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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61화 (318/2,000)

# 561

561화. 둔술

가위는 즉시 금빛으로 변해 나아갔다. 미 부인은 그것으로 살혼사를 끊어내고 부 노인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립의 얼굴이 구겨졌다. 일행을 구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이렇게 함부로 그와 거리를 벌리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퍽!

금빛이 거대 고치에 도착하기도 전에 땅에서 녹색 그림자가 솟아올라 맨 손으로 가위를 튕겨냈다. 한립과 미 부인은 당연히 그가 은시야차일 거라 생각했지만 빛이 가시고 드러난 모습에 크게 놀랐다.

녹색 그림자는 늑대 머리에 사람의 얼굴을 한 시랑이었던 것이다. 어떤 비술을 써서 사람의 형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쳐다보는 눈빛이 흉악했다.

한립은 늑대 머리에 있던 음지마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땅 속에? ’

그가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도처를 살펴보았다. 그러다 안색이 급변해 미 부인을 향해 소리쳤다.

“뒤를 조심하세요!”

말을 하며 열 손가락을 튕겨 열댓 개의 푸른 검기를 그녀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 소리에 미 부인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즉시 푸른 방패를 등 뒤로 보내 전신의 영력을 불어 넣었고 머리 위의 수레바퀴에서도 일곱 빛깔의 보호막이 배로 짙어졌다.

그녀가 대비를 마쳤을 때 금색 그림자가 소리 없이 등 뒤에 나타났다. 바로 방금 사라졌던 은시야차였다.

녹색털이 전부 빠진 대신 금색 비늘로 뒤덮인 강시는 등 뒤의 은색 날개에서 푸르고 하얀 이상한 빛을 번뜩였다.

그의 은백색 눈알에 금빛 눈동자가 맺혔으며 하늘을 찌르던 시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치 공기처럼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았다.

괴물이 두말없이 손을 뻗어 몇 배로 불어난 날카로운 검은 손톱을 찔러 넣었다. 푸른 방패와 보호막은 튼튼해 보였지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은시야차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방패를 뚫고 여인의 보호막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움켜쥔 것이다.

펑! 푸욱.

순식간에 보호막이 산산조각 나고 손톱이 그녀의 가슴에서 심장을 뽑아냈다.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은시야차와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역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 푸른 검기가 그제야 날개를 공격했지만 푸르고 하얀 두 가지 색의 기운에 밀려났다.

이런 공격이 아무 효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그 덕에 여인이 약간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두개골에서 붉은 빛이 번뜩이며 수 촌 크기의 원영이 빠져나온 것이다.

전라의 원영은 미 부인을 꼭 닮아 있었고 두 손으로 작은 비검을 움켜쥐고 즉시 열댓 장 밖으로 순간 이동했다. 몇 번만 더 순간 이동을 하면 완전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시야차가 웃음을 흘리더니 시체를 던져 버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어 희미한 그림자가 원영의 뒤에 나타나 입에서 회색 실을 분출했다.

“한 수사 살려주세요!”

미 부인의 원영이 한립에게 호소하며 회색 그물 속에서 비검을 부렸다. 만일 육체가 있었다면 끊고 달아났겠지만 원영뿐인 그녀가 오행영력을 흡수하는 살혼사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은시야차는 틈을 주지 않고 은색 그물을 뿜어내자마자 허공을 쥐어 회색 거대 손으로 그물과 원영을 붙들었다.

회색빛이 반짝이고 아주 작은 크기의 고치가 새로 완성되었다.

“뇌둔술을 이용해 구하러 올 줄 알았더니. 제 몸 사릴 줄은 아는구나!”

“살릴 수 있다면 구하러 가겠지만 스스로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머리 위의 그물은 이제 거두시지요.”

“이걸 발견했다고?  보아하니 정말 내 환술을 꿰뚫어 보는구나.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어.”

은시야차는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마 한립의 명청령안이 어느 정도 무르익지 않았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물론 그물을 발견하지 못 했어도 경거망동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형태가 변한 은시야차는 너무 기이했다. 강시의 기운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고 풍둔술도 이전보다 현묘해져서 바람 속에 자신의 신형을 감추는 경지에 이르렀다.

