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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89화 (346/2,000)

# 589

589화. 연합

한립은 자신을 노려보는 은시야차를 모른 척하고 주위를 살폈다. 정말 싸움을 벌이겠다면 규령이 상대하게 하면 그만이었다.

“한 수사, 아까 보니 건 노마와 싸우시던데 어찌 되었습니까?  설마 수사의 손에 노마가 당한 것은 아니겠지요.”

화선종 목 부인이 갑자기 미소를 지며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수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북극원광 속에서 수사들을 습격하던 분이시군요. 부인의 존함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악의적인 언사에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그녀와 수려한 미모의 여인을 훑었다.

“여기서 저희를 모르는 수사는 한 형 뿐입니다. 저는 남강 화선종 출신으로 이곳 토박이나 마찬가지지요. 한 형의 얼굴이 너무 낯선데 대진 수사가 아니신가 봅니다.”

목 부인의 표정은 매혹적이었지만 시선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제 출신은 상관하실 것 없고, 곤오전에서 두 분의 환대를 받았으니 돌려드릴 날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건 형은 저와 실력을 겨루다 사라졌으니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한립이 무표정하게 내뱉은 거짓말에 옆에 서 있던 규령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목 부인은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명성이 자자한 건 노마가 상대의 손에 죽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낯선 얼굴의 수사들은 한립과 여러 수사들의 대화를 듣고는 서로 눈짓해 돌 거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 중 원영 후기의 유생이 입술을 달싹여 한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다른 분들과 그리 돈독해 보이시지 않습니다. 저는 엽 가의 대장로로 대진 황가의 일족입니다. 저희와 연합하시겠다면 팔령척을 제외한 보물은 수사에게 모두 넘겨드리지요. 어떠십니까?”

한립은 전음을 듣고도 티를 내거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저희 엽 가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통천령보 같은 보물은 수사가 얻는다 해도 지키기 어려울 것 아닙니까.”

유생은 한립의 수행과 규령을 부리는 것을 보고 포섭하려고 마음먹은 듯했다.

잠시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엽 가가 대진 제일의 세가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무리 중에 대수사가 둘이라고 들었는데 한 분은 어디 계십니까?”

한립이 눈을 빛내며 그들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고마는 보이지 않았다.

“저희 엽 가에 대해 이리 자세히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집안 어르신인 원영 후기의 수사가 동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연락이 닿지는 않지만 중요한 순간이 오면 반드시 힘을 보태주실 것입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궁전 속에 또 다른 보물이 없다면 저는 괜히 다른 수사들과 척을 지고 괜한 짓을 한 꼴이 될 텐데요.”

“제게 곤오산의 다른 곳에서 얻은 보물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곳에 팔령척 외에 다른 보물이 없다면 그것을 내드리지요! 만일 다른 수사들과 척을 지는 것이 우려되신다면 앞으로 엽 가의 객경장로로 모시거나 영석 백만 개를 대가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관심을 보이자 하얀 장포를 입은 수사가 서둘러 조건을 제시했다. 그도 대두 괴인과 엽 가 수사들이 종적을 감추자 마음이 조급했던 것이다.

“객경장로는 되었고 영석은 구미가 당깁니다. 어차피 저야 대진을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그럼 힘을 보태기로 한 것입니까?  수사께서는 상황을 보아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고민을 하던 한립이 웃음을 지으며 답하자 유생이 반색하며 좋아했다.

“주인님, 정말 팔령척을 저들에게 넘겨주시려고 하십니까?”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은월이 그들 사이의 전음을 듣고는 불쑥 물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다. 연합이라지만 그저 말 몇 마디에 불과한 약조를 상대라고 지키겠느냐?  엽 가에서 자신들의 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나를 포섭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일 게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진법을 파훼하면 팔령척을 누가 갖게 될지는 각자의 실력에 달린 것이겠지요.”

한립의 답에 은월이 탄식하듯 답했다. 그때 하얀 장포의 유생이 법력을 끌어 올려 다른 수사들을 향해 외쳤다.

