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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78화 (335/2,000)
  • # 578

    578화. 화선종의 두 여인

    “요물들이 눈앞에 있으니 두 분께서는 저들을 어찌 할지 이야기 하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보물을 찾으려다 괜히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서 씨 청년이 건 노마와 엽 가 중년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천란의 서 형 아니십니까?  노부는 보물도 손에 넣지 못한 채 싸워서 양패구상할 마음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자리에 모인 수사들이 연합을 해도 반드시 저 셋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요.”

    건 노마가 냉소하며 대중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천란초원과 음라종은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서 씨 청년이 자기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다름이 아니라 세 분께서 제가 엽 수사와 맹렬히 싸우는 동안에도 계속 숨어 있었던 것은 따로 목적이 있으셔서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때가 기습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을 텐데요.”

    거대한 하얀 그림자가 덤덤히 말했다.

    “알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당신네들 전부가 협공을 해도 우리 셋을 어찌하지는 못할 거예요. 숨길 것도 없으니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우리도 곤오전에 원하는 물건이 있으니 지금은 다른 수사들을 공격할 마음이 없습니다.”

    은시야차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리고 추한 생김새의 부인과 사금수는 그 옆에 한서서 그가 결정권자라는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저와 천란성녀는 곤오전의 보물에 흥미가 없습니다. 그저 한 가를 잡아 천란성전의 보물을 되찾고 싶을 뿐이지요.”

    서 씨 청년도 아무 이유 없이 요물 세 마리와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이 먼저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하니 안색이 풀어졌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싸우지 마시고 일단 금제를 깨고 다 같이 보물을 찾으러 갑시다.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모여서 방금 들어간 자에게 보물을 전부 빼앗긴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갈천호가 상황을 보아 재빨리 외쳤다.

    이곳에 모인 요수와 수사들은 각각 오랜 세월을 살아온 눈치 빠른 자들이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순식간에 평화협정을 맺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곤오전 내부에 들어가면 바로 서로에 대한 살육전이 시작되겠지만 말이다.

    “그럼 이견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함께 금제를 공격합니다.”

    건 노마가 웃음을 흘리자 거대한 그림자가 두 팔을 펄럭였고 다시 하얀 구렁이가 흰 빛 속에서 나와 빛의 장막으로 쇄도했다.

    곁의 각진 얼굴의 수사도 두 비검을 움직여 빛의 장막을 공격했다. 세 요물과 서 씨 청년 그리고 갈천호 등도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금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순 요기와 수사들의 영기가 섞여 폭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건 노마가 성질이 불같은 줄로만 알았는데 교활하기까지 합니다. 순식간에 은시야차와 사금수 같은 요물들과도 손을 잡고요. 앞으로 노마를 만나면 더욱 조심해야겠어요.”

    비탈 아래 돌숲에 숨어 있는 비취색 의복을 입은 여인이 낮게 속삭였다. 그들은 화선종의 목 부인과 그녀의 사매인 수려한 외모의 젊은 여인이었다.

    “사저, 제가 건 노마를 상대할 방법은 정말 없을까요?”

    “겨우 원영 초기 수사가 후기 수사를 상대해 무엇 하려고?  나도 건 노마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겨우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공법이 정면 대결에 유리하지 않다만, 누구든 약간의 피만 구할 수 있다면 저주를 걸어 아무도 몰래 중상을 입힐 수 있겠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매의 질문에 목 부인이 냉소했다.

    “저희 화선종이 공법이나 비술에서 십대 종파와 겨뤄 부족함이 있나요?  대대로 내려오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았다면 벌써 세력도 커지고 종문에서 원영 후기 대수사도 나왔을 겁니다. 그랬다면 건 노마도 두렵지 않았겠지요.”

    젊은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의 창립 사조께서는 본래 곤오삼노의 후인이셔서 이곳의 봉인에서 머지  않은 곳에 화선종을 만들고 지키게 하셨지. 수만 년이 흘러 대부분의 흔적이 사라지고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말이야.

