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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34화 (291/2,000)

# 534

534화. 갈취

시장을 나온 한립은 머지않은 거리에서 범인들과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선배님! 법력도 없으시면서 오로지 의식만을 이용해 수많은 원영기 수사들의 눈을 속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심지어 저도 동복천(洞福天)의 진짜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던데요?”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겠느냐. 너도 대연결의 마지막 삼성을 수련하고 나면 지척에서도 상대를 속일 수 있을 게야. 환술에 자질이 있다면 저계 수사의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을 테지.”

대연 신군은 한립의 감탄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기는 합니다. 대연결 삼성까지만 해도 위력이 상당한데 앞으로 어디까지 의식이 강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안타까운 일은 선배님께서 사성 구결을 알려주셨는데 정식으로 수련할 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한립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근의 자질이 떨어져도 대연결을 익히는데 필요한 자질은 나쁘지 않더구나. 거기에 양혼목의 도움을 받아 대연결을 수련하는 속도가 예전의 노부와 비슷하니 걱정 말거라.”

“그러기를 바라야지요.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제게 상대가 몸에 지니고 있는 장식품 중 하나를 얻어 내라 이르신 겁니까?”

“천란 성녀가 어째서 진경에 나타난 것인지 잊었느냐?  앞으로는 너를 놔둘 성 싶으냔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마 저를 찾기 위해서겠지요. 돌올인 성수의 분신과 이상한 솥을 전부 지니고 있으니 저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천란 성녀가 뜻밖에 음라종 수사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보니 앞으로 귀찮아지게 되었습니다.”

한립이 탄식했다.

“바로 그래서 그런 것이다. 이전에 감응주(感應珠)라는 것을 제련하는 법을 배웠는데 상대의 기운을 빌려 백 리 내에 상대가 타나나면 감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앞으로 그것이 그녀가 백 리 내로 다가오면 네게 경고를 해주고 대략적인 방향을 알게 해줄 것이다. 그럼 앞으로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미리 대비할 수 있겠지. 감지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겠지만 대진에서 있는 동안은 쓸 만 할게야.”

“그랬군요. 저를 위해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노부는 네 녀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련중인 꼭두각시를 위해서 이러는 게다.”

대연 신군의 대답에 한립은 그저 미소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방향을 바꿔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아무도 없는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이리 오랫동안 제 뒤를 밝은 것은 무슨 연유 때문입니까?”

한립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아무도 없는 허공을 주시했다.

“려 수사는 바다 건너서 온 수사시라더니 역시 노부의 귀영둔을 다 꿰뚫어 보십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무슨 악의를 품고 따라온 것은 아니니까요.”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녹색 빛이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교활한 인상의 깡마른 노인이 몇 안 되는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원영 초기의 수사였다.

“동급의 수사를 미행하는 것은 금기라는 것도 모르십니까?  제가 당장 수사를 죽여도 할 말이 없을 텐데요.”

“그리 무섭게 나올 게 무엇입니까. 이 늙은이는 거래를 할까하여 일부러 따라온 것입니다. 수사나 제게 모두 이득이 될 거래지요.”

깡마른 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관심 없소. 남의 뒤나 캐는 자와 거래는 무슨.”

예상 밖으로 한립이 단번에 거절하자 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무 이른 결론이 아닐 지요?  이 노부의 말을 듣고 결정을 내리셔도 늦지 않을 게요. 거래를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쪽은 려 수사일테니 그려!”

노인이 의미심장한 낯으로 은근히 위협을 했다.

“제가 손해를 본다라! 어디 들어나 봅시다.”

“거래 전에 우선 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노인이 히죽 거리며 허리춤의 영수대를 스쳤다. 그러자 녹색빛이 흘러나와 아주 작은 영수가 노인의 머리에 안착했다. 달팽이 형태의 영수는 전신이 청록색으로 빛났고 기다란 뿔이 나있을 뿐 행동거지가 아주 느렸다.

“연충을 보여주어 어쩌겠다는 거요?  설마 독액이라도 분사해 나를 공격할 셈이오?”