“기왕 한 수사께서 합류했으니, 우선 다함께 상고 진법을 깨트리자는 약조에 따르면 되겠지요?”

“우리로 이미 충분한데 굳이 그럴 것 있습니까! 당장 저 자를 처리하고 진법을 파훼해도 될 것을요.”

서 씨 청년이 냉소했다.

“말은 쉽습니다만 바깥의 봉인 결계가 시시각각 약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유생은 얼굴을 굳히며 경고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바깥에 이미 태일문의 현청자가 와있고 천마종의 칠묘 진인마저 이곳을 향하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정마제일문의 수사들이 모여들기 전에 팔령척을 차지할 시간은 넉넉히 따져 봐도 오늘 뿐입니다.”

목 부인이 이마 앞에 드리운 푸른 천을 들썩이며 나섰다.

태일문! 천마종!

세 요물을 제외한 모든 인간 수사들이 화들짝 놀랐고 특히 엽 가 대장로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서 씨 청년과 임은병마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난색을 표했다.

천란 성전과 천마종은 교류가 있기는 했지만 곤오산의 보물을 나눠가질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당장 진법을 깨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시다. 진법이 깨진 후에는 누가 통천령보를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서 씨 청년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고 다른 수사들과 은시야차 등도 나름 생각이 있는지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입 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소매 속에서 열댓 자루의 금색 비검을 방출해 거침없이 돌거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분분히 달려들어 맹공을 펼치자 쩌렁쩌렁한 폭음과 영기의 빛이 터져 나왔다.

다들 궁전을 둘러싸고 괴뢰대진을 부수느라 화선종 여인들이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저, 정말 저들을 도와 진법을 공격해야 합니까?  팔령척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 어르신이 말씀하신 고마 성조가 봉인된 곳이 아닐까요?”

수려한 얼굴의 여인이 목 부인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이곳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그런 마물이 봉인되어 있었다면 진작 화룡새가 반응을 보였을 것이야. 우리가 진법을 깨야하는 이유는 팔령척 때문이 아니라 곤오산 금제의 핵심인 진법의 눈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봉인을 다시 공고히 하려면 화룡새를 들고 마지막 층으로 가 술법을 행해야 하는데 다른 입구가 보이느냐?  분명 팔령척과 괴뢰진법이 9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목 부인은 미리 생각해둔 바를 설명해주었다.

“그랬군요. 어쩐지 사저가 바로 봉인을 강화하지 않고 저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이유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팔령척은…….”

“팔령척은 우리 화선종의 선조가 남긴 유산이나 마찬가지이니 우리가 회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텐데요.”

“네가 지닌 사상척은 팔령척의 모조품이다. 보물을 차지할 때 유리한 효과를 보일 수도 있겠지. 게다가 향 어르신이 곧 오실 거라는 것을 잊은 게냐?  그 때가 되면 누가 통천령보를 지니고 있든 얌전히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야. 우리 화선종과는 인연이 깊은 분이니 사정하면 팔령척을 넘겨주실 가능성도 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용한 전송진 말고 나머지 검은 전송진은 어디로 통하는 것일까요?  거기에 고마가 봉인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전송진이 효력을 잃지만 않았다면 직접 들어가 보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누가 알겠느냐. 어쨌든 우리 종문에 남겨진 경전에는 고마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으니 나도 모르겠구나.”

수려한 여인의 근심어린 질문에 목 부인도 얼굴을 굳혔다.

그들은 몰랐지만 인근의 또 다른 공간에서 고마 성조가 겹겹이 펼쳐진 구속을 벗어나려하고 있었다.

검은 거울, 옥으로 만든 연꽃, 둥근 고리, 화살, 새까만 병까지 다섯 개의 마기(魔器)가 머리가 둘 달린 거대 늑대 위에 떠올라 각각 검은 빛기둥을 분출하고 있었다.

