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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79화 (336/2,000)

# 579

579화. 원살 성조(聖祖)

임은병이 서서히 멀어지는 한립의 뒷모습을 차갑게 노려보며 영수대를 스쳐 네 발이 달린 괴상한 뱀을 분출했다.

전신이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고 등에는 근육질의 날개가 펄럭거리는 기이한 생김새의 뱀이었다.

“가라!”

임은병의 말에 요수의 전신에서 노란 보호막이 형성되었고 빠르게 날아 산문을 넘었다. 괴상한 뱀은 열장 정도 가다 펑! 하며 갈천호의 창과 마찬가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요수의 힘도 굉장한지 바닥에 떨어진 다음 네 다리를 움직여 일어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 모습에 임은병이 희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엄청난 압력에 뱀의 몸이 터져나가며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튄 것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압력이 엄청난데 저 자는 어찌 멀쩡히 걸어간단 말입니까?”

임은병이 안색이 조금 창백해 져서는 소리를 높였다.

“희미하게 요기가 느껴지는 것이, 비술을 이용해 요수의 역량을 빌려온 듯합니다. 요수처럼 단단해진 몸에 온갖 신통을 두르고 걸어 나가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법보도 동원하지 않고 동시에 세 가지 신통을 조종하다니…….”

건 노마가 냉랭하게 한립이 쓰고 있는 신통을 분석했다.

“그런 비술이 있습니까?”

그 말에 임은병 등 다른 수사들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놀라워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네 인간 수사들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저 자 홀로 곤오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세 요괴 중 추한 부인이 한립이 궁전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굵직한 목소리와 꽹과리를 치는 듯 귀에 거슬리는 음색이었다.

“곤오전의 금제가 이것 하나만은 아닐 테니 걱정 마십시오. 이제 금자영목의 정체를 파악했으니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금속 속성의 재료가 들어 있지 않은 법보로 한 그루씩 베어나가면 될 일이니까요.”

서 씨 청년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다고요?”

“금자중광은 일단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들어가면 손 쓸 도리가 없지만 미리 예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말을 하며 청년이 손을 뻗어 노란색의 검을 날렸다.

쿵!

굉음이 울리며 커다란 나무의 전신에서 금색 빛이 번뜩였고 비검은 깊은 흔적을 남겼을 뿐 나무를 베지 못했다.

“헛!”

서 씨 청년은 의외였는지 낮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잊으셨나본데 저 금자영목은 본래 금강석처럼 단단한 데다 곤오산에서 수만 년간 영기를 받아 자란 것들입니다. 그러니 절대 쉽게 베어낼 수 없지요. 시간 낭비할 것 없이 다 같이 움직입시다.”

건 노마가 이렇게 외치자 거대한 하얀 그림자가 입을 벌려 하얀 수정 구슬 같은 것을 나무에 날려 보냈다.

이에 갈천호 등도 옥이나 혹은 나무 소재로 만들어진 보물들을 꺼내 길 양쪽의 나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빛들이 나무들 위로 공격을 쏟아냈다.

다른 수사들은 몰랐지만 인간 수사들이 금자영목에 맹공을 가하자 은시야차를 비롯한 요수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도 보물을 꺼내 공격에 참여 했지만 실제로 거대한 나무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워낙 다수가 움직이고 있었고 폭음과 빛이 난무해 다른 수사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정말 멍청하지 않습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금자영목을 베어 주다니요!”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한립의 머릿속에 은월의 탄식이 들려왔다.

“저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명청영안이 없었다면 나도 나무속에 대광륭강마주(大光輪光魔呪)가 새겨져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상고 수사들이 요물들을 배척하려 각각의 나무에 저주를 새겨 놓다니!”

“그러면 은시야차나 다른 요물들이 자유롭게 곤오전을 드나들게 됩니다. 미리 다른 수사들에게 언질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래야 하지?  엽 가 수사 외에 천란성전이나 음라종 수사들은 모두 한 패인데 요물들이 나타나 견제하니 얼마나 좋으냐. 게다가 저 나무들을 전부 베어내려면 시간과 힘이 꽤나 들 테니 내게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 일단 보물만 얻으면 빠져 나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니까요. 며칠간 산맥 구석에 숨어 있다가 통로가 복원되면 곤오산을 빠져나가면 되겠습니다.”

