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590화 (347/2,000)

# 590

590화. 금마환과 빙혼곡

사실 현청자도 다른 이들이 죽든 말든 큰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봉인에 틈을 만든 것이 엽 가라는 정보가 들어와 자세히 알아보려는데, 종 내에서 반드시 천마종 칠묘 진인과 같이 안에 들어가 일을 해결하고 다른 수사들의 진입을 막으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명령을 비밀리에 내린 수사의 신분이 태일문 내에서도 특수해서 감히 반항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청자의 신분에 힘만 들고 얻는 것 없는 이런 일에 나설 리가 만무했다.

나중에 서신이 적힌 옥간을 받아 보고서야 이곳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현청자는 화들짝 놀라 일전에 건 노마 등을 순순히 들여보내 준 것을 크게 후회했다.

이제 그는 결코 다른 수사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수사들이 들어가 일을 망쳐 그것이 봉인을 깨고 나오면 인계에 적수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안에 통천령보라는 보물이 있는데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가게 둘 수도 없었고 말이다.

현청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헛기침을 했다. 또 무슨 소리를 해서 상대를 달랠까 고민하는데 멀리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종과 태일문이 막아서는 길을 굳이 가실 분이 있으십니까.”

그 소리를 듣자마자 라 씨 노인의 안색이 달라졌고 멀리서 검은 빛줄기가 날아들어 모두의 앞에서 멈추었다.

빛이 가시고 미색(米色)의 장포를 걸친 매부리코 중년 문사가 나타났다. 그는 라 씨 노인과 녹색 안개 속의 수사를 서늘하게 훑어보았다.

“칠묘 진인!”

라 씨 노인이 단박에 문사를 알아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대의 수행이 현청자를 압도해서가 아니라 천마종의 집법 장로로서 잔인하고 악독한 손속으로 유명한 마두였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요. 귀 종과 태일문이 나섰는데 며칠 더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라 씨 노인이 웃으며 무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이에 녹색 안개 속의 수사도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정도와 마도 제일의 종파가 손을 잡은 듯하자 주변의 수사들도 동요했다. 정마 제일의 종파에서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봉인의 균열 뒤에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멀리서 일고여덟 명의 천마종 수사들이 날아왔는데 놀랍게도 전부 원영기 수사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진법 법기와 원반을 투척해 강력한 금제를 펼치기 시작했고 짙은 안개가 생겨나 균열의 입구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그리고 현청자와 칠묘 진인 등이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현청자가 진법 중심에서 한숨을 돌리고는 칠묘 진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칠묘 형께서 예상보다 빨리 와주셨습니다. 빈도만으로는 다른 수사들을 막기 어려웠는데 역시 이런 일에는 명성이 자자한 분이 나서야 하나 봅니다.”

“그 명성이 악명은 아니고요?”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중년 문사의 서늘한 물음에 현청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것은 됐습니다. 어차피 우리 둘 다 명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음라종 수사들이 들어갔다니 건 노마가 나선 것입니까?”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산수들과 함께 봉인 속으로 들어간 후였습니다. 나중에 음라종과 천란 초원의 수사들을 들여보낸 것은 그 중에 대선사가 있기도 했고 아직 이곳에 대해 모를 때라 딱히 막을 이유가 없었고요.”

현청자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화선종 여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엽 가가 통천령보의 모조품으로 시선을 끌고 이런 일을 꾸미고 있을지 누가 알았습니까. 오래 전에 심어둔 엽 가 내부의 첩자가 아니었으면 진짜 통천령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모를 뻔 했어요!”

칠묘 진인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안타까운 일은 엽 가의 감시가 심해 소식이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펼치려는 결계의 일부를 망가트리고 혼란을 틈 타 날아나서야 소식을 알릴 수 있었으니까요. 조금만 더 빨리 알았으면 봉인을 깨지 못하게 했을 텐데요. 아무리 통천령보가 진귀한 보물이라지만 고마 성조의 화신이 탈출한다면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입니다. 건 노마가 들어간 지 오래이니 벌써 봉인을 깨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현청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건 노마도 그리 아둔한 자는 아니니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대진과 상관없는 천란 초원 수사들이 걸리는군요.”

“오, 귀 종과 찬란 성전이 어느 정도 교분이 있다 들었는데 그렇게 경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교분은 무슨, 그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입니다.”

“상고 수사들의 봉인은 그렇게 쉽게 깰 수 없을 것이니 아직 늦지 않았다면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고마의 분신이 탈출했다 해도 오랜 시간 금제의 억압을 받아 원기를 크게 상했을 테니, 금마환(禁魔環)을 가지고 우리가 협공한다면 다시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마환이라면 영계에서 요마를 제압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제련한다는 상고 법기가 아닙니까!”

“고마가 인계에 침입했을 때 영계 수사들이 고계 고마를 제압하려 사용한 보물이지요. 아무리 고마의 분신이라 해도 금마환 다섯 개면 얌전히 제압당할 겁니다.”

놀란 현청자를 보고 칠묘 진인이 냉소했다.

“이번 임무가 너무 위험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칠묘 진인께서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 오실 줄은 몰랐는데 안심이에요!”

현청자는 한결 안색이 편해졌다.

“제가 이런 보물을 어디 가서 구하겠습니까! 종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쓰라고 내준 것이지요. 태일문에서는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았습니까?”

“급히 이곳에 먼저 오느라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천아신검(天阿神劍)을 지니고 있으니 도움은 될 것입니다.”

현청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천아신검이면 요마를 상대하기에 최상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서신에 최악의 순간이 아니면 고마를 죽이지 말고 다시 봉인하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냥 죽이면 영원히 후환이 사라질 텐데요!”

