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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47화 (304/2,000)

# 547

547화. 꼭두각시

준비를 마친 한립이 지니고 다니던 영충과 영초를 거처 곳곳에 배치하고 토갑룡마저 금제를 걸어 밀실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대량의 재료들을 챙겨 또 다른 밀실로 들어갔다.

“이 재료들로는 단 한 번 밖에 제련할 수 없습니다. 만일 중요한 곳에서 실수한다면 다시는 시도할 수 없겠지요.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군요. 어쨌든 제가 선배님을 대신해 제련하는 것이니 제련 방법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립은 등에 메고 있던 죽통을 풀어 앞에 세워두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련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려던 참이지. 반복해서 알려주고 네가 확실히 익혔다는 확신이 들 때 제련을 허락할 것이다. 그 전에 일단 옥간을 보며 대략적인 내용을 익히거라.”

“그렇다면 저야 안심입니다.”

옥간을 받아 든 한립은 고개를 끄덕인 후 즉시 가부좌를 하고 의식을 불어넣었다. 한립은 옥간을 살펴보고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며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다.

일각이 지나고 눈을 뜬 그는 평정을 되찾은 듯 평온해 보였다.

“아주 좋습니다. 제련에 성공한다면 위력은 다른 꼭두각시에 비할 바가 아니겠군요. 영석만 충분하다면 원영 후기 수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겠어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괴뢰술을 네게 전수해 주기로 했으니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느냐. 무엇이든 물어 보거라.”

“이전에 배운 괴뢰술에 따르면 고계 꼭두각시를 제련하기 위해서는 융합하는 혼백도 강력할수록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선배님의 꼭두각시는 어떤 요수의 혼백을 융합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본래의 위력을 완전히 발휘하려면 방금 잡은 팔급 적화교의 혼백도 부족할 겁니다. 혼백에 대해서는 줄곧 입을 다무셨는데 준비된 것이 있는 것입니까?”

“난 또 뭐라고. 그거라면 다 방법이 있다. 네가 묻지 않아도 이야기해 줄 참이었다.”

“이런 꼭두각시를 완성하려면 최소한 구급 요수의 혼백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요수의 혼백 따위는 필요 없다. 때가 되면 내 혼백을 융합할 것이니까.”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어두워지긴 했지만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 했다.

“선배님의 혼백을요?”

“왜, 내 혼백이 구급 요수의 것만 못하단 것이냐?”

“그건 당연히 아니지요. 선배님은 이전에 원영 후기의 수행을 지니셨던 데다 대연결을 수련해 의식은 화신기 수사에 맞먹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혼백을 꼭두각시와 융합하면 자의식을 상실할 텐데 윤회는 포기하신 겁니까?”

“노부가 윤회를 포기할 성 싶으냐?  후에 다시 태어나 수도계와 또 한 번 인연을 맺게 될지도 모르는데?”

대연 신군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혼백을 꼭두각시에 융합하면서도 윤회의 기회를 잃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비술을 이용해서 말이지요.”

“네 녀석이 머리 하나는 타고 났구나. 그래, 바로 그 말이다. 당시 기신술 때문에 이 꼭두각시 속에 갇히고 나서 수천 년의 시간을 이용해 법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혼백을 꼭두각시와 분리할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 와중에도 혼백을 분열하는 비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 분혼술(分魂術)과 일반적인 의식 분열은 완전히 달라서 혼백의 역량을 대부분 지닌 혼백은 꼭두각시와 융합하고, 감정과 기억을 지닌 혼백은 윤회를 돌게 되는 것이지.”

대연 신군은 숨김없이 모든 것을 얘기해 주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혼백을 나누다니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걱정 말거라! 노부가 갈라내는 것은 혼백의 역량이니까. 어차피 혼백의 역량은 이 세상을 뜨게 되면 자연히 흩어지게 된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그럼 이제 궁금한 것이 해결 됐으면 노부의 설명을 듣거라! 일단 꼭두각시의 몸뚱이부터 시작하자. 육신은 열댓 개의 중요한 재료가 필요한데 그 재료…….”