한립이 피식 웃으며 하는 이야기에 은월도 미소 지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풀린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한립이 무덤덤하게 답하는데 바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금자영목 중 한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겨우 수십 장만 더 가면 되었다.

희미하게 2, 3십 장 밖의 대문이 보였는데 나무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특수한 재질로 된 편액에 웅장한 글씨체로 곤오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숨을 내쉰 그가 품에서 병을 꺼내 만년영액 한 방울을 삼켰다. 법력이 차오르자 그의 몸을 두른 푸른빛과 금색 뇌전 그리고 보라색 화염도 더욱 기세가 올랐다.

한립이 더욱 빨라진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곤오산 진마탑 지하 7층에서 청명한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대두 괴인과 고마 일행이 수정벽을 부수고 있는 소리였다. 세 수사의 쉼 없는 공격에 단단한 수정벽이 부서져 내리며 사라졌다.

“가자. 수미종의 보물이 다르기는 하구나. 우리 셋을 이리 오래 붙들어 두다니!”

괴인이 손을 저으며 은빛 찬란한 검을 소매 속으로 회수했다.

“시간이 꽤 지나 독성문이 보물을 먼저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숙부님.”

또 다른 엽 가 장로가 하얀 옥자를 거둬들이며 걱정스레 말했다.

“통천령보는 얻기도 어렵지만 바로 조종할 수도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저들이 손에 넣었다면 빼앗으면 그만입니다.”

“한 장로의 말이 바로 노부가 하려던 말이오.”

고마의 말에 대두 괴인이 웃으며 먼저 7층의 출구로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세 수사도 이전 수사들이 거쳐 간 전송진이 있는 석실에 도착했다.

흑백의 소형 전송진을 보고 독성문 수사들은 조금 머뭇거렸지만, 고마는 검은 전송진을 보며 희색을 드러냈다.

“전송진이 두 개라니 어느 것이 8층으로 통하는 것일까요?”

엽 가 장로가 중얼거리며 그것들을 살폈다. 먼저 독성문 수사들이 이용한 하얀 전송진에 약간의 영기의 파동이 남아 있었다.

“고를 것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이면 되니까요.”

고마가 검은 전송진을 응시했다.

“그것 말입니까?  독성문 수사들은…….”

노인이 막 무어라 말하려는데 고마가 돌연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그 안에서 새까만 마귀의 팔뚝이 전광석화처럼 튀어 나와 노인의 정수리를 잡아챘다.

“……!”

푹!

식겁한 노인이 말을 맺기도 전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핏줄기가 솟아오르자 고마가 입을 벌려 검은 화염을 분출했다.

노인의 시체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졌고 하얀 보호막에 휩싸인 노인의 원영이 새하얀 자를 두 손에 쥐고 처량하게 소리쳤다.

“숙부님! 도와주십시오!”

원영이 자에 영력을 불어넣으며 필사적으로 대두 괴인 방향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검은 화염 속에서는 순간 이동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두 괴인은 원영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원영은 아주 잠시 버티다가 검은 화염에 터져 나갔다.

“지금 손을 쓴 이유가 뭡니까. 마지막에 가서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드디어 대두 괴인이 서늘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찾던 분의 존재가 느껴져 이자를 먼저 처리한 것뿐입니다. 후환을 남겨 두어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어찌 이제 와서 후회라도 되십니까?”

“그럴 리가.”

“그러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성조의 분신만 구해내면 그분께서 비술을 이용해 마기를 주입해 주실 텐데, 당신의 자질 정도면 바로 화신기에 이를 가능성도 있겠지요.”

“죽을 날이 가까워지지 않았다면 결코 가문을 배신하고 당신과 같은 요마와 손을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마라……. 마기를 주입하는데 성공하면 당신도 우리 성족의 일원이 될 텐데요?”

