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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41화 (298/2,000)

# 541

541화. 고마(古魔)

한립은 재빨리 오행옥과 경정을 챙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큰 경정 덩이를 구한 것은 운이 좋았다. 경정으로 비검들을 제련하고 이후에 다시 조금만 더 경정을 구하면 다시 36개의 청죽봉운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거래를 위해 수사들이 연달아 나왔지만 마수찬, 오행옥 등 진귀한 재료들 다음이라 그런지 다른 수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들 중 거래에 성공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잠시 후, 하얀빛 속의 수사가 차분히 옥 탁자 뒤로 다시 나섰다.

“이제 거래를 원하시는 수사 분들이 없는 것 같으니 본 교역회에 마지막 남은 보물을 소개하겠습니다.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그는 말을 하며 손뼉을 두 번 쳤다.

예상 밖에 그 소리에 나타난 수도자들은 몸에 부적을 붙이지 않고 제 모습을 드러낸 채였다.

그러자 대청 안이 소란스러워졌고 두 수도자의 이름이 그들 사이에 오갔다. 그들은 황성 어딘가의 관저에서 모여 이야기를 하던 검은 관모의 노인과 각진 얼굴의 중년인이었다.

한 명은 원영 초기, 다른 한 명은 원영 중기로 황족인 엽 씨 가문이 외부인과 소통할 때 나서는 원영기 장로들이었다.

대부분의 수사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이미 몇몇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기에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지하 교역회에 참가한 이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각진 얼굴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서 하얀빛 속 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서 저희 둘을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테니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번에 저희 엽 가에서 무수히 많은 인력과 자원을 이용해 백여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제련한 보물입니다.

최근 몇몇 문파에서 이것의 매입 의사를 밝혀 왔으나 도저히 어느 문파의 뜻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의 끝에 교역회에서 최종적으로 주인을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인연이 닿는 분에게 돌아가겠지요.”

각진 얼굴의 중년인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검은 관모의 노인에게 눈짓했다. 노인은 소매 속에서 한 자 길이의 네모난 함을 꺼내 아깝다는 눈빛으로 하얀빛 속 수사에게 건넸다.

“노부도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직접 보시지요.”

하얀빛 속 수사가 작게 웃고는 손을 털어 옥함 뚜껑을 날렸다. 그러자 눈을 찌르는 듯한 노란빛이 서서히 떠올라 낮게 웅웅 거렸다.

그 광경에 하얀빛 속 수사가 수결을 맺어 법결을 날리자 노란빛이 미친 듯이 번뜩이다가 점점 원형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뜻밖에도 작은 황토색의 도장이었다.

네모난 도장은 전체가 옥 같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희미하게 금색과 은색의 진법이 새겨져 있었는데 빛이 번뜩일 때마다 진법의 주술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외에도 도장이 발산하는 영기는 평온했지만 함유한 영기의 양이 거대해 수사들의 안색이 달라졌다.

“평산인이라 불리는 보물입니다. 상고시대 통천령보인 장천인(掌天印)을 본 따 만든 모조품이죠. 엽 가에서 살펴본 결과, 전설 속의 장천인의 위력에 10 분의 1에서 2정도 발휘합니다. 만일 수사의 수행이 높다면 긴급한 순간에는 10분의 3까지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법보가 크게 상하기는 할 것입니다.”

하얀빛 속 수사가 차분히 설명하고는 평산인을 커졌다 작아졌다 하도록 조종했는데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중후한 노란 영기의 빛에 대청 안의 수사들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립은 통천령보 모조품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는 아직 삼염선 재료를 완전히 모으지도 못했는데 누군가 모조품 제련에 성공해 그것을 경매에 붙이다니!

그의 생각을 예상했는지 대연 신군이 말했다.

“평산인은 통천령보의 위력의 10분의 1, 2 밖에는 구현하지 못한다지 않더냐. 내가 연구해낸 삼염선 제련법은 칠염선의 10분의 4의 위력을 구현할 수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삼염선 제련에 성공하기를 바라야지요. 보물을 손에 넣는다면 원영 후기 수사를 만나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대진이 천남처럼 이런 모조품들이 한두 개일 거라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선배님의 뜻은…….”

“내가 유람할 때만 해도 정마 양도의 일인자인 태일문과 천마종 그리고 만 가지 요괴가 모여 있다는 만요곡이 각각 한 개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만요곡의 만요번이고 말이야. 듣기로는 오랜 세월 수사들의 혼백을 흡수해 이미 통천령보인 천요번에 못지않아졌다고 하더구나.”

“맞습니다. 엽 가는 일개 세가에 불과한데도 통천령보 모조품의 제련에 성공했으니 역사와 유래가 깊은 문파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한립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더니 인정했다.

“너무 의기소침해 말거라. 네가 제련하려는 모조품은 다른 것들과는 다르니까. 이제는 사라져 구하기 힘든 재료들로 제련할 것이 아니더냐. 게다가 네게는 이미 진짜 통천령보인 허천정이 있다. 그것을 완벽하게 부릴 수 있다면 인계에서 널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없을 거야.”

대연 신군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완벽하게 허천정을 부린다는 것은 화신기의 수행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화신기에 이르면 허천정이 없어도 인계는 종횡무진 할 수 있을 테지요.”

한립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연 신군도 그 말에 웃음을 흘리며 더 무어라 하지 않았다.

이때 대청 안의 수사들이 평산인의 존재에 압도된 듯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노부가 떠들어 대지 않아도 다들 이 물건의 가치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거래를 위해 엽 가에서 목록을 준비해 왔습니다. 필요한 재료 중 가장 많은 항목을 제시할 수 있는 수사에게 평산인이 돌아갈 것입니다.

