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3
553화. 괴인(怪人)
사매가 하는 이야기에 부 노인도 망설이다 동의했다.
“명하엽이 수사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노부도 어쩔 수 없군요. 그럼 표식을 남겨 남강을 떠나지 않는지 확인이라도 해야겠습니다. 허락하시겠지요?”
“그러시지요. 제 행적이 비밀도 아니니 술법을 펼치셔도 됩니다.”
한립이 빙긋 웃었다. 노인은 곧 법결을 맺어 팔을 뻗었고 남색빛이 한립에게 스며들었다. 한립이 자세히 살폈으나 평범한 표식이 분명했다.
부 노인은 흡족한 얼굴로 명하엽을 회수하고 당부했다.
“백 수사께서 사흘 동안 고민을 해보시겠다니 저와 사매가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원 형과 한 수사께서는 이곳을 떠나 자유롭게 준비를 하시지요! 음양굴이 위치한 만독곡은 각종 독충과 독초 있는 곳이니 관련 보물을 구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원영기 수사를 어찌할 만큼 강력한 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음양굴에 들어가기 전에 법력을 허비해서는 안 될 테니까요.”
“그런 것이라면 우리 독성문 수사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 아닙니까.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거한이 크게 웃고는 포권을 한 뒤 영수대를 내리쳤다. 그러자 다시 거대한 자라 영수가 나타났고 회색 광풍이 몰아치며 거한이 영수를 타고 날아올랐다.
한립도 인사를 하고 즉시 푸른 빛줄기로 하늘을 갈랐다.
반년 이라는 시간은 삼염선을 제련하기에는 조금 촉박했던 것이다. 다만 귀물을 대처할 보물이라면 그가 지닌 벽사신뢰와 제혼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가 삼염선 제련을 서두르는 것은 만일을 대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음양굴에서 예상치 못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삼염선과 인간형 꼭두각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남강의 중부에 있는 은사산으로 날아갔다. 열흘 후 한립은 특이한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 4백 리에 달하는 산맥은 가늘고 길었는데 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겼다. 거기에 산맥에 자생하는 나무의 이파리가 은색을 띠어서 은빛 뱀의 산이라는 뜻으로 은사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한립이 허공에 오래 머물지 않고 뱀의 머리 부분으로 하강했다. 내려갈수록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고 유황 냄새가 물씬 풍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화산 속에서 가끔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속에서 재가 날린 다는 것이었다. 화산 인근에는 적잖은 수사들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그 수가 수십 명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대다수가 축기기 수사로 결단기 수사도 있었지만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결단을 한 이후에는 단화를 지니게 되어 법보 제련에 굳이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한립이 내려서며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가장 강력한 지화의 맥을 찾아 두 화산 분출구 사이의 어느 지점으로 향한 것이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자 일흔두 개의 금색 비검이 방출되었고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자 비검들이 공명하며 몇 장 길이의 거대한 금빛으로 변해 땅을 갈랐다.
쿠콰쾅!
엄청난 진동과 소리가 가시고 금빛이 다시 검의 형태로 돌아온 후에는 스무 장 길이의 거대한 틈이 벌어져 있었다.
인근에서 법기를 제련하던 저계 수사들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이곳을 주목했고 몇몇은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한립이 그들의 행동을 감지하고는 원영기 수사의 기운을 방출했다. 압도적인 영기의 압력이 한립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인근 수십 리 내의 수사들이 전부 화들짝 놀라 하던 일을 포기하고 달아났다.
한립은 주변의 저계 수사들이 분별 있게 구는 모습을 보고 만족하고는 자신이 파 놓은 틈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들 사이에 원영기 수사가 나타나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곧 한립이 파놓은 틈을 중심으로 방원 십 리가 일종의 금지구역처럼 아무도 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 * *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던 화산 지대의 균열 속에서 한 달 후부터 쿠르릉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그 소리가 잦아들더니 맑은 울음소리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 울림이 사라진 후에는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한립이 삼염선 제련을 서두르는 동안, 진경 황궁 내부에서 열댓 명의 남녀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도사도 있었고 승려, 유생까지 다양한 복색을 하고 있었지만 전부 원영기급의 엄청난 수행을 지닌 자들이었다.
특히 각진 얼굴의 비단 장포를 입은 수사와 금색 지팡이를 든 노부인은 원영 중기의 수사였고 이번에도 검은 관모를 쓴 노인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대청의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입구를 살폈다.
“네가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삼백 년 전, 내 눈으로 일곱째 숙부가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했단 말이다.”
각진 얼굴의 수사가 참다못해 백발의 수염을 기른 수사를 향해 물었다.
“숙부님의 외모가 얼마나 특이하신데 제가 착각을 하겠어요. 게다가 숙부님의 법보 한월인(寒月刃)은 분명 진품이었습니다.”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긴장할 것 없지 않습니까. 정말 일곱째 숙부께서 살아계신 거라면 하늘이 엽 가를 돕는 것입니다만, 만일 가짜라면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원영 중기 노부인이 음산히 중얼거렸다.
“그 말은 맞지만 무슨 일이든 신중해야한다.”
각진 얼굴의 수사도 더는 무어라 말을 잇지 않았다.
……
한 시진이 지나고 바깥에서 종소리가 들리더니 입구에 키 크고 마른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한 걸음에 대청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누런 눈썹에 작은 눈, 남들보다 훨씬 큰 머리를 지녔고 특히 목이 덜렁거리며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기이했다.
“정말 숙부님이십니까?”
대청 안의 수사들은 그의 흉측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놀라 몸을 일으켰다. 각진 얼굴의 중년인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몇 백 년 사이에 내 얼굴도 잊은 것이더냐? 물론 내가 죽었다 살아난 셈이니 다들 쉽게 믿을 수 없겠지. 셋째의 전음이 담긴 옥간이니 다들 살펴 보거라.”