“이런 저계 영수로 수사를 공격하다니요. 솔직히 말하자면 노부의 연충은 변이를 하여 이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온갖 환술을 꿰뚫어 보는 것인데, 방금 려 수사가 음라종 수사들과 대치할 때 노부가 의식 한 줄기를 영수에 심어 상황을 지켜보았지요. 기다란 도검으로 변한 죽통에 전부 속았지만 내 영수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머리 위의 영수를 손바닥 위로 올려놓고는 쓰다듬었다.

“그래서 어쩌란 거요?”

상대의 연충이 놀랍게도 변이능력으로 환술을 꿰뚫어 본다니! 한립은 내심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별 다른 뜻은 아니고…… 그저 수사가 이 노부에게 보물 서너 개만 내어주면 입을 닫겠다는 말이지요 허허!”

늙은이가 탐욕을 드러내며 거침없이 재물을 요구했다.

“지금 그런 식으로 절 협박하는 겁니까?”

“어찌 나를 죽여 입막음을 하고 싶은가요?  그런 마음은 빨리 거두는 것이 좋을 게요. 수사인 내게 복수를 하겠다는 협박은 통하지도 않고, 이곳에 홀로 나타날 정도면 스스로 무사히 빠져나갈 준비는 하고 오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이미 제자 하나를 음라종과 천란 성녀가 있는 무리에 보내놓았으니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죽통에 관련된 일을 고할 것이요. 이곳은 진경의 한복판인데 수사는 어차피 경매회에 참가하러 온 것이 아닌지요.

음라종 수사들에게 들키면 무사히 빠져 나가기 어려울 텐데……. 원영기 수사 네다섯 명 정도가 두렵지 않다면 일고여덟 명은 어떤가요?  내가 알기로 음라종이 진경에 파견한 원영기 장로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내가 수사라면 현명하게 행동할 거요.”

노인이 뒷걸음질 치며 간사하게 웃고는 손을 들어 나무 방패를 소매에서 꺼냈다. 나무 방패가 노란 빛의 장막으로 변해 그의 주위를 뒤덮고 한립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립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보아하니 수사에게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성가시게 생겼습니다. 그래,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지요! 바로 이런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나도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니 수사께서 고보 몇 점만 골라주시지요.”

노인은 아주 즐거워보였다. 상대가 탐욕을 부리니 한립은 눈썹을 끌어 올렸지만 저물대를 스쳐 금색과 은색이 섞인 구슬을 꺼냈다.

“고보 몇 점이라니, 욕심이 과하십니다. 다른 것은 없고 예전에 우연히 얻은 운소주(雲霄珠)라는 고보인데 가져가시지요. 어차피 공법이 맞지 않아 별 쓸모도 없는 것이니까요. 너무 욕심을 부려 집어삼키다 보면 배가 터지는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한립은 못마땅한 얼굴로 구슬을 날려 보냈다.

노인은 희색을 드러냈지만 바로 구슬을 받지 않았다. 달팽이 모양의 연충을 옆으로 던지고는 소매를 털어 검은 빛으로 구슬을 받았다.

잠시 후 구슬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보호막을 넘어 그것을 손에 넣었다.

“문양이 특이한 것을 보니 평범한 보물은 아닌 것 같은데 용도가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보물의 용도는 직접 사용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 크게 놀랄 거라는 것은 제가 보장하지요.”

한립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리 해보지요! 하지만 겨우 고보 하나로 때우려는 생각은 아니겠지요?”

노인이 신이 나서 구슬에 법력을 주입해 보다가 한립에게서 더 많은 고보를 갈취하려 운을 띄웠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것으로…… 수사를 저승으로 보내드릴 생각이라면요?”

서늘한 한립의 말에 노인이 놀라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수중의 구슬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구슬이 별안간 수십 마리의 딱정벌레들로 변해 날아오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립이 지니고 있던 삼색 서금충들로, 영충들이 매섭게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 피할 틈도 없이 노인의 얼굴이 영충들로 빽빽하게 뒤덮였다. 그의 전신의 보호막이 두껍지 않았다면 벌써 얼굴전체가 뜯어 먹혔을 것이다.

