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2
562화. 삼염선의 위력
비검들이 금빛을 내뿜으며 한립 주위에 꽃잎처럼 떨어졌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입을 벌려 설정주에 피를 내뱉었다. 그러자 설정주가 격렬히 몸을 떨더니 보라색 화염을 분출했다.
촤륵.
화염은 법결의 힘을 받아 한립의 전신을 휘감았고, 주변 기운을 급격히 떨어뜨려 열댓 장 높이의 거대한 얼음벽을 펼쳤다.
그 순간 금침들이 번뜩이며 얼음벽을 찔러댔다.
태태탱!
금빛과 보랏빛이 교전하며 얼음벽 표면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한립은 얼음벽을 충분히 두껍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금침들은 순식간에 마모되어 벌써 절반 정도로 얇아졌다.
그의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한립은 몰랐지만 은시야차도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비록 금침이 금속 속성 영기로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언제고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곳의 버려진 광석에서 추출해서 그가 하나하나 제련해 낸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천 년에 걸쳐 시화로 제련해낸 금침들은 더없이 예리했다. 아까 한립이 그를 얼렸던 보라색 얼음도 바로 이 금침들로 깬 것이었다.
하지만 은시야차는 한립이 이번에는 피를 토해내 자라극화의 위력을 높이고 설정주의 힘을 빌려 빙염 정수를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한립의 부채에서 나온 삼색 불 봉황이 회색 그물에 머리를 박았다. 살혼사로 엮어 놓은 거대 그물에서 무수히 많은 은색 실들이 빠져나와 봉황을 에워싸려 했다.
잠시 후 은색 실에 뒤덮였던 봉황이 맑은 소리로 내며 울자 갑자기 금색, 은색, 붉은색의 신비로운 빛과 주술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봉황의 불가사의한 빛에 휩싸인 살혼사들은 눈 녹듯이 녹아 회색 기운으로 변해 사라져갔다. 그제야 삼색 불 봉황이 진정한 공격을 시작했다. 양 날개를 펼쳐 거대한 불덩이로 변하더니 몸을 줄었다 늘였다하며 키운 것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금, 은, 홍색 빛의 고리가 만들어져서 살혼사의 거대 그물을 가운데 두고 그 표면에 주술이 흘러 다녔다.
아름다운 이현상(異現象)에 허공에 떠있던 한립과 은시야차도 놀라 시선을 떨어트렸다. 거대한 빛의 고리가 순식간에 없어지며 거대한 그물도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은시야차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살혼사 그물은 그가 제련해낸 시살지기 전부를 쏟아 부은 것이었다. 아직 간시들 체내에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겨우 시살화신들을 조종하는데 쓰일 뿐 강력한 공격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상대의 공격은 영력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마치 화신기에나 다룰 수 있는 천지의 힘을 빌려 쓰는 것 같다는 것이 문제였다.
비록 금신월시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엇비슷한 수준을 오랜 세월 맴돌며 어렴풋이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방금 공격에서 그와 비슷한 것이 느껴지자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도대체 손에 든 부채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저런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인가.
본래 그는 특수한 신통 때문에 최상급 보물들만 갖춰지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지를 찾은 이후 줄곧 이곳에 갇혀 있다 보니 재료를 찾아 마땅한 보물을 제련할 방도가 없었다.
가끔 음양굴에 들어오는 수사들을 도륙해 산 채로 시살화신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던 잡다한 물건들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유일하게 만족스러웠던 것이 사월환경이었는데 부서지고 말아 분노한 것이다.
한립이 삼염선의 의외의 위력에 기뻐하며 얼음벽이 금침에 거의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곤 저물대를 스쳐 작은 병을 꺼냈다. 병을 연 그가 만년영액 한 방울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약효가 돌자 경맥을 타고 대량의 정순한 영기가 돌기 시작했다. 법력을 회복한 한립이 은사야차를 서늘하게 쳐다보고는 삼염선을 꽉 움켜쥐었다.
