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557화 (314/2,000)

# 557

557화. 검은 수정

보름 후 음양굴 지하.

한립은 양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열댓 개의 금빛 비검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에게 날아드는 무수히 많은 검은 나방들을 조각내며 말이다.

나방들은 크기는 작았지만 전신이 새까맣고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바람의 칼날을 분출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나방들을 보며 한립이 짜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가 영수대 하나를 잡아 허공에 던지자 금색의 꽃잎이 떨어져 내려 영충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서금충 무리였다.

검은 나방들은 서금충과 충돌하자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그것을 확인하고 대부분 비검들을 회수한 후 바람구멍의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략 바람구멍의 중간까지 걸어가자 남색 빛이 일렁이는 그의 눈이 어둠을 뚫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음?”

그가 스무 장 정도 걸어가 월광석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주변이 밝아지며 머리통만 한 검은 수정이 보였는데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검은 나방들이 뿜어져 나왔다.

나방들은 한립과 눈부신 월광석으로 몰아쳤지만 서금충들에 의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나방들이 끊임없이 추락했지만 땅에 닿기 전에 검은 기운으로 변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벌써 세 개째란 말이지. 음기를 자동으로 음명아(陰冥蛾)로 변화시키는 수정이라…….”

그러나 그가 수정을 자세히 살피는 동안 검은 빛이 만발하더니 거대한 나방이 나타났다. 거대 나방은 즉시 붉은 눈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립의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고 금빛 뇌전이 번뜩이며 거대 나방을 조각냈다.

대형 음명아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으나 귀물에 상극인 벽사신뢰 앞에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가 수정을 향해 손을 쥐었다.

그러자 푸른빛의 손이 허공에 나타나 수정을 벽에서 파냈고, 그 순간 주위를 맴돌던 강력한 음풍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서금충과 교전하던 검은 나방들도 검은 기운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번만큼 큰 수정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바람구멍을 발견해 들어왔을 때도 두 번이나 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부 노인이 다시 한 번 자유주를 유지하는 술법을 걸어준 후 그는 백요이와 따로 움직였다. 그녀가 곁에 없으니 당연히 그가 시전할 수 있는 공격도 다양해졌다.

동굴 깊숙이 들어와 빈번히 고계 귀물들을 마주쳤지만 비검과 벽사신뢰로 전부 멸살했다. 그래서 그의 수색 속도도 다른 이들의 두 배나 빨랐다. 다른 이들이 통로 하나를 돌아보기도 전에 그는 벌써 두 곳을 마쳤다.

그러던 중 달아나는 귀물 하나를 추격하다 바람구멍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검은 수정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음풍이 너무 강력하게 부는 곳은 음지마도 생존하기 어려웠고, 또 자유주가 있어도 법력 소모가 심해 한립 외에는 아무도 그런 곳에 들어가진 않았다.

그래서 한립은 오히려 수정을 모으려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검은 수정은 그가 생전 처음 보는 것으로 어떤 경전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언뜻 보기에는 마수찬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확실히 달랐다.

검은 수정은 마수찬처럼 굉장히 단단하지도 않았고 함유한 기운도 마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응결된 바람 속성의 물질이었다. 게다가 대량의 음기를 포함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검은 수정도 흔하지는 않아서 한립이 수십 개의 바람구멍을 돌아다닌 끝에야 겨우 세 덩이를 얻었을 뿐이었다.

한립이 아무 반응이 없는 수정을 한참 살피다가 커다란 옥함을 꺼내 놓고는 부적을 겹겹이 붙여 저물대에 넣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며 놓치고 가는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통로를 빠져나왔다.

앞으로 수백 장 정도 걸어가다 보니 통로는 더욱 협소해졌고 또 다른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얼음 같은 것으로 덮여있는 벽이 있었다.

