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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87화 (344/2,000)

# 587

587화. 의혹

마룡인은 수사를 죽이면 피와 살 그리고 혼백을 빨아들여 연화시키는 악독한 신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수사들을 살육할수록 위력이 강해져서 예전에는 그것으로 화신기 수사를 베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수사를 살육하며 마룡인의 위력을 키우면 거의 통천령보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물론 통천령보나 마룡인 모두 인계에서 사라진지 오래라 실제로 비교해본 인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외양이 엇비슷하고 수사의 원영이 무사한 것으로 보아 마룡인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 희귀한 마도의 보물 중 하나겠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규령이 중얼거렸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한립도 고개를 끄덕이곤 진마탑 방향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산봉우리의 면적이 줄어 있었다.

‘곤오산이 인계의 선산(仙山)이라 불렸으니 통천령보가 숨겨져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립은 허천정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규령과 인간형 꼭두각시의 도움이 있다면 통천령보를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았다. 건 노마의 저물대에서 찾아낸 7, 8개 정도의 고계 영석들도 꼭두각시가 위력을 발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인님 가서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진마탑은 느낌이 묘합니다. 마치 무언가가 거기서 저를 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주 익숙한 느낌이라 제 잃어버린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은월이 머릿속에서 중얼거렸다.

“무언가가 널 부른다고?”

“예! 애매한 느낌이지만 이번 기회를 잃으면 언제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은월이 그가 진마탑으로 가주길 원하고 있었다. 침묵하던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 가보자꾸나! 나도 통천령보에 흥미가 생겼으니.”

“감사합니다, 주인님!”

은월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규 수사, 통천령보가 나타났다니 한번 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수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이 자는 어찌할까요?”

규령이 약간 몸을 굽히며 차분히 물었다.

“저는 아는 바를 전부 말해주었습니다. 아무 짓도 안한다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 아무 짓도 안할 거라고는 하지 않았지요. 혼백을 고문하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원망하려면 자신이 음라종 장로인 것을 원망하세요.”

담담히 말을 마친 한립이 입을 벌려 굵은 금빛 뇌전을 방출했다. 뇌전에 맞은 원영이 절규하며 산산이 부서져 나갔고 녹색 깃발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한립이 눈을 빛내며 그것을 불러들였다. 귀라번이었다.

그는 추혼술을 통해 깃발이 대단한 보물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열여덟 개의 깃발을 모을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상상이상일 것이다.

어차피 음라종과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였으니 한립은 고민할 것도 없이 귀라번을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아직은 별 쓸모가 없었지만 음라종이 지니게 할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 음라종은 귀라번을 잃어버리기도 망가트리기도 했다. 그러면 강력한 위세를 이용해 귀라번을 회수하거나 다시 새로운 깃발을 제련해내서 열여덟 개를 채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몇 번에 불과했고 이렇게 여러 개의 깃발을 잃어버린 적은 전무후무했다. 아무리 음라종의 재력이 넘쳐나도 깃발을 전부 다시 제련해 배양을 하려면 단시간 내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갑시다. 이미 누군가 보물을 손에 넣었을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한립이 진마탑 방향을 바라보며 먼저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고 규령이 그 뒤를 따랐다. 돌계단 양 옆에 이상한 금제가 펼쳐져 있어 가로질러 갈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가 원래 있던 백옥광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진마탑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얼마가지 않아 돌이 부서지고 계단이 깨져나간 곳이 나타났다. 그가 무시하고 달려 나가려는데 곁에 있던 규령이 무언가를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상한 마음에 한립도 같은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부서진 돌덩이 틈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팔뚝이 튀어나왔다.

소매를 털어 푸른 돌풍을 만들어내자 돌덩이들이 날아가고 그 밑에 깔린 백골이 드러났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백골의 복장과 머리 모양이 눈에 익었는데, 이는 바로 구유종의 부 노인이었다. 그는 자유주를 쥐고 부서져 있었다.

한립은 조용히 백골을 지켜보았다.

‘온갖 고생 끝에 겨우 배영단을 제련해 내고는 이곳에서 허무하게 죽다니! 수도의 길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구나!’

복잡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는 수사이십니까?  백골의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분명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피와 살점이 하나도 없고 원영이 뚫고 나온 흔적도 없습니다. 등 쪽에 도검류의 보물에 당한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규령이 사체를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음라종 장로를 죽인 것과 같은 보물에 당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수사를 죽이는 마도 공법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이전에는 원영이라도 빠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누군가 마룡인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마룡인이 수사들을 죽여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 빨리 위력이 급증할 수는 없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사산 진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암습을 한다는 점입니다. 음라종에 이어 구유종 장로까지 건드리다니 감히 일개 산수가 할 수 없는 짓이지요. 게다가 십대종파의 장로를 죽이고 시체도 없애지 않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요?”

한립은 다시 백골을 살피며 의혹을 드러냈다. 백골 주변에 저물대가 보이지 않으니 배영단은 사산 진인의 손에 있을 것이다.

규령도 갇혀 있던 곳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결론을 내릴 수 없자 한립은 불덩이를 날려 백골을 재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도 조심해야겠습니다. 방심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겠어요.”

한결 어두워진 얼굴로 그가 고개를 들어 남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규령이 그 말에 흠칫 놀라 추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냉소했다.

잠시 후, 그와 규령은 드디어 계단의 끝에 이를 수 있었다.

말이 끝이지 원래 계단의 끝은 아니었고, 그저 그 뒤의 계단들이 사라지고 가파른 낭떠러지가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푹 꺼진 곳을 내려다보았지만 얼마나 깊은지 보이지 않아 한립이 턱을 문질렀다.

