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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39화 (296/2,000)
  • # 539

    539화. 부적과 진법

    지하 교역회와 백 리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검은 기운을 풀풀 날리는 갈천호가 사나운 얼굴로 누군가의 머리를 쥐고 있었다. 추혼술을 펼쳐 상대의 기억을 헤집는 중인 것 같았다.

    그 수사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이 뒤집어 진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옆에서 임은병과 금은 장삼의 수사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잠시 후 추혼술을 당하고 있던 수사가 발작을 일으키더니 코와 귀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갈천호가 미간을 좁히더니 손에서 검은 화염을 일으켜 그 자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 자의 신분을 알아내셨습니까?  어째서 몰래 우리 뒤를 쫓고 있었던 것입니까?”

    임은병은 그가 추혼술을 마치자 질문을 쏟아냈다.

    “엽 가의 수사입니다.”

    “엽 가라면, 황족인 엽 씨 가문 말입니까?”

    “누가 이자를 보냈는지 아시면 더 놀라실 겁니다. 뜻밖에도 엽 가에 한 장로라는 자가 있는데 우리가 쫓는 자와 외모가 비슷하다는 군요.”

    “그렇다면 둘이 동일인일까요?  어쩌다가 엽 씨 일가에…….”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가 추혼술을 쓴 자는 엽 가에서 고용한 산수일 뿐이니까요. 다만 둘이 동일인이든 아니든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뒤를 밟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그 자가 정말 엽 가의 장로라면 일이 조금 어렵게 되겠습니다.”

    “황족의 세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제 기억대로라면 엽 가는 여러 종문들이 추대해 세운 세가에 불과할 텐데요. 그렇게 어려운 상대입니까?”

    임은병이 작게 웃었다.

    “엽 가는 일반적인 수도 세가와는 다릅니다. 대진의 황족이며 가장 큰 세가인지라 원영기 장로의 수만 해도 예닐곱 명은 넘으니까요. 게다가 은밀히 산수들을 모으고 세력을 키우는 터라 어떤 수도 종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방금 붙잡은 산수만 해도 본연의 수행은 높지 않지만 부리는 깃발이 범상치 않았지요. 임 수사의 묘음보경이 아니었다면 어디까지 따라 붙었을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장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거기다 묘음보경을 들고 있으니 놓칠 리가 없지요. 그래서 갈 형께서는 이제 어찌 하시겠습니까?  설마 성전과의 약조를 지키지 않으실 작정입니까?”

    “엽 가의 세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 음라종이 두려워할 정도는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본 종의 보물과 집법장로의 목숨이 관련된 일이니 그 자가 엽가의 장로라 해도 따질 것은 따져야지요. 임 수사께서는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니 일단 교역회부터 갑시다.”

    갈천호는 고개를 들어 방향을 살피고는 말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임은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세 수사는 다시 빛줄기로 변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허공에서 검은 빛이 번뜩이더니 푸른 청삼의 청년이 나타났다.

    “음라종과 천란성전이 손을 잡았구나. 좋다, 잠시 너희를 살려 둘 테니 나를 도와 그 녀석을 찾아 내거라. 이전의 원수는 그 후에 셈해주마.”

    홀로 중얼거리던 청년은 신형이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 * *

    한립은 녹색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주위를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금 어두운 대청 안에 있었는데 중간에 동그란 공터를 중심으로 4, 5백 개의 좌석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복면을 한 수사에게 특수 제작한 부적을 받아 몸에 붙이고 소규모 전송진을 통과해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이 녹색 빛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핀 한립은 그제야 수십 명의 수사들이 다양한 색의 빛으로 덮여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의식을 퍼트려 보았지만 다양한 색의 빛은 손쉽게 그의 의식을 막아버렸다.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중해 봐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한립이 의식으로 대청을 훑어보자 과연 괴이한 진법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강력한 금제는 아니었지만 수사들을 둘러싼 빛과 호응하는 기운이었다.

    어떤 진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자가 붙이고 있는 부적이 진법 안으로 들어오면 저절로 발동되는 듯 했다. 지하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교역회이다 보니 참가하는 수사들을 고려한 것 같았다.

    이에 한립은 한시름 놓고는 원반 법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음라종 수사들도 지하 교역회에 찾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들어오는 수사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대청 안에 이백여 명의 수사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중간의 공터에 새하얀 옥으로 만든 탁자가 놓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 탁자가 빛나고 하얀빛에 둘러싸인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시간이 되었으니 교역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얀빛 속의 그림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소매를 털자 빵빵하게 부푼 저물대들이 탁자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수사들의 눈빛이 한층 뜨거워졌다.

    “이번 교환회는 이전처럼 각종 진귀한 재료들을 위주로 하겠습니다. 물론 고보나 법보 종류도 정말 진귀한 것이라면 거래할 수 있겠죠!

    관례에 따라 저희가 제공하는 재료들은 영석으로 구매하실 수 있지만 이후에 수사들이 내놓은 물건들은 교환을 통해서만 거래 가능합니다. 다만 이번에 저희가 위탁을 받은 엄청난 보물의 경우 몇몇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과 교환을 하고 아무도 그런 재료가 없으시다면 경매로 돌리겠습니다.”

    “엄청난 보물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재료인지 단약인지 그것도 아니면 고보인지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만일 그것과 거래할 만한 물건을 미리 다른 곳에 써버리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큰소리로 질문했다.

