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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96화 (353/2,000)
  • # 596

    596화. 되찾은 보물

    한립의 등장에 시선을 빼앗겨 비도가 나타난 것을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비도의 기이할 만큼 빠른 속도에 고마가 정신을 차리고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가느다란 핏줄기가 나타나 고마의 남은 머리마저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잃은 고마의 몸뚱이가 죽지 않고 들고 있던 쌍도로 검은 기운을 날리고는 검은 기운을 폭발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다 잡은 고마를 놔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립이 수결을 맺자 날아가고 있던 보라색 화염의 불뱀 역시 스스로 폭발했다.

    작은 보라색 불꽃들이 주변을 뒤덮고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십 개의 금빛 비검도 허공에서 춤을 추며 쌍도에서 뿜어낸 검은빛 두 줄기를 없애고 금빛 뇌전을 뿜어냈다.

    거대한 그물로 변한 뇌전들이 보라색 화염을 둘러쌌다.

    촤르륵! 꽈광!

    마기의 대부분이 멀리 가지 못하고 보라색 얼음덩이로 응결되거나 금빛 뇌전에 부딪쳐 폭음을 내며 사라져갔다.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수결을 맺었다.

    “터져라.”

    금빛 그물이 폭발하며 무수히 많은 가는 뇌전으로 흩어져 보라색 얼음 덩어리들마저 흩어버렸다. 이에 산산이 부서진 검은빛들이 눈처럼 떨어져 내렸고 몇 개의 보물들이 같이 추락했다. 한립은 그 중에서 검은 실에 휘감겨 있는 물건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두 줄기의 금빛 뇌전이 쏘아져 나가 검은 실들을 태워버렸다. 그러자 금빛 소검 두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립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청죽봉운검 두 자루였다. 그가 크게 기뻐하며 의식을 이용해 두 자루의 검을 조종했다. 금빛 검들이 드디어 수중에 들어오자 그는 안심이 되었다.

    오랫동안 고마에게 봉인 당해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영성을 잃지 않아 다시 제련하면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멀리서 지켜보던 서 씨 청년과 은시야차가 고마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한립에 대한 경계심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인간형 꼭두각시까지 나타나자 다들 어리둥절해졌다. 한립이 갑자기 강력한 수사를 끌어들인 것 같은데 이곳에 전송되어 오면서 그런 자를 보지 못했으니 그럴만했다.

    도대체 얼마나 둔술과 은닉술이 뛰어나기에 이 많은 원영기 수사들을 속일 수 있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에 수사들은 점차 불안해졌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약속이라도 한 듯 전송진 주변의 금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검은 전송진 주변에 설치된 진법 깃발들은 회색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진법 때문에 나가는 것은커녕 들어오는 것도 막혀 있었다.

    수사들의 공격이 동시에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쿠콰쾅! 쿵! 쩌정!

    영기의 빛이 요동치며 굉음이 이어지는 데도 모두의 예상과 달리 회색 보호막은 견고하게 버텨냈다.

    은시야차의 살혼사, 사금수의 날카로운 발톱, 심지어 서 씨 청년이 발동한 푸른빛의 구슬까지 보호막 표면에 파문을 만드는 정도로 그쳤을 뿐이었다.

    보기에는 회색 깃발 몇 개로 간단히 만든 금제처럼 보였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고마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여기던 수사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크앙!

    성질 급한 사금수가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이 들지 않자 눈빛이 흉악해지며 입에서 금빛 음파를 방출했다.

    그러자 드디어 보호막이 깊이 들어가며 모양이 달라졌다. 서 씨 청년도 그것을 보고 의식을 움직이자 영서공작이 두 날개를 펼쳐 오색의 빛을 뿜어냈다.

    곁에 있던 임은병 역시 수결을 맺어 은색 빛덩이를 연달아 분출해 보호막을 공격했고 은시야차도 수많은 살혼사를 응결해 거대한 구렁이를 만들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목숨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다들 전력을 다했다.

    찰나의 순간 엄청난 영기의 빛이 보호막을 휘감았다. 드디어 회색 보호막에서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 한립과 규령 등도 전송진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간형 꼭두각시는 다시 은닉술을 펼쳐 사라졌다.