대연 신군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립도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한립은 거의 밀실에만 머물렀고 그저 의식을 이용해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을 부려 영초와 영충들을 돌보았다.

열두 마리의 육익상공들은 예상초 외에도 설백환을 먹여 자세히 살펴봤다. 설백환이 자라극화의 위력에도 도움이 되었으니 극한의 성질을 지닌 육익상공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한립도 연화(煉化)시키는데 서너 달이 필요한 설백환을 지네들은 한 달 만에 깨끗이 소화하고 한기의 위력도 한층 강력해졌다.

이렇게 되자 한립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설백환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꼭두각시들을 시켜 계속 영충에게 먹이게 하였다.

그러나 서금충은 끊임없이 예상초를 먹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 다음 진화가 돼 성체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반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립은 꼭두각시 일부 중 하나를 완성한 채 대연 신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몇 가지 재료들을 보며 확신이 없는 얼굴이었다.

“이걸 꼭두각시를 만드는데 쓰라고요?”

“그래, 최근에서야 떠오른 생각인데 확실히 꼭두각시의 위력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마수찬이야 꼭두각시를 위한 무기를 제련하는데 쓸 수도 있지만, 다른 것들은 어디에 쓰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한립이 말하는 물건은 이전에 시소를 붙들어 두었던 은색 사슬과 마기의 심연에서 발견한 회색 비석 조각들이었다.

“마수찬은 네 말대로다. 이것을 손에 넣은 그 날 바로 꼭두각시의 필살기가 될 물건을 구상해 두었다. 이것으로 마룡인(魔龍刃)을 제련할 수 있다면 위력이 적지 않을 게야.

그리고 네가 은색 사슬의 경우 경정이 들어간 비검도 막아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직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강은(罡銀)과 섞어 꼭두각시의 몸을 보호할 방패를 만들면 좋을 게야. 그리고 비석 조각은 며칠 전에 겨우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대연 신군은 생각을 정리하듯 말을 멈추었다.

“화일신니(化一神泥)라고 들어본 적이 있느냐?”

“물론입니다. 화일신니는 환형고(幻形膏)라고도 불리며 마음대로 형태를 변형하고 손상을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을 지닌 아주 보기 드문 재료이지요. 설마 이게 그것입니까?  하지만 화일신니는 하얀색을 띤다고 들었는데요. 이것은…….”

한립은 놀라서 비석 조각을 자세히 살폈다.

“의아해 할 것 없다. 이것은 분명 화일신니지만 상고수사가 다른 재료를 섞어 제련한 것이라 더 특별해졌지. 상고시대에는 질령연옥(叱靈軟玉)이라고 불렸다더구나. 천하에 이것을 알아볼 수사는 장담컨대 열 명도 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어떤 상고수사의 동부에서 관련 서책을 읽어 보았지만 까맣게 잊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기억이 났으니까.”

“질령연옥이 보통의 화일신니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너도 보지 않았더냐?  질령연옥은 제련을 거쳤기에 형태를 변화시키고 복구하는 능력이 높은데다 거기다 수사의 법력공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되었다. 엄청난 영력을 담은 공격도 이것에 닿으면 위력을 절반 이상 잃게 된다는 것이지. 유일한 단점은 법기 본체를 이용한 공격에 약하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경정에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재료다.”

“그렇다면 선배님께서는 이것을 이용해 무엇을 만들려고 하십니까?”

“그걸 물어 뭐하느냐. 은색 사슬과 섞어 꼭두각시의 몸뚱이를 만들어야지! 그 두 가지 재료가 들어간 꼭두각시의 몸은 어떤 방어용 법보보다 강력할 것이다.”

“예, 전부 선배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일단 다른 것들을 먼저 완성하고 다시 이야기 하자꾸나. 1년이면 어느 정도 완성될 테고, 그 후에 하나로 합치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한립이 소매를 저어 푸른 기운으로 바닥에 놓인 재료들을 회수했다. 그리고 저물대 안에서 재료가 든 옥함 7개를 꺼내 다음 제련에 들어갔다.

