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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93화 (350/2,000)

# 593

593화. 고마의 등장

화선종 목 부인은 손에 든 화룡새를 보며 고민하더니 갑자기 일월사 안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베틀 북의 빛이 강해지더니 뜻밖에도 땅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멍청한 짓입니다! 상고 수사들이 지하에도 금제를 쳐놓았을 텐데요.”

한립 곁에 있던 규령이 냉소하며 중얼거렸다.

“그건 모를 일이지요. 곤오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니 금제를 깰 방법을 지니고 있을 지도요.”

한립이 순간 눈을 번뜩였다.

구진복마대진이라는 진법이 드디어 기억난 것이다. 경전에 인계에서 벽사퇴마(闢邪退魔)로는 제일로 불리는 강력한 진법으로 상고 시대 때 인계 수사들이 상고요마를 죽이는데 썼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묘령의 여인을 향해 9개의 금빛 칼날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휘적거려 그 엄청난 공세를 튕겨내 보는 이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립은 그녀가 구진복마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변을 배회할 뿐 함부로 쳐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모인 수사들을 훑어보고 나서는 궁전과 팔령척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팔령척은 두 고마의 출현에 빛을 번뜩이며 울어댔고 주변에 거대한 은색 연꽃이 피어나 그 안에 있던 8마리의 영수 환영이 살아있는 것처럼 더욱 선명해졌다.

“은월, 저 여인이 원살 성조의 화신이 맞느냐?”

한립이 길게 숨을 토해내고는 물었다.

“예, 저 자는 고마 성조의 혼백의 일부이자 오래 전 인계에 침입했던 고마의 삼대 통령 중 하나입니다. 당시 저 자의 손에 죽은 상고 수사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죠.”

은월은 기억을 상당 부분 회복했는지 잠시 침묵하다 원살 성조에 대해 알려주었다.

“고마 성조의 분혼?  대화를 들어보니 너의 원신이 육체에서 쫓겨난 이유가 고마의 분혼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 여인의 몸이…….”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흑의 여인의 몸이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한립이 말을 흐렸다.

“제 몸이 맞습니다. 어떻게 저 자에게 몸을 빼앗기고 기령이 되어 허천정에 갇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오, 그럼 다시 되찾아 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인가?  네가 저 몸의 진정한 주인이니까 말이다.”

“저는 이미 여우 요수의 혼백을 밀어내고 이 몸에서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다시 제 몸을 찾으려면 인계의 공법이 아니라 영계의 공법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수행이 이 지경까지 떨어졌고 기억마저 불완전한데 어떻게 고마의 혼백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다만?”

“다만 저와 롱몽이 힘을 합친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녀가 저를 위해 그렇게 해줄까요?  고마의 혼백을 몸에서 밀어내더라도 바로 저를 봉인하고 육체를 독점하려 들 겁니다!”

은월이 탄식했다. 한립이 침묵하는데 쌍두사비의 고마가 돌연 궁전 쪽의 대두 괴인을 향해 소리쳤다.

“엽 수사, 무엇을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까?  늑대의 혼을 죽이지 못하겠다면 팔령척이라도 손에 넣으십시오. 그럼 성조께서 마기를 주입해 주실 겁니다! 수사의 공법은 마공이 아니고 누군가 팔령척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니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고마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모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대두 괴인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악물고 팔령척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엄청난 기세를 보이던 팔령척이 괴인의 노란 둔광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대두 괴인이 팔령척 앞에 도착했지만 8마리의 영수 환영들은 그를 본체만체 했다.

“담도 크구나!”

궁전 아래에서 누군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리자 대두 괴인은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그가 원래 있던 자리에 쿵,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압력이 지나쳤다. 그 힘에 궁전 지붕이 절반은 잘려 나갔을 정도였다.

이에 대두 괴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늙은 마귀가 어린 후배들 뒤에 숨어 뭐하는 겁니까?  내가 있는 한 팔령척은 아무나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설마 흑풍기(黑風旗)에서 탈출할 줄은 몰랐지만 나를 제압하고 있던 통천령보가 당신을 향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롱몽이 서늘하게 소리쳤다.

“그런가요?  난 롱몽 수사와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 겨우 공간 장벽이 날 얼마나 가둬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흑의 여인은 피식 웃어버리곤 홀연히 뒤로 물러나 금빛을 벗어났다. 그녀가 뒤쪽 허공을 쥐자 검은 마기가 미친 듯이 흘러나왔고 그 안에서 새까만 빛의 깃발이 나타났다.

깃발은 허공을 돌아 흑의 여인의 수중에 들어왔다.

“흑풍기! 말도 안 돼……. 통보결을 익히지도 않은 당신이 통천령보를 조종하는 겁니까!”

롱몽의 어조가 다급해졌다.

“물론 통보결을 익힐 시간은 없었지요. 허나 나 같은 성조들에게는 마화(魔化)라는 신통이 있다는 것을 잊으신 겁니까. 제 아무리 통천령보라도 친히 마기를 주입하면 잠시 동안은 내 명을 따를 수밖에요.”

흑의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수중의 검은 깃발을 펄럭였다.

꽈앙!

깃발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며 공간이 흔들렸다. 수사들은 공간의 기운이 사라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대경실색했다.

물론 한립도 화들짝 놀랐다. 이번 싸움은 확실히 원영기급 수사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그가 재빨리 입술을 달싹이자 뒤쪽에 서 있던 규령이 눈을 빛내며 노란빛으로 변해 땅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한립은 도처를 빠르게 훑으며 맞은편 구석 어딘가를 주시했다.

고마들 뒤편에 나타난 검은 전송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검은 전송진 주위에는 진법 깃발들이 꽂혀 결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건…….”

한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에 들어오며 보았던 흑백의 전송진을 떠올리며 희색을 드러냈다.

