 각종 둔술에 정통했던 요물과 수사들이 꼼짝 못하고 당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의식을 이용해 허천정을 조종했고 빽빽한 푸른 실들이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인간형 꼭두각시가 팔을 뻗어 비취색 빛이 번뜩이며 거대 손을 금빛 뇌전으로 가격했다.

    허천정이 만들어낸 푸른 실들은 강도가 대단했는데 통보결을 일성 밖에 못 익힌 그는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수의 손에 갈가리 찢겨나가고 말았다.

    비취색 빛은 거대 손을 공격해 금빛 뇌전을 번뜩이며 몇 척 크기의 구멍을 뚫을 수 있었지만 검은 빛이 반짝하자 구멍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거대 손이 그대로 떨어져 내려 한립의 육신을 쥐어짰다.

    퍽.

    푸른빛이 번쩍하며 한립의 몸이 터져나갔다. 고마의 형상은 만족한 얼굴로 거대 손을 풀더니 그대로 허천정을 집으려했다.

    그런데 그때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며 은빛이 번뜩였다. 고마의 손에서 순간이동해서 수십 장 밖으로 물러난 인영은 한립이었다!

    다만 안색이 더없이 창백했고 법력 손실이 막중해 보였다. 거대 손이 그의 몸을 터트린 순간 푸른 부적 하나가 번뜩였고 허천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빛이 흐릿해진 부적은 천부문에서 얻은 화령부(化靈符)였다.

    비록 체내에 넣고 배양을 한지 몇 년 되지 않아 진정한 위력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나무 속성 공법으로 쌓은 법력을 이용해 간신히 화령부의 일부 신통을 발현할 수 있었다.

    거대 손에 몸이 으깨지기 직전 부적을 이용해 대신할 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번에도 지켜보던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고마의 형상은 코웃음 치며 바로 한 손을 들어 한립을 향해 쥐려 했다. 이미 쓸 만한 법보와 신통을 죄다 방출한 한립은 이번 공격을 막을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문 그가 남은 법력을 허천정에 쏟아 부었다.

    보물이 미친 듯이 몸을 키워 그의 앞을 막아섰고 동시에 그의 전신에 금빛 뇌전과 보라색 화염이 몰아쳐 보호막을 형성했다.

    인간형 꼭두각시가 한립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자 주위로 오색의 기운이 흘러내려 스스로 강력한 방어용 법보 노릇을 했다. 그러나 고마의 형상은 한립이 연달아 쓸데없는 짓을 하자 비웃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런데 그 순간, 돌연 고마의 형상 앞에 은빛 몇 개가 번뜩이더니 하얀빛을 내며 폭발했다. 고마가 방금 튕겨낸 신념이 무언가에 의해 공격당한 것이다.

    고마의 형상이 눈을 크게 떴다.

    한립과 고마의 형상 사이에 인영이 흐릿하게 나타나더니 은발을 늘어트린 여인이 냉랭한 눈빛으로 나타났다.

    “너는…….”

    고마의 형상이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훑더니 놀라워했다.

    “은월!”

    한립이 여인의 모습에 놀라 이름을 부르자 은발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청초한 얼굴에 아름다웠지만 무표정했고 분위기도 완전 달랐다.

    그녀가 그를 보더니 한립 쪽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한립이 놀라 옆으로 피했다. 눈처럼 환한 은빛이 그의 어깨를 스쳤는데 벽사신뢰와 자라극화로 형성한 보호막이 전혀 막지 못했다.

    한립은 어깨 위로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난 은월 일족의 공주, 령롱이다! 네가 내 분신에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안다. 다시 한 번 나를 은월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너부터 죽여주마.”

    한립은 전혀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은발 여인은 더는 한립을 상대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고마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은월 일족이라면 오소 노인과는 무슨 관계지?”

    “오소 요왕(妖王)이 내 조부 되십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마의 형상이 은발 여인을 공격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은발 여인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 늑대 늙은이의 손녀로구나!”

    “조부님을 아십니까?”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영계 원정을 나갔을 때 만나 보았다. 소월요공(嘯月妖功)은 탄복할 만 했지!”

    고마 형상의 답에 은발 여인이 침묵했다.

    “기왕 네가 그 분의 후인이라니 나도 어찌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하자. 이곳을 당장 떠난다면 붙들지 않으마. 대신 네 조부의 이름을 걸고 본 성조의 분신에게 손을 쓰지 않는다고 맹세한다면 말이야.”

    고마 형상이 뜸을 들이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원살 성조가 오소 요왕이라는 자를 꺼리는 듯했다.

    “나를 놔준다고요?  원살 성조, 너무 자만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의 의식 전부가 강림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씩 새어나오는 진마기의 힘을 빌려 겨우 10분의 1 정도가 넘어 왔을 텐데, 제가 왜 가야 하죠?”

    령롱이 냉소했다. 고마 형상은 령롱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을 굳혔다.

    “겨우 화신 후기 계집이 육체도 없이 기고만장하구나. 의식의 10분의 1이라도 너를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고마 형상이 령롱의 말에 분노해 즉시 허공을 쥐었다.

    피피핑!

    무수히 많은 수정 알갱이들이 순식간에 튀어나가 여인이 있는 곳을 가르려 했다. 그것을 본 령롱의 입술 사이로 손바닥만 한 커다란 원반이 빠져나왔다.

    분명 새까만 색이었는데 크기가 커지고 나서는 점점 별빛이 빛나는 신비로운 원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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