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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04화 (361/2,000)
  • # 604

    604화. 적명고(赤鳴鼓)

    목 부인은 의식이 없는 자신의 사매에게 붙들려 아직도 꼼짝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립이 입 꼬리를 꿈틀거렸다.

    슉! 슉!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꼼짝도 하지 않자 곧 두 개의 빛줄기가 뻗어나갔는데 임은병과 서 씨 청년이 깃든 영서공작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통천령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규령은 그저 한립을 힐끗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혼잡한 상황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쿠릉! 쾅! 콰쾅!

    허공은 갖가지 영기의 빛이 섞여 터져나가며 혼란 그 자체였다.

    방금 전까지 힘을 합쳐 고마를 잡으려던 이들은 이제 통천령보 두 개를 두고 거침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사지가 금마환에 구속당해 엎어져있는 은색 늑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두운 낯빛으로 그가 소매를 펄럭이니 수십 자루의 금색 검들이 웅웅거리며 튀어나왔다.

    한립이 비검을 방출하면서 은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검은 머리만 잘라내면 잠시 고마 성조의 분혼을 쫓아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롱몽은 어째서 먼저 육체를 차지하지 않는 것일까?”

    “금마환이 통제하고 있으니 고마 성조나 체 내의 마기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겁니다. 잘려나간 머리에서도 달아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고마의 분혼만 잠시 떠나면 육체를 되찾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롱몽은 의식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수중에 경정이 들어 있는 예리한 보물이 없을 테니 은색 늑대 요수의 몸을 잘라낼 수 없었겠지요. 육체가 마기로 충만할 때는 고마의 분혼과 겨뤄 이길 자신이 없었을 거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육체를 되찾을 기회를 두고 통천령보를 차지하러 정신없이 날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은월이 빠르게 답하자 한립도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의 기령(器靈)인 은월이 육체를 되찾아 실력이 크게 늘면 그에게 좋은 일이다. 그가 재빨리 수결을 맺자 모든 비검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금빛을 발산하며 하나로 응결되었다.

    한립은 금빛 찬란한 거검을 가리켰다.

    꽈광!

    동시에 벼락소리가 나며 거검의 표면에 금빛 뇌전이 흘렀고, 검 끝에는 은빛이 터져 나오며 그 안에서 은색 늑대 머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은월이 기령의 몸으로 거검에 깃든 것은 첫째는 거검의 위력을 증가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목을 잘라내자마자 바로 늑대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거검의 형태가 모호해 지더니 금빛 뇌전으로 변해 마기 속으로 들어갔다. 뇌전이 번뜩일 때마다 마기는 손쉽게 허물어졌고 순식간에 제단 상공에 이른 거검이 꼼작 않고 누워있는 거대 늑대를 내리치려 했다.

    거검의 엄청난 기세에 통천령보를 둘러싸고 있던 수사들과 요물들이 모두 흠칫 놀랐다. 그 중 롱몽이 깃든 화천기는 화들짝 놀라더니 곧 냉소했다.

    겨우 원영 중기 수사의 비검이 은색 늑대에게 해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흉흉하게 떨어져 내리는 거검의 기세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던 거대 늑대가 풀쩍 뛰어 올라 검빛을 피했다.

    이에 한립을 포함한 모든 수사들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헛, 마물이 금마환에 제압당한 척 연기한 것이었습니다!”

    현청자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쳤다. 칠묘 진인은 난색을 표했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수결을 맺어 비취색 고리를 움직이려 했다.

    동시에 다섯 개의 고리에서 빛이 번지며 수축했지만 검은 늑대 머리가 고개를 숙여 고리들을 보더니 비웃어댔다.

    늑대는 고통스러운 기색 없이 돌연 제단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그리고 칠흑 같은 검은 빛이 늑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순식간에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은색 늑대의 모피에서 은빛이 환하게 번뜩이다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은색 머리 부분을 제외한 늑대의 육체가 검게 물들며 마화가 되고 만 것이다!

