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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55화 (312/2,000)

# 555

555화. 탐색

“마기를 이미 준비해 두셨다니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모두 저를 따라 호수 아래로 내려가시지요. 이곳이 외진 곳이기는 하나 우연히 지나가는 수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진 얼굴의 수사가 먼저 호수 속으로 뛰어내렸다. 이어 다른 수사들도 분분히 그 뒤를 쫓아갔다.

한동안 호수 표면에 물결이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 * *

작은 호수와 만 리 떨어진 음양굴에서는 한립 일행이 작은 난관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었다.

한립이 금빛을 방출해 사방에서 날아드는 뿔 달린 귀물을 물리치는 동안, 부 노인과 다른 수사들도 각종 법보를 이용해 귀물들을 멸하는 중이었다.

음풍 속에 사는 음귀들은 체형은 작았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녔고 고계 수사들도 상대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립은 음귀들을 척살하고도 기뻐하기는커녕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굳혔다.

“부 형, 벌써 며칠 째입니다. 음지마(陰芝馬)는 흔적도 찾지 못했는데 음기가 응결되어 만들어진 저계 귀물들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어요.”

거한이 손을 뻗어 녹색 불길로 음귀를 태워 죽이고는 한립이 하고 싶던 말을 대신했다.

“조급해 마십시오. 지하 동굴이 이렇게 넓고 음지마가 은닉술에 능한데 찾기 쉬우면 이상한 일 아닙니까?  법력을 회복해 주면서 천천히 찾으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백음풍 속에서 버티기 위해 소모하는 법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녔지만 두 달 정도면 법력도 바닥날 것입니다.”

백요이도 주위를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거대한 통로 속에 있었는데 주변의 흙벽이 검은 수정처럼 번뜩였고 입구보다 훨씬 농염한 바람이 몰아쳐 가슴이 불안하고 소름이 돋았다.

물론 부 노인의 구슬 덕분에 위력이 상당히 약화 되었지만 보호막을 쓰고도 검은 바람에 직접 닿지는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은 바람을 뚫고 수많은 귀물들이 날아들었다.

서늘한 빛이 번뜩이며 백요이가 마지막 요귀를 꽝꽝 얼려 부셔버리자 드디어 주변의 귀물들이 전부 사라졌다. 음양굴은 음풍이 불어 의식을 멀리까지 보낼 수 없기에 전체를 탐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참을 더 나아가자 돌연 주위가 어두컴컴해지며 통로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통로들을 앞에 둔 다섯 수사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계속 갈림길이 이어지니 나눠서 탐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눠서 탐색을요?  하지만 자유주가 하나뿐인데 어찌…. 구슬의 비호가 없이는 법력 소모가 두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럼 음양굴 내부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테지요.”

한립의 말에 거한이 노인의 구슬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유주의 문제라면 노부가 정혈을 소모해 여러분들에게 자유주의 빛을 나눠 드릴 수 있습니다. 양백음풍의 위력이 이대로 유지되며 7, 8일 정도밖에는 버티지 못하겠지만요.”

부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갈림길을 수색하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자유주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부 수사를 찾아가 술법을 유지해야 하니 서로에게 표식을 남겨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일 떨어져 다니다가 고계 귀물이라도 마주치면 어찌합니까.”

한립이 계획한 바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백요이는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원영 중기 수사가 홀로 대적할 수 없는 귀물이라면 적어도 귀왕급은 될 텐데 여기가 진짜 음명계(陰冥界)도 아니고 이 정도 음기로 그런 귀물이 생겨나겠습니까?  누군가 귀왕을 보았다는 헛소문이 있기는 했으나 정작 직접 봤다는 수사는 없었습니다.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음기가 약해지는 절기를 놓칠 겁니다.”

원 씨 거한은 남강 출신으로 음양굴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부 노인과 흑의 여인은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 같이 다니는 것이 좋겠지만 예상보다 음양굴이 방대하고 복잡해 따로 행동하지 않으면 음지마를 발견할 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요이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더는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허나 자유주의 유지 기간을 생각해서 절대 노부와 사흘거리 이상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보아하니 음양굴도 주 통로는 하나 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나누어 수색하더라도 멀리 갈 필요는 없겠지요.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한립이 중간의 큰 통로와 양옆의 작은 통로가 분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노인도 더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주를 향해 피를 뱉었다.

그러자 구슬의 빛이 크게 번졌다. 노인이 연달아 법결들을 던져 넣고는 허공을 향해 한 손을 흔들자 보라색 구슬에서 눈부신 빛이 빠져나와 노인의 손으로 날아갔다.

그는 보라색 빛덩이를 들고 나머지 네 수사들을 훑더니 가장 먼저 옆의 흑의 여인에게 손을 뻗었다.

빛이 번뜩이며 흑의 여인 주위로 보라색 보호막이 한 겹 덧대졌다. 모두를 비호하던 원래의 보호막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비술이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연달아 다른 이들도 같은 방법으로 자유주에 휩싸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법력으로 표식을 심은 후에 세 무리로 나뉘어 통로로 들어갔다. 부 노인은 당연히 자신의 사매와 한 조를 이루어 중간의 가장 커다란 통로 들어갔고, 거한과 한립은 좌우로 흩어졌다.

백요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립을 따라 오른쪽 통로로 들어갔다. 한립도 궁장 여인이 따라오는 것을 느끼고 속도를 늦춰 그녀와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살아나오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양백음풍이 조금 성가신 것을 빼면 별다른 것은 없지 않습니까.”

