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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51화 (308/2,000)

# 551

551화. 손님

곁의 수사들은 변이 요수를 공으로 얻게 된 여인을 향해 부러운 눈빛을 보냈으나 고계 수사가 증정한 것을 탐낼 만큼 담이 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하늘에서 벼락이 번뜩이고 천둥소리가 났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당장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낌새였다.

“제 때에 폭우가 쏟아지는 구나.”

한립이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고는 속도를 높였다.

꽈광!

벼락이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독무도 기세가 약해졌고 가려져 있던 작은 봉우리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한립은 벌써 산 정상에 서 있었는데 쏟아지는 빛줄기에도 옷이 전혀 젖지 않았다.

주위에 미리 모여 있던 연기기 수사들과 두 명의 축기기 수사들은 머리에 두건을 쓴 현지인 복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한립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한립이 그들을 쓸어 보고는 돌연 강력한 영기를 발산하며 차갑게 일갈했다.

“전부 썩 물러 나거라!”

광풍이 몰아치듯 푸른 기운이 저계 수사들에게 밀어닥쳤다.

수사들이 놀라 보호막을 방출하거나 법기를 발동했지만 예외 없이 푸른 기운에 휩쓸려 2, 30장을 날아갔다. 낙엽처럼 바닥을 구른 수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다들 고계 수사가 나타난 것을 알고 즉시 몸을 날려 하산하기 시작했고 두 명의 축기기 수사들은 한립의 수행을 파악하고는 핏기 없는 얼굴로 곧바로 법기를 타고 달아났다.

한립이 검은 점이 되어 쏜살 같이 사라지는 저계 수사들을 확인하곤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은색 뱀이 춤을 추듯 번개가 쉼 없이 내려치는 중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나니 한립은 대연 신군이 세상을 뜨고 답답했던 마음이 그나마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앞으로 천뢰를 모아야 하는데 다른 수사들이 곁에서 구경하게 둘 수도 없었다.

길게 숨을 내쉰 한립은 저물대를 스쳐 각양각색의 진법 법기들을 꺼냈다. 곧 주변 곳곳으로 날아간 깃발들은 깊숙이 땅에 꽂혀 종적을 감추었다.

한립은 번쩍거리는 번개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30장 위로 몸을 띄워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푹! 푹!

산 정상 곳곳에서 빛기둥처럼 깃발들이 우뚝 솟아올랐다.

그의 주술이 계속되자 깃발들에서 영기가 방출돼 십여 장 너비의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정신없이 떨어져 내리던 벼락들이 한립에게로 몰려들었다.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손바닥을 뒤집자 목이 긴 옥병이 나타났다. 벼락에 깃든 천뢰를 모으기 위해 특별히 제련한 법기였다.

가볍게 병을 던지고 법결을 던져 넣자 옥병이 빙글빙글 돌다 허공의 어떤 곳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한립이 두 손을 모았다 펼치자 굵직한 금빛 뇌전이 옥병을 공격했다.

꽈광!

천둥소리가 들리고 괴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금빛 뇌전이 옥병의 입구에서 나타나자 은빛 벼락이 전부 그곳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렇게 결계의 힘으로 모여든 벼락은 벽사신뢰를 타고 옥병 안으로 모여들었다.

한 시진 후 옥병이 엄청난 벼락을 흡수하고는 해일이 밀려오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립은 그것을 듣고는 만족하며 손을 뻗었다.

금색 뇌전이 떨어져 나가자 옥병은 한립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소매에서 비슷하게 생긴 다른 병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시 천뢰를 모으게 한 것이다.

한립이 그제야 손에든 옥병을 자세히 살폈다. 천둥소리가 울리는 옥병 안은 은빛으로 가득했고 언제든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치고 있었다.

팟!

그가 은색 부적을 붙이자 천둥소리와 빛이 동시에 잦아들었다. 한립은 병의 마개를 닫아 저물대 안으로 넣고는 다시 허공에 있는 병을 주시했다.

