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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52화 (309/2,000)

# 552

552화. 명하엽(冥河頁)

부 노인은 열 손가락을 사방으로 튕겨 어두운 녹색 불덩이를 쏘아 보냈다.

퍼퍼퍼펑!

불덩이가 터질 때마다 녹색안개가 피어오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립이 의식으로 확인하니 확실히 희미하게 금제의 파동이 전해졌다. 비록 어떤 성질의 금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쉽게 결계를 친 부 노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수사들도 의식으로 결계를 훑어보고는 노인을 대하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이 일은 사실 노부가 30년 전부터 계획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배영단이라는 상고 단약을 들어 보신 분이 있으신지요?”

“배영단이요?”

백요이와 거한은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한립은 달랐다.

“한 수사께서는 배영단이 어떤 단약인지 아십니까?”

거한이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예, 들어보기는 했습니다. 배영단이란 것은 만황시대 상고 종문의 고유의 영약인데 듣기로는 원영기 수사의 원영에 좋은 단약이라더군요. 수련의 고비를 쉽게 넘기게 해줘 저희 같은 원영기 수사에게도 묘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상고 종문이 진즉에 명맥이 끊겨 배영단의 제련법도 같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도계에 이 영단에 대해 아는 자가 거의 없는 것이지요.”

한립은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연단종사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상고 경전을 읽으며 알게 된 단약이었다. 거한과 백요이가 한립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거한은 바로 노인을 향해 물었다.

“부 형, 혹시 배영단의 행방을 찾은 것입니까?”

원영기 이후 수련의 고비를 넘기게 해줄 단약은 이 세상에 극히 드물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마저도 대부분이 실전되었고 나머지 절반도 수도계의 환경이 변하며 재료를 찾을 수 없었다.

“허허, 한 형이 배영단에 대해 알고 계시다니 의외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청한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노부는 백여 년 전부터 이미 배영단의 비방을 지니고 있었답니다.”

“부 수사가 배영단의 비방을 지니고 있다고요?”

거한은 새까만 두 뺨이 붉어질 정도로 이 소식을 반기었다. 백요이와 한립도 그 말을 듣고 기쁨을 드러냈다.

“게다가 연단술에 능해 재료만 모두 모이면 배영단을 제련해 내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부 노인이 시간을 끌지 않고 답했다.

“부 형의 말투로 보아 아직 재료를 모두 모으지 못하신 것 같은데 그래서 저희를 청하신 것이로군요.”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신중히 물었다.

“역시 한 형이 명석하십니다. 주재료 중 하나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벌써 오래 전에 배영단을 제련해 냈겠지요. 이번에 그 재료를 얻을 수 있게 노부를 도와주십사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 오랜 세월 동안 구유종 장로의 신분인 부 형이 얻지 못한 재료라면 쉽지 않은 일이겠군요.”

백요이가 미간을 좁혔다.

“그렇지요. 주재료가 본래 인계에서 사라진 물건이라고 생각해 배영단 제련을 포기했었는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빙빙 돌리시고 그게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들어봅시다.”

거한이 참을성 없이 노인을 재촉했다.

“필요한 것은, 음지마(陰芝馬)의 살점과 피입니다.”

“음지마(陰芝馬)요?  인계에 그런 영물이 아직도 남아 있단 말입니까?  어디에서 발견하신 것입니까?”

한립이 놀라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백요이와 거한은 이번에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노부도 인계에서 음지마가 멸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30 년 전 우연히 음지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남강에서 말입니다.”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음지마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다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을 텐데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다들 생각에 잠기자 원 씨 거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음지마가 워낙 은닉술에 능하기는 하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노부가 잡지 못할 것은 없겠지요. 문제는 영물이 서식하는 곳이 만독곡(万毒谷)의 음양굴 안이라는 점입니다. 영물이 어찌나 지능이 높은지 동굴 입구에서만 배회하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더군요.”

부 노인은 드디어 자신을 수십 년간 괴롭힌 일에 대해 털어 놓았다.

“음양굴…….”

이번에는 거한도 놀랐고 백요이의 얼굴도 순간 새하얗게 변했는데 한립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음양굴이라는 곳이 그렇게 위험합니까?”

“한 수사께서는 음양굴에 대해 모르시는 것입니까?  아, 제가 잊을 뻔했군요. 한 형께서는 해외수사시니 모를 실수도 있겠어요! 음양굴은 저희 대진의 공인된 칠대 험지(險地) 중 하나입니다. 보통의 수사들은 살아 나오지 못하는 곳이니까요.”

백요이가 한립을 향해 설명해 주었다.

“특별히 위험한 이유가 있습니까?”

“음양굴은 동굴 안에 들어가는 순간 음기와 양기가 완전히 격리되는 곳입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연중 불어대는 음풍에 당하면 원영기 수사의 원영도 흩어질 정도이지요. 거기다 동굴에 위치한 현음(玄陰)의 땅의 음기가 모여드는 곳이라 강력한 귀물이 생겨나곤 합니다. 살아 있는 수사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음풍은 막을 수 있더라도 수많은 귀물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마는 것이지요!”

부 노인이 나서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흥, 그뿐이겠습니까?  음양굴은 지하 수천 장에 이르는데 크고 작은 통로와 굴이 수없이 많아 이전에 운 좋게 아래쪽까지 들어간 수사들도 굴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의식을 방출하는 순간 음풍에 막히니까요. 게다가 누군가 말하기를 동굴 속에 강력한 귀물의 왕이 있다더군요.”

거한이 콧방귀를 뀌며 덧붙였다.

