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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59화 (316/2,000)

# 559

559화. 은동환술(銀瞳幻術)

작은 광장의 중간에는 푸른 대나무가 천장을 뚫고 자라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 곳곳에는 열댓 개의 돌기둥이 솟아올라 있었는데 각각 복부가 갈라진 새까만 간시들이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한립과 미 부인이 화들짝 놀라 대나무 아래 녹색 털로 뒤덮인 괴물을 쳐다보았다. 그는 머리가 없는 시체를 들고 맛있게 뜯어먹고 있었는데 시체의 복장이 원 씨 거한의 것이었다.

녹색 괴물의 옆에는 시랑이 방대한 몸을 웅크리고 무언가를 먹고 있었는데 역시 원 씨 거한의 영수인 거대 자라였다.

그리고 음지마는 여전히 시랑의 머리에 엎드려 꼼짝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미 부인이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 소리쳤다.

“부 사형!”

그녀가 공포에 질려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한립이 시선을 돌리니 광장의 양측 허공에 회색 고치들이 둥둥 떠 있었다. 층층이 감고 있는 희색 실들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익숙한 살혼사였다.

두 개의 고치 중 한 곳에서는 ‘쿠쿵’하는 폭음이 들려왔고 다른 한 곳에서는 실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방출되었다.

보아하니 부 노인과 백요이가 갇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원영 중기 수사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을 가두다니 한립은 겉으로는 덤덤한 척 했지만 무척 긴장했다.

미 부인은 부 노인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이 그들을 구할 적시가 아니었다. 그녀가 고치에서 시선을 돌리고 소매에서 다시 불문의 보물인 수레바퀴를 꺼내들었다.

녹색 괴물은 그 둘은 신경 쓰지도 않고 포식하는 중이었다. 괴물은 시체의 팔뚝을 부러뜨려 씹어 먹기 시작했다.

피범벅인 된 원 씨 거한의 시체를 보는 한립의 눈동자에 남색 기운이 일렁였다. 그때 어깨에 앉아 있던 제혼이 돌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등의 털을 한껏 세우고 녹색 털 괴물을 노려보았다.

한립이 체내의 명혼주(鳴魂珠)를 통해 감응하니 평소와 달리 제혼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에 그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때 녹색 털 괴물도 제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퍽!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시체를 던져 버리자 거의 스무 장을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엄청난 힘이었다.

녹색 털 괴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바라보자 그제야 한립은 괴물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 원숭이와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완전히 달랐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몇 촌은 튀어나와 있었고 피범벅이 된 입가와 상반된 은백색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한립은 특히 괴물의 등 뒤에 불룩하게 올라온 살덩이 같은 것을 눈여겨 봐두었다. 녹색 털 괴물이 두 수사를 훑더니 시선을 한립의 어깨에 앉은 제혼에게 고정시켰다.

제혼이 녹색 털 괴물의 시선에 털을 곤두세우고는 즉시 어깨에서 뛰어내려 두 손으로 힘껏 가슴을 두드렸다. 검은 빛을 분출되며 체구가 불어났고 열댓 장 크기의 흉흉한 거대 원숭이로 변한 것이다. 그의 등 뒤에 나타난 핏빛 악귀 문양은 더욱 선명해져서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제혼의 변신에 녹색 괴물이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뒤로 물러나 어깨를 털었다.

쫘악-

등 뒤의 두 개의 살덩이가 갈라지며 살점으로 뒤범벅된 은빛 날개가 나타난 것이다.

“은시야차(銀翅夜叉)!”

미 부인이 놀라 외쳤고 한립의 안색도 일순 창백해졌다.

은시야차(銀翅夜叉)는 인계에서 연시 중 금신월시(金身月尸) 다음으로 최상위급의 존재였다. 바꿔 말하면 원영 후기 수사와 맞먹는데, 실제 동급 수사와 싸우면 은시야차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비천시(飛天尸)에서 진화해 온 연시 종류라 날개를 펄럭이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했고 태생적으로 바람과 흙의 두 가지 속성의 둔술을 썼다.