물론 가장 많이 제시해도 평산인의 가치에 못 미치면 영석으로 경매에 들어갈 것입니다. 최저가는 삼백만 개부터 시작합니다.”

영석 삼백만 개는 엄청난 숫자였다. 하지만 아무도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은 것은 이미 여러 문파들에서 자금을 배당 받아 이번 거래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립은 가격을 듣고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마수찬을 경매에 내놓는다면 영석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소위 마도의 진귀한 보물이라는 마룡인(魔龍刃)을 조사해봤는데 상고시대에 누군가 제련해내 그것으로 화신기 수사를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위력이 통천령보 보다 적지 않을 것이다.

한립이 잡다한 생각을 하는 동안 검은 관모 노인은 옥간을 하나 꺼내 그곳에 적힌 재료들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대청 내의 수사들은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열심히 듣고 있는 다른 수사들과 달리 한립은 별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가진 영석이 많아도 대진의 종문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그러니 그가 이것을 욕심낸다면 그건 멍청한 일이었다.

노인이 원하는 재료 중에는 오행옥, 경정과 같은 보기 드문 재료들이 죄다 쓰여 있었다. 아마 엽 가에서 이번 기회에 다른 종문의 재산을 쓸어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에 한립은 벌떡 일어나 대청 바깥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수사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다들 그가 마수찬을 두 개나 내놓은 수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수사 어찌 이렇게 가십니까?”

한립이 일어서자 부 노인이 전음을 보내왔다. 그러자 한립의 신형이 잠시 멈추었다가 입술을 달싹여 대답했다.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어 더 늦게 떠났다가는 사단이 날 것입니다. 부 형의 일은 기억하고 있으니 급하지 않다면 몇 년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급한 일은 아닙니다만, 마수찬 같은 보물을 지니고 계셨으면 귀띔이라도 해주시시 않고요. 어쩐지 음라종 수사들이 찾아다니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3년 후에 남쪽 변경의 조운부에서 노부와 만나기로 합시다. 다른 몇몇 수사들과 그때 쌍갈산에서 만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보장하건데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수사에게도 득이 될 겁니다.”

“3년이요?  빠듯하기는 하지만 그때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한립은 재빠리 전음을 마치고 그대로 대청을 빠져나갔다. 하얀빛이 번뜩이고 한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다경이 지나고 푸른 빛줄기로 변한 한립은 교역장 입구에서 빠져나와 동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역장 내부의 몇몇 수사들이 은밀하게 그를 따라나섰다.

단숨에 천 리 밖까지 날아간 그가 어떤 산봉우리를 지나는데 체내의 비검들이 울부짖었다.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허공에서 멈추었다.

호흡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본 그는 소매를 털어 수십 개의 금색 비검들을 방출했다.

“이미 행적이 드러났으니 숨어 있을 것 없습니다. 나오시지요.”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한립은 어딘가를 쳐다보며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내 주혼을 살해한 수사답게 무척 예민하구나.”

한립이 바라보던 공간에 검은빛이 번뜩이고 그와 비슷한 용모의 청년이 나타났다. 똑같이 푸른 장포에 평범한 얼굴을 했지만 눈에서 검은색과 보라색이 번뜩여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정말 당신이었군. 나를 어찌 찾은 것이오?”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구나. 네 비검이 영성이 넘쳐 네게 경고를 해줄 줄이야. 이렇게 빨리 너를 찾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가 운이 좋은 것이겠지.”

“내 비검 두 개가 당신에게 있지 않소. 그런데도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어리석은 것이겠지.”

“그래, 네 비검은 내 손에 있다.”

고마의 분신이 대수롭지 않게 인정하며 한 손을 들어 금빛 찬란한 작은 비검 두 개를 들어올렸다. 검은 기운에 꽁꽁 묶여 꼼짝 못하는 비검들은 한립을 향해 날아오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금뢰죽으로 제련한 것이더구나. 네 다른 비검들도 그렇겠지. 이렇게 많은 금뢰죽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구나. 보아하니 추마골에서 주혼이 네 손에 당한 것도 이유가 있었어. 주혼이 죽어 다시 제압당하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영원히 원래의 수행을 되찾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하나 모르겠구나.”

고마의 분신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숨어서 기다린 것이 저와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자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것은 모두 너한테 달렸다. 만일 금뢰죽을 얻을 방법을 말해준다면 살려는 주마. 싫다면 너를 죽여 원신을 고문해 알아내면 그만이다.”

고마의 분신이 손에 든 비검을 내려다보았다. 그 말에 한립은 입술 끝을 움찔거렸다.

“날 죽이고 싶은 것과 죽일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오. 나도 더는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고 싶지 않으니 어디 실력이나 보여주시지요. 기억하기로 천남에서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단시간 내에 얼마나 회복하였을지 모르겠소.”

한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신비한 병에 대한 비밀은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누설할 수 없었다.

“죽이기 전에 몇 마디 말이나 들어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나.”

고마의 분신도 살기를 드러내며 기세가 흉흉해졌다.

한립은 머리 위를 선회하던 비검들을 순식간에 금색 장막으로 변하게 해 몸 앞에 드리우고 다른 손은 서금충이 든 영수대 위에 올렸다.

한립은 고마와 잠시 손속을 겨루어 상대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때 고마가 어딘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것을 눈치 챈 한립도 바로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저 멀리에서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한립이 보기에도 놀라울 만큼 엄청난 속도에 은은히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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