반나절이 지났을 때는 네 병이나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폭우는 그칠 줄 몰랐고 벼락도 여러 곳에서 내리쳤다. 생각을 해보니 한 병만 더 채우면 될 듯 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허공에서 시커먼 먹구름을 뚫고 하얀 빛줄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기운을 끌어 모으는 결계의 빛과 한립의 전신에서 풍기는 푸른 기운 그리고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은색 뇌전이 합쳐져 누가 보아도 눈에 띄었다.

하얀 빛줄기의 주인은 그것을 보고 바로 한립이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30장 밖에서 멈추어 빛을 거두자 궁장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눈빛이 맑고 부드러웠고 스무 살 안팎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의복인지 은빛이 찬란했고 하얀 한기가 주위를 맴돌고 있어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러나 한립이 놀란 것은 그녀가 원영 중기 수사였다는 것이다.

궁장 여인이 한립을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저는 북명도의 백요이라고 합니다. 수사께서도 부 수사와 만나러 오신 건가요?”

“북명도라면……. 백 수사께서는 북야소극궁(北夜小極宮)의 수사입니까?”

“소극궁의 외사장로를 맡고 있습니다. 외진 곳에 위치한 저희 궁을 다 알아봐 주시는군요. 수사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 지요?”

“한 모는 바다 건너서 온 산수입니다. 북야소극궁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해외(海外) 수사셨군요. 그럼 한 수사께서는 혹시 해외삼선(海外三仙)과 안면이 있으십니까?”

백요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웃으며 물었다.

“없습니다. 외딴 섬에서 수련에만 치중한 터라 다른 수사들과는 왕래가 빈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시군요. 실례일지 모르나 수사께서 천뢰를 모으시는 것 같은데 도움을 드릴까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의 끝나갑니다.”

“그럼 저는 잠시 쉬고 있겠습니다.”

백요이가 한립의 대답에 산 정상의 다른 바위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녀는 자리를 잡자마자 우산 형태의 무언가를 방출했는데, 하얀빛이 번지며 방원 수십 장이 비바람과 완전히 차단됐다.

그러고는 손바닥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한립이 힐끗 보니 눈처럼 새하얀 수정이 한기를 뿜어내는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빙옥(氷玉).’

그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떠올렸다. 얼마 전에 얻은 한수가 바로 만년 빙옥에서 생산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궁장 여인은 빙옥을 손에 쥐고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있었지만 무의식중에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

북야소극궁이 몇 대에 걸쳐 고계 요수들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한수를 내놓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한수를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었다. 만일 그녀가 자신이 한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성가신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허공의 옥병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번째 병이 천뢰로 가득 찼다. 그는 법기를 회수한 후 기운을 모으는 결계 중앙에 내려섰다.

그가 곳곳에 설치해둔 깃발에 법결을 날려대자 결계의 성질이 변하며 푸른 보호막이 쳐졌다. 그리고 궁장 여인과 멀리 떨어져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폭풍우는 장장 하루가 지나고서야 그쳤고 다시 햇살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 공기가 곧바로 뜨거워지더니 폭우에 밀려났던 독무들이 떠올라 산봉우리들을 감싸 안았다.

한립은 차분히 의식을 방출해 주변 수십 리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다시 활동을 시작한 개미들부터 땅에 떨어져 내리는 과실까지 그 어느 것도 그의 의식을 피할 수 없었다.

가끔 저계 수사들이 산 정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한립과 백요이의 엄청난 수행을 느끼고 대경실색해 달아나 버렸다. 그렇게 한립과 궁장 여인은 자리를 지키며 삼일 밤낮을 지새웠다.

* * *

나흘째 아침 드디어 다른 고계 수사가 산봉우리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추한 외모에 전신이 새까맣게 빛이 나는 거한으로 거대한 푸른 자라 위에 올라서서 사악한 기운이 도는 바람을 몰고 나타났다.

거한이 한립과 백요이를 보고 크게 웃으며 산 정상의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닦기보다는 품에서 금빛의 서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거한의 행동에 한립은 의아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명상을 계속 해나갔다. 살펴보니 거한 역시 원영 중기의 수행이었으니 부 노인이 이곳에 불러 모은 이들은 전부 이 정도 수행인 듯했다.

