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0
540화. 뜻밖의 수확
그 외에 한립은 꼭두각시 제련을 위한 재료도 두 가지나 지니고 있던 물품으로 교환했다. 이제 두 가지만 더 모으면 꼭두각시 재료는 전부 모으는 셈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너무 귀해서 누군가 먼저 거래를 원할 가능성은 낮았다.
“녀석아, 이제 무엇으로 거래할 셈이더냐. 조금만 급이 떨어져도 거래하려 들지 않을 텐데.”
그의 의식 속에서 대연 신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마도 수사들인데 마침 그들이 보물로 떠받드는 물건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그것과 재료들을 교환하겠다고? 아깝지 않겠느냐?”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요. 꼭두각시 재료들을 거의 다 모아 이제 단 두 개만 남았으니까요. 종전의 고생을 모두 헛수고로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꼭두각시가 선배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위력적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겠지요.”
대연 신군이 의외라는 듯 묻자 한립이 미소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강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또 한 명의 수사가 낙담하며 돌아가자 그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옥 탁자 뒤로 걸어갔다.
앉아 있던 수사들이 또 무슨 진귀한 보물을 내놓으려나 기대하며 한립을 쳐다보았다.
한립은 두 손바닥을 뒤집어 작은 옥함 두 개를 꺼내들었다. 그는 옥함을 열지 않고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마도의 재료 중 보물로 불리는 마수찬(魔髓鑽) 두 덩이입니다. 각각을 오행옥(五行玉)과 현광정(眩光晶)으로 바꾸고자 하니, 이것들을 지닌 수사들은 거래하시지요.”
한립이 간단명료하게 원하는 바를 밝히자, 옥함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 그윽한 검은 빛을 내는 투명한 물체가 떠올랐다. 그가 마기의 심연에서 구해온 마수찬(魔髓鑽)이었다.
“마수찬! 마룡인(魔龍刃)의 재료 아닌가!”
“말도 안 돼. 세상에 저런 물건이!”
“진짜란 말인가…….”
“이런 일이!”
한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청 안이 소란스러워졌고 공터 바깥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하얀빛 속의 수사조차 놀라 눈을 떴다.
“솔직히 제가 마도 공법을 수련하지 않아서 내놓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거래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건이 진품인지는 제가 원하는 물건을 지닌 분이 나서신다면 당연히 세밀히 감별하게 해드릴 것입니다.”
한립이 차분히 덧붙였다. 그의 자신 있는 말투에 장내가 일순 고요해졌다. 다들 마수찬(魔髓鑽)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오행옥(五行玉)과 현광정(眩光晶)이 드물고 찾기 어려운 보물이기는 하지만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도의 지보(至寶)인 마수찬(魔髓鑽)에 비해서는 급이 떨어졌다. 그러니 다들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광정이라면 따로 보관중인 것이 있습니다. 너무 귀한 것이라 경매에 올리지 않았는데 바로 제자를 보내 가져오라 하지요. 제가 마수찬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교역회를 주관하던 하얀빛에 둘러싸인 수사가 나섰다.
“수사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거짓은 아니겠지요. 먼저 살펴보시지요.”
한립도 조금 놀란 기색이 스쳤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수락했다. 하얀빛 속의 수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 팔을 뻗으니 불덩이가 지붕으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그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한립을 향해 걸어왔다.
하얀빛 속의 수사는 확실히 마수찬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은지 그 중 하나를 손에 들고는 입을 벌려 하얀 영화를 분출했다. 하얀 화염은 마수찬 표면의 마기와 닿자 상극이라도 만난 듯 둘로 갈라지며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
수사는 조금 흥분한 듯 이번에는 수결을 맺어 남색의 한기를 분출했다. 그러나 역시나 한기도 마수찬을 얼리지 못했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마수찬에 마기를 불어 넣었는데 바다에 물을 끼얹는 것처럼 흡수가 되며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마수찬이 확실합니다. 이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때 마침 서너 장 밖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회색 장포를 입은 복면 수사가 나타났다. 그는 하얀빛 속의 수사에게 예를 취한 후 옥함을 건네고는 바로 사라졌다.
