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5
565화. 독성문(毒聖門)
같은 시각, 보운부 주변 초원을 지나는 수사들의 무리도 호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스무 명이 넘는 수사들은 전부 남색 장포에 붉은 머리 두건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날아가는 네 명은 원영기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중년인 수사는 원영 중기의 최고봉에 이른데다 전신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인물처럼 느껴졌다.
“화 사형,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 있는 제자들은 독성문의 주요 전력입니다.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본 문의 세가 크게 꺾일 거예요.”
원영 초기의 노인이 주름 가득한 중년 수사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평범한 이보가 출현한 것이라면 내가 이러겠는가? 이번에는 전설 속의 곤오산이 등장했네. 산 속의 수많은 보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위험은 무릅써야겠지.”
“곤오산이요? 본 문이 만들어진 이래 줄곧 수색을 해오던 영산이 아닙니까!”
또 다른 회백색 머리의 노인이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네. 이 일에 대해서는 사제들이 원영기에 이른 후 내가 한 번씩 얘기해 주었지. 곤오산은 상고시대 때 인계에서 이름 높았던 영산 중의 하나네. 알 수 없는 이유로 상고 수사들이 봉인해버렸지만 수많은 보물들이 남겨져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우리 독성문을 만드신 조사께서 바로 이곳을 봉인한 수사들 중 한 분의 후예였기에 구체적인 위치는 몰라도 남강 어딘가에 곤오산이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셨지. 그래서 독성문이 남강에 자리를 잡고 곤오산을 추적한 것이네.“
중년 사내가 차분히 설명했다.
“그런데 화형께서는 이번 천기의 변화가 곤오산의 등장 때문이라고 확신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사께서는 곤오산이 남강의 모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을 뿐 아니라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감영주(感靈珠)를 남겨놓으셨네. 오직 곤오산을 찾기 위해 제련된 구슬로 곤오산에 있다는 비선석(飛仙石)을 감지하지. 며칠 전 조사님의 사당에 놓여 있던 구슬이 울리며 곤오산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렸으니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랬군요!”
나머지 원영기 수사들도 완전히 납득했는지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원 사형이 문중에 없어 독성문 다섯 장로가 모두 모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회백색 머리의 노인이 탄식했다.
“원 사제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대로 바로 이곳으로 오라 이르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종문들이 눈치 채기 전에 곤오산에 들어가 보물을 챙기는 것입니다. 곤오산의 봉인이 스스로 효력을 다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봉인을 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더욱 조심해야겠지요.”
중년 수사가 진지한 얼굴로 모두에게 당부했다.
독성문 수사들은 원 사제가 이미 은시야차의 손에 죽은 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날아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운부의 작은 호수 곳곳에 이미 수백 명의 수사들이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그들은 일곱 빛깔의 빛줄기 주변으로 수색을 하고 있었다.
워낙 봉인 금제가 거대해서 아직 엽 가 수사들이 강제로 벌려 놓은 틈을 찾지는 못했지만 각자 자신의 종문에 전음부를 보내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대부분 축기기 수사들로 이곳을 살펴보기 위해 인근 세력에서 파견 보낸 정탐꾼들이었다.
호수가 워낙 황량한 지대에 있어 그곳에 도착하려면 시일이 걸렸다. 그러니 원영기 수사들이 있을 리 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움직이기 시작한 현지 세력인 독성문 수사들만 해도 아직 이틀거리 밖에 있었다.
수행이 낮은 연기기 수사들이나 세상 물정 밝은 산수들은 봉인 금제가 풀려 일어난 엄청난 기현상에 아쉬워하며 멀리 떨어지기 바빴다. 분명 엄청난 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살육전이 벌어질 것도 뻔했다. 괜히 고계 수사들의 싸움에 휘말려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극소수의 저계 수사들은 젊은 혈기로 이곳에 남아 혼전을 틈타 이익을 꾀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호수 주변에 온갖 수사들이 각자의 목적을 갖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이미 봉인 금제 아래 있는 한립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백요이와 같이 가부좌를 하고 동굴 중앙에 앉아 있는 부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 노인은 입에서 청록색 영화를 한 줄기, 한 줄기를 뿜어내며 양 손으로 복잡한 수결을 맺어 쉼 없이 법결을 던져 넣었다. 녹색 불길에 휩싸인 솥은 법결을 맺을 때마다 오색찬란한 빛을 터트렸다.
이제 솥 안에서는 은은하게 약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고 그 그윽한 향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노인이 법결을 던져 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솥에서 뿜어 나오는 빛도 짙어진 것으로 보아 제련의 고비를 지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한립도 겉으로는 무표정했으나 속으로는 내심 긴장되었다.
음지마는 굉장히 희귀한 재료로 며칠 전 솥 안에 들어갔는데 이번 일이 실패하면 언제 다시 다른 음지마를 잡을 수 있을지 요원했다.
비록 부 노인이 배영단 제련에 자신 있어 했지만 지켜보는 내내 초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백요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던 솥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웅!
솥이 울리고 약 냄새가 짙어 지자 부 노인이 눈을 빛내며 법결과 영화를 멈추었다. 그가 한 손을 뒤집어 주황색 조롱박을 꺼내더니 다른 손으로는 솥을 향해 하얀 빛을 쏘아댔다.
