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529화 (286/2,000)

# 529

529화. 말썽꾼

한 식경 후 한립은 그리 높지 않은 산 정상에 나타났다.

이미 멀리에 거대한 성문이 보였고 성문을 들어가려는 마차와 행인들로 가득했다.

“됐다. 고마가 대진에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게야. 언젠가 비검을 되찾을 기회가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수행을 완전히 회복한 것도 삼염선을 제련해낸 것도 아니니. 고마도 중상을 입었다지만 수도자들의 혼백을 흡수하고 내단을 씹어 먹는 능력이면 이미 회복했을 것이다. 지금 싸워봐야 승산이 크지 않아.”

한립의 의식 속에서 대연 신군이 침착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따라 잡는다고 해도 비검을 되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낮지요. 고마의 위력이 대단하니 비검을 찾아 대경검진을 펼칠 수 있게 되어야 그나마 안심일 텐데요. 보아하니 선배님의 꼭두각시와 삼염선 제련이 끝나야 시도해 볼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발견하지 못하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것을 보면 고마도 급한 일이 있다 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도 청죽봉운검 두 자루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거라는 것이죠. 사용하지 못해도 금뢰죽을 주재료로 연정과 경정이 들어간 법보를 아까워 어찌 버리겠습니까?  게다가 없애려고 해도 마화로 녹여내려면 대량의 원기를 소모해야 하니 그런 짓을 할 리 없겠죠.”

“그러게 말이다. 네 수십 개의 비검을 영화로 4, 5백년 간 배양하면 대경검진의 위력도 대단해 질 것이다. 통천령보에 못지않아 질수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 수명의 대부분을 법보 배양에만 쓸 생각은 없습니다.”

“허허, 네가 노부보다는 현명하구나. 내가 당시에 네 반만이라도 신중했다면 벌써 화신기에 들었을 텐데……. 저 고마가 진경 근처에 나타난 것은 아마 경매회 때문일 것이야. 상대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본래 주남 장군의 세력을 이용해 경매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되었군요. 기억대로라면 진경에도 풍 가 소유의 주루가 있으니 우선 그리로 가보시죠.”

한립은 의복을 탁탁 털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진경은 범인은 물론이고 저계 수도자들도 아름답고 웅장한 성으로 찬미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한립이 보기에는 난성해의 천성성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진경은 가장 바깥의 벽을 제외하고도 내부에 일정 간격으로 여섯 개나 되는 벽에 세워져 있었다. 각각이 이전 것보다 대여섯 장 높아 마지막 석벽은 사십 여 장에 달했으나 범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엔 기적에 가까웠다.

진경은 13개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가장 북쪽에는 황성이 수십 리를 차지해 다른 구역들 못지않았다.

또 진경은 천성성과 달리 길가에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서 한립은 성 입구에서만 두 구역을 지나느라 거의 반나절을 소비해야 했다.

한립은 드디어 2층짜리 주루를 발견하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장사가 그럭저럭 되는지 사람들이 꽤 있었고 계산대에는 주인처럼 보이는 마른 중년인이 서 있었다.

한립은 그에게 다가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살짝 틀어 옥패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관녕풍(關寧冯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주인은 옥패를 보고 안색이 변해 한립을 살피고는 신중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옥패를 회수한 그가 낮게 속삭였다.

“저를 따르시지요.”

그는 손님들이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바로 몸을 돌려 주루 1층의 쪽문으로 들어갔고, 한립도 그의 뒤를 따랐다.

“큰 공자님 오셨습니까. 소인 풍전 인사 올립니다.”

주인장은 조용한 방으로 그를 데려가더니 옥패를 두 손으로 돌려주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그를 독이 발작해 죽은 풍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조용한 거처를 마련 하거라. 주루가 아니라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으로.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주루의 다른 이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될 것이야.”

“예, 소인 바로 공자님이 머무실 곳을 준비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계시면 반나절 내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서두르거라.”