“현광정 덩이입니다. 쓸 만한 지 살펴보시지요.”
하얀빛 속 수사는 옥함을 열지 않고 그대로 한립에게 건네주었다. 한립도 거침없이 그것을 받아 바로 뚜껑을 열었다.
담황색의 수정이 보라색 광채를 띠고 있어 보고 있으면 눈이 어지러웠다. 한립은 기뻐하며 눈동자를 남색으로 일렁이며 자세히 관찰했다.
상대 수사는 한립이 현광정을 주시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그도 현광정을 오래 보고 있을 수 없는데 눈앞의 수사는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확실히 극상품의 현광정이로군요. 수사께 마수찬을 드리겠습니다.”
한립은 흡족해 하며 현광정을 옥함에 돌려놓고 그대로 저물대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럼 노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남은 한 덩이를 거래할 재료가 없는 것 같은데……. 제가 높은 가격에 매입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진귀한 재료든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를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하얀빛 속의 수사는 한 덩이의 마수찬을 회수하고는 나머지 한 덩이를 향해서 탐욕을 드러냈다.
“누가 나머지 재료가 없답니까. 제게 오행옥이 있습니다.”
“잠깐, 노부도 양보할 수 없소! 이것은 내가 가져가게 될 것이오.”
동시에 여인과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새까만 빛줄기와 눈부신 은색 빛줄기가 차례로 한립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수사들이 수군거렸다.
현광정을 아는 이들은 드물었지만 오행옥은 수도계의 유명한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지닌 수사가 동시에 둘이나 나타난 것이다. 이전에 오행옥이 수도계에 등장했을 때가 벌써 5, 6백 년 전이니 더욱 놀랄 만했다.
적잖은 수사들이 그들을 질투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얀빛 속의 수사가 쩌렁쩌렁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를 듣더니 안색이 변해 불안해했다.
“어찌 감히 먼저 규칙을 깨고 마수찬을 독점할 작정이시오?”
검은 기운 속의 사내는 나중에 도착한 은색빛 속의 가느다란 여인은 신경 쓰지도 않고 하얀빛 속의 수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체격이 건장하고 목소리가 서늘하면서도 컸다.
“곤 형, 괜한 걱정을 다하십니다.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제안을 한 것뿐이니 수락을 하고 말고는 물건의 주인이 결정한 문제이지요. 기왕 두 분이 나섰으니 저도 더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하얀빛 속의 수사는 검은 기운 속의 마도 수사를 알아보았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하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눈치는 있소.”
마도 수사가 냉소하며 뒷짐을 지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은빛 속의 여인은 약간 불안해 보였고 다른 수사들도 서로 속닥이기 바빴다.
“곤 씨 성의 수사라면 혈처문(血凄門)의 곤무극 장로일지도. 체격이나 목소리도 비슷하고 말이야.”
“원영 후기 수사가 아니고서는 저런 태도를 보이기 힘들겠지요.”
한립도 미미하게 안색이 달라졌다. 원영 후기의 수사인데다 마도십종 중 하나인 혈처문의 장로라니.
“혈처문의 장로님이셨군요. 제가 몰라보고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만일 수사께서도 오행옥을 지니고 계시다면 제가 물러나지요.”
여인이 잠시 침묵하다 한숨을 쉬듯 이야기했다.
“비록 오행옥이나 현광정은 없지만 못지않은 재료가 있소. 눈치 있게 빠지는 것이 좋을 게요.”
“그렇다면 어렵겠습니다. 저도 마수찬이 꼭 필요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수찬을 내놓으신 수사께 결정을 맡기시지요.”
곤무극의 위협하는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좋소, 노부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니까.”
예상과 달리 곤무극은 자신의 물건에 자신이 있는 듯 여인의 제안을 수락했다.
여인이 먼저 손을 뻗어 청록색 목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제 오행석이 진짜인지 살펴봐 주시지요.”
“내가 내놓는 물건도 잘 보시오. 이중에는 오행옥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들도 있으니 말이오.”