    “정말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과 교환 가능한 것들도 일반적으로 수사들이 손에 넣으면 꽁꽁 숨기고 있지 절대 거래에 이용할 물건들이 아니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의 자신만만한 언사에 다들 호기심이 생겼지만 더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수사가 저물대 중 하나를 가리키니 검은 빛이 번뜩이며 대추처럼 생긴 검은 과실이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음조(陰棗)입니다. 음년, 음월, 음일 출생한 자의 무덤에서 자라난 삼백 년 된 과실로 원혼의 원기를 이용해 비술로 49일간 제련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최저가 영석 십만 개로 시작해서 오천 개 이상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얀빛 속의 수사가 입을 열자마자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십이만.”

    “십사만.”

    “십사만 오천 개!”

    한립은 들어 본 적도 없는 음조(陰棗)라는 재료를 위해 수사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가격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마도 수사들이 사용하는 재료인 것 같았다.

    결국 음조(陰棗)는 영석 십구만 개에 낙찰되었다.

    “혈양철(血陽鐵)입니다. 뙤약볕 속에서 결단기 이상의 수사 3명이 불 속성의 공법을 쓰는 수사의 원신과 철을 융합해 제련해 낸 것입니다. 불 속성 법보를 제련하기에 뛰어난 재료이지요. 최저가 영석 십오만 개로 시작해 만 개 이상 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십팔만 개.”

    “이십 만!”

    이번에는 한립도 들어본 재료였다. 혈양철(血陽鐵)은 원하는 수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들 꼭 필요한지 가격을 올려 결국에는 영석 이십오만 개라는 놀라운 가격에 낙찰 되었다.

    “귀려초(鬼厲草)…….”

    이름만 들어도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물건들이 연달아 등장했고 수사들은 고가에 낙찰 받아 갔다. 지하 교환회의 상황은 과연 남달랐다.

    한립은 저물대를 매만지며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지니고 있는 영석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든 것이다.

    “옥상교(玉橡膠)입니다. 천지영물인 옥상수가 천 년에 한번 생성하는 것으로 기이한 법보나 꼭두각시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지요. 최저가 영석 십이만 개로 시작해 오천…….”

    “십오만.”

    하얀빛 속의 수사가 아교(阿膠) 같은 하얀 물품을 꺼낸 순간 한립이 눈을 번뜩이며 가격을 제시했다.

    원영기에 들어 꼭두각시나 기문(奇問) 법보 제련에 관심을 갖는 수사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한립은 겨우 서너 명과 겨루다 영석 십칠만 개로 가볍게 옥상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후 나온 물건들 중에 한립이 필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그는 각각 영석 십구만 개와 삼십일만 개를 들여 낙찰을 받았다.

    후자는 아주 유명한 법보 제련 재료라서 수많은 수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통에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되니 한립은 수중의 영석을 거의 다 쓰고 말았다. 그나마 이후에 꼭두각시 제련에 필요한 재료들이 나오지 않아 한시름을 놓았다.

    마지막 물품까지 경매를 마치고 옥 탁자 위의 저물대들이 모두 비어버렸다. 하얀빛 속의 수사는 이번 교역회 결과가 마음에 드는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교역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제 수사들께서는 교환을 원하시는 물건을 이곳에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미리 당부 드리지만 스스로 물건을 잘못 고르시거나 가짜 물품을 거래하시더라도 저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규정대로 어떤 물품을 거래하든 한 번에 몇 개의 물품을 거래하든 거래에 성공하시면 1인당 영석 만 개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이제 알아서 하시지요! 규칙만 잘 지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노부는 지켜보기만 할 것입니다.”

    수사는 몇 마디 말을 하고는 신형을 번뜩이며 공터의 바깥으로 이동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하얀빛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놀라지 않고 동시에 몇 개의 빛줄기가 움직였다. 결국 다른 이들보다 빨리 도착한 수사가 붉은빛에 휩싸인 채 옥 탁자 뒤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노부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 다른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다른 빛줄기들이 그대로 선회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립은 그 모습에 실소했다. 원하는 재료를 교환하려면 빨리 거래해야 유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재료를 다른 이가 먼저 교환해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신에게는 진귀한 재료가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한 재료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립이 원하는 재료는 특히나 진귀하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재료가 아니라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과연 붉은빛 속의 수사는 몇 가지 진귀한 재료를 내놓고 단약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다른 재료와 교환하기를 원했다.

    잠시 후, 여러 명의 수사들이 그 중 몇 가지를 교환해 갔고 붉은빛 속의 수사는 만족한 얼굴로 물러났다. 그 후에도 몇몇이 비슷한 방식으로 순조롭게 거래에 성공했다.

    그러나 노란빛 속의 수사가 주먹만 한 남색 금속을 내밀고 한립은 들어 본 적도 없는 물 속성 재료와 교환하고 싶다고 외쳤을 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수사는 상심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시작으로 거래에 성공하지 못하는 수사들이 간간히 등장하기 시작했고 삼, 사십 명이 나선 후로는 오히려 성공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물론 몇몇은 원하는 재료가 나왔지만 거래할 물건이 없어 은밀히 협상을 해서 다른 보물로 바꾸어 가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이 거절당했고 그런 운 좋은 이들은 몇 안 되었다. 다행히 한립은 운 좋은 이들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립의 전략은 간단했다. 보기 드문 천년 영초와 몇 가지 고계 요단을 이용해 원하는 재료를 교환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물품은 대다수 수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가끔 경매를 통해 얻을 수는 있겠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얻기는 어려운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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