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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31화 (288/2,000)

# 531

531화. 지하 교류회

중년인이 영문을 몰라 당황한 찰나 누각 아래에서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나와 거래를 원하는 이가 나타난 것이더냐?  노부는 중요한 수련을 하다 달려 나오는 길이다.”

무척 노쇠한 목소리였지만 기운이 넘쳤다. 쿵쿵 거리는 소리로 보건데 체중이 상당히 나가는 노인네가 분명했다.

“제가 선배님을 여기까지 청했는데 당연히 사실이지요. 어찌 부 선배님을 속이겠습니까.”

대청 입구에서 체격이 건장한 수사가 나타나자 하얀 장포 중년인이 얼른 달려가 공손히 답했다.

상대는 키가 큰 노인으로 미색의 장포를 입고 원영 중기의 최고봉에 올라 놀라운 영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립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붉은 얼굴의 노인이 중년인의 말을 듣고 한립을 살폈다. 젊은 용모와 원영 중기의 수행을 보고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바로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조 장궤가 말하던 한 수사입니까?  노부가 원하는 재료를 평범한 원영 초기 수사가 지니고 있을 리가 없지요.”

노인이 허물없이 다가와 웃음을 터트렸다.

“부 수사의 수행에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이 나이에 겨우 이 정도인데 놀라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뇌영정과 거래를 하시고 싶다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은 없지만 불 속성의 적정지가 있습니다. 천년 이상 되는 것으로요.”

그것은 그가 천남의 교류회에서 거래한 삼천 년 된 적정지의 종자를 얻어 배양해낸 것이었다.

“천년 이상 된 적정지라면 당연히 제 뇌영정과 거래 할 만하지요. 제게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 노인은 크게 기뻐했다.

“물론 보여드려야지요. 그런데 수사의 영석도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노부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조 장궤 어서 영석을 꺼내오게.”

“예, 선배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하얀 장포의 중년인은 서둘러 답하고는 대청을 나섰다.

“한 수사의 얼굴이 낯선데 벌써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녔다니. 이전에는 어딘가에 은거해 수련만 하셨나봅니다.”

“수사께서 저를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저는 줄곧 작은 섬에서만 수련하여 대진 내륙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한립은 당황하게 않고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수사는 바다 쪽에서 온 수사셨군요! 그쪽 수사들이 신통력이 대단하고 특이한 공법을 수련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이리 멀리 진경까지 오신 것으로 보아 경매회에 참석하시려는 것입니까?”

붉은 노인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물었다. 그들이 몇 마디 한담을 주고받는데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부 형, 천기각을 찾으시면서 제게 연락도 주시지 않으십니까?  한 수사께는  제가 직접 맞이했어야 하는데 실례를 하였습니다.”

맑은 목소리가 들리고 은색 장포의 수사가 대청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허허! 오랜만입니다, 황 형! 귀령결을 수련하시느라 아직도 폐관 수련 중인 줄 알았습니다.

부 노인이 은색 장포 노인과 잘 아는 사이인지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귀령결이야 칠성에서 진도가 안 나간 지 한참입니다. 아마 이번 생에는 원영 중기로 올라설 가망이 없나 봅니다. 조 집사가 원영 중기의 수사께서 찾아 오셔서 수백 년간 이곳에 방치되어 있던 천기부를 거래하고자 한다고도 하고, 거기다 부 형도 찾아 주셨다기에 올라오는 길입니다.”

은색 장포 수사는 오십 대 정도로 한립을 훑어보며 포권을 했다. 그는 중년인이 말했던 왕 장로가 틀림없었다. 한립이 의식으로 훑으니 원영 초기의 수사였다.

“천기각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는데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한 수사, 천기부까지 거래하시려는 겁니까?  바다 밖 수사라 그런지 씀씀이가 크십니다. 그곳에 보물들이 허다하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어찌 풍부한 내륙의 사정만 할까요.”

한립은 두루뭉술하게 넘어 갔지만 다른 두 수사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만일 상대가 자신을 염탐하려한다고 오해하면 이번 거래는 날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은색 장포 수사 뒤로 중년인이 걸어와 크고 작은 옥함을 하나씩 한립 앞에 내려놓았다. 그 후 그는 왕 장로 뒤로 물러나 입을 다물었다.