곤무극이 냉소하며 소매를 털어 일곱 개의 색과 모양이 다른 옥함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이에 한립은 일단 목갑부터 불러들였고, 푸른빛이 번뜩이자 목갑에 붙어 있던 부적이 떨어져 내렸다. 한립이 순식간에 감별을 마치고 흥분을 억누르며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행옥이 맞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오행옥을 돌려놓고는 시선을 다른 옥함들로 돌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오행옥을 챙기고 싶었지만 원영 후기 수사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은 없었다. 또한 곤무극이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라니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곤무극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말했다.
“낙풍목(落風木), 응혼석(凝魂石), 만륜화(万輪花)…….”
한립이 옥함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말소리에 다들 놀랐다. 곤무극이 말한대로 오행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재료들이었고, 특히 만륜화는 누군가에게는 마수찬 보다 더 진귀한 보물이었다.
여인은 불안해져서 고개를 들어 초록빛 속의 한립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한립이 만륜화도 아니고 옥함 중 금빛이 나는 광석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여인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한립은 손을 뻗어 금색 금속을 자세히 관찰했다. 곤무극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곧 웃음을 터트렸다.
“경정이 마음이 드오? 안목이 있소. 검을 제련하는 수사라면 경정이 능력을 크게 늘려주는 것을 알거요. 게다가 이렇게 큰 덩이는 대진 수도계에서도 내게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이 경정으로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오행석도 필요하시…….”
“그만 못하겠소! 노부와 해보자는 것이오?”
곤무극이 기뻐하다가 여인의 말에 기세를 드러내며 말했다. 한립은 그저 가만히 서있었고 여인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곤무극은 이미 남은 마수찬을 잡고 감상하는 중이었다.
“과연 마수찬이야. 노부가 이번에 이곳에 오기를 잘했지. 가 노마 등이 내가 마수찬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후회하려나.”
곤무극은 고개를 쳐들고 광소했다. 이후 소매를 털어 나머지 옥함을 거두더니 신형을 번뜩이며 대청 입구로 이동했다.
“곤 형, 아직 중요한 보물이 남았는데 더 안 보시고 이대로 가시렵니까?”
“중요한 보물은 무슨. 노부는 이미 마수찬을 손에 넣었으니 정순한 마기를 제련하러 급히 가봐야겠소.”
말을 마친 곤무극은 결계를 너머 곧바로 사라졌다.
‘마기를 제련한다고? ’
한립은 의외였지만 이해가 갔다. 마기의 심연 아래에서 가져온 마수찬은 정순한 마기를 함유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제련한다면 남다를 것이 분명했다.
이때 여인이 곤무극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바로 목갑을 가리켜 회수하려고 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이것도 거래를 원합니다.”
“무슨 뜻이시죠?”
한립의 말에 여인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다른 수사들도 영문을 모르고 상황을 주시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한 손으로 목갑을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저물대를 스쳐 옥함을 꺼냈다.
“저는 마수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일단 옥함 속 내용물을 확인하시고 다시 이야기 하시지요.”
한립의 말에 여인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옥함의 뚜껑을 살짝 열었다.
“좋아요! 오행옥은 수사의 것입니다.”
여인이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옥함을 닫아 저물대로 가져갔다. 다른 수사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없었다.
한립이 세 번째로 내놓은 옥함에 무엇이 들었기에 상대가 저리 좋아하며 오행옥을 내준 것일까.
수많은 수사들이 의혹 어린 눈빛과 부러움 가득한 시선에도 한립은 모른척했다. 그런데 그는 여인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눈에 익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란 말인가? ’
한립은 불쑥 드는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비록 목소리는 달랐지만 수도자들에게 목소리를 바꾸는 것은 얼굴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가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희미한 은색빛을 꿰뚫어 보고는 표정이 묘해졌다. 그녀는 확실히 천란 성녀였다.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재료를 원수의 손에 쥐어 주다니 이런 우스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립은 황당했지만 어쨌든 원하는 재료를 모두 얻었으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