그러자 솥이 몸을 떨며 땅으로 떨어지더니 주먹 크기의 빛덩이 다섯 개가 솟구쳐 다섯 개로 갈라졌다.
빛덩이들은 솥을 한 바퀴 돌고는 곳곳으로 흩어졌지만 노인이 조롱박을 꺼내자 빛덩이들이 조롱박 속으로 사라졌다.
“됐습니다. 성공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부 형! 정말 배영단을 다섯 개나 만들어 내실 줄은 몰랐어요.”
노인이 길게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흡족하게 웃자 백요이도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본래 네 분을 모셨으니 당연히 대여섯 알은 만들어야 지요. 상 사매와 원 수사가 불행한 일을 당해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그 말에 백요이도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립만이 여전히 무표정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 수사, 나무 속성의 함이 있으십니까? 일반적인 옥함에 담았다가는 약성을 쉽게 잃을 겁니다. 또한 강력한 약효를 지녀 복용하고 나면 최소한 반년은 폐관해야 제대로 연화를 시킬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있지요! 게다가 이렇게 귀한 단약을 제가 아무렴 아무렇게나 복용하려고요.”
백요이가 빙그레 웃으며 목함을 불러냈다. 노인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조롱박을 기울였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새어나와 하얀 빛덩이 하나가 목함 속으로 들어갔다.
백요이가 목함을 들고 자세히 살피더니 단약의 영력을 확인하고는 기쁘게 회수했다.
“부 형, 잘 쓰겠습니다.”
그녀의 감사 인사에 노인이 웃고는 이번에는 자신의 저물대를 스쳐 녹색 목함을 꺼내 영단 한 알을 넣었다.
그리고 한립을 향해 주홍색 조롱박을 건넸다. 조롱박을 건네받은 한립은 무척 놀랐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제게는 그저 배영단 두 알만 주시면 됩니다.”
“이번에 목숨을 부지하고 배영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한 수사 덕분입니다. 어차피 사매는 세상을 떠났고 저는 한 알만 있으면 충분하니 나머지 세 알은 모두 한 형께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조롱박과 노인을 번갈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 보아하니 부 노인은 배영단을 제련하고 나면 그가 자신을 제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 것이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 화를 당하느니 가슴 아프지만 배영단 한 알을 더 내주어 상대의 호감을 사기로 한 것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꼴이니 한립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저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한립의 손에서 빛이 번뜩이며 주황색 조롱박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상대를 전전긍긍하게 만들 것이다.
“당연히 드려야할 몫을 드린 것입니다.”
부 노인이 마음이 조금 놓이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백요이도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 없었기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아꼈다. 이로써 세 수사의 관계는 한층 편안해졌다.
“영단도 완성했으니 이제 나갈 길을 찾아보시지요. 그러는 동안 의외의 수확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노인이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제안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동굴이 흔들리며 굉음이 들려왔다. 세 수사가 놀라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곳에 우리 말고 다른 수사들이 있는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아까 달아난 은시야차가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을 지도요!”
백요이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어찌 되었든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저희 셋이 힘을 합친다면 크게 걱정할 것은 없겠지만요.”
잠시 침묵하던 한립이 평온히 말하며 소매를 털자 푸른 기운이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동굴에 설치해둔 진법 법기와 원반을 회수한 것이다.
“가시죠. 이곳을 벗어나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립은 즉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먼저 통로로 빠져나갔다. 노인과 백요이도 서로를 바라보고는 그 뒤를 쫓아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 * *
부 노인과 백요이가 통로 밖으로 나오자 한립이 이미 골짜기 밖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제야 두 수사도 골짜기 바깥에서 희미하게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영기 수사의 초월적인 청각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같습니다.”
부 노인이 잠시 주의를 기울이다가 미간을 좁혔다.
“아직 이곳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 일단은 주위를 둘러보시죠. 은닉술을 펼쳐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립이 두 수사를 돌아보자 부 노인과 백요이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먼저 수결을 맺으며 전신에서 녹색 빛을 뿜어내자 빛이 차츰 가라앉으며 녹색 그림자로 변해 모습을 감추었다.
이곳은 수사의 의식을 제한했기에 동급 수사라 해도 은닉술을 펼친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어 백요이가 얼음을 깍아 만든 것 같은 투명한 영패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영패에서 은색 기운이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빛이 가시자 백요이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졌다. 두 수사의 술법을 확인한 한립 역시 전신이 영기의 빛으로 번뜩이며 사라졌다.
지척에 서 있던 부 노인과 백요이도 그를 찾을 수 없었는데 마치 정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
놀란 노인과 백요이 앞에서 한립이 차분히 부적을 하나 꺼내 몸에 붙이니 신형마저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해졌다.
“출발하시죠!”
한립이 조용히 외치자 세 수사가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라 굉음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정말 영기가 충만한 곳으로 수도의 명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이 정말 대진에 위치해 있다면 정말 많은 종파와 세가들이 손에 넣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한립 일행이 반 시진을 날아가는 동안에 어떤 동물과도 마주치지 못했다. 게다가 기이하게 이곳은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