    한립이 도착하자 긴장한 기색을 지우고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잠시 후 진법 깃발들이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빛이 가시고 보호막이 사라진 순간 여러 둔광이 동시에 몰려들어 서로를 향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 수사,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서 씨 청년은 얼굴을 굳히며 손에 푸른 구슬을 쥐고 소리 질렀다.

    “무슨 뜻인지는 서 수사께서 아시겠지요.”

    웃을 듯 말 듯한 얼굴의 한립은 금빛 검을 몸 앞에 띄우고 한 손에 삼염선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은시야차가 보호막을 펼치며 경고했다.

    “첫 번째로 나가는 것은 나여야 합니다. 인간 수사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으니!”

    “그건 어렵겠는데요. 소형 전송진이라 기껏해야 두 명씩 밖에는 나가지 못 할 텐데, 만일 누군가 먼저 나가 진법을 훼손하면 나머지 수사들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 아닙니까.”

    한립은 웃음기를 거두고 싸늘히 답했다. 일순 세 개의 무리가 대치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냉랭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감히 내 앞에서 성족의 일원을 죽이다니! 너희 중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거라!”

    검은 여인의 목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원살 성조의 화신은 고마의 죽음을 감지했지만 자신도 전투 중이라 이제야 그들을 신경 쓸 위력이 생긴 것이다.

    흑풍기가 구진복마진을 거의 압도하자 궁전 위의 팔령척이 공격에 합류했다.

    여덟 마리 영수의 환영이 고마 성조의 주변을 돌며 공격을 가했는데 흑풍기는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위력적인 역천의 능력을 발휘하며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녀는 무리하지 않고 구진복마진과 팔령척을 상대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유일한 수하를 잃자 살심이 치솟은 것이다.

    흑의 여인은 어두운 얼굴로 허공의 깃발에 피를 분출했고 열손가락을 튕겨 법결들을 던져 넣었다.

    깃발에서 요란한 검은빛이 방출되며 커지더니 금세 열댓 장 길이의 거대한 깃발로 변해 보라색 주술이 떠다니고 검은 기운이 요동쳤다.

    그리고 주변의 돌풍은 깃발이 변하자 더욱 맹렬해지며 구진복마진 속의 제단들을 부수어나갔다. 9개의 금색 장도도 엄청난 돌풍의 기세에 속수무책이었는데 구진복마진이 파훼될 때가 임박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팔령척은 검은 여인이 궁전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지 않는 듯 했다.

    멀리서 흑의 여인의 음산한 목소리를 들은 서 씨 청년과 은시야차 등은 기겁했다. 만일 무리들이 대치하고 있지 않다면 당장 전송진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규령 수사와 임 수사가 처음으로 전송진을 이용하게 하시지요! 규령 수사는 요수의 몸이니 다른 요수 수사들과 친분이 있고, 저를 이곳에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또 임 수사가 나가면 서 수사께서도 안심할 수 있으실 테고요. 두 번째로는 사금 수사와 서 수사가 나가고, 저와 은시 수사는 마지막으로 전송진을 이용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서두르시죠!”

    궁전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리고 도처에 먹구름이 차오르며 거대한 기둥들이 달려들자 한립이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빠르게 자신의 제안을 말했다.

    다들 이곳의 이변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 했다가는 사단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규령이 한립의 명을 받고 나서자 임은병도 전송진 쪽으로 튀어나갔다.

    그런데 그들이 전송진에 발을 넣으려는 순간 전송진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며 누군가 나타났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다들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놀랍게도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모두의 얼굴에 당황스런 기색이 스쳤다. 그때 궁전 근처에 있던 흑의 여인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돈개천(混沌開天)!”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먹처럼 짙은 검은색의 빛기둥이 치솟아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검은 빛기둥을 경계로 돌연 세상이 두 개로 갈라졌다. 한쪽은 대낮처럼 밝았고 다른 한쪽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어두컴컴한 세상으로 나뉜 것이다.

    수사들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흑의 여인의 냉랭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빛을 지우며 다가온 검은 빛기둥에 다들 눈앞에 캄캄해졌다. 원살 성조의 화신이 흑풍기의 공간 계열 신통을 발휘해 그들이 있는 공간을 봉인해 버린 것이다.