    화천기가 그 모습을 보고 핏기가 사라지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늑대 머리가 목을 길게 빼고 검은 파문을 분출했다. 검은 파문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늑대의 육체를 속박한 다섯 개의 비취색 고리들이 검은 파문에 이르자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섯 개의 금마환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허공을 가른 금빛 거검이 방향을 틀어 쇄도했다. 늑대가 다시 울부짖으니 흩어졌던 마기가 다시 응결하며 거검을 가두려 했다.

    “터져라!”

    꽈광!

    이같은 상황에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재빨리 수결을 맺어 마기 속의 거검을 향해 일갈했다. 그러자 거검의 절반에 달하는 거대한 벽사신뢰가 터져 나왔다.

    쿠콰콰쾅!

    벼락 소리가 들리고 금빛 뇌전이 변한 거대한 뇌전 구슬이 검의 표면에 등장 하더니 경천동지할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마기를 녹여버리자 커다란 빈공간이 나타났고 먼 곳에 있던 마기들도 구멍이 잘게 뚫려 희미해졌다.

    “벽사신뢰!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거대 늑대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한립을 응시했다. 이에 한립은 무표정하게 시선을 받았지만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마물이 뿜어낸 기괴한 검은 파문은 속도가 너무 느려 멀리 가지 못하고 서른 장 정도에서 저절로 흩어져 사라졌다.

    ‘운이 좋았어!’

    이때 칠묘 진인 등 다른 수사들은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원살 성조의 화신이 이렇게 교활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금마환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굴어 그들이 서로 싸우게 유도 하지 않았는가!

    만일 한립이 공격을 가해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다들 크게 부상을 당하고 원기가 떨어져 마물에게 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주시하며 바로 흩어졌다.

    통천령보가 아무리 중요해도 짧은 시간에 누구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없다면 일단 힘을 모아 강적을 죽이는 것이 먼저였다.

    그때 거대 늑대가 보라색 눈을 빛내며 앞발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한 장 길이의 빛줄기가 발톱에서 쏘아져 나가 번뜩하며 사라졌다.

    곧바로 여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사들이 서둘러 시선을 돌리니 마기 변두리에서 베틀 북을 이용해 싸우고 있던 목 부인이 갑자기 나타난 발톱 모양의 빛에 조각나 버린 것이다.

    손수건 형태의 보물과 보호막으로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잘려나간 시체 속에서 원영이 다급이 튀어나오더니 허공의 금빛 베틀 북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보물을 회수해 달아날 생각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의 머뭇거림이 영원히 달아날 길을 막아버렸다.

    인근의 마기가 뭉쳐 검은 거대한 손을 형성해서는 바람처럼 원영을 낚아챈 것이다. 원영은 크게 놀라 순간이동을 하려 했으나 거대 늑대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에 원영의 법력이 굳기라도 한 듯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검은 거대 손에 잡힌 원영은 마기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멈춰!”

    현청자가 파랗게 질려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가 전신의 법력을 끌어올려 미친 듯이 주입하더니 검을 아래쪽으로 내리쳤다.

    노 도사의 손에서 천아신검의 환영이 층층이 생겨나며 수많은 노란색 검빛이 작은 산처럼 쌓였다. 놀랍게도 사력을 다해 목 부인의 원영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다른 수사들은 노 도사의 필사적인 일격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화천기와 만년시웅이 서로 시선을 교차하더니 핏빛과 하얀 거대손이 각각 공격을 가했다.

    칠묘 진인은 노 도사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다가 갑자기 목 부인과 노 도사에 관한 소문을 떠올리곤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잠시 후 그도 손바닥을 뒤집어 반 척 길이의 작은 북을 꺼냈다.

    북은 새빨간 표면에 붉은빛이 번뜩이는 것이 화염을 응결해 놓은 것 같았다. 그것이 나타나자마자 주변 수십 장 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지며 인간이든 요물이든 상관없이 입이 바싹 말랐다.

    “적명고(赤鳴鼓).”