거기다 웬만한 법보로는 타격을 입지 않는 단단한 신체로 괴력을 발휘하고 환술에 능통했다. 눈동자가 없는 한 쌍의 눈알은 수사의 의식을 현혹하는 효과도 있었다.

“두 명이나 더 오다니 오랜만에 신선한 살코기를 마음껏 뜯겠구나! 배불리 먹겠어.”

은시야차가 양 날개를 펴더니 커다란 입으로 말을 했다. 그 어투가 어찌나 또박또박한지 인간 수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말에 한립이 입 꼬리를 꿈틀하며 두 손을 펼쳤다. 은색 고치를 겨냥해 작은 검을 하나씩 날린 것이다.

괴물이 상당한 능력을 지녔음을 파악했으니 나머지 두 수사를 구해내 같이 협공하려는 것이었다. 은시야차가 그것을 보더니 그저 냉소했다.

그의 은색 눈이 기이한 빛으로 번뜩였고 회색 고치들 앞에 회색의 거대손이 나타나 두 개의 금빛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비검들이 살혼사로 만들어진 거대 손에 포획당한 것이다.

한립은 놀라기는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즉시 의식을 이용해 비검들을 조종했다. 천둥소리가 울리며 금빛이 번뜩였고 비검들이 벽사신뢰를 방출해 살혼사를 찢어 내고 달아나려했다.

그러나 회색 고치 속에서 빼곡하게 회색실이 날아들어 겹겹이 비검들을 감쌌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소매 속으로 두 손을 쥐자 전신에 금빛이 반짝이며 뇌전 그물이 온몸을 뒤덮었다.

마치 천둥의 신이 인계에 강림한 것 같았다.

“재미있구나. 내 살혼자를 찢어 내다니. 내 시살분신(尸煞分身)들이 네게 당한 것이로구나.”

은시야차가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런 것이 맞소. 음지마를 내놓고 일행들을 풀어주면 우리도 당장 이곳을 떠나겠소.”

한립이 원 씨 거한의 시체를 힐끗 보고는 음지마와 고치들을 가리켰다.

거대 원숭이로 변한 제혼이 동시에 으르렁 거리며 등 뒤의 핏빛 악귀 문양에서 붉은 기운을 내뿜었다. 상대를 위협하려는 행동이었다.

“이 조그만 녀석을 데려가고 싶다면 가능하다. 일행들을 풀어주고 너희를 살려 보내줄 수도 있고 말이야.”

“정말인가요?”

미 부인이 수레바퀴를 허공에 띄우다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러나 한립은 전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한 가지 조건을 들어 준다면 가능하다. 이곳을 떠나되 저 영수는 두고 가거라.”

은시야차는 녹색털이 수북한 손을 뻗어 새까만 거대 원숭이를 가리켰다. 미 부인은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내 영수를 두고 가라?  꿈 깨시오.”

“그럼 다들 여기에 남아 내게 잡아먹히면 되겠구나.”

은시야차는 한립의 거절에 즉시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송곳니가 길어지고 두 눈에서 은빛을 방출했다.

“환술을 조심하시오!”

회색 고치 중 하나에서 부 노인의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은빛이 눈을 찔러 명청령안을 지닌 한립도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고 미 부인도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안 돼!’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한립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위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광장과 고치들이 사라지고 짙은 안개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환술입니다. 그것도 경지가 높은 환술.”

“얼마나 대단한지는 차차 알아나가면 되겠지요.”

한립의 말에 미 부인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힘이 하나도 없는 부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조급해진 것 같았다.

연달아 법결을 날리니 불문의 수레바퀴 모양 보물이 반짝이며 일곱 빛깔의 빛기둥들을 분출했다. 하지만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빛기둥들은 마치 바다 속에 물을 부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어두운 얼굴로 영수대를 스치자 그 안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며 날개 달린 뱀 무리로 변했다. 몸집은 작았지만 머리에 뿔이 나고 전신의 비늘이 수정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남다른 영수들이었다.

그녀가 주술을 외우며 날개 달린 뱀들을 향해 붉은 법결을 날리자, 뱀들이 입을 벌려 불꽃을 내뿜었는데 순식간에 불꽃이 불길이 되어 활활 불타오르더니 불바다를 형성했다.