    만일 향 어르신의 연락을 받고 다시 관련 경전을 뒤져 보지 않았다면 우리도 전혀 이런 사실에 대해 몰랐을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올 이유도 없었겠지.”

    목 부인 탄식하듯 말했다.

    “건 노마도 그렇지만 벽사신뢰를 부리던 청년도 신경이 쓰입니다. 깃털 부채의 위력에 원영 후기 수사들도 꺼리는 것 같던데, 상고 시대에 명성이 자자하던 칠염선의 모조품이 아닐까요?”

    수려한 여인이 갑자기 한립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통천령보의 모조품은 맞지만 칠염선을 따라 만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 자의 용모가 낯설던데 신통은 뛰어나니 대진 수사는 아닌 것 같아……. 됐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크게 신경 쓸 것은 없겠지! 그러고 보니 향 어르신이 벌써 곤오산에 오셨을 텐데 어찌 저들을 막지 않으시는지 모르겠구나! 그 어르신의 능력이라면 저들은 문제도 아닐 텐데 말이야.”

    “다른 일이 있으셔서 먼저 진마탑으로 가신 것 아닐까요?  그쪽도 중요한 곳이잖아요.”

    “그럴 리가! 진마탑이 곤오산 전체의 봉인 결계를 좌지우지하는 진법의 눈이라지만 결계를 다시 공고히 하려면 곤오전의 화룡새(化龍璽)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배님께서 그런 일을 까먹고 진마탑으로 먼저 가셨을 리가 있느냐.”

    젊은 여인의 말에 목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사저의 말은 향 선배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다는 겁니까?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그 분을 어찌 할 수 있는 수사가 몇이나 된다고요. 설마 이곳에 갇혀 있다는 그것이 빠져나온 건…….”

    수려한 얼굴의 여인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것이 탈출했다면 이미 봉인 결계를 깨고 이곳을 빠져 나갔을 것이다. 선배님께서는 정말 다른 일이 있으셔서 아직 못 오시는 것이겠지.”

    “예, 그래야지요! 어찌 되었든 저희는 일단 저들을 뒤쫓으며 화룡새를 손에 놓을 수 있을지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데 당시 봉인을 강화하게 위해 화룡새 외에도 천정비(天晶碑)를 준비해 놓았다고 했는데요. 그것의 위치를 모르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화룡새를 얻는 방법밖에 없겠어요.”

    “천정비는 만약을 대비한 물건이니 곤오삼노의 또 다른 후계들이 위치를 알고 있을 테지. 우리 두 가문 중 한 곳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봉인을 유지할 수 있게 말이야. 그것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숨겨져 있다고 하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구나.”

    “그보다 곤오삼노라는 분들이 무슨 생각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후환을 우리보고 처리하라니 그냥 죽였으면 됐잖아요. 괜히 봉인을 해서 인계의 유명한 영산 하나를 잃게 만들다니요.”

    수려한 여인이 미간을 좁히며 불퉁 거렸다.

    “그에 관해서 경전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봉인된 자의 신분이 매우 특수해서 상계와 연관되어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인계 수사들이 죽이지 못하고 가둬둔 것이지.”

    목 부인이 잠시 주저 하다가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그랬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갇힌 이의 수행이 어느 정도일까요?  향 어르신만 해도 그 자를 언급하자 불안한 기색이 다분하시던데요.”

    “얼마나 수행이 높은지는 모르겠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우리 같은 수사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겠지.”

    계속되는 젊은 여인의 질문에 목 부인이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그건 그러네요.”

    “사상척(四象尺)은 잘 챙겨 왔겠지?  그것 없이 화룡새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목 부인이 화제를 돌렸다.