“누가 알겠습니까! 저도 같은 명령을 받았으니 무슨 의도가 있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상고 수사들도 죽이지 않고 봉인한 것을 보면 특수한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되겠지요.”

칠묘 진인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서 서두르시지요.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가 사단이 날까 걱정입니다. 영귀비차(靈龜飛車)는 갖고 오셨겠지요?”

현청자가 봉인의 틈을 바라보며 말했다. 칠묘 진인이 그 말에 웃음 지으며 소매를 털었고 검은 빛이 퍼져 나와 두 수사의 앞을 선회했다.

별안간 몇 장 크기의 마차가 나타났는데 거대한 거북 등껍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칠묘 진인과 현청자가 같이 온 수사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몸을 날려 마차 속으로 들어갔다.

영귀비차가 검은 빛줄기로 변해 즉시 봉인의 속으로 사라졌다.

* * *

진환산맥(眞桓山脈)은 대진의 사대영맥 중 하나로 정도 제일종 태일문에 위치고 있었다.

사실 태일문은 정마를 막론하고 가장 큰 규모의 종파라고 할 수 있었다. 천마종과 만요곡이 간신히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고 대진에 그만한 세력을 지닌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십만 리에 달하는 진환산맥의 영산들이 모두 태일문 수사들의 통제 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빙혼곡(氷魂谷)은 거대한 산맥의 수많은 골짜기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곳은 사계절 내내 봄날같이 따뜻한 진환산맥의 다른 골짜기들과 달리 영기가 희박하고 뼈가 시릴 정도의 음풍이 불어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다.

일부러 찾아 가라고 해도 다들 고개를 내저을 극악한 환경이었지만 태일문에서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금지(禁地) 중에 하나였다.

일반 제자들에게 빙혼곡에 대해 물어도 대다수가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랬기에 골짜기 입구에는 환영진이 펼쳐져 있을 뿐 다른 강력한 금제가 불필요 했고 따로 지키는 수사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백 년간 아무도 안으로 들어간 일이 없었고 간혹 고위층 장로가 이곳을 찾아도 감히 안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남강에서 칠묘 진인과 현청자가 봉인의 틈으로 진입했을 때 병색이 가득한 회색 장포의 노인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는 골짜기 입구의 환영진을 보며 조소하더니 녹색 빛줄기로 변해 아무렇지 않게 그곳을 지나쳤다.

잠시 후 골짜기 안에 들어선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얼음벽을 바라보던 그가 냉랭히 입을 열었다.

“백 노괴!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 계속 그 속에 들어앉아만 있을 겁니까?”

노인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골짜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빙벽이 무너질 것처럼 부르르 떨려왔다. 회색 장포의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내의 한숨소리가 빙벽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호 수사께서는 마타산(魔陀山)에서 요양이나 하시지 않고 빙혼곡에는 웬일이십니까?  저는 청한 기억이 없는데요.”

“뭐 나라고 좋아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다 곤오산 때문이지요.”

회색 장포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췄다.

“곤오산이라면 이미 각 종파의 문하의 제자들을 보내 놓은 것으로 아는데요?  또 무슨 일입니까!”

빙벽 속의 사내가 감정 없는 말투로 물었다.

“그렇게 간단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향 노괴가 곤오산에서 변고를 당한 것 같습니다.”

“향 노괴가요?  잘못 아셨겠지요. 우리 늙은이들 중에서도 신통이 제일 뛰어난 수사인데 무슨 일을 당했겠습니까.”

회색 장포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말하자 빙벽 속의 인물도 그제야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겟지만 풍 노괴가 직접 비검전서(飛劍傳書)를 보내온 소식입니다. 원래 향 노괴와 풍 노괴가 친분이 두텁지 않습니까. 서로 원신주(元神珠)를 나눠가진 모양인데 곤오산이 나타나고 하필 근처를 지나던 향 노괴가 살펴보러 들어간 후에 원신주의 빛이 희미해졌다고 합니다.

중상을 입었거나 강력한 금제에 갇혔다는 뜻인데……. 하필 풍 노괴도 직접 처리할 골칫거리가 있어 가보지는 못하고 우리에게 대신 다녀와 달라더군요! 그 대신 혈기단(血氣丹)을 하나씩 주겠답니다.”

“혈기단이라니 풍 노괴도 큰마음을 먹었나 봅니다. 그런 단약이라면 수명을 수십 년은 연장해줄 텐데요. 그런데 풍 노괴는 향 노괴가 곤오산에서 일을 당한 것은 어찌 알았답니까?”

빙벽 속의 사내가 신중히 물었다.

“그렇게 치밀하게 움직이는 향 노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곤오산에 들어갔겠습니까. 그 전에 기검전서로 풍 노괴에게 소식을 전했겠지요! 백 수사, 같이 가볼 겁니까 말겁니까?  혈기단을 직접 제련하려면 적잖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노인이 은근히 같이 갈 것을 권했지만 빙벽 속의 사내는 침묵하며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됐으니 다녀오시고 싶으시면 혼자 다녀오십시오.”

“혈기단이 걸려 있는데도요?”

“혈기단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마물이 봉인을 벗어나면 우리의 힘으로도 상대할 수 없을 거라 두려워하는 겁니까?”

노인이 냉소했다.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지요! 금제에 오랫동안 억압을 받았으니 원기를 크게 상하기는 했을 겁니다. 상고 대전 때처럼 날뛸 수야 없겠지요. 기껏해야 무리하게 연허기(煉虛期)의 신통을 발휘하는 정도일 겁니다.”

“그럼 왜 가지 않는다는 겁니까?”

“3년 전에 화정조(火精棗)를 복용했습니다. 영물의 힘을 빌려 강제로 수련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터라 같이 갈 수가 없어요!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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