괴인이 손에서 녹색 옥간을 날려 보내자 각진 얼굴의 수사가 즉시 옥간을 받아 의식을 불어넣었다.
중년 수사는 기뻐하며 괴인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당시 일곱째 숙부님이 돌아가셨던 일이 전대 대장로의 묘책이었다니,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조카가 숙부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하였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는 무슨! 네가 그만큼 신중하다는 것이니 노부는 기쁘기 그지없구나.”
다른 수사들도 돌아가며 옥간을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청 내의 모든 수사들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숙조님을 뵙습니다.”
“됐다.”
괴인은 즐겁게 인사를 받아 주며 대청의 가장 상석에 앉았다.
“셋째 오라버니께서 옥간에 적어 두시기를 숙부님께서 이미 이백 년 전에 원영 후기에 이르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노부인이 공손히 물었다.
“그래, 예전에 다른 종문들이 힘을 모아 나를 암습했던 것도 내가 후기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문에서 미리 대책을 마련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이후 죽음을 가장한 채 수련에 매진해 후기에 이른 것이지.
전대 대장로는 엽 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내가 모습을 드러내길 원치 않았지. 유일하게 이 일에 알고 있던 셋째 녀석이 얼마 전 나를 찾아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현 대장로의 신분으로 내 도움을 청한 것이지. 노부는 생각 끝에 이 일이 엽 가의 존망과 관련 있다고 결론을 내려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괴인이 신중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숙부님과 대장로까지 원영 후기 수사 두 명의 힘이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 엽 가 장로들과 외부에서 영입한 장로들까지 모이면 정마 십종과 견줄만한 세력이 될 겁니다. 이번 남강에서의 대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각진 얼굴의 수사가 흡족하게 말했다.
“난 너희 계획에 관여 하지 않을 것이니 필요할 때 말하면 된다. 엽 가가 정마 세력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이번 일에 달렸겠지!”
이후 대진 제1의 세가인 엽 가의 본족 장로들이 반나절을 머물다 대청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 * *
그때 황성의 관저에 위치한 밀실에는 새까만 마기가 만연했는데 희미하게 머리가 둘 달린 요마의 형상이 보였고 검은 빛과 보랏빛으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흡!”
그가 낮게 일갈하자 마기가 순식간에 요마의 체내로 흡수되었고, 네 개의 팔로 수결을 맺으니 몸의 곳곳에서 폭음이 들리며 평범한 청년으로 모습이 변하였다.
바로 엽 가에 머물고 있은 고마였다.
“이제 몸이 거의 회복되었구나. 몇몇 늙은이들만 마주치지 않으면 대진에서 나를 상대할 자가 몇 되지 않을 것이야. 엽 가 녀석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는데……. 상고 시대에 대한 정보를 흘려 두었으니 분명 나를 찾아오겠지!”
고마는 중얼중얼 거리며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 * *
같은 시각 진경성 밖 음라종 비밀 동부 속에서는 갈천호와 천란 성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구유종 부성이 남강에 나타났다더군요. 그가 한 가 놈과 지하 교역회에 동행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면 아직까지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한 가 놈도 부성을 따라 남강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본 종의 대장로께서는 남강에 일이 있어 이미 출발하셨습니다. 가는 김에 그 자를 발견하면 직접 처리하신 다더군요. 임 수사도 가보시겠습니까?”
“부성이 남강에 있다고 그 자가 함께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초원에서 서 대선사께서 일부 성전 선사들과 이미 출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도착하실 터이니 저는 진경에 남아 있겠습니다. 그 때까지도 별 다른 정보가 없으면 다 같이 남강으로 향하겠습니다.”
천란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서 수사께서 오신다고요! 그럼 다행입니다. 대장로께서도 기뻐하실 테고요. 그럼 저도 수사와 함께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어차피 대장로께서도 임 수사 곁에 있으라고 분부하셨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한 가 녀석이 해안가에 나타났었고 약소한 세 가문의 객경장로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줄곧 제자들을 파견해 감시하셨을 텐데 또 다른 소식은 없는지요.”
“없습니다. 교활한 놈이니 다시 나타날 리가 없지요. 게다가 알아보니 천부문과의 관계도 별 것 아니더군요. 우리가 세 가문을 전부 몰살 시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천남 수사가 대진 종파의 생사에 관심이 있을 리 없지요. 그래도 이미 천남으로 선사들을 파견해 그 자에 대해 알아보라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상대에 대해 알아보면 아무래도 상대하기 쉬워지겠지요!”
“오, 수련한 공법과 비술에 대해 알아내기만 해도 처리하기 훨씬 낫겠습니다. 그런데 서 선사께서는 언제쯤 도착하실까요?”
“기껏해야 두세 달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서 선사님이 오셔서 귀 종문의 대장로와 함께 대적한다면 그 자도 이번에는 달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갈천호는 여인의 말을 들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많은 천란 선사들을 죽였기에 직접 나선 것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원영 후기와 맞먹는 실력을 지닌 자였다.
그런데 성녀가 그 자를 잡으려 대진에서 수년 간 머물고 이번에는 천란 초원에서 대선사와 성전 수사들까지 몰려온다니 큰 비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갈천호가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보는 동안 임은병의 속도 말이 아니었다.
천란 성수의 분신이 잡혀 간지도 꽤 시간이 지났으니 언제까지 이 일을 숨길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몇 년 간 차마 상계에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그나마 천란 성수의 분신이 구속을 당한 것이지 죽지는 않아 본체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알아차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루 빨리 성수의 분신을 구해 천란 선사들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음라종 수사들의 협조를 얻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