깃털 부채에서 강력한 빛이 분출되며 삼색의 주술들이 요동쳤다. 이번에는 철저히 상대를 멸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다행히 주변에 결계가 쳐져 있어 상대는 달아날 수도 없었다.
은시야차가 그것을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위기를 느낀 그가 이를 악물고 허공의 금색 빛덩이를 향해 손짓했다.
금빛이 바로 금침을 뿜어내던 것을 멈추고는 은시야차의 체내로 흡입된 것이다. 동시에 큰 입을 벌려 새까만 시기를 뱉어내더니 어두운 빛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한립이 냉소하며 부채에 법력을 주입하려 할 때 돌연 아래쪽에서 예기치 못한 강력한 진동이 느껴졌고 주위의 결계가 사라져버렸다.
원래 있던 결계 바깥에서 땅이 갈라지며 빛이 방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결계가 원래 있던 결계와 융합하며 새로운 진법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진법 위로 영석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거대한 전송진 같아 보였다.
“이게 무슨…….”
한립은 자신을 보낼 지도 모르는 전송진에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 등 뒤에 은색 날개를 펄럭였다. 뇌둔술을 이용해 결계의 범위를 벗어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전송진이 웅웅거리더니 눈을 찌를 듯한 하얀빛이 번지며 한립, 은시야차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몰랐지만 비슷한 상황이 대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은시야차 외에 이름 모를 괴물 세 마리가 동시에 거대 전송진을 타고 사라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남강 모처의 호수에 모인 엽 가 수사들 때문이었다.
* * *
같은 시각, 호수 상공에 뜬 엽 가 고계 수사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기이한 현상을 가려줄 진법을 설치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런 광경이라면 수 천 리 밖의 수사들도 다 보았을 텐데. 우리 엽 가를 멸문시킬 작정이더냐!”
각진 얼굴의 수사가 죽일 듯이 노려보며 안색이 창백한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그 뒤에 모여 있는 다른 엽 가 수사들도 안색이 어두웠다.
호수 중심에서 기이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빛기둥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멀리서 여섯 줄기의 빛기둥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진법이 제대로 작동했고, 아침 일찍 저계 제자들을 시켜 진법을 작동하라고 하였습니다.”
백발을 늘어트린 노인은 엽 가의 진법대사로 봉인결계를 푸는 일을 맡고 있었다.
“둘째 형님, 무턱대고 영륭 사질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이 진법을 풀기 위해 사질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분명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 걸 겁니다. 정 안 되면 우리가 전부 나서서 수천 리 내의 수도자들을 죽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즉시 진법들이 설치된 곳으로 가서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 복구할 수 있는지 알아 보거라.”
서른 살 정도의 유생이 하얀 장포를 걸치고는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유생의 말에 각진 얼굴의 수사도 노인을 놓아주었고 유생이 가리킨 몇몇 장로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예, 대장로님!”
하얀 장포의 젊은 유생이 대진 제일 세가의 대장로였던 것이다. 유생은 분부를 내리고 백발노인에게 물었다.
“봉인결계를 해제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지?”
“대장로님께 아룁니다. 봉인 결계를 해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곤오산을 봉인해둔 결계에는 이미 틈이 벌어졌고 결계 자체도 약해져서 1년 내로는 봉인 자체가 철저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 그럼 됐다. 저계 수사들을 전부 모아 이곳을 떠나라고 이르거라. 미리 계획한 대로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해진 곳으로 숨되 1년 동안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어긴다면 가법으로 처단할 것이야!”
유생의 말에 백발노인이 몸을 떨며 그러겠다고 답을 하고는 즉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일다경이 지나고 조사를 나갔던 엽 가 장로들이 돌아왔다.
“대장로님 큰일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결계가 완전히 망가져있고 그곳을 맡은 제자들이 전부 실종되었습니다.”
그 말에 유생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다른 수사들의 눈빛도 서늘해졌다.
