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558화 (315/2,000)

# 558

558화. 살혼사(煞魂絲)

거대 늑대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시화를 더욱 많이 분출해냈다. 이에 백요이가 입에서 부채를 꺼내 들었다.

시랑을 향해 부채를 살짝 펄럭이자 무수히 많은 얼음결정이 섞인 눈보라가 몰아쳤다.

히웅, 쿠구구쿵!

청록색과 하얀색 빛이 다른 보물들의 빛을 덮었고 한참동안 폭음이 이어졌다.

시랑의 시화(尸火)는 굉장히 강력한지 상극인 얼음 속성의 공격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에 백요이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스쳤고 화난 그녀가 수중의 부채에 법력을 더욱 쏟아 부어 크기를 배로 키웠다.

얼음결정이 섞인 눈보라가 더욱 거세지는 동안 부 노인은 열댓 개의 불 사슬을 만들어내 거대한 그물처럼 늑대의 머리를 노렸다.

미 부인 역시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3개의 붉은 비검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하나의 거검으로 변해 날아갔다. 또한 거한은 소리 없이 옥패를 회수하고 남색 호리병을 꺼내 이번에는 농밀한 보라색 안개를 뿜어냈다.

마지막으로 한립은 다른 수사들의 신통력을 확인하고는 붉은 실을 소매 사이에서 털어냈다.

이렇게 많은 공격을 받으면 거대 늑대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불 사슬과 붉은 검기에 벌써 뒤로 밀리기 시작했는데 곧 보라색 안개까지 합류하기 직전이었다.

시랑은 지능이 높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위기를 알아차렸다. 전신에서 녹색빛이 번뜩이더니 늑대의 몸이 크게 줄어 등 부분의 털을 세웠다.

크왕!

늑대의 포효소리와 함께 녹색 빛이 빽빽하게 날아들어 다섯 수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슈슈슈슉.

이에 수사들이 방어막을 강화하는 사이 시랑은 방향을 틀어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붉은 빛이 번뜩이며 붉은 침이 거대 늑대 옆에 나타났다. 다시 붉은 빛을 번뜩인 침은 시랑을 보호하고 있는 청록색 화염을 파고들었다.

푹!

예리하기 그지없는 붉은 침이 화염을 넘어 날아들자 늑대가 화들짝 놀라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붉은 침은 목을 파고들어 반대쪽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크왕!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시랑이 네 발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더니 음풍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모습에 노인 등은 희색을 보였다.

“어서 쫓읍시다.”

누군가 소리치고 수사들이 각자의 빛을 발산하며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그때 한립의 허리춤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지는 않았지만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푸른 검기들을 방출해 열댓 장 밖의 지면을 공격했다.

퍼퍼펑!

지면에서 어두운 빛이 번뜩였고 새까만 손들이 허공에 출현해 검기들을 가볍게 튕겨냈다. 이어 음풍이 크게 일며 그 안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바로 간시들이었다.

그들은 무슨 방법을 썼는지 입구의 진법을 피해 수사들의 뒤를 쫓아 온 것이다.

한립 등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자 간시 중 하나가 무심코 기운을 노출했고 영수대 속의 제혼이 민감하게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간시들은 전부 말라비틀어진 시체였지만 체격은 각기 달랐다. 한립은 비상한 기억력으로 그 중 한 마리가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던 시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에 다른 수사들도 놀라 소리쳤다.

“간시들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거지?  분명 죽어 있었는데…….”

검은 의복의 미 부인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녀 역시 수색 도중 간시를 마주쳤던 것 같았다. 백요이는 역시 한립이 그것들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을 보았었기에 매우 놀랐다.

“아는 귀물입니까?  지금은 이런 것들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음지마를 추적하는 것이 급합니다. 한 수사, 상 수사가 일단 남아 귀물들을 상대해 주시고 나머지는 추적을 계속 하시지요! 일단 음지마가 몸을 숨기면 다시 찾기 어려울 겁니다.”

부 노인도 간시의 출현에 의아해했지만 그래도 음지마가 우선이었다.

미 부인과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수사들은 몸을 날려 시랑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이 비검을 불러들인 후 미 부인과 나란히 서서 세 간시를 바라보았다.

귀물들의 신통이 이상하다지만 벽사신뢰로 박살냈는데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한립은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경계심을 높이고 있었다.