한립이 밀실에서 꼭두각시를 제련하는 동안, 매달 설백환을 한 알씩 먹은 열두 마리의 육익상공들도 진화했다. 연달아 껍데기를 벗더니 이전보다 몸집도 커지고 드디어 등에 한 쌍의 새하얀 날개가 솟아난 것이다.

비행 속도가 빨라지고 지능도 높아져 한립에게 의외의 기쁨을 주었지만 이후에는 설백환을 먹여도 눈에 띄는 변화는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 날, 한립은 두 눈을 감고 밀실에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은빛이 찬란한 인간 형상의 꼭두각시가 허공에 떠 있었는데 한립은 열 손가락을 쉼 없이 움직이며 금빛 실을 꼭두각시의 몸 곳곳에 박아 넣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립이 숙연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보아 하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각 부위가 완벽하게 융합되어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립이 꼭두각시를 보며 기쁨을 드러냈다.

“누가 생각해낸 꼭두각시인데 당연하지! 게다가 노부가 직접 제련 방법을 전수해 주지 않았느냐.”

“선배님께서는 정말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분혼술(分魂術)에 무슨 문제라도 생겨 선배님의 윤회에 영향을 미치면 어찌 합니까. 게다가 일단 혼백을 분열하면 남은 혼백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흩어질 텐데요.”

“노부는 생의 절반 이상을 괴뢰술에 쏟아 부었다. 내 혼백의 일부를 꼭두각시에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테지. 그리고 분혼술(分魂術)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는데 머뭇거릴 것이 무엇이냐. 날 설득하려 할 것 없다. 이미 대연결의 나머지 구결을 전수해 주었으니 네가 계승해 명맥이 끊이지 않게 하기를 바랄 뿐이다.”

대연 신군은 낮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에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셨다면 더는 무어라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대연 신군이 갑자기 크게 웃더니 죽통 속에서 녹색 빛이 번뜩이며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서 금빛이 찬란한 난쟁이가 튀어나왔는데 그것은 키가 몇 촌 밖에 되지 않는 꼭두각시였다.

금속도 나무도 아닌 꼭두각시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중년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난쟁이는 두 눈을 번뜩이다 가부좌를 하고 주저앉았다.

주술을 읊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난쟁이의 입에서 녹색 빛이 튀어나와 주위에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것을 보고 한립이 입을 달싹였지만 차마 무어라 말을 하지는 못했다.

주술 소리는 점점 크고 다급해 졌으며 녹색 빛도 요란해져 난쟁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립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연 신군이 고통스럽게 숨을 들이마시자 밀실이 진동했다. 녹색 빛이 둘로 갈라져 하나는 은색의 꼭두각시로, 나머지 하나는 난쟁이 쪽으로 사라졌다. 난쟁이는 이제 두 눈의 총기가 많이 흐려져 있었다.

한립이 신속하게 은색 꼭두각시를 향해 손짓하자 인간의 형상을 한 꼭두각시가 입을 벌려 분열된 혼백을 집어 삼켰다.

이후 꼭두각시의 은빛은 더욱 거세졌고 쉼 없이 몸을 떨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이 바로 입을 벌려 보라색 화염을 꼭두각시에게 뿜어냈다.

촤륵!

화염이 번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꼭두각시의 표면에 얼음이 한데 뭉쳐져 꼭두각시를 철저히 봉인했다. 그제야 한숨을 내쉰 한립이 걱정스런 기색으로 난쟁이를 바라보았다.

“혼백이 분열되는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세상 천지에 이런 기분을 느껴본 수사가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대연 신군은 담담히 말했지만 확실히 기운을 잃어 큰 병을 앓는 사람 같았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걱정 말거라. 혼백을 나눴어도 열흘 정도는 멀쩡할 테니까. 어서 꼭두각시와 혼백을 융합해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고 갈 수 있게 하거라.”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 전에 진혼부를 이용해 선배님의 남은 혼백을 안정화시키겠습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 올리고 소매를 털어 핏빛의 부적을 내뿜었다.

“진혼부?  그렇게 귀한 부적을 다 죽어가는 나한테 써서 뭐하려고?  너무 낭비 하는 것 아니냐.”

“어차피 다른 원영기 수사를 죽이고 얻은 저물대에서 찾은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공으로 얻은 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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