한립은 나직이 한숨을 뱉은 후 푸른빛을 내보냈다. 그 빛은 석벽을 깊숙이 파들어 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장치나 금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한립은 몸을 돌려 원래 왔던 길로 날아갔다. 각종 고계 귀물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중심부에 상당히 접근한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음지마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니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삼염선(三焰扇)의 제련도 급히 마치고 여기까지 왔건만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원영 중기에서 후기로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지 시도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영 중기 수사들 중 천하의 기재(奇才)가 아닌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천남 전역에서 원영 후기에 이른 이들은 단 세 명뿐이었다. 대진에는 그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지만 전체 수도자가 많고 많은 종파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역시 매우 드물었다.

비록 전봉배원공(顚鳳培元功)이라는 수련의 고비를 넘길 수단을 준비해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원영 후기에 이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니 이번에 배영단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정말 음양굴에서 음지마를 찾아 낼 수 있다면 부 노인에게서 배영단 비방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비방을 손에 넣은 후 다른 곳에서 또 음지마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세상 천지에 음기가 결집하는 곳이 이곳만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한립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녹색 불빛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곧장 푸른 기운을 내보내 그것을 휘감아 돌아왔다.

빛이 가시고 정체를 드러낸 것은 녹색의 작은 검이었는데 붉은 옥간에 박힌 채 날아왔다.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올리더니 옥간에서 비검을 뽑아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비검은 맑게 울리더니 그대로 선회해 검은 음풍 속으로 사라졌다. 한립은 즉시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음지마의 종적을 찾다니, 좋은 소식이로군.”

그가 의식을 회수해 한 손을 뒤집자 하얀 진법 원반이 나타났다.

푸른빛이 번뜩이고 원반의 표면이 거울같이 빛나며 희미하게 네 개의 점들이 각각 다른 색으로 빛났다. 그는 위치를 확인하고는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 * *

반나절 후, 한립은 통로를 돌아 원 씨 거한과, 부 노인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그들은 가부좌를 하고 자유주 아래에서 법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원 수사께서 음지마를 찾으셨다고요?”

한립이 보라색 빛 속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예! 음지마는 저쪽 통로 속에 있습니다. 어찌나 교활하고 움직임이 빠른지 혼자 잡으려 들다가는 안 될 것 같아 일단 입구를 봉해놓고 모두를 이곳에 모이도록 한 것이지요.”

“좋습니다. 찾아내기만 하면 잡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지요.”

거한이 웃음을 흘리며 희색을 드러내자 한립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상 사매와 백 수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곧 도착할 겁니다. 다 모이면 함께 움직입시다.”

부 노인도 희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한립이 그 말에 안심하고는 역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몇 시진이 지나지 않아 검은 옷의 미 부인과 백요이가 돌아왔다. 그들은 지체 없이 입구에 몇 가지 간단한 결계를 치고는 통로로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통로의 입구 쪽에 어두운 빛이 번뜩이며 세 구의 새까만 간시들이 나타난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쩍 말라비틀어진 간시들의 복부는 텅텅 비어 있었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지만 녹색 눈빛은 소름끼치도록 서늘했다.

다섯 수사들은 동쪽 통로를 따라 곳곳을 수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씨 거한이 음지마를 발견했다는 작은 동굴에 이르렀다.

그들은 혹시 음지마가 달아날까 세 수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나머지 둘은 통로 입구를 지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 부인과 백요이가 입구를 지키고 나머지 수사들이 들어갈 차례였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음풍이 매우 약했으며 심지어 따듯한 공기가 느껴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동굴 한쪽 모래 더미 아래에 흔히 볼 수 없는 난옥(暖玉) 광맥이 흐르고 있었다. 그 주위로 은은하게 향기가 났는데 약초 냄새 같기도 했고 또 나무 냄새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래 바닥에 찍힌 커다란 말발굽 모양을 발견했다.

“음지마가 확실합니다.”