그가 시선을 돌리다 서 씨 청년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흠칫하며 모른 척 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만했다. 천란 초원의 대선사도 이곳을 벗어날 유일한 입구를 찾아낸 것이다.

이때 흑풍기를 불러들은 흑의 여인이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궁전 방향으로 다가갔고 고마가 그 뒤를 따라갔다.

고마들이 접근하자 당연히 구진복마진의 강력한 금제가 발동해 이전보다 강렬한 금빛이 흉흉하게 날아들었다.

흑의 여인이 냉소하더니 두 손으로 깃발을 쥐었다. 그러자 검은빛이 터져 나가며 새까만 보호막이 나타나 두 고마를 휘감았고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흉흉하기 그지없던 금빛이 검은 보호막에 닿자마자 허물어지듯 사라진 것이다.

새까만 보호막의 표면에는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 흑의 여인은 보호막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구진복마진의 금제 내부로 들어갔다.

9개의 거대한 칼날이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떨다가 신비로운 주술이 표면에 떠올랐다. 거대한 칼날이 신속하게 작아져 9개의 금빛 장도로 변한 것이다.

금빛 장도는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요란한 빛을 뿜으며 마치 9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수사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이에 흑의 여인의 태연하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새까만 보호막이 배로 두꺼워졌고 매끈한 검은빛을 번뜩였다. 그리고 그때 9개의 금빛 장도가 동시에 흑의 여인을 주시했다.

팟.

예리한 빛이 번뜩이고 아홉 줄기의 미세한 금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흑풍기가 만들어낸 보호막에서 금빛들이 폭발하더니 눈부신 빛으로 주위를 잠식해 나갔다.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공격에 아무런 폭음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하게 퍼져나간 금빛 폭발이 더욱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한립은 모두가 그들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는 틈을 타 빠르게 움직였다. 이에 영수대 하나가 소매 속으로 사라졌고, 등 뒤로 숨긴 두 손을 타고 금빛 꽃잎 같은 것이 흘러내려 사라져갔다.

아무도 모르게 수천 마리의 서금충들을 땅 속으로 보낸 것이다. 한립이 한숨을 쉬는데 구진복마진 속의 흑의 여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둬들여라.”

금빛 속에서 한 장 크기의 새까만 구멍이 나타나더니 금빛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흑의 여인은 금빛을 방출해 공격하려는 금빛 장도를 보더니 궁전을 향해 외쳤다.

“롱몽 수사, 구진복마진으로 내 마기를 허비하게 할 생각은 마십시오. 흑풍기는 통천령보 중에서도 보기 드문 공간 계열 보물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공격이라도 가차 없이 공간을 베어내지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얌전히 나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본 비더러 나가서 뭘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설마 나와 다시 하나의 혼백이라도 되고 싶으신 겁니까!”

궁전 안에서 롱몽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진복마진이 상대에게 통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투였다.

“맞습니다. 본 성조는 수사의 원신과 다시 융합하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늙은 마귀가 나를 바보 취급하나본데. 그 말을 내가 믿을 성 싶습니까.”

롱몽이 콧방귀를 뀌며 불신을 드러냈다.

“당연히 이전과 같은 상태는 안 되겠지요! 일단 수사에게 금제를 걸어 융합 후에도 내 원신이 주가 되도록 하면 될 일 아닌가요?”

흑의 여인이 웃으며 손에 든 깃발을 흔들어 거대한 검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9개의 금빛 장도가 분출한 금빛 실들이 구멍 속으로 사라져갔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보아하니 금제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잠이 덜 깬 것입니까?  내가 그런 황당한 일에 응할 거라 보십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진짜 무슨 생각인지 말씀해 보시지요.”

“진짜라……. 수사도 여러 번 융합을 하며 이미 아셨을 겁니다. 단독으로 육체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나와 융합을 하면 화신기 수사조차 환묘천상(幻妙天象) 속에 던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요! 인계 수사들의 협공 속에 다시 봉인 당할 생각이 아니라면 원신을 융합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인계에서 두려울 것 없던 고마 통령께서 고작 화신기 수사 몇을 걱정하시다니,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흑의 여인의 말에 롱몽이 생각하다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때는 성계와 인계가 통해 우리 성족들은 손실된 마기를 보충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통로도 막히고 인계의 천기원기조차 변해 강력한 신통을 펼칠 수가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화신기 수사들을 꺼리는 것이 이상한가요?  수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직도 자신이 영계 요족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의 원영을 위주로 융합하자는 제안은 절대 수락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게다가 아무리 마기를 주입해 잠시 통천령보를 부릴 수 있어도 본래 위력의 절반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내 원신이 주가 되는 융합이 아니라면 꿈도 꾸지 마십시오.”

거침없는 롱몽의 말에 흑의 여인의 얼굴이 음산해졌다.

“흠, 구진복마진과 팔령척을 상당히 믿는 모양인데……. 마음대로 하시지요! 본 성조가 친히 수사를 제압하고 원신 속의 혼백의 힘만 뽑아내고 없애면 그만인 것을요. 그렇게 해도 효과는 비슷할 겁니다.”

흑의 여인은 살벌하게 경고하고는 주위에서 숨죽이는 수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고마를 향해 낮게 무어라 속삭이자 쌍두사비의 마물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튀어나갔다.

단번에 진법 범위를 벗어난 고마가 검은 전송진 옆 허공에 나타난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한립을 비롯한 수사들이 흠칫 놀라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렇게 되면 기회를 보아 몰래 빠져나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립은 그나마 다른 준비를 해두어서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은사야차와 사금수 등이 순식간에 신형이 흐릿해져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서 씨 청년도 어두워진 얼굴로 천란 성녀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엽 가의 수사들은 백의 유생을 감싸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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