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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83화 (340/2,000)

# 583

583화. 노마를 습격하다

원영은 입을 벌려 주먹만 한 녹색 빛덩이를 뿜어내더니 몸을 떨며 두 개로 갈라졌다.

그 중 하나는 빙글 돌아 원영의 콧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주춤거리다가 서서히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립이 본명패를 들어 올렸다.

핏빛이 흘러나와 녹색 빛덩이를 휘감아 돌아가니 본명패에서 빛이 번지며 맑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립이 고개를 숙여 살피니 거북 문양이 한층 선명해졌다.

그제야 안심을 한 그가 입을 벌려 본명패를 삼켜 버렸다. 추한 부인은 그것을 보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화신기에 이르기 전에는 상대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립은 마음이 한결 편해져 허공의 검은 반지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추한 부인을 둘러싸고 있던 은색 광선들도 도처로 흩어졌다.

한립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추한 부인 앞에 나타났고,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을 건드리자 검은 빛이 반짝이며 추한 부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영원히 당신을 속박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제가 죽거나 영계로 승천할 날이 온다면 당신은 자유입니다. 무슨 가문 대대로 전승되는 영수로 삼을 생각은 없다는 뜻입니다.”

한립이 양환을 회수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믿고 안 믿고는 수사의 마음이겠지만 앞으로 지켜보면 알 것입니다. 인간 의 수명은 영수에 비해 짧기 그지없지요. 그 동안만 저를 위해 전력을 다해 주시면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제 영수가 당신 하나도 아니고 지내다 보면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한립은 주복 관계가 되었음에도 이전과 같은 말투를 사용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제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이 없겠지요. 다만 약속대로 해주신다면 그 정도 세월은 별 거 아닙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지내다 보면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이걸 마시고 일단 법력을 회복하시지요.”

한립이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던져 주었다.

“법력을 회복한다고요?  설마…….”

“만년영액 한 방울이 담겨 있으니 얼마간 법력을 보충해 줄 겁니다. 당장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수사!”

추한 부인은 곧바로 병을 열어 만년영액을 삼켰다. 체내의 기운이 순식간에 불어나며 정순한 영력이 차올랐다.

여인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전신에 검고 하얀 기운을 일으켜 잘려나간 한쪽 팔을 쳐다보며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한립이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검고 하얀 기운이 모여 어깨에서 새살이 돋으며 완전한 팔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불멸의 몸을 지녔다니!’

아무리 요수라도 이런 신통을 지닌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추마골에서 화섬을 만나 비슷한 신통을 보았으나 추한 부인은 거의 순식간에 잘려나간 팔을 자라나게 했다.

상대를 굴복시켜 요수로 삼은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사실 추한 부인이 금자영목으로 형성된 금제를 통과하느라 법력을 크게 소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10급의 요수는 한립의 상상을 초월하는 심후한 법력을 지닌 존재였다.

“법력을 회복하는데 적어도 2, 3일은 걸렸을 텐데 만년영액 덕분에 바로 회복하였습니다.”

추한 부인이 다시 자라난 팔을 움직이더니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아직 수사를 어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시야차와 함께 계셨으니 저에 대해 어느 정도 들으셨겠지요?”

“저는 규령이라 합니다. 한 수사에 대해서는 어떤 신통을 가졌는지만 간략히 알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본명패를 소유하기는 했으나 높은 수행을 지닌 수사를 저계 요수처럼 부릴 생각은 없으니 지금처럼 동급 수사의 신분으로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지요. 다만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요수가 한립의 말을 떠올리고 신중히 물었다. 사실 그를 도와 은시야차와 사금수를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난감했다. 친밀한 사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고 지낸 세월이 있으니 말이다.

“잠시 후 건 노마가 북극원광 속으로 들어오면 나를 도와 그 자를 죽이면 됩니다.”

“건 노마라면 마공을 사용하는 원영 후기의 수사 말입니까?”

“바로 그 자입니다. 사실 마공이 강력하고 둔술이 뛰어난 노괴라 이곳에서 공격할 생각은 없었지만, 수사의 도움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수사가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럼 규 수사께서 잠시 수고를 해주십시오. 허나 원영은 바로 죽이지 말고 남겨 두도록 하지요. 제가 물을 것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 드리면 아무리 지리적인 이점이 있고 제가 도와드려도 상대를 죽일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상한 마공을 펼쳐 북극원광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압니다. 저희 둘만으로는 중상을 입힐 수 있어도 상대를 완전히 처리하기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또 한 명의 원영 후기 수사가 있다면 어떻습니까?”

한립은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영 후기 수사가 더 있다고요?”

추한 부인이 움찔하며 의식으로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 * *

곤오전 깊은 곳. 거대 베틀 북에서 나온 은색의 용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은색 빛덩이와 보라색 안개 그리고 핏빛 그림자를 뒤쫓고 있었다.

이에 각종 공격이 베틀 북으로 쏟아졌지만 금은색의 표면에서 이상한 빛이 분출되며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일월사는 베틀 북 형태의 보물 중 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보물이었다. 그런 보물이기에 이런 엄청난 공격들을 잠시나마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거대 베틀 북 내부에는 목 부인이 의식을 이용해 그것을 조종을 하고 있었고 그 옆의 여인은 사상척을 쥐고 핏기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건 수사, 저 요물들과 동급으로 떨어질 작정이십니까?  저희가 이것을 취한 이유는 인계의 안위를 고려해 곤오산을 다시 봉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목 부인은 달아나려다가 그들에 의해 번번이 막히고 있었다.