발자국 주위를 맴돌며 향기를 맡은 부 노인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부 형이 확인해 주셨으니 이제 쫓을 일만 남았군요. 통로가 그다지 넓지 않으니 샅샅이 뒤지기만 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원 씨 거한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면은 이제…….”

부 노인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갑자기 ‘크르릉’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음양굴 전체가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에 세 수사는 즉시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통로로 나온 이들은 두 여인이 놀란 얼굴로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가 달려오는 것 같았는데 몸집이 어찌나 큰지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수사들은 각종 법보를 방출하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다른 수사들은 새까만 음풍에 가려 멀리 볼 수 없었지만 한립은 이미 명청령안(明淸靈眼)을 발동해 백여 장 밖의 귀물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전신이 녹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늑대였다. 엎드린 높이가 세 장에 머리만 해도 집채만 했고 시뻘건 눈과 날카로운 발톱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

한립은 거대 늑대가 포효할 때마다 녹색의 시화(尸火)가 분출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시랑(尸狼)? ’

한립은 귀물의 정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경전에서 읽은 일반적인 시랑과 비교해 달려오는 귀물은 커도 너무 컸다.

그가 막 다른 수사들에게 경고하려는 순간 거대 늑대의 머리털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음지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부 노인이 귀신같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강력한 귀물이 다가오는데 음지마와 같이 있는 듯합니다.”

“음지마!”

그 말에 다른 수사들이 기쁨을 표했다.

그때 거대 늑대의 신형이 음풍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수사들도 그것을 확인하고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검은 의복의 미 부인이 열손가락을 튕기며 열댓 개의 하얀 빛구슬을 날렸다. 빛 구슬들은 거대 늑대가 아니라 옆쪽으로 날아가며 폭발했다.

하얀빛이 번지고 동시에 앞쪽이 선명하게 보여 흉악한 늑대의 모습이 수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다들 안색이 미세하게 변했지만 금방 늑대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그 순간 시랑의 머리 위에 엎드려있는 하얀 물체도 눈에 들어왔다.

녹색 털 사이로 조금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분명 하얀 말이 청록색 눈을 굴리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 음지마가 달아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시랑은 변이 귀물인 것 같지만 원영기 수사 다섯이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백 수사께서는 음지마 잡는 일을 전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 노인이 즉시 계획을 말하고는 저물대를 스쳐 사슬 형태의 검은 보물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사슬이 독사처럼 거대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나머지 수사들도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미 부인은 소매를 털어 3개의 새빨간 비검을 날렸고, 거한은 날개 달린 전갈들을 불러내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립은 입을 벌려 기운을 뿜어내자 비검들의 빛이 거세지며 금빛으로 변해 쇄도했다.

그리고 백요이는 한 손을 뒤집어 반투명한 그물을 쥐고 있었다. 서늘한 빛이 번뜩이며 그물은 하얀 기운으로 변해 거대 늑대 위의 음지마를 향해 날아갔다.

다섯 수사들은 처음 협공하는 것이었지만 각자의 보물들이 강력했기에 위력이 대단했다.

음지마는 굉장히 영리해 늑대를 향해 다가오는 공격들을 보고는 몸을 숙여 시랑의 녹색 털 사이로 숨어버렸다.

시랑이 흉흉한 눈빛으로 입을 벌리니 청록색 도깨비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여러 법보들을 불길 속에 휘감아 버렸다.

순간 청록색 화염과 보물의 빛이 교전했다. 한립의 비검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보물들도 시화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날개 달린 전갈들은 피할 틈도 없이 푸른 연기로 사라졌다.

본래 음지마를 노리고 날아가던 하얀 그물도 화염에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백요이가 서늘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북야소극궁은 법보와 공법 모두 차가운 속성을 띠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겨우 시화에 움츠러들리 없었다.

한립 등 다른 수사들이 반응을 보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수결을 맺어 온 몸의 서늘한 기운을 끌어올렸다. 주위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미 부인과 거한은 냉기에 몸을 떨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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