“사실 이전에는 음양굴 내부에 광맥이 흐르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다고 여겨져 상고 시대의 폐기된 광석 동굴이라고만 추측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위험을 무릅쓰고 살펴보지 않았지요.”

백요이가 새까만 눈썹을 끌어올렸다.

“오랜 세월 부 형이 음지마를 잡지 못하신 것으로 보면 굉장히 위험한 곳이기는 한가봅니다. 안에 무엇이 있든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겠어요.”

한립은 허천전과 추마골 등을 다녀온 경험을 되짚으며 냉랭히 말했다.

“그래서 노부가 지난 몇 년간 귀물에 상극인 보물을 제련해 두었습니다. 게다가 음풍을 막아내기 위해 저희 구유종의 자유주(紫幽珠)도 가지고 왔고요. 이 구슬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음풍을 완전히 막지는 못해도 절반쯤은 약화시킬 수 있답니다.”

“자유주?”

거한과 백요이가 구유종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인 자유주에 관심을 보였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미 충분히 준비해놓았고 세 분께서 전력을 다해 도와주신다면 음양굴에서 무엇을 만나든 당해내지 못하겠습니까! 음지마만 잡으면 노부가 당장 배영단(培嬰丹)을 만들어 모두에게 각각 한 알씩 나눠 드리겠습니다.

이런 단약은 효과가 단 한번 뿐이라 얼마나 많은 양을 제련해 내든 각자 필요한 것은 한 개뿐입니다. 그리고 음양굴 안에서 다른 무언가를 찾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부 노인이 유유히 말을 마쳤다. 다른 수사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말이 많던 거한도 고민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왕 부 형께서 모든 준비를 마치셨다면 저희 셋은 왜 필요한 것입니까?  원영 중기 수사라면 구유종에도 있을 텐데요.”

백요이가 이마에 드리운 푸른 천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것은 한립과 거한도 알고 싶은 바였다.

“구유종 안에서 도와줄 수사를 찾으라고요?  제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일로 인해 종파 내의 대다수 동급 수사와 척을 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상 사매를 제외한 다른 수사들은 노부가 죽어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같이 움직여 봐야 언제 배신당할지 알 수 없지요.”

노인이 얼굴을 굳히며 노기를 드러냈다. 한립을 포함한 세 수사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의 해명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렇게 말하니 자세히 따져 묻기도 어려웠다.

“음양굴에 들어가는 것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사흘 후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백요이가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다 말했다.

“사흘 정도면 당연히 기다릴 수 있지요! 어차피 음양굴은 반년 후에야 1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음풍이 가장 약한 절기를 맞습니다. 그때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가장 적합한 때이지요. 게다가 동굴 안의 귀물들과 맞서 싸우려면 여러분도 특수한 법보나 보물을 준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떠나시기 전에 이 명하엽에 피를 이용해 이 같은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주셔야 합니다. 배영단(培嬰丹)과 음지마(陰芝馬)에 대해 새어나가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털어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누런 종이를 꺼내들었다.

“명하엽! 그것에 적은 맹세를 위반하면 반드시 기이한 액운을 만나게 되는 사악한 물건이 아닙니까?  벌써 수백 년 전에 수도계에서 사라진 것이라 들었습니다만.”

거한이 놀라 소리를 높였다. 한립도 그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제가 이번 일을 위해 암시장에서 거금을 주고 매입한 것입니다. 명하엽의 효과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도와주겠지요. 예전에 천마문(天魔門) 풍천행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한 수사를 제외하면 모두 아시겠지요?  풍천행도 저희와 같은 원영 중기의 수사였으니 맹세를 어겨 명하엽의 효과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배영단 같은 물건을 얻을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요. 반년 후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거한은 한참 만에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는 검은 종이를 향해 손을 뻗어 끌어당기더니 입을 벌려 피를 토해냈다.

허공의 피를 집게손가락으로 찍어 둥둥 떠 있는 명하엽에 상고 문자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후 그의 손이 멈추자 검은 화염 속에 송곳니를 드러낸 해골이 나타나 거한을 향해 흉악하게 웃고는 종이에 피로 적힌 글자를 빨아 들여 사라졌다.

그 괴이한 모습에 한립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부 노인이 누런 종이를 회수하고는 백요이를 쳐다보았다.

백요이도 꺼리는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거한과 똑같이 맹세했고 또 한 번 검은 화염 속에서 해골이 나타났다 푸른 연기로 사라졌다.

노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한립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정체 모를 물건을 이용해 맹세하는 것이 좋을 리 없었지만 보아하니 다른 선택권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무표정하게 누런 종이를 가리키자 명하엽이 빠르게 날아왔다.

잠시 누런 종이를 바라보던 그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뱉어냈고 오늘의 일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적어나갔다.

해골이 음산하게 웃으며 막 입을 벌리려는데 돌연 한립 체내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울부짖었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수사들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해골이 그 소리를 듣더니 당장 얼굴이 일그러졌고 의미가 불분명한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마치 무언가에 쫓겨 황급히 도망가는 꼴이었다.

나머지 수사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한립도 이상하다는 얼굴로 길게 숨을 토해냈다.

“저도 더 고민하지 않고 약조를 드리지요. 하지만 명하엽과 제 체내의 물건이 상극이라 피로 맹세를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 대신 반 년 간 남강을 떠나지 않고 아무에게도 이 일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이때 명하엽이 푸른 기운에 밀려 부 노인에게 돌아갔다. 부 노인은 뜻밖의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부 사형, 한 수사의 말대로 하시지요. 명하엽이 없어도 식언을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하던 흑의의 미부인이 입을 열었다. 목이 잠기기는 했지만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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