빛줄기들이 방대한 은색 늑대의 몸에 흡수될수록 음산한 마기의 빛이 짙어졌고 빼곡하게 붙어 있던 부적과 사슬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적과 검은 쇠사슬도 대단해서 금제의 효과를 거두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사방팔방의 노란 거울들이 공명하며 노란 빛줄기를 더욱 거세게 방출한다는 것이었다.

쌍두사비의 고마가 허공에 떠서 네 개의 팔로 수결을 맺어 마기들을 조종하고 있었는데 그의 시선이 은색 늑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아래쪽의 검은 전송진은 회색의 진법 깃발로 둘러 싸여서 운행을 멈추었다.

이제 은색 늑대의 검은 머리는 완전히 마화되어 머리에 뿔이 커지고 검은 뇌전을 번뜩였다. 늑대의 두 눈에서 보라색 화염이 이글이글 쏟아지더니 시선이 닿는 곳의 부적들을 태워나갔다.

고마 성조의 분신이 다섯 개의 마기 덕에 기력을 차리고 술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곧 은색 늑대의 몸에 붙은 부적이 마지막 한 장까지 사라져버렸다.

검은 늑대 머리가 늦게 으르렁 거리자 안 그래도 거대한 육체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들이 뿜어내던 노란 빛기둥들은 늑대의 팽창을 잠시 막아냈을 뿐 곧 깨져나가며 사라졌다.

도리어 가장 평범해 보이던 대주천성진련(大周天星辰鏈)이라는 쇠사슬이 마지막까지 빛을 번뜩이며 늑대를 구속했고 표면에 하얀 화염이 일기 시작했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약한 냄새가 퍼져나갔고 사슬의 하얀 화염은 늑대의 검은 보호막에 아랑곳 않고 은백색 털과 가죽을 태워나갔다.

검은 늑대 머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보통 화염이 아닌 것 같았다. 지켜보던 고마도 화염을 보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상고 수사들이 순양백골화(純陽白骨火)를 사슬 속에 숨겨 놓았다니!”

그때 검은 늑대 머리가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뿔에서 검은 뇌전 덩이를 분출했다.

꽝!

뇌전 덩이가 폭발해 무수히 많은 검은 뇌전을 방출해 사슬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하얀 화염과 검은 뇌전이 섞여 싸우니 기이한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검은 늑대 머리는 눈에서 보라색 화염을 일렁이며 입에서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파도처럼 밀려든 검은 기운이 금제를 훑고 지나갔는데 그 기세가 엄청났다.

고마가 그것을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오래 갇혀 있어 수행은 낮아졌어도 성조의 분신이 지니고 있던 신통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 * *

곤오산 봉인 금제의 균열 입구.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수사들은 이제 2, 3백 명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현청자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남은 수사의 수는 적어졌지만 거의 결단기 이상이었고, 원영기 수사만 해도 열댓 명은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현청자가 원영 후기의 대수사라도 태일문의 명성이 없었다면 이들이 지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현청 수사께서는 저희를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할 참입니까! 이곳에서 기다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무리 속에서 붉은 기운이 가득한 노인이 참다못해 나섰다. 불편한 기색의 노인은 원영 중기의 수사였다.

“라 수사, 빈도가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봉인 결계의 틈이 불안정해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제가 말리는 것이라고요.”

현청자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면서도 태연하게 대처했다.

“음라종과 화선종 수사들이 들어갔다던데 그건 어찌된 일입니까!”

“목 부인과 건 형은 일월사와 영서공작을 지니고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라 형도 그런 보물이 있다면 말리지 않을 것이니 들어가시지요! 하지만 어차피 며칠만 기다리면 균열이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불퉁거리는 노인의 물음에도 현청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 며칠 동안 다른 수사들이 안의 보물을 전부 차지하면 어쩌고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며 녹색 안개에 휩싸인 인물이 나섰다.

“벽린애(碧燐涯)의 우 수사시군요.”

현청자가 그를 알아보고 슬쩍 미간을 좁혔다. 큰 종파의 수사는 아니었지만 독공으로 유명해서 아무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부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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