    조금 전 서로 보물을 차지하려다 작은 부상을 당한 임은병은 새빨간 북을 보자 중얼거렸다. 서 씨 청년이 깃든 영서공작도 그녀의 머리 위를 돌며 작은 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립은 작은 북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불 속성 영력을 느끼고 놀랐는데 삼염선에 못지않은 기운이었다.

    “한 수사의 벽사신뢰가 마기를 상대하는데 특효이니 같이 공격을 하지요. 이것을 이용해 수사의 공격을 가려주겠습니다.”

    중년 문사는 한 손에 북을 들고는 돌연 한립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한립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때 노 도사가 방출한 검기가 단번에 아래쪽의 마기와 충돌했다.

    콰르르릉!

    검기와 마기가 교전하며 일순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화천기의 하얀 거대 손과 만년시웅의 핏빛 칼날이 공격에 합류 했을 때 거대한 늑대도 입을 벌려 새까만 빛기둥들을 연달아 분출해 공격을 막았다.

    그 뿐 아니라 전신이 새까맣게 변한 거대 늑대는 고개를 털며 거무튀튀한 무언가를 두 개나 뱉어냈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매의 날개에 인간의 몸을 지닌 두 마리의 괴물로 변했다. 두 마물은 한 쌍의 새까만 날개와 매부리코를 지니고 있었다.

    각자 한 손에 검은 대도를 들고 날개를 펄럭이더니 뜻밖에도 돌기둥을 허물어트리고 있는 은시야차와 사금수를 향해 날아갔다.

    두 마물은 요물들과 가까워지기도 전에 수중의 검은 칼날을 휘둘러 칠흑 같은 검은 빛을 날렸다.

    은시야차와 사금수는 마기로 응결된 것 같은 두 마물의 공격에 화들짝 놀랐다. 이에 은시야차는 고민할 것도 없이 신형이 흐릿해지며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쿠아앙..

    사금수는 사나운 본성을 드러내며 그대로 몸을 돌려 금빛 파동을 마물 중 하나에게 쏘아 보냈다.

    마물이 손에 든 대도를 비켜 세워 막았으나 금빛 파동에 잠식되어 금세 조각났고 다시 옅은 마기로 돌아갔다.

    다른 한 마리가 대도를 내리치며 한 척 길이의 빛을 방출하고 있었는데 은시야차가 기묘하게도 그 뒤에서 나타났다.

    열손가락을 튕기자 회색빛의 살혼사 열 줄기가 뿜어져 나가 마물의 몸통을 꿰뚫고 뜯어냈다.

    너무 쉽게 마물들을 해치운 은시야차는 신중한 표정으로 마기를 노려보았다. 그도 갑자기 습격한 두 마물들이 이대로 끝났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마기가 천천히 꿈틀거리더니 검은 빛을 반짝이며 다시 두 마리의 마물로 원상복구 되어 한 마리는 그대로 달려들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벌려 은시야차를 향해 마기를 뿜어냈다.

    은시야차가 미간을 좁히며 다시 살혼사를 방출하니 마기와 부딪쳐 교전했다.

    또 다른 마물은 순간 거대한 매로 변해 사금수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과 강철 같은 부리를 들이밀었다. 두 마리의 조류가 육탄전을 펼치며 검은색과 보라색 깃털을 떨구었다.

    사금수가 더 위력적이었으나 검은 매는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검은 빛이 흐르면 곧바로 회복되었다. 은시야차도 같은 상황이었다. 사혼사로 마물을 몇 번이나 죽였음에도 다시 응결해 같은 형태로 돌아간 것이다.

    두 마물은 화신과 비슷한 존재로 본체를 멸하지 않은 한 불사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살 성조의 분신이 두 마물을 이용해 은시야차와 사금수를 공격하게 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더 이상 기둥을 부수지 못하게 붙들어 두려는 수작이었다.

    은시야차도 알고 있었지만 두 마물의 형편없는 방어력과 달리 공격에 사용하는 마기는 거대 늑대의 것과 비슷했다. 두 요물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피하거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허물어진 돌기둥도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복구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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