미 부인도 구유종 장로로 마공이나 요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간시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머리를 선회하는 붉은 거검이 더욱 요란한 빛을 냈다.

두 수사의 차분한 모습에 멀리 있던 간시들이 먼저 움직였다.

중간의 간시가 돌연 앞으로 나오더니 입을 벌려 회색 실타래 같은 것을 미 부인 쪽으로 내뿜은 것이다.

“죽고 싶구나.”

미 부인이 얼굴을 굳히며 소매를 털자 열댓 개의 불덩이가 연달아 빠져나와 날아갔고 거검 역시 허공을 갈라 새빨간 검기를 분출했다.

그녀는 가느다란 실들이 기껏해야 강시의 기운을 응결해 만든 것이라 생각하고 상극인 불 속성 공법을 펼친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푹!

회색 실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불덩이를 꿰뚫었고 터져 나온 화염은 회색 실 안으로 깨끗하게 흡수되었다.

이어 날아든 새빨간 검기도 회색 실에 순식간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에 가느다란 실들이 그대로 미 부인 앞으로 날아들었다.

“……!”

그녀가 놀라 한 팔을 들어 올려 푸른 방패를 방출했고 동시에 허공의 거검이 직접 회색 실을 잘라내려 했다.

영력과 법술을 흡수한다면 법보 자체 공격에는 약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과연 예상대로 거검이 내리치자 회색 실이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미 부인이 기뻐하며 거검에 더욱 기운을 실으려는데 회색 실이 돌연 모호해지더니 백 개가 넘는 회색실로 갈라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검을 칭칭 감았다.

이어 괴이한 어두운 빛이 회색 실을 타고 나타났다. 검의 붉은 빛이 어두운 빛과 접촉할 때마다 어두워지며 거검의 표면이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미 부인은 거검과 의식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잠시 움직임이 느려졌다. 순간 미 부인이 안색을 굳히며 저물대에서 바퀴 모양의 보물을 불러냈다.

꽈광!

그러나 그녀가 보물을 발동하기 전에 옆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화려한 금빛 뇌전이 뻗어나가 거검에 내리 꽂혔다.

파칫! 꽈광!

회색 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빛 속에서 갈가리 찢어졌고 거검은 다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고맙습니다.”

여인이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하고는 얼른 수결을 맺었다. 거검이 즉시 세 줄기의 붉은 빛으로 풀어지며 그녀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갈가리 찢겼던 희색 실들이 놀랍게도 다시 응결되어 회복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마리의 간시들도 앞으로 나서는 것이 함께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 같았다.

이에 미 부인이 얼굴을 굳히고 회색 실을 자세히 보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렸다.

“살혼사(煞魂絲)! 저건 강시의 기운이 아니라 강시의 살기(煞氣)로 이루어진 것 입니다.”

“시살지기(尸煞之氣) 말입니까.”

강시의 살기란 본래 살기를 지니고 있던 수사가 사망한 후 강시의 기운과 맞물려 생겨나는 특수한 기운이었다.

이런 기운은 만들어내기 굉장히 어려워서 일단 결단기 이상 수사의 시체가 필요했고 다양한 조건에 부합해야 했다. 하지만 시살지기는 한번 형성되면 거의 없앨 수 없었고 오행영기와 각종 법보와 법기를 오염시키는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

보아하니 벽사신뢰로 공격해도 살혼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한립이 상황파악을 마칠 무렵 세 구의 간시가 동시에 손을 뻗어 희색의 무언가를 뻗어냈다.

미 부인은 들고 있던 수레바퀴를 발동하며 주술을 읊었다. 바퀴가 허공에 빙글빙글 돌더니 일곱 빛깔의 영기의 빛이 한립과 그녀를 둘러쌌다.

“일곱 가지 색이라면, 불문의 법보로군요!”

손끝에서 당장이라도 금빛 뇌전을 방출하려던 한립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살혼사가 아무리 빠르고 강력해도 일곱 빛깔의 보호막에 충돌하고는 막히고 말았다.

불문 공법은 본래 귀도의 신통에 상극이라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마도 종파의 장로인 미 부인이 뜻밖에도 불문의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세 구의 간시는 살혼사가 통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열손가락을 튕겨댔다. 무수히 많은 연회색의 실들이 갈라져 나와 보호막을 겹겹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한립이 서늘한 눈빛으로 두 팔을 펼쳤다.