미 부인의 행동에도 한립은 남색 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주위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높게 치솟은 화염의 물결에 허공의 어딘가에서 은빛이 번뜩이며 거대한 은색 눈 두 개가 등장했다.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눈에서 은빛이 흘러나오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활활 타오르던 불바다도, 날개 달린 뱀도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모습에 한립은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미 부인은 안색이 급변해 다시 붉은 비검들을 방출해 몸을 보호했다.

미 부인은 근심에 휩싸였다. 환술의 위력이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어 단시간 내로는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허공의 이상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귀를 울리는 것도 이제는 천둥소리처럼 커져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제 은색 눈 뿐만 아니라 도처의 안개조차 은빛으로 번뜩였다. 순간 은색 눈이 초승달처럼 접히더니 육중한 발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

“한 형, 방법이 없겠습니까?”

미 부인은 당장이라도 은시야차가 튀어나올 것 같아 한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일 한립마저 아무 대책이 없다면 피를 대량으로 소모해서라도 비술을 사용해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한립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한 팔에서 굵은 뇌전을 분출했다. 금빛이 번뜩이고 허공의 안개 속에서 은색 초승달과 부딪쳤다.

꽈광!

쿠르릉.

이번에는 공격이 사라지지 않고 은색 초승달과 금빛 뇌전이 충돌해 터져나갔다.

미 부인은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눈을 깜빡였는데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광장이었다. 짙은 안개나 은빛 눈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때 은시야차는 대나무 아래 서서 은색 날개 한쪽으로 금빛 뇌전을 막고 있었다. 미 부인은 괴물이 녹색털이 수북한 손으로 새까만 거울을 들고 둘을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울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요사스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환술 속에서 내 위치를 파악하다니 이상하구나. 사월환경(邪月幻鏡)의 보조로 펼친 은동환술(銀瞳幻術)의 위력은 두 배 이상인데 말이야. 환술 속에서 네 놈의 눈이 이상하던데 무슨 특수한 비술을 익힌 것이더냐?”

담담히 말하며 은색 날개를 펄럭이자 금빛 뇌전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한립은 그저 냉소하며 상대의 말에 소매를 펄럭여 수십 개의 금빛 검들을 방출했고 동시에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은빛 날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길게 숨을 토해내더니 보라색 화염이 둘러싸인 새하얀 구슬을 토해내니 주변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한립이 푸른 검들을 방출했을 때까지만 해도 은시야차는 표정변화가 없었지만 은색 날개와 자라극화에 둘러싸인 설정주(雪晶珠)가 나타나자 신중한 기색이 감돌았다.

한립은 여전히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영수대 하나를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금색의 날벌레 들이 우르르 날아올랐다. 그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주위에 일곱 빛깔의 보호막을 치더니 한 손을 뒤집어 보라색 거울이 변한 보라색 빛을 내뿜었다.

일격필살의 무기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보물들을 전부 방출한 것이다. 상대는 원영 후기 수사를 능가하는 존재였기에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흑의 여인은 한립의 엄청난 보물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도 푸른 방패를 꺼내고 저물대를 스쳐 나비 모양의 보물을 두 개 발동했다. 나비 모양의 보물은 날개를 펄럭이는 것이 살아 있는 영충과도 비슷했다.

원영 중기의 수행으로 지니고 있는 보물이 이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전투에서 보물을 많이 늘어놓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각각을 의식으로 조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립과 여인이 협공을 펼치기 전에 은시야차가 먼저 흉흉한 빛을 띠며 몸을 활처럼 쏘아 보냈다.

펑!

날카로운 손톱이 땅을 파고들자 한립과 여인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광장 전체가 흔들리며 각양각색의 빛이 번졌고 주위의 간시들이 돌기둥에서 요동쳤다.

한립이 안색이 변해 즉시 날개를 떨쳤다. 그와 주위의 보물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서금충 무리와 제혼만이 남게 되었다.

은시야차가 그것을 보고 교활한 웃음을 짓더니 역시 살점 덩어리로 만들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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