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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95화 (352/2,000)
  • # 595

    595화. 고마를 베다

    고마를 냉랭히 쳐다보고 선 두 수사는 서 씨 청년과 임은병이었다.

    “너희들을 안다. 천란 초원의 수사라지?  이제 와서 여기서 나가고 싶은 모양인데 이미 늦었다!”

    고마가 그들을 노려보며 본색을 드러냈다. 포악하게 웃어대는 소리가 전송진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 씨 청년도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며 말없이 영수대를 건드렸다. 그러자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오색의 공작이 나타나 그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불가사의한 일은 공작의 전신에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오자 그 주변의 돌풍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고마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영서공작! 상고 영수를 지니고 있다니 놀랍구나. 수행이 낮고 성체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야.”

    고마가 영수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런가요?  일단 오색빛의 위력을 겪어보고 말씀하시지요!”

    서 씨 청년은 고마가 뭐라던 개의치 않고 맑은 소리를 내질렀다. 공작이 그 소리에 반응하듯 두 날개를 맹렬히 펄럭였다. 그리고 오색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고마를 향해 밀려들었다.

    이에 고마는 양 손에 든 보라색 고리를 부딪쳤다.

    쩡!

    듣기만 해도 심장이 요동치고 정신이 아득해 지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곧 두 고리가 고마의 손에서 벗어나더니 보라색 빛줄기로 변해 허공을 뒤덮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마는 수결을 맺어 전신에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마공을 펼쳐 보물의 위력을 높일 생각인 듯 했다.

    맞은 편 서 씨 청년과 천란 성녀도 각각 보물을 발동했다. 하나는 푸른빛을 뿜어내고 또 하나는 은색 실을 분출하는 은색 누에가 수놓아진 손수건이었다.

    그때 허공에서 보라색과 푸른색의 흐릿한 연기 덩어리가 바람을 타고 나타나 고마의 머리 위로 접근했다. 소리와 기운을 완전히 숨긴 고명한 은닉술이었다.

    조용히 접근하던 푸른색과 보라색 기운에서 돌연 영기의 빛이 터져 나왔고 날카로운 발톱과 회색의 실 무더기가 고마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서 씨 청년과 임은병의 공격도 고마의 정면에서 들이닥쳤다.

    누군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숨어들어 기습할 줄 몰랐기에 고마도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조금 놀랐을 뿐 그리 당황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마기로 만들어낸 검은 구렁이들로 몸을 휘감아 푸른빛과 빽빽한 은색 누에 실을 막아냈다.

    그리고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고개를 쳐들고 입에서 마염(魔炎)을 뿜어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마가 머리 위에서 자신을 기습한 자들에게 신경을 빼앗긴 틈에 그의 발밑의 진법 깃발들 주변으로 금빛이 번뜩인 것이다.

    거검이 벼락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솟아올라 허공을 갈랐다.

    극히 빠른 속도라 고마가 거검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친 후였다. 거검의 표면에는 보라색 화염과 금빛 뇌전이 번뜩였다.

    “너는!”

    고마는 순식간에 거검의 주인을 알아차리고 분노했다. 어쩔 수 없이 고마는 네 개의 팔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촤촤ㅤㅊㅘㅅ.

    번뜩이는 손톱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그물을 만들어 거검을 막으러 튀어나갔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쏘아 보낸 공격으로 거검을 막기는 어려웠다.

    순식간에 거검이 그물을 뚫고 고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도 고마는 전신에 새까만 보호막을 만들어 몸을 보호했다.

    쿠쿵.

    굉음이 들리고 거대한 빛덩이가 고마 주변에서 요란스럽게 빛났다. 지면에서 은빛 뇌전을 번뜩이며 나타난 한립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거검이 고마의 몸에 닿기는 했지만 실제로 베어낸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칫.

    요란한 빛 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더니 검은 그림자가 활처럼 튀어나와 한립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죽고 싶은 것이냐!”