“보아하니 다른 수사들은 전부 내려앉은 진마탑으로 향했나 봅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규령도 오면서 들은 바가 있기에 절벽을 앞에 두고 중얼거렸다.

“규 수사, 진마탑에 어떤 마물을 가둬두고 있는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전의 저는 곤오산을 지키라고 가둬둔 요수에 불과했으니 상고 수사들이 그것까지 알려 줄 리 없지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되기 전에 이곳에서 강력한 마기를 느꼈습니다. 당시 제 수행이 높지 않아 마기의 주인이 어느 정도 수행을 지녔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지만요.”

잠시 주저하던 규령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럼 됐습니다. 아무리 요마가 강력했더라도 이렇게 오랜 세월 갇혀 있었다면 훨씬 약해졌겠지요. 아래쪽에 많은 원영 후기 수사들이 모였으니 상대할 만 할 겁니다.”

한립이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어 그는 규령을 불러 표표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없었는데 거의 일다경을 내려가고도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아 한립도 그 깊이에 놀라고 말았다.

이미 주위가 어두컴컴해서 도저히 육안으로는 무언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보통의 수사였다면 의식도 제안을 받아 수십 장 거리 밖에는 보지 못했겠지만 한립은 명청령안을 이용해 수백 장을 살필 수 있었다.

그때 규령이 목소리를 낮추며 알렸다.

“한 수사, 곧 바닥에 이를 듯합니다.”

과연 아래쪽에 빛이 반짝이며 높다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것을 내려다보던 한립의 눈에 옆쪽에서 핏빛이 번뜩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피비린내가 속을 어지럽혔다.

‘사산 진인!’

순간 기습을 당한 이들이 떠올라 한립은 흠칫 놀랐다. 핏빛은 번개처럼 빨라 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한립은 재빨리 손을 뻗어 은빛 찬란한 작은 방패를 방출했다. 원강순이었다.

방패가 순식간에 불어나 보호막을 만들어 그의 앞을 막아섰고 핏빛이 날아들어 그것을 덮쳤다.

스륵!

핏빛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한 장 길이의 장도가 사납게 보호막을 갈랐다.

특이한 모양의 도(刀)는 너비가 손가락 두 마디가 되지 않았고 종이처럼 얇아 요사스러운 핏빛을 머금고 있었다. 보호막이 빛을 번뜩이며 거울처럼 표면이 매끄러워져서는 핏빛과 교전했다.

한립은 원강순이 핏빛 도를 막아내자 잠시 안심했는데 그것도 잠시 핏빛 칼날이 기이하게 휘어져서 방패를 지나 그를 향해 쇄도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에 그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고 동시에 열 손가락을 마구 튕겼다.

퍼퍼퍼펑!

열댓 개의 푸른 검기가 날아갔지만 예리한 핏빛 도에 단숨에 잘려나갔다. 속도가 줄지 않은 핏빛 도에 한립의 얼굴이 창백해 져서는 입에서 푸른빛에 싸인 허천정을 분출했다.

텅!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핏빛 도가 드디어 멈추었다.

“헛!”

어둠 속에서 누군가 놀라 기척을 드러냈다. 한립이 그 틈을 타 등 뒤의 풍뢰시를 펄럭였고 즉시 열댓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원강순과 허천정을 불러들였다. 그때 주변에 있던 대량의 핏빛이 몰려들어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한립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고 몸 전체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며 금빛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핏빛을 흐트러트렸다.

‘벽사신뢰!’

어둠 속의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는 까다로운 상대를 공격했음을 직감했다.

“사산 진인이십니까?”

한립이 먼 곳을 쳐다보며 냉랭히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곧 핏빛 도가 웅웅 울어대더니 핏빛에 휩싸여 종적을 감추었다.

“수사 괜찮으십니까?”

뜻밖의 기습에 미처 도움을 주지 못한 규령이 서둘러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정말 마룡인과 비슷한 물건이더군요. 제 방패가 약간이나마 위력을 감소시키는 신통을 지니지 않았다면 벌써 두 동강이 났을 겁니다.”

한립은 차분히 말하며 한 손으로 원강순을 들어 살폈다. 한 줄기의 가느다란 틈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을 뿐 아니라 기분도 가라앉았다.

그는 영력을 불어 넣어 방패의 표면에 은빛이 흐르게 했고 틈이 메워진 원강순을 회수하고는 입을 벌려 허천정도 다시 체내로 삼켜버렸다.

“습격한 자의 모습은 확인하셨습니까?”

“아니요. 전신을 영기의 빛으로 가리고 있어 정말 사산 진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규령의 물음에 유유히 답하던 그가 아래쪽의 높다란 건물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규령도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규 수사! 이번에 머뭇거린 것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한립은 규령이 변명하기도 전에 푸른 빛줄기로 변해 아래로 날아갔다. 규 부인은 뜨끔했지만 한립이 그녀에게 별 다른 위해를 가할 것 같지 않자 안심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립이 기습을 받는 순간 딴 생각을 품었는데 본명패에 나눠놓은 혼백 때문에 상대가 바로 감지한 것이다.

추한 부인이 어쩔 수 없이 한립의 뒤를 쫓았다. 그는 이미 네모난 평지에 서서 고요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계단을 제외하고는 다른 입구가 없어 보였다.

“전혀 탑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규령이 내려오자 한립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마탑은 일반적인 탑과는 다릅니다. 뾰족한 탑의 천장을 지하에 묻고 탑의 저층을 지상에 두어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력한 요마나 귀물을 가두어 두지요.”

“그렇군요!”

규령의 설명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규령을 대했지만 규령은 그런 모습에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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