“흥! 나를 속일 생각이라면 인계의 안위라는 헛소리 따위는 집어 치우시오. 게다가 노부가 언제 이런 요물들과 연합을 했소?  그저 두 수사의 기습을 받아 제 몸을 보호하고 있을 뿐. 화선종 같은 작은 종파가 보물을 독식할 생각을 하다니 얌전히 그것들을 두고 물러서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통천령보의 모조품을 들고 있다 해도 노부의 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핏빛 그림자 속에서 건 노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목 부인은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소리를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화선종은 정마십종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작은 종파에 불과했다.

건 노마와 은시야차 그리고 사금수의 맹공에 일월사의 기운도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갔다.

그들이 흉악한 기세로 두 여인을 죽이려는데 갑자기 불경 소리가 들려오더니 건 노마 인근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또!”

그들은 베틀 북 속에서 튀어 나온 하얀 옥자를 보더니 식겁하고 물러났다. 그 틈에 하얀 옥자가 다시 베틀 북 속으로 돌아가 순식간에 사라져 북극원광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하얀 연꽃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놀랍게도 진짜 사상척을 사용해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환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노마와 요물들은 분노해서 일월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어 금은색 베틀 북은 이미 북극원광 속에 들어가 있었고 은색 광선은 일월사의 은색 보호막에 튕겨나가 그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목 부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은색 영패를 이용해 불러낸 보호막이었다.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은 사상척의 환영을 만들어내며 완전히 힘이 빠졌는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목 부인이 그녀를 쳐다보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걱정 마세요, 사저! 돌아가서 몇 년 만 요양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구나. 지금 네 수행으로 사상척을 움직이게 했으니 무리가 컸을 것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화룡새를 얻었겠어요. 그런데 한 가 녀석은 정말 교활합니다. 보물들을 얻자마자 바로 내빼다니. 그러지 않았다면 저희가 상대할 적의 시선이 분산되었을 텐데요.”

수련한 여인이 얄밉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목 부인이 쓴웃음을 흘리며 한립과 그의 깃털 부채를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거대한 베틀 북 뒤에 핏빛 그림자, 은색 빛덩이 그리고 보라색 안개가 북극원광을 뚫고 맹렬히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월사의 신묘한 능력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 노마와 요물들은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금은색 베틀 북 속의 여인들이 은색 영패의 힘을 빌려 북극원광 속에 숨겨진 환영진을 조종한 것이다.

열 받은 건 노마가 흉흉한 눈빛의 요물들을 경계하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

“어찌 이제 와서 노부를 치기라도 할 작정이요?”

“아닙니다. 이미 수사의 능력을 충분히 보았는데 그런 미련한 일을 하려고요.”

은시야차가 잠시 주저하더니 웃음을 흘리며 사금수와 같이 출구 쪽으로 날아갔다. 본명패를 얻었으니 목적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건 노마는 두 요수가 북극원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냉소했다.

그는 무수한 은색 광선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멀리 출구가 보이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누구냐?  나오거라!”

노마가 갑자기 어딘가를 보며 소리쳤다.

“음라종 대장로에 걸맞은 능력이십니다, 건 형.”

덤덤한 사내의 음성이 들리더니 돌기둥 뒤에서 낯익은 얼굴의 청년이 나타났다.

“한립! 이곳에서 노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한립의 보호막에 북극원광이 비껴나가는 것을 보며 건 노마가 음산하게 물었다.

“알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요. 봉혼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봉혼주?”

한립의 덤덤한 물음에 건 노마는 의외였던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노부가 알려 줄 것 같소?”

“시간 낭비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냥 물어 보았습니다. 십대마종 대장로의 혼백을 뽑아 고문한다면 앞으로 대진에서는 생활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한립의 말에 건 노마의 눈길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노부의 혼백을 뽑아내겠다니 그럴 실력이 되나 봐야겠군. 도울 자가 있다면 나서시오. 설마 원영 중기의 수사가 홀로 나를 상대하려는 것은 아닐 테니.”

건 노마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규 수사, 이제 나오시지요.”

한립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에 건 노마의 다른 쪽 돌기둥에서 핏빛 갑옷을 입은 규 부인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당신은! 저 자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연합한다면 더 좋은 조건을 약속할 수 있소.”

건 노마가 규 부인의 등장에 잠시 당황하더니 영악하게 물었다.

“흥! 잔말 말고 죽어주는 조건이면 되겠습니다.”

규 부인이 냉소하며 검은 방망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한립에게 굴복해 안 그래도 울적한데 건 노마에게까지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건 노마는 당돌한 규 부인의 언사에 분노했지만 겉으로는 표정변화 없이 주변을 의식으로 훑었다. 혹시 숨어 있을 제 3자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만일 이 둘 뿐이라면 달아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정한 건 노마가 곧바로 전신에서 핏빛을 뿜어냈다.

이에 한립도 즉시 손을 뻗어 검은 반지를 허공에 던졌다. 미친 듯이 몸을 부풀린 검은 반지가 울어대니 주변 수십 장 내의 은빛 광선들이 몰려들어 사방에 은색의 벽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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