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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63화 (320/2,000)

# 563

563화. 거대한 산

이십 리 밖의 상공에 남색 장포에 붉은 두건을 한 수사 몇 명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일곱 줄기의 빛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걸까요?”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어. 여 사제 먼저 사문으로 돌아가 이 일을 보고해주게. 나머지 사제들은 나를 따라 빛기둥을 탐색한다.”

젊은 청년이 묻자 선두에 선 새까만 얼굴의 수사가 신중하게 분부했다.

수사들 중 한명이 즉시 사문 쪽으로 법기를 돌렸고 나머지는 중년 수사들은 호수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더 멀리 있는 높은 산봉우리 위에는 백 명이 넘는 다양한 복색의 수사들이 모여 회합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연기기 수행으로 축기기 수사도 몇 있었다.

그들도 빛기둥을 보고는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즉시 수많은 수사들이 높은 바위에 오르거나 법기를 타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름 모를 산 아래, 통통한 노인이 반쯤 열린 석문 사이로 하늘로 솟구치는 빛기둥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런 일들이 엽 가 수사들이 모여 있었던 작은 호수를 중심으로 수 천 리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에 이보(異寶)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빠르게 남강 전역에 퍼져나갔다.

며칠 후에는 인근 지역에서도 모두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 일이 남강 수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엽 가 수사들이 지하로 내려갔을 때 한립은 정체 모를 곳에 위치한 거대한 전송진 속에 서 있었다. 사방이 돌벽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종유석 동굴이었다.

그는 울적한 얼굴로 발밑에 떨어진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둥근 고리는 피처럼 붉었고 아직도 영기의 빛을 잃지 않고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은시야차를 구속하던 법기들이었다. 붉은 고리들은 조각이 났고 은시야차는 종적을 감췄다.

그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녹색의 옥부(玉符)가 붙어서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이전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극히 드문 부적인 전송부였다.

다만 난성해에서 보았던 것은 그냥 부적이었고 이것은 옥부라는 것이 다를 뿐. 그가 미간을 좁히며 손에 들고 있던 남색 영패를 보았다.

이전에 얻은 대나이령(大挪移令)이 압력에 찢길 것을 염려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전송진이 빛나는 순간 허리춤에 옥부가 나타난 것이다.

거대 전송진 자체의 효과인지 아니면 전송진을 설치한 상고 수사의 배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상고 시대 전송부는 분명 부적 제련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이 손을 뻗자마자 옥부가 영기의 빛으로 흩어져버렸다.

그가 멈칫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부적은 딱 한번만 쓸 수 있게 개량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립의 것이 사라지며 곁의 제혼이나 여전히 허공에 매달린 두 개의 회색 고치에 붙어 있던 옥부도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다만 진짜 시체가 된 시랑 앞에서는 제혼이 신이 나 가슴을 두드리며 난리가 나 있었다. 시랑은 운 나쁘게도 한립 바로 곁에서 전송되었고, 그는 강력한 의식으로 전송되기 전 벽사신뢰로 한방에 중상을 입혔다.

이어서 제혼이 노란 기운을 내뿜어 시랑의 시기를 전부 빨아들였다. 아무래도 은시야차는 그와 더는 싸울 마음이 없는 듯 했다. 그러니 자유를 되찾자마자 풍둔술을 이용해 빠져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한립도 굳이 은시야차를 추격해 죽일 생각은 없었다. 첫째는 상대를 잡아둘 결계 없이는 삼염선의 위력에만 의지해 죽이기 어려웠고, 두 번째는 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잡으려한 음지마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하얀 무언가를 쥐고 흔들고 있는 제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부드럽고 하얀 털을 가진 음지마였다.

전송될 무렵 음지마는 다시 시랑의 몸에 숨어든 참이었다. 그 결과 제혼의 노란 기운에 휩쓸려 뱃속으로 들어갈 뻔했고 한립이 단번에 그것을 눈치 채고 제혼을 말린 것이다.

갇혀 있던 비검 두 자루는 한립이 전송되기 직전에 불러들여 회수했고 살혼사에 갇혀 있던 미 부인의 원영은 은시야차가 삼켜버렸다.

안타까운 점은 요단으로 제련한 비침이 은시야차의 손에 들린 채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본명 법보는 아니었지만 그가 직접 연화했기에 단시간에 법보의 영성을 지워내고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립이 주위를 살폈지만 이곳은 음양굴 내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검은 음풍이 불지 않았고 오히려 영기가 충만했다. 아무래도 거대한 산 속의 동굴 같았는데 최상급의 영맥이 흐르는 듯했다.

그가 이번에는 발밑의 전송진을 살펴보았다. 이전에 보던 것과 확연히 다르기는 했지만 분명 단방향 전송진이었고 이걸로는 다시 돌아나갈 수 없었다.

주변 상황을 파악한 그는 미간을 좁히며 드디어 두 개의 회색 고치를 살폈다. 강렬한 영기가 느껴지는 것이 부 노인과 백요이는 무사한 것 같았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제혼을 일단 회수하고 음지마를 끌어당겨 금제 부적을 붙인 다음 영수대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야 두 손을 뻗어 각각의 고치에 뇌전을 날렸다.

쿠르릉! 콰쾅!