“본 각의 천기부에 관심이 있다기에 부 수사의 뇌영정과 같이 가져와 봤습니다. 함께 살펴보시지요.”

왕 장로는 조금 큰 옥함을 가리켰다.

“왕 형, 천기부는 조금 있다 보여주시고 일단 저와 거래를 먼저 하게 해주시지요.”

“부 형께서 이리 급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저도 한 수사가 어떤 보물로 뇌영정을 거래할지 궁금하던 차입니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립이 저물대에서 손바닥만 한 청록색 목함을 꺼내들었다. 금색과 은색의 부적으로 봉해져 있는 목함이었다.

부 노인은 아주 정교하게 봉해져 있는 목함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한립이 목함을 부 노인에게 밀어 주었다. 목함을 받은 노인도 소매를 털어 탁자 위의 작은 옥함을 한립에게 건넸다.

한립이 옥함을 열자 은색 빛이 퍼졌나갔다. 그의 눈동자에서 순간 남색빛이 일렁였고 주먹 크기의 은백색 돌덩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한 손가락을 들어 옥함 속으로 찌르자 가느다란 푸른빛이 쏘아져 나가 은백색 돌덩이와 충돌했다.

콰쾅!

은색의 뇌전이 돌덩이에서 튀어 오르며 가볍게 푸른빛을 막아냈다.

“뇌영정이 맞습니다. 일반적인 품질이라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럭저럭 쓸 만하겠습니다.”

“최상급 뇌영정이야 더 찾지가 어렵겠지요. 이것만 해도 노부가 천신만고 끝에 희귀한 천둥 속성 요수를 잡아 그 뱃속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부 노인도 목함 속의 적정지를 감별한 후에 흡족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한립의 적정지가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 적정지는 영기가 전혀 흩어지지 않은 최상급의 영약입니다.”

한립이 차분히 말했다. 아무리 뇌영정이 필요해도 손해를 보며 거래를 할 수는 없었다.

“노부의 뇌영정이 확실히 한 수사의 적정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영석 삼만 개를 더 드려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하지요.”

“급하게 그러실 것 없이 제가 필요한 재료의 목록을 한 번 살펴주시지요. 이 중에 소식을 아시는 것이 있다면 영석은 받지 않겠습니다.”

한립이 웃으며 품에서 옥간을 꺼내 탁자에 올려두었다.

“또 다른 재료가 필요하시다고요?”

노인이 바로 옥간을 들어 내용을 살폈다. 잠시 후 옥간의 내용을 확인한 부 노인이 묘한 시선으로 한립을 쳐다보았다.

“이 재료들은 너무 귀해 노부는 어느 것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허나 이 재료들에 대한 소식은 조금 알려드릴 수 있겠습니다.”

주저하던 노인이 결국에는 결심이 섰는지 말을 꺼냈다.

“설마 경매회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며칠 후의 경매회도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수사가 필요한 물건들이 나올 확률은 극히 낮을 겁니다. 이렇게 진귀한 물건은 대부분 저희처럼 다른 물건으로 거래하기를 원할 테니까요.”

“오, 그 말씀은 어딘가에서 비공식적인 교류회가 있을 거란 뜻으로 들립니다.”

한립이 무언가를 생각해내고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부 노인의 표정이 달라지더니 돌연 입을 달싹이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립의 귓가에만 노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십 년에 한 번 열리는 진경의 경매회는 오래 전부터 둘로 나뉘기 시작했지요. 정도에서 주최하는 시장의 교류회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도와 사수들이 주최하는 지하 교류회는 암암리에 진행이 되지요.

그곳에서도 평범한 물건은 영석으로 경매하지만 수사가 필요로 하는 급의 재료들은 대부분 진귀한 물건으로 교환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지하 교류회의 대다수 물품들은 수도계에서 거래가 금지된 것들이라 참가할 수 있는 수사들도 내력이 분명해야 하는데, 수사는 바다 바깥에서 온 산수라 참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수사가 저와 거래를 하시겠다면 노부가 추천해서 참가할 수 있도록 힘을 써보겠습니다.”