노인은 사각사각 갉아 대는 영충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양손에 검은 기운을 실어 필사적으로 휘둘렀고 동시에 입을 벌려 괴성을 질러 다른 수사들을 불러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귓가에 서늘한 소리가 울리고는 의식이 찢겨나가는 듯한 극통이 느껴졌다. 놀란 그가 즉시 몸을 띄우자 의식의 극통과 눈앞을 가리던 영충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앞을 보게 된 그의 앞에서 보라색 화염이 번진 금빛 검이 날아들었다.

“으윽!”

노인이 소리를 질렀지만 법보를 내뿜거나 둔술을 펼칠 여유가 없었다. 일단 전신의 영력을 보호막에 주입해 이번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는 분노하면서 이 자를 건드린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노란 나무 방패는 흔히 구할 수 없는 강력한 고보라 원영 중기의 수사라도 단번에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예상과 다르게 툭, 하며 노란 보호막이 두부 잘리듯 갈라졌다.

금빛 검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노인의 육체 역시 반 토막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 안에 있던 일촌 길이의 검은 원영은 공포에 질려 날아가려다가 보라색 얼음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금빛 검은 그대로 선회해 주인을 잃은 연충을 가르고는 피를 흩뿌리며 다시 보라색 얼음 위로 돌아왔다.

꽈광!

굵은 금빛 뇌전이 검에서 번뜩이며 가느다란 그물을 형성해 원영을 가두었다.

쿠꽈광! 꽈광!

보라색 얼음 속의 원영은 금빛 속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한립은 얼굴을 풀며 시신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노인이 지니고 있던 저물대가 날아왔고 다른 손에서는 불덩이가 나가 노인과 연충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 즉시 한립은 날아올라 푸른빛을 번뜩이며 사라졌다.

* * *

잠시 후 다양한 색의 빛줄기들이 날아들어 그곳에 도착했다. 남녀가 섞인 다섯 명의 수도자들이었다.

임은병, 갈천호 등 네 명의 원영기 수사 외에 낯선 얼굴의 결단기 청년이 있었다.

“이곳입니다. 스승님의 기운이 이곳에서 끊겼습니다.”

사내는 손에 진법 원반을 들고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영기의 파동이 남아있고 려비우라는 자의 기운도 느껴진다. 군데군데 떨어진 핏자국으로 보아 네 스승이라는 자는 이미 죽었겠구나.”

갈천호가 주변을 훑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스승님은 둔술에 능하신데 이렇게 금방 당하셨을 리 없습니다!”

청년이 파랗게 질려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원영 초기 선사가 아니라 동급의 선사들도 몇 명이나 죽인 자다. 네 스승이 무어라 했는지 자세히 말해 보거라.”

갈천호가 냉소하며 물었다.

그때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탐색한 임은병이 대여섯 장 밖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스승님께서는 본명 법보인 원반을 제게 주시며 만일 이것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선배님들께 고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네 스승의 것이더냐?”

임은병은 무언가를 청년에게 보여주었다. 청년이 손을 뻗어 그것을 받더니 더욱 표정이 가라앉았다. 노란 나무 조각은 스승이 자주 이용하던 방패 조각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스승님의 목규순 조각입니다. 굉장히 단단한 방패인데 어찌 이렇게 산산조각이…….”

“임 수사, 아무래도 초 노인은 이미 죽은 듯합니다. 이전에는 그 자가 동급 수사들을 순식간에 죽였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실력이 뛰어납니다. 초 노인이 원영 초기 수사이기는 해도 비범한 둔술을 익힌 자인데 이리 비명횡사하다니요. 위력이 원영 후기에 상당하는 수사 같으니 우리 몇으로는 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갈천호는 바로 천란 성녀를 향해 말했다.

“갈 수사께서도 음라종의 보물을 되찾아야 하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귀라번이 그 자의 수중에 있다면 귀 종의 넷째 장로 역시 십중팔구 그 자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임은병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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