    거대한 그림자는 고함을 지르더니 웅웅 진동을 해대며 칠흑 같은 도를 내리 쳤다. 그러나 미리 예상하고 있던 한립은 거대한 도가 다가오자 등 뒤의 풍뢰시를 펄럭여 사라졌고, 새까만 도는 허공을 갈랐다.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난 한립은 신중하게 고마를 응시했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는 당연히 고마였지만 지금은 네 개의 팔 중 세 개만 멀쩡했다. 팔 하나는 절반 정도가 잘려 나갔고 어깨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가슴에는 맹수의 발톱에 베어나간 상처가 선명했다.

    보아하니 여러 수사들이 단번에 공격을 가해 어느 정도 부상을 입힐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한립이 나타난 이후로 고마는 네 개의 눈을 흉흉하게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고마가 두 팔을 벌리자 들고 있던 거대한 도가 두 개로 갈라지며 폭이 좁은 칼날들로 변했다.

    고마가 두 개의 도를 휘두르자 무수히 많은 빛들이 검은 초승달처럼 튀어 나가 한립을 덮치려 했다.

    다른 수사들은 안중에도 없고 일단 한립을 처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수사들 중에 한립과 임은병이 가장 수행이 낮았고, 그만 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마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었다.

    한립은 고마의 흉흉한 공격에도 전혀 긴장하기 않았다. 그저 소매를 털어 은색 방패를 방출했고 조그만 보물이 순식간에 거대하게 변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고마를 힐끗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가 멀리서 태연한 얼굴의 그를 보며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발밑에서 기이한 영기의 흐름이 전해졌다.

    푸학.

    고마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노란 빛에 휩싸인 인영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그의 몇 장 뒤에서 나타났다.

    이어 인영이 낮게 일갈하며 두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도끼가 호되게 내리 꽂혔다. 바로 한립이 미리 땅 속에 숨겨 둔 10급 요수 규령이었다.

    거대한 도끼가 떨어지기도 전에 엄청난 영기의 압력에 주변 땅이 흔들렸다.

    고마는 대번에 안색이 변해 몸을 틀었고, 들고 있던 두 개의 도를 교차해 갈랐다. 도는 검은 빛이 폭발하며 날아드는 은색 도끼를 공격했다.

    콰쾅!

    검은빛과 은빛이 충돌해 폭발했다.

    뜨거운 기운과 서늘한 기운이 섞인 영기의 파동이 도처로 퍼져나갔고 검은 빛은 잠시나마 거대한 은빛 도를 막고는 흩어져 버렸다.

    그 사이 고마가 다른 마공을 펼치려 두 팔로 수결을 맺었고 몸에서 연달아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져나갔다.

    옷이 찢기고 드러난 그의 몸은 검푸른 비늘로 가득해서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게다가 부상을 당한 부위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더니 새살이 돌아나 아물기 시작했다.

    변형을 거친 고마의 육체는 거의 배로 불어났는데 거세게 숨을 내쉬자 진동파가 거대 도끼를 향해 뻗어 나갔다.

    거대 도끼는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허공에 그대로 멈춰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마는 즉시 입으로 기괴한 주술을 읊어댔고 비늘에서 검은 빛이 번뜩이더니 자줏빛 화염으로 전신을 감쌌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은 기이해서 강력한 비술을 이용해 불러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규령은 가슴이 서늘해 졌지만 물러나지 않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그녀도 몸에서 푸른 갑옷이 나타나더니 거대술(巨大術)을 펼쳤다.

    그녀의 몸이 커지자 은색 도끼도 동시에 꺼졌고 더욱 거센 위력을 뿜어냈다. 고마는 자신보다 더욱 커진 상대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심장이 철렁했다.

    이에 그는 끊임없이 주술을 외며 두 손에 쥐고 있던 도를 힘껏 던지고 자신은 뒤로 빠져나갔다. 검은 도와 거대 도끼가 부딪힌 순간 폭음이 들리며 거센 바람이 일어 주위로 흩어졌다.