백요이가 한립과 걸으며 물었다. 그녀의 그런 질문이 조금 의외였으나 한립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곳에 대해 아는 바는 적으나 대진의 7대 금지(禁地)라는 명성이 거짓 같지는 않습니다. 음풍의 기세가 이리 흉흉하니, 사실 원영기 이하의 수사들은 본명법보로 보호를 해도 온 몸이 조각날 수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저희만 해도 자유주가 없었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직 이곳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저계 음귀를 만났을 뿐, 조금 더 들어가면 더 강력한 귀물들이 나올 것입니다.”

“한 수사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괜히 불안해 한 것 같네요. 아, 음귀들이 또 몰려옵니다.”

백요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어딘가에서 음귀 일고여덟 마리가 쇄도했다. 그러나 서늘한 빛과 금빛이 튀어나가 순식간에 귀물들을 퇴치했다.

한립과 백요이는 앞으로 나가며 계속 수색을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동굴에서 돌아 나왔을 때 돌연 음풍에 섞인 처절한 포효(咆哮)가 들려왔다.

“뭘까요?”

“이건 연시(煉尸)가 내는 소리인데. 보아하니 고계 귀물이 나타날 듯합니다.”

“연시요?”

그들은 곧장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통로를 돌자 갑자기 동굴이 나타나며 지금까지의 음풍보다 훨씬 강력하고 기이한 검은 바람이 맹렬히 불어왔다. 그리고 방금 전에 들려오던 소리도 한층 뚜렷하게 들려왔다.

“헛!”

안을 훑어보던 백요이가 동굴 입구에 무언가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무언가가 꽁꽁 얼어 벽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백요이는 손을 들어 올려 불덩이를 쏘아 보냈다.

펑!

붉은 화염이 얼음을 녹이자 마침내 안에 들어있던 물건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뜻밖에도 남색의 비검이었다.

얼음이 녹아내린 순간 아직 영성(靈性)이 남아 있던 비검은 청량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미약하게 빛을 발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백요이가 소매를 털어 붉은 밧줄을 뿜어내자 곧 비검이 그녀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백요이가 한 손으로 검을 들어 휘두르니 기다란 검빛이 형성되며 벽을 갈랐다.

쩌적.

벽에 꽤 깊은 흔적을 남긴 것을 보고 한립의 얼굴에 놀라움이 비쳤다.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데 아직도 영성을 잃지 않았다니 주인이 꽤 공들여 제련한 것 같네요. 비검의 위력으로 보아 결단 중후기의 수사가 주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을까요?”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백요이는 한립의 요청에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검을 날려주었다. 한립은 고개를 숙이고 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왜 그러시죠?  뭐라도 발견하셨나요?”

“이 검은 남원정(藍元晶)으로 제련한 것인데 제련법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다른 몇 가지 보조 재료를 섞었다면 훨씬 강력한 위력을 냈을 테니까요. 이런 투박한 제련법은 만여 년 전에 성행한 것으로 지금은 제련법이 많이 개량되었죠. 여러 가지로 미뤄볼 때 비검의 주인은 상고 수사까지는 아니어도 수만 년 전의 수도자로 보입니다.”

“한 수사께서 법기 제련에도 이렇게 고명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그저 관련 경전을 본 기억이 있어서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 살펴볼까요?”

“예, 가시죠!”

백요이가 하얀 우산 형태의 보물을 손에서 방출해 먼저 동굴로 들어갔다. 한립도 머리 위를 선회하던 비검들로 금빛 보호막을 만들어 두르고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내부의 귀물들이 두 수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더욱 흉포하게 울어댔다.

“공간이 넓지 않군요.”

한립이 하얀 월광석을 앞에 띄우고 법결을 날리며 말했다. 그러자 월광석에서 빛이 방출되어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는데 검은 음풍 때문에 먼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을 따라 대여섯 장을 걷다보니 머지않은 곳에 또 다른 입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희미하게 녹색 빛이 뻗어져 나왔다.

한립과 백요이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전의 모든 동굴은 음기가 만연해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밝은 곳은 버려진 광맥이 흐르는 곳이었는데 전부 값어치가 없는 광물들이었다.

우산으로 앞을 막은 백요이가 먼저 입구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 본 여인의 표정이 일순 창백해졌다. 한립이 그녀 옆으로 다가와 내부를 살피고는 역시 안색이 달라졌다.

직경 서른 장 정도의 종유석 동굴에는 벽과 천장에서 녹색 빛이 반짝였는데 중심에 두꺼운 돌기둥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돌기둥에 바싹 마른 시체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간시(干尸)는 길게 백발을 늘어트리고 새까만 피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배가 갈라져 오장육부가 튀어 나와 있었다.

기이한 모습에 백요이는 물론이고 한립도 의아했다. 그가 입술을 떼려는 순간 수중의 남색 비검이 웅웅 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립이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것을 놓아주니 남색 빛으로 변해 돌기둥 인근을 선회했다.

“저 간시가 비검의 주인이었나 보군요. 누군가에게 금단을 적출당해 목숨을 잃은 듯합니다.”

백요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술에 걸려 산 채로 제물로 받쳐진 것입니다.”

“산 채로 제물이 되었다고요?”

백요이가 놀라 동굴 지면을 둘러보니 열댓 장의 진법이 모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세월이 오래 되어 대부분이 먼지로 가려졌기에 그녀가 눈치 채지 못 한 것이었다.

“어떤 사술인지는 진법을 살펴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

“그거야 간단하죠. 제가 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백요이가 웃으며 입을 벌렸다. 얼음으로 조각한 작은 부채가 그녀 입에서 빠져나와 동굴 바닥을 향해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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