만일 명청령안이 없었다면 가까이 다가와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미 부인의 방어 보물들을 차례로 깬 것도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은시야차는 한립이 걸려들지 않자 냉소하고는 인간형 시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시랑이 즉시 날아들어 은시야차의 곁에 서더니 고개를 뻣뻣이 들고 한립을 노려보았다.

그때 한립의 아래쪽에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제혼이 가슴을 마구 두들기며 위세를 떨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한립은 의식을 이용해 제혼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제혼도 은시야차가 하늘을 펄펄 날아다니자 쫓을 길이 없어 답답했는지 시랑에게 괜히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시랑이 제혼의 눈빛을 받으며 두려움에 위축되었다.

은시야차가 얼굴을 굳히고는 돌연 입을 벌려 회색의 구슬을 내뿜어 시랑의 입에 넣어 주었다. 회색 구슬을 삼킨 시랑은 즉시 기운이 거세졌다.

한립은 그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 틈에 미 부인의 푸른 방패를 살폈다. 주인을 잃은 보물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는데 새것처럼 푸른 광택이 흘렀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번에는 은시야차의 전신에 돋은 금빛 비늘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은시야차가 고개를 쳐들고 길게 울부짖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시랑도 시화를 뿜어내며 제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혼 역시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코에서 노란 기운을 뿜었다. 시랑은 회색 구슬을 삼키고 기세등등했으나 노란 기운에는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제혼과 시랑이 대치 상태에 들어가 있는 동안 한립과 은시차야는 고공에서 번뜩이며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한립의 날개에서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움직임이 불규칙했으나 은시야차가 무슨 수를 쓰는지 날개에서 푸른색과 하얀색 기운을 흩날리며 그를 뒤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은 크게 당황했다. 상대의 풍둔술이 자신의 뇌둔술 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사이의 간격은 좁아졌고 이제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은시야차가 나타났다.

돌연 한립이 허공 어딘가에서 나타나 바로 움직이지 않고 설정주에서 보라색 화염을 내뿜었다. 동시에 몸 주변을 수십 개의 금색 비검이 둘러져 금빛으로 수십 장 범위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준비를 마친 그의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러자 보라색 화염과 검빛이 그것을 중심으로 몰아쳤다. 한립이 한 손을 들어 굵직한 뇌전을 뻗어 내자 뇌전으로 이뤄진 구렁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은시야차는 갑작스런 반격에 흠칫 놀라다가 즉시 전신의 금빛을 끌어 올렸다. 이에 금빛 찬란한 보호막이 생겨나 날개로 몸을 보호했다.

잠시 후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빛, 보라색 화염, 금빛 뇌전 등이 연달이 폭발하며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꽈광!

한립은 다시 은빛 날개를 펄럭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스무 장 뒤에서 나타났다. 그는 주의 깊게 빛들이 폭발하는 곳을 살폈다.

명청령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청죽봉운검이 변한 금빛이나 벽사신뢰가 변한 뇌전 구렁이 모두 보호막에 간단히 튕겨 나간다는 점이었다.

다만 보라색 화염만이 달랐는데 보라색 얼음이 금색 보호막과 은시야차를 통째로 얼리고 있었다. 은시야차는 보호막 속에서 멀쩡했지만 그래도 놀라는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본체를 얼리지 못한다면 얼음을 깨고 나가는 것은 간단했다. 은시야차가 두 손을 금빛 보호막에 대자 보호막에서 무수히 많은 금빛이 터져 나오며 놀랍게도 얼음에 미세한 구멍들이 뚫렸다.

결국 보라색 얼음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에 한립이 얼른 손짓해 비검들을 전부 되돌아오게 했다.

잠시 후 은시야차가 신형을 떨더니 보라색 얼음 속에서 손쉽게 빠져나왔다. 그는 냉랭히 한립을 쳐다보고는 한 손을 들어 금색 빛의 구슬을 만들어냈다.