마치 원영 초기의 수도자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듯!

거한이 도착하고 한동안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세 수사들은 각자 할 일을 하며 서로 교류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장장 보름이 지나고 독기가 거의 물러갔을 때쯤 저 멀리 하늘에서 두 개의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세 수사의 머리 위를 선회한 빛줄기들은 그들의 중간에 내려섰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들은 구유종 부 노인과 검은 의복의 여인이었다.

“세 분이 모두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혹시 오시지 않는 분이 계실까 대비해두었는데 기우였습니다.”

부 노인은 그들을 보며 만족해했지만 곁의 흑의 여인은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오긴 왔지만 부 형의 요청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수련의 고비를 넘길 중요한 시점이라 대수롭지 않은 일이면 시간을 낭비하기 싫습니다.”

거한이 냉소하며 거침없이 말했다.

“원 형 마음 놓으세요! 제가 설마 모두를 불러 모아 놓고 허튼 소리나 하겠습니까. 그 전에 일단 서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제 사매인 상지방(常芷芳) 수사로 구유종 내당 장로직을 맡고 있습니다. 원 형은 현지 수사이신데 남강 독성문 출신이시니 이번 일에 크게 도움을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한 수사는 해외수사로 능력이 굉장하시지요. 백 수사는…….”

부 노인은 모인 수사들을 차례대로 소개했다.

다른 수사들은 부 노인이 한립을 소개한 것을 듣고는 이채를 띄었다. 그러나 한립은 도리어 미간을 좁혔다.

“과찬이십니다. 굉장한 능력을 지녔다는 부 수사의 평은 사실이 아닙니다.”

“뭘 숨기시고 그러십니까. 듣기로는 진경에서 원영 초기 초 노인을 죽이고 교역회 후에는 일격에 명성이 자자한 악화 땡중까지 없애셨다던 데요.”

한립의 담담한 대답에 부 노인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악화 땡중을 한 수사가 없앴다고요?”

원 씨 성의 거한은 표정이 급변해 한립을 쳐다보았고 백요이도 놀란 눈치였다. 검은 의복의 여인만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해를 하셨군요. 진경에서 원영 초기 수사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악화 땡중이라는 자는 제가 손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당시 비슷한 외모의 수사가 둘이었다던데, 그럼 악화 땡중을 죽인 것이 정말 수사가 아니란 말입니까?”

부 노인은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가 원영 중기 수사를 순식간에 없앨 실력이었다면 어째서 음라종 수사들을 피하려 그리 노력했겠습니까.”

“그 말도 맞지만 수사가 죽인 초 노인도 수행은 낮아도 교활하고 둔술에 정통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를 죽인 것만으로도 수사의 솜씨가 보통은 아니지요. 그런데 악화 땡중을 멸살한 수사와 아는 사이십니까?  사실 원영 후기는 돼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사라면 해외수사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부 노인은 당시 한립과 같이 있던 고마에게 흥미를 보였다.

“진경 경매회가 끝나고 멀지 않은 곳에 요괴 비슷한 쌍두사비의 마귀가 출몰했다고 들었습니다. 홀로 원영기 수사 몇 명을 잡아먹고는 결국 근처의 원영 후기 수사가 나타나고 서야 달아났고요. 한 형이 그 자리에 계셨던 것입니까?”

거한도 갑자기 관심을 표해왔다.

“악화 땡중을 죽인 자는 확실히 저와 안면이 있습니다. 다만 마귀는 제가 떠난 뒤에 일어난 일 같군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아쉽습니다. 그 수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번 일이 한결 수월했을 텐데요.”

부 노인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거한이 그의 얼굴을 보며 의심스러운 기색을 표했다. 그때 백요이가 입을 열었다.

“부 수사, 몇 년 전 약속 때문에 이곳까지 왔으니 이제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시지요. 당시 작은 빚을 지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하지만 중요한 사안이니 일단 금제를 설치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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