노인이 단숨에 필요한 말을 늘어놓고는 한립을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군요. 허나 저는 시장에서 열리는 공식 경매회도 놓칠 수 없는데 지하 교류회와 겹치는 것은 아닌지요?”

“두 교류회가 동시에 개최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진귀한 재료가 오가는 경매와 교환의 자리는 하루가 차이가 납니다. 수사도 평범한 물건에는 크게 개의치 않으실 테니 좋은 물건을 놓칠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럼 수사만 믿겠습니다. 지하 교류회가 정말 기대 되는군요.”

“좋습니다! 그럼 경매회 마지막 날 다시 천기각에서 저를 기다려 주시지요.”

순식간에 영석 수만 개를 아낀 노인이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왕 장로는 노인과 한립이 뇌영정과 적정지를 나눠 갖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원하시는 물건을 얻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본 각의 천기부를 보실까요?  미리 말씀 드리지만 천기부는 저희 보물이라 천년 적정지 정도로는 거래가 어려우실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물건만 마음에 든다면 저도 인색하게 거래하는 부류는 아니라 서요.”

“하긴 한 수사의 출신을 생각했을 때 천기부를 거래할 만한 물건을 지니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요. 그럼 저희 천기각에서 특별히 준비한 개자공간(芥子空間)으로 자리를 옮기셔서 천기부의 원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왕 장로는 한립의 자신만만한 어투에 미소가 짙어졌다.

“개자공간이요?”

“처음 들어 보십니까?  아, 공간균열을 제련해 개인공간을 만들어 내는 비술은 천 년 전에 대진에서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니 바다 밖 수사이신 한 수사께서는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왕 장로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공간 균열로 개자공간을 제련해 낸다고요?  그런 역천의 비술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한립은 놀라서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공간에 관련된 비술은 수도계에서 이미 흔했다. 저물대만 하더라도 공간 비술을 이용한 일상적인 법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물대는 등급에 따라 용량이 한정되어 근본적으로 진정한 공간 비술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심지어 많은 수사들이 고계의 공간 비술은 인계의 것이 아니라 상계의 수사들이나 가능한 신통력이라고 여겼다.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개자공간은 한 수사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고차원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마저도 아주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일 뿐입니다.”

“부 형의 말씀대로 개자공간은 대부분 수사에게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련하기는 극히 어려운데 사용할 때 제한이 많기 때문입니다. 개자공간은 대진에서도 열댓 개에 불과하지만 본 각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요.”

왕 장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씀은…….”

“예, 본 각의 몇몇 연기대들이 우연히 만들어낸 비술입니다. 그래서 천하에 개자공간을 제련할 수 있는 이들은 본 각의 연기대사 두 분 뿐이지요. 사실 천기옥이나 천기부 같은 것들도 개자공간의 제련 방법을 응용해 만들어낸 비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더욱이 개자공간을 둘러봐 견식을 넓히고 가야겠습니다.”

한립이 다시 안정을 되찾고 미소 지었다.

“왕 형이 한 수사를 모시고 다녀오시지요. 노부는 개자공간에 다녀왔으니 가지 않으렵니다. 적정지를 처리해야 해서 이만 먼저 물러갑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신데 붙들어 둘 수 있나요. 부 형,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왕 장로의 말이 끝나자 한립의 귓가에 절대 지하 교류회 마지막 날의 거래를 놓치지 말라는 노인의 당부가 전해졌다.

한립이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더 지체하지 않고 쿵쿵 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저희도 가실까요. 개자공간은 누각 뒤쪽에 있어 금방 갈 수 있습니다.”

왕 장로가 한립을 향해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소매 속으로 남아 있던 옥함을 회수했다.

한립도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 삼엄한 금제를 뚫고 누각 뒤쪽의 작은 공터로 걸어갔다. 공터의 중간에는 처음 보는 기괴한 전송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전송진보다 복잡하고 훨씬 커 보였다. 한립은 의외의 상황에 미간을 좁혔다.

“개자공간으로 가려면 전송진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전송진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고?  공간균열 제련이 정해진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일까? ’

한립은 놀라웠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고, 상대가 먼저 전송진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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