그때 한립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겠군요. 토둔술과 풍둔술 이외에도 놀랍게도 금둔술(金遁術)을 펼칠 수 있었다니. 금둔술은 인간 수사들 사이에서도 펼칠 수 있는 자가 극히 드물고 연시 중에서도 오직 전설 속의 금신월시(金身月尸)만이 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미 진화를 시작한 겁니까?”

그의 말이 조금 의외였지만 은시야차는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흥! 진화는 이미 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너희 원영 중기 수사 다섯이서 덤볐다면 몰라도 겨우 네 놈 혼자 나를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가 더는 정체를 숨기지 않고 천천히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은백색 날개가 순식간에 금색으로 변했고 엄청난 시기도 가감 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 강력한 영기의 압력에 이곳을 둘러싼 빛의 장막이 진동할 정도였다.

이런 기운은 원영 후기 수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런 상대를 처치하려면 추마골에서 마주쳤던 고마 정도는 돼야 가능할 것 같았다.

“오래 전에 진화를 시작했지만 지하에 갇혀 달의 기운인 음월정화(陰月精華)를 모을 수 없었겠지요. 아마 만 년을 더 수련한다고 해도 완전한 금시월시로 거듭나지는 못할 겁니다. 겨우 금둔술을 써서 금속 속성의 재료가 들어간 법기나 법보에는 정통하겠지만요.”

“더는 너와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다. 얌전히 죽거라!”

은시야차가 한립이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한 손에는 금빛을 모으고 다른 손으로는 돌기둥에 묶인 간시들을 향해 회색 빛기둥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간시들 속으로 빛기둥이 빨려 들어갔고 돌기둥에 묶여 있던 사슬이 바닥에 떨어지자 청록색 눈빛이 번뜩이며 눈을 떴다.

간시들은 앞으로 걸어 나와 무감각하게 허공의 한립을 쳐다보았다. 한립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렇게 많은 시살화신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자꾸나! 지금이라도 얌전히 군다면 혼백만은 살려주지!”

“여기서 이것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당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운이 나쁜 것인지 모르겠군요.”

한립은 주위의 간시들을 보며 침묵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저물대를 스쳤다.

그러자 주먹만 한 무언가가 빠져 나와 그의 손에 들렸는데 고풍스러운 양식의 깃털 부채였다.

부채는 크기는 작았지만, 금색, 은색, 붉은 색으로 나뉘어 그 위에 빼곡하게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그 요란한 빛에 주술까지 흘러 다니니 눈이 부셨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이때 은시야차가 먼저 술법을 완성하고 공격해 왔다. 손에 들고 있던 금빛덩이를 허공에 던진 것이다.

금빛이 데구루루 구르더니 찬란한 금빛을 내뿜으며 놀랍게도 무수히 많은 금색 침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금침의 위세에 그가 피할 곳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돌기둥에서 빠져나온 간시들이 살혼사를 내뿜어 공격에 합류했다. 살혼사들이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 그물로 뭉쳐져 한립이 아래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았다.

거대한 그물은 강력한 살기를 품고 있어 보통의 수사들은 영향을 받았겠지만 한립은 스스로 상당한 살기를 품고 있는데다 명왕결을 익혔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립이 안색을 굳히며 합장을 하자 빛이 번뜩이며 삼염선이 몇 척으로 커졌다. 그런데 그가 부채를 잡고 법력을 불어넣으려다가 무심결에 부채를 내던질 뻔했다. 전신의 법력이 순식간에 절반이나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염선에서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곧 법력을 빨아들이는 것을 멈추었다. 이후 화염이 중간에 맺히며 불로 만들어진 봉황이 금색, 은색, 붉은 색 깃털을 지니고 거대한 그물을 향해 날아갔다.

이런 기이한 현상에 한립도 순간 멍해졌으나 즉시 정신을 차렸다. 본래 금침들을 향해서도 부채를 부치려고 했으나 법력이 부족해 비검들을 향해 손짓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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