    서 씨 청년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소리쳤다.

    “어서 전송진을 작동해야 합니다!”

    “헛, 방금 온 자는 어찌 된 것입니까?”

    “전송진이 발동하지 않아요! 이러면 우리는!”

    몇몇 분노한 목소리가 들리며 다들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한립도 갑자기 전송진을 넘어온 자가 보이지 않아 안색을 굳혔지만 전송진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신형을 날려 전송진 앞에 도착하자 임은병과 규령이 전송진에 서서 걱정스런 기색으로 진법을 점검하고 있었다.

    “제가 보겠습니다.”

    한립이 신중히 말하고는 한 손을 저었다. 법결이 진법 가장자리로 날아가 영기의 빛을 번뜩였으나 전송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에 서 씨 청년과 은시야차도 다가왔지만 그들은 진법에 정통하지 못해 한립의 안색만 살피고 있었다. 은시야차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전송진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전송진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흑풍기가 공간을 봉인해 버렸습니다. 이 공간을 깨버리거나 흑풍기의 주인이 금제를 풀어주지 않는 한 전송진으로 나갈 수 없을 겁니다.”

    “공간을 깬다고요?  어떻게 깬단 말입니까! 설마 원살 성조마저 죽일 계획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그럴 능력이 되었다면 이리 황급하게 떠나려고 했겠습니까?”

    “저한테 그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행히 고마 성조가 아직은 궁전 안의 존재에 발이 묶여 있으니 아직은 시간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다 같이 다른 방법을 찾을 때이니 불평은 잠시 접어 두시지요.

    한립이 눈을 부릅뜨며 그를 응시하자 은시야차가 그 말에 분노하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겼다.

    곁에 선 서 씨 청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임은병과 규령도 어쩔 수 없이 전송진에서 걸어 나와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에 빠졌다.

    다들 공간에 봉인되어 속수무책일 때 흑의 여인이 검은 돌풍에 휩싸여 거대 깃발을 조종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 주변에는 굵직한 바람기둥 외에는 광풍이 불지 않아 난잡하게 변한 주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공간을 봉인하느라 흑풍기의 위력을 꽤 써버렸지만 구진복마대진이 파훼됐으니 이제 주인 없는 팔령척만 상대하면 되었다.

    제 아무리 위력적인 통천령보라도 자신의 영성만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신통은 그리 많지 않았다.

    흑의 여인이 앞쪽을 살피자 8개의 영수의 환영이 소용돌이 기둥에 갈가리 찢겼다가 팔령척의 힘으로 다시 응결되었다. 환영들도 바람기둥을 뚫고 그녀를 공격할 수 없었지만 그녀 역시 쉽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표정한 흑의 여인의 시선이 돌연 궁전 위의 누군가에게 옮겨갔다. 싸움이 시작된 이래 떠나지도 나서지도 않던 대두 괴인이었다. 그는 흑풍기의 광풍에도 궁전에 가까이 있어 오히려 멀쩡했다.

    흑의 여인이 눈을 빛내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엽 수사, 가서 팔령척을 본 성조에게 가져오시게! 내가 지켜보고 있는 한 롱몽 수사도 어쩔 수 없으니 안심하고.”

    괴인이 그 말을 듣고는 머뭇거렸다.

    “본 성조가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할까 걱정인 게야?”

    흑의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이마 앞에 드리운 푸른 천을 쓸어 올리더니 멀리 뭉쳐 있는 엽 가 수사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보물을 이용해 백의 유생의 환영을 둘러싸고 있던 엽 가 수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손끝에서 빛이 튀어나오지 않았고 그저 허공을 건드리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엽 가 수사들과 대두 괴인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훅! 훅! 훅!

    그러나 잠시 후, 엽 가 수사 중 여도사와 노인의 이마에 붉은 점이 찍히더니 시체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보호막이고 보물이고 무엇 하나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남은 각진 얼굴의 중년인만이 백골로 만든 고리가 스스로 환영을 일으키며 노란빛을 방출해 반투명한 구슬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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