    “사저가 그렇게 당부하셨는데 어찌 잊고 왔겠어요?  그나저나 안타깝습니다. 사저의 공법이 사상척과 상극만 아니었으면 저보다는 사저가 지니는 것이 나았을 텐데요. 이게 이곳에 있는 통천령보 중 하나인 팔령척의 모방품이라죠?  통천령보라는 것이 정말 어떨지 궁금하네요.”

    수려한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팔령척과 흑풍기(黑風旗)에 대해서라면 경전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다만 정말 우리가 볼 수 있을 지는 때가 되어야……. 오, 건 노마와 다른 수사들이 금제를 뚫었구나! 우리도 어서 따라가도록 하자.”

    목 부인은 무언가 설명을 해주려다가 빛의 장막이 여러 수사들의 공격에 갈라지는 것을 보며 신중한 얼굴로 속삭였다.

    수려한 여인도 긴장한 기색으로 건 노마 등이 빛의 장막의 틈을 뚫고 산문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따라는 가되 노괴들과는 너무 가까이 붙지 말거라. 곤오산 전역의 금제 덕분에 의식이 제한되어 있지만 원영 후기 수사를 속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목 부인이 다시 당부하자 두 여인이 동시에 하얀 빛을 반짝이며 돌기둥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다시 비술을 이용해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의 또 다른 돌기둥에서 녹색빛이 번뜩이며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무심한 눈으로 그녀들이 사라진 방향을 지켜보다 소리 없이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건 노마 등이 산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한립은 거대 궁전으로 통하는 작은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것이 다리가 천근만근인 것 같았지만 궁전 입구까지는 2, 3백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그는 전신에 푸른 기운과 뇌전이 번뜩였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보라색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강령부를 이용해 스스로를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바꾼 후라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무척 놀랐을 것이다.

    “무슨 신통이기에 저렇게 변한 걸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저 녀석이 금제에 걸려 있는 듯하니 처리할 절호의 기회겠지.”

    갈천호가 음산하게 중얼거리고는 한손을 뻗어 새빨간 창을 던졌다. 한립이 삼염선으로 공격해 그를 한방 먹여 열이 받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붉은 빛으로 변한 창은 십여 장을 날아가다가 챙!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무슨!”

    “대오행자력(大五行磁力)?”

    임은병이 놀라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 금자중광(金磁重光)입니다. 양쪽의 금자영목(金磁靈木)이 만든 천연의 금제라 누구나 영향권에 들어가면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지요. 한 걸음도 걷기가 무척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은시야차가 길 양쪽의 노르스름한 나무들을 보며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저 자는 어찌 걸어가는 것입니까?”

    서 씨 청년이 냉소했다.

    “눈이 있으면 저 자의 외양이 달라진 것을 아실 텐데요?  수행을 강제로 끌어올려 법력이 원영 중기의 최고봉과 맞먹을 겁니다. 게다가 벽사신뢰나 저 보라색 화염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신통이 없고요. 수사께서 들어간다고 해도 변형 후의 저 자보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은시야차가 청년을 보며 조소했다.

    “그렇습니까?  말투로 보아 한 수사와 잘 아는 사이신 듯한데, 그렇습니까?”

    “모릅니다. 저랑은 아무 관련도 없고요.”

    은시야차는 상대가 자신을 떠 본다는 것을 알고는 거침없이 답했다.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짓는 은시야차를 보며 서 씨 청년은 아무런 내색도 안 했지만 내심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금자영목이라면 귀한 상고 영목이 아닙니까! 이미 바깥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라고 들었는데……. 특히 금속 속성의 재료가 들어간 보물에 상극이라고 하니 제 보물이 저렇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갈천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 뿐 아니라 압력이 막강하고 서로 중첩되어 발동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렇게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면 걸어가는 내내 대여섯 그루의 압력을 견뎌야 하는데 저는 불가능할 듯싶군요.”

    각진 얼굴의 수사가 신중히 의견을 더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말만 듣고는 못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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