“주변 백 리 내로는 우리 엽 가 수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일을 벌였다고는 볼 수 없겠지. 보아하니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구나.”
유생이 홀연히 냉소하며 말했다.
“우리 쪽 수사들이!”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엽 가의 수사가 그런 짓을 벌인단 말입니까.”
“전부 엽 가 수사들은 아니지요.”
모두의 시선이 평범한 용모를 한 수사에게 모여들었다. 바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고마였다.
“한 장로는 내가 직접 요청하여 자리한 겁니다. 게다가 줄곧 숙부님과 함께 있었는데 의심하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엽 가 대장로가 즉시 논의를 중단시켰다.
“맞다. 한 수사는 노부와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대두 괴인이 담담히 수긍했다. 다른 수사들도 숙부와 대장로의 말에 의심을 거두었다. 유생이 곧 각진 얼굴의 수사를 향해 분부했다.
“형님, 호수 밑으로 가셔서 실종된 제자와 관련해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주셔야겠습니다.”
“알았네!”
각진 얼굴의 수사가 바로 빛줄기로 변해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장로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 비록 결계를 깨며 일어난 기이한 현상 때문에 오래 속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와 대적할만한 세력이 모이려면 시일이 걸릴 겁니다.
남강에는 그리 큰 문파도 없고 다른 지역의 수사들이 몰려오려면 보름은 걸리겠지요. 곤오산 내부의 상황은 모르지만 먼저 보물들을 확보해야합니다. 특히 통천령보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이 일이 알려지더라도 가문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여 년간 계획한 일이 오히려 멸문지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예, 대장로님!”
장로들이 고개를 숙이자 각진 얼굴의 수사가 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과 함께 돌아왔다. 각진 얼굴의 수사가 유생 앞에 와서 상황을 보고했다.
“아래쪽도 진법사 두 명이 비었네. 다섯째 가문과 열두 번째 가문의 여식들이지. 감히 적과 내통해 정보를 팔아먹은 것은 아니겠지.”
“적과 내통한 것인지 살해당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언제 실종되었다고 합니까?”
“이틀째입니다. 먼 곳의 진법을 담당하는 자들이라 아무도 없어졌다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오늘 모든 제자들이 모이고 나서야 둘이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이번에는 대장로의 질문에 백발노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정말 그 둘이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곤오산에 들어가면 진법사들과 제자들을 즉시 철수 시키거라. 그렇지, 봉인 결계의 틈이 어디에 생겼는지 위치를 알아냈느냐?”
“예, 진법을 이용해 찾아냈습니다. 북쪽으로 이십 리 정도의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땅에서 천 장 아래로 수십 장 길이의 균열이 있을 것입니다. 장로님들께서 들어가시기에 충분하실 겁니다.”
“안내 하거라. 모두 출발한다.”
“예, 대장로님!”
동시에 아홉 명의 수사들이 북쪽으로 날아갔고 금방 이십 리 밖의 풀숲에 도착했다.
백발노인은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다니 손바닥을 뒤집어 은색 진법 원반을 꺼냈다. 그가 주술을 읊으며 법결을 던지자 원반이 밝게 빛나며 정체 모를 주술들이 떠다녔다.
“이곳이 맞습니다.”
백발노인이 진법 원반을 확인하고는 자신 있게 답했다.
“그래! 누이가 영수를 방출하는 대로 내려간다.”
유생이 고개를 돌려 늙은 여도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즉시 영수대에서 노란 빛을 뿜어냈는데 곧 다리가 천개는 달렸을 것 같은 지네가 녹색 기운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지네는 토둔술에 정통한 거대 영수였다.
백발노인을 제외한 수사들은 신속하게 지네의 등 위에 올라섰고 늙은 여도사가 낮게 주술을 외자 거대 지네에서 노란 기운을 뿜어냈다.
수사들이 노란 보호막 속에서 거대 지네와 함께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백발노인은 잠시 대기하다가 장로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