    고마는 미리 물러나 있었기에 멀쩡했고 오히려 퐁압을 타고 더욱 멀리 벗어나려 했다. 뒤로 물러난 고마는 교활하게 웃으며 세 번째 팔에 들고 있던 푸른 창에 검은 화염을 뿜어내 규령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극히 빠른 공격에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규령의 갑옷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고마는 이에 멈추지 않고 주술을 읊으며 또 다른 비술을 펼치려 했다.

    이번 일격으로 10급 요수가 죽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고마 뒤에서 미약한 검은 빛이 번뜩이더니 한 촌 길이의 비도가 나타나 허공을 가른 것이다. 고마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몸을 틀어 피하려했다.

    그러나 고마의 머리 중 하나가 날카로운 송곳에 찔리기라도 한 듯 아파왔다. 아무리 강력한 의식을 지닌 고마라도 갑작스런 두통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목에 보일 듯 말 듯한 핏줄기가 생기더니 그대로 머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잘려나간 목에서는 핏줄기가 미친 듯이 솟구쳤다.

    멀리 떨어져 있던 한립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수결을 맺고 있었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고마가 느꼈던 두통은 대연결의 양신자(凉神刺)라는 것을 살펴 그가 만든 것이었다.

    의식을 공격하는 방법 중 가장 초보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 대연결의 마지막 몇 성을 익히지 못해 양신자처럼 직접 의식을 찌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실신자(失神刺)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을 사용하고 나면 그 스스로도 한동안 어지러워 연달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고마는 남은 머리의 두 눈을 부릅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괴성을 질러대며 몸에서 대량의 마기를 분출해 전신을 감쌌다. 출렁거리는 마기 속에 몸을 숨긴 것이다.

    그 순간 3, 40장 밖의 공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고마가 풀쩍 그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머리 하나를 베어낸 것만으로 고마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중상을 입힌 것은 확실했다.

    규령이 거대한 도끼를 갖고 나타나 고마의 머리가 떨어져 내리기까지의 모습을 본 서 씨 청년과 은시야차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건 그들이 미리 협의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원래 그들은 협공을 펼쳐 고마를 전송진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립이 고마를 죽이는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마의 목을 자른 비도는 강력한 의식을 지닌 그들조차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만일 저게 내 목을 노렸다면? ’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고마가 남은 머리를 돌려 한립을 향해 악독한 눈빛을 보내곤 검은 기운을 둘러쓰고 흑의 여인 방향으로 날아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더 버틸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고마의 시선을 비웃음으로 받아쳤다.

    갑자기 달아나던 고마 앞에 은빛이 터져 나왔고 누군가 홀연히 등장했다. 화들짝 놀란 고마가 전신의 마기를 끌어올리고는 상대의 두 눈을 마주쳤다.

    “헛!”

    동시에 요사스런 기운의 보랏빛에 머리가 어질해졌다.

    “미혼술!”

    뛰어난 의식을 지닌 고마는 현광정의 미혼술에서 금방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미 비취색 빛이 천둥소리를 내며 날아들고 있었다.

    “벽사신뢰!”

    상고 요마들에게 적잖은 피해를 준 벽사신뢰를 고마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만일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비술을 이용해 어느 정도 막았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억지로 막아내려 한다면 원기가 크게 상할 것이다.

    그래서 고마는 한 손으로 마기를 응결해 검은 방패를 날려 보내고 자신은 몇 장 밖으로 튀어나갔다.

    고마의 신형이 움직인 순간 등 뒤에서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고마가 무언가 대비하기도 전에 은빛 뇌전이 번뜩이며 뇌둔술을 펼친 한립이 나타나 소매를 털었다.

    그리고 보라색 화염으로 만들어진 불뱀과 수십 개의 금빛 소검들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당황한 고마의 머리가 기이하게 돌아가 입에서 검은 진동파를 뿜어냈고 두 팔이 움직이며 검은 도(刀) 두 자루가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고마는 그가 고개를 꺾자마자 머리통만 한 검은 비도가 그에게 날아들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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