“됐고, 어서 가십시다. 괜히 시간을 끌어 좋을 것 없으니까.”

대두 괴인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고마를 재촉하며 전송진으로 걸어갔다. 고마도 그 모습에 냉소하며 전송진에 섰고 검은 빛이 방출되면서 두 수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후 괴인과 고마는 동일한 진법이 그려진 어딘가로 전송되었다.

“이곳은?”

괴인이 잠시 어지러워하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어두컴컴한 사방을 살폈다.

“위를 올려다보십시오.”

고마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괴인이 서둘러 고개를 들더니 입을 벌렸다.

백여 장 높이에 각종 금제로 구속된 산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전신은 검은 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고 각양각색의 부적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검은 물체 주변에는 노란 빛기둥을 방출하는 청동 거울들이 늘어서서 그것을 가두고 있었다.

엽 가 괴인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멀리서 보니 그것은 백 장이 넘는 거대한 육체를 지닌 머리가 둘 달린 은색 늑대였다. 은빛 찬란한 털들은 마치 은을 제련해 만든 것 같았다.

괴이한 것은 늑대의 머리 중 하나는 은백색이었지만 다른 쪽은 목부터 새까맣게 변해 검은 기운에 둘러 싸여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머리에는 보라색의 뿔이 솟아 흉악한 기운을 뿜어냈다.

극명하게 다른 두 개의 늑대 머리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하던 성조의 화신입니까?”

대두 괴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이 분이 성계의 원살 성조님의 화신입니다. 성계 전체의 성조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으로 진정한 본체가 아닌 한 줄기 분혼(分魂)이 영계의 늑대 요수에 깃든 것뿐인데도 보통의 화신기 수사를 압도하는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영계의 간섭만 없다면 인계에서 무적에 가까운 존재지요. 당시 성족이 인계로 파견했던 세 분의 통령 중 한 분이셨고요.”

“원살 성조…….”

“엽 형이 호법을 서주시면 일단 저는 비술을 이용해 성조님의 분혼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술법을 펼치시지요.”

대두 괴인은 이제 다른 고민들을 모두 떨치고 대답했다. 고마는 편하게 수결을 맺으며 칠흑 같은 기운 속에 빠져 들었다.

그러자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쌍두사비(雙頭四臂)의 마귀의 그림자가 몇 장 가까이 커졌다. 거대한 고마의 육체에서 엄청난 살기(煞氣)가 뿜어져 나와 대두 괴인마저 몇 걸음 물러나야 했다.

이어 고마의 두 머리가 주술을 읊으며 네 팔이 수결을 맺어댔다.

대두 괴인은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시선은 허공의 거대한 늑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일다경이 지나자 고마의 중얼거림이 멈추었고 입에서 검붉은 피를 분출했다. 그리고 네 개의 손에서 뻗어 나온 새까만 법결이 핏덩이를 깨끗이 흡수했다.

잠시 후 핏빛의 문양이 새까만 늑대 머리에 기이하기 피어오르더니 뿔에서 빛이 번뜩이며 눈꺼풀을 꿈틀거렸다. 늑대의 거대한 눈이 반쯤 떠지며 천천히 보라색 눈동자를 드러낸 것이다.

고마와 대두 괴인은 몰랐지만 새까만 늑대 머리가 깨어남과 동시에 그곳과 마주한 밀폐된 공간의 궁전 안에서 은색 상자가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그 안에서 깨어나려는 듯했고 그 위로 비취색 나무 자가 서서히 돌며 영기의 빛을 뿜어냈다.

은색 상자는 나무 자에서 방출된 초록색 보호막에 둘러싸여 순식간에 빛을 잃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갔다.

바로 그때 은색 상자가 놓은 탁자의 열댓 장 밖에서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남색 장포에 붉은 두건을 두른 독성문 대장로 화천기였다.

그는 두 눈을 깜빡였지만 귀와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는데 언뜻 보았다면 죽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른 세 명의 독성문 장로들은 종적을 감추고 그 혼자뿐이었다.

그때 궁전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폭음이 들려왔다. 또 다른 누군가가 금제에 갇혀 거세게 반항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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