양 팔에서 굵은 금빛 뇌전이 분출해 보호막 표면을 때리니 커다란 소리가 들리고 외부의 회색 실들이 사라져버렸다.

간시들은 그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계속해서 살혼사를 분출했다. 이번 공격을 통해 흩어졌던 회색 기운도 다시 응결되기 시작했고 말이다.

“상 수사, 내보내 주시죠!”

한립이 급히 외치자 천둥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은색 날개가 나타났다.

말리려던 미 부인도 그것을 보고는 보호막 한쪽에 틈을 벌렸다. 동시에 그의 날개가 펄럭이며 종적을 감추었다.

간시들은 그것을 보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뒤에 은빛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났다.

세 구의 간시들은 곧바로 손가락을 튕겨 회색 실을 날렸다. 하지만 한립은 피할 생각이 없는 듯 금빛 세 줄기를 입에서 뿜어내 그들을 기습했다.

속도에서 한립의 금빛이 회색 실을 약간 앞섰다.

푹, 푹, 푹.

금빛 찬란한 작은 검들이 순식간에 간시들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그런데 살혼사가 한립의 기합소리와 함께 일곱 빛깔의 보호막을 펼쳐 그것을 막아냈다.

일곱 빛깔의 보호막을 본 미 부인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세 간시들을 향해 손을 뻗었고 천둥소리가 세 번 울리며 각각의 검들에서 금빛 뇌전이 분출되어 간시들을 뇌전 그물로 가둬버렸다.

간시들이 발버둥 칠 시간도 없이 그물에서 금빛 뇌전이 폭발해 전신을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금빛 사이에서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올라오더니 스스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저게 연시의 본체인 듯합니다. 놀랍게도 시살지기와 육체를 융합하다니 죽일 수는 없을 것 같고 금제로 잠시 봉인해두시지요.”

미 부인이 한립이 단번에 간시들을 처리하자 희색을 드러내다가 검은 기운을 보고는 제안했다.

“그럴 것 없습니다. 어차피 평범한 금제로는 가둬 둘 수도 없을 듯하니 끝을 봐야겠지요.”

“예?”

미 부인이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한립의 손이 영수대를 스치자 윤기가 반지르르한 새까만 털의 원숭이가 나타났다.

제혼은 강시의 기운에 졸린 것도 잊고 흥분한 기색이 다분했다. 제혼은 나오자마자 한립의 명도 기다리지 않고 콧김을 뿜었다.

노란 기운이 제혼의 코에서 빠져나와 금빛 뇌전 속의 검은 기운을 휘감아 입속으로 들어갔다. 제혼은 몇 번 꿀떡꿀떡 기운을 삼키더니 배를 두드리며 신이 나 뛰어다녔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 부인이 눈을 부릅떴다.

귀물을 잡아먹는 영수는 희귀했지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작은 원숭이가 시살지기로 만들어진 귀물을 손쉽게 잡아먹는 모습은 정말 기이했다. 게다가 귀신을 잡아먹는 원숭이 형상의 요수라니, 전설 속의 벽정령원(碧睛靈猿)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그녀가 놀라는 동안 한립도 제혼의 멀쩡한 모습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가 손짓하자 원숭이가 얌전히 뛰어 올라 그의 어깨에 앉았다.

“이제 가시죠. 음지마는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요?  시랑이 부상을 입어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을 겁니다. 게다가 수사가 셋이 나 되는 것을요.”

상 수사가 간신히 제혼에게서 시선을 떼며 웃었다. 한립도 미소를 짓고는 당장 움직이려다가 돌연 미 부인을 쳐다보았다.

“……!”

“이런!”

안색이 돌변한 한립과 미 부인은 소매 속에서 진법 원반을 꺼냈다.

“원 수사의 표식이 사라졌습니다. 상 수사께서는 감지가 되십니까?”

“제가 남겨 놓은 표식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강력한 적을 만나 금제에 갇혀 표식이 나타나지 않는 걸지도 모릅니다.”

“한 수사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어서 가시지요. 보아하니 부 사형도 머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두 개의 빛줄기가 땅을 박차고 통로를 날아갔다.

그들은 연달아 통로와 골목을 지나 십여 장 밖에서 멈추었다. 꽤 커다란 공간에는 버려진 광석 광맥이 흐르고 있었다.

둘은 경계심을 높이며 속도를 늦추었고 백여 장을 더 날아가다 보니 작은 광장 같은 곳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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