거대한 고치가 금빛 뇌전에 터져나가자 그 안에서 부 노인과 백요이가 빠져나왔다. 둘 다 안색이 창백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영력을 빨아들이는 살혼사 속에 한참동안 갇혀 있었으니 법력 손실이 엄청났을 것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 노인이 표정을 다잡으며 포권을 했다.

“한 형이 아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 했습니다. 음양굴에 은시야차가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백요이도 한립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한립이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겉으로는 그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았지만 내심 그를 경계하는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이 비록 갇혀있었지만 한립이 적을 상대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한립 혼자서 은시야차를 상대하고 마지막에는 적을 달아나게 만들 정도로 실력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전송되어 세 수사밖에 없었으니 위기감이 들 만했다. 그때 한립은 음지마가 든 영수대를 부 노인을 향해 던졌다.

“음지마입니다. 다른 것은 되었고 제련한 배영단을 하나 더 주시면 됩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두 개요?  개수만 충분하다면 당연히 드려야죠.”

그의 제안에 부 노인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저도 좋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전부 한 수사 덕분이니 당연히 더 많은 몫을 드려야지요.”

백요이도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럼 좋습니다. 두 분은 일단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시지요. 제가 먼저 나가서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다녀오시지요. 저희는 법력 소모가 커서 한동안 좌선을 해야 할 듯합니다.”

부 노인이 말했고 백요이도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통로로 나아가며 의식을 방출해 혹시 모를 은시야차의 기습에 대비했다.

그러나 부 노인과 백요이가 음지마를 가지고 달아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음양굴에서 서로에게 남겨 놓은 표식이 있었으니 며칠 내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립은 순간 모두를 죽이고 저물대를 챙겨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그가 배영단을 제련해봐야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두 수사가 그간 보여준 말과 행동이 좋은 인상을 남겨 살심이 크게 일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다 그들을 구해낸 것이다.

종유석 동굴을 따라 대청 입구 같은 곳에 빠져나오니 청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위로 이어져 있었는데 육안으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산속이란 말인가? ’

한립은 의외였으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통로를 따라 계속 위로 날아갔다. 그런데 여전히 계단은 끊임없이 이어져 그를 놀라게 했다.

그의 비행 속도를 생각하면 엄청난 거리를 날아오른 것인데 주변에 어떤 진법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환영진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그가 몇 리를 이동한 끝에 결국 출구로 보이는 곳에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밖으로 빠져나오자 시야가 밝아지며 돌로 다져놓은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충만한 영기가 가득 들어왔다. 전송진에 있던 동굴 속보다 훨씬 더 농염한 영기였다.

그가 시선을 돌리니 광장 끝부분에 불쑥 산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는데 그의 뒤쪽 통로에도 똑같이 불쑥 산이 솟아올라 있었다.

이곳은 엄청나게 높은 두 산 사이의 협곡에 만들어진 대형 광장 같았다. 한립은 주위를 돌라보다가 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그는 거의 수천 장을 올라간 끝에야 겨우 협곡을 벗어났는데 반나절을 돌다가 다시 협곡 안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다양한 산을 보았는데 난성해의 천성성에 있던 성산이 가장 컸다. 그곳은 산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놀랍게도 81개의 층으로 나뉘어 수사들이 기거했었다.

그런데 이곳이 천성성의 성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아니 오히려 훨씬 컸다. 그러나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이 거대한 산을 더 거대한 금제가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하얀 빛의 장막이 쳐져 있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상고 수사들밖에 없었다. 끝없는 하얀 빛을 바라보며 그는 결국 그곳으로 날아갔다.

일다경 쯤 날아가자 하얀빛의 장막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그가 둔술을 펼치며 나타난 푸른빛은 끝없는 빛의 장막 앞에서 모래알 같아 보였다.

금제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한립은 빛의 장막을 굳이 공격해보지 않아도 금제에 엄청난 영력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영 중기 수사가 아니라 화신기 수사라 해도 강제로 금제를 뚫고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거대한 산을 내려다보는데 시종일관 너무 고요했다. 새의 지저귐이나 동물들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고 산 전체가 죽은 듯 고요했다.

그러나 산에서 풍겨 나오는 엄청난 영기는 진짜여서 그 괴리감에 한립은 위험을 직감했다.  그는 조금 굳은 얼굴로 다시 전송진이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 * *

동굴로 돌아오니 부 노인과 백요이는 아직도 좌선을 하고 있었다.

한립은 그들을 슬쩍 보고는 저물대에서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각종 영기의 빛이 퍼져나가며 간단한 결계가 만들어졌다. 결계는 그들의 기운을 숨겨주고 동굴 속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경고해 줄 것이다.

한립은 결계가 다 만들어지자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동굴 한쪽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룻밤이 지나고 부 노인과 백요이가 법력을 회복했는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력은 완전히 회복하셨는지요?”

“한 형께서 호법을 서주신 덕분에 대부분의 법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아 보셨습니까?”

부 노인이 거대한 전송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곳은 거대한 산 속의 굴인 듯한데, 전체가 금제로 막혀 있어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대한 산이요?  한 형은 해외수사라 내륙의 명산들을 잘 모르실 겁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나가서 둘러보시지요.”

“한 형의 말투로 보아 이곳에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도 다녀와도 될까요?”

한립이 묘한 얼굴로 미소 짓자 백요이가 무언가 눈치 채고는 재빨리 말했다. 이에 한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부 노인과 백요이가 빛줄기가 되어 통로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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