이후 풍전이 방을 나서며 밀실 문을 가리고는 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한립은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전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공자님 거처가 준비 되었습니다. 저택의 주인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마침 타지로 이사하여 줄곧 비어 있는 곳이지요. 1, 2년 내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겁니다. 제가 정리를 해두라 하였으니 바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잘 했구나. 길을 안내 하거라.”

“저를 따라 오시지요.”

풍전이 몇 걸음 앞서며 한립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후문으로 주루를 빠져 나오니 마차가 대기 중이었고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마차까지 미리 준비해 놓다니 생각이 깊구나. 허나 다른 이들에게 내가 찾아 온 것을 알리지 말라 했거늘 저 자는 어찌 된 것이냐?”

한립이 마차에 타고 있는 노인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오 노인은 어릴 적에 병을 앓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거처가 이곳과 상당히 멀어 어쩔 수 없이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다가 그대로 마차에 올랐고 풍전도 함께 했다. 동시에 노인이 두 사람의 분부를 기다리지 않고 마차를 천천히 움직였다.

한립은 마차 안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무표정하게 눈을 감았고 풍전은 구석에 앉아 침묵했다. 마차는 열댓 개 골목을 굽이굽이 돌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딘가로 향했다.

한 시진이 지나서야 마차가 조용한 저택 앞에 멈추었는데 인근에 다른 주택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었다.

한립과 풍전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여기입니다. 공자님께서 직접 살펴보시지요.”

풍전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네가 먼저 금제 속으로 숨은 후에 안에 있는 세 수사들로 하여금 나를 잡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냐?”

한립이 담담히 묻자 풍전이 화들짝 놀라 앞으로 달려갔다. 두 손으로 맹렬히 저택의 문을 열려는 모습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붉은 실이 풍전의 머리 뒤에서 나타나 그를 스쳤다. 풍전은 그대로 불이 붙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차에 앉아 있던 허리가 굽은 노인도 즉시 고함을 지르며 한립을 향해 움직였다. 노인이 손을 뻗자 녹색 비도가 세차게 베어 들어왔고 고요하기만 하던 저택 안에서도 노란 안개가 흘러나왔다.

곧 저택을 뒤덮은 노란 안개 사이로 한 쌍의 새까만 쇠스랑과 붉은 장창이 날아들었다. 한립은 냉소하며 녹색 비도를 향해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빠져나와 비도를 휘감아 돌아왔다.

다른 손은 대수롭지 않게 무기가 날아오는 곳을 향해 허공을 쥐자, 푸른 거대 손이 나타나 바람처럼 쇠스랑들과 장창을 움켜쥐었다.

“헛!”

노란 안개 속에서 깜짝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오고 등이 굽은 노인도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힘들이지 않고 그들의 법기를 전부 막아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노인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핏빛의 부적을 꺼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부적에 피를 뿜어내자 부적이 핏빛 안개로 변해 그를 감쌌고 노인은 순식간에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노란 안개 속의 수사들도 재빨리 세 개의 빛덩이로 변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솟아올랐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며 날아 오른 세 인물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기 세 줄기가 그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아 베어버렸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하늘에서 핏덩이가 떨어져 내리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등이 굽은 노인이 핏빛 안개 속에서 그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해 전신의 영력을 핏빛 안개로 불어 넣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수십 장 밖에 있는 거리로 튀어 나가려는 것이었다.

한립의 손에서 벗어날 희망은 없었지만 범인들 틈에 섞여 들면 상대가 대놓고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립은 냉소했다. 그가 핏빛 안개를 가리키자 풍전을 죽인 붉은 선이 한 장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핏빛 안개를 관통했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고 안개가 흩어지자 등이 굽은 노인이 떨어져 내렸는데 푸른 손이 귀신처럼 나타나 세 법기를 버리고 노인을 집어 돌아왔다.

붉은 실은 허공에서 반짝이며 사라졌다가 한립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립이 손을 뻗어 내려보니 일 촌 길이의 비침이었다.

금속도 나무도 아닌 침은 수정처럼 투명했고 붉은 빛도 강해졌다 약해졌다 해서 무척 신비로워 보였다.

한립이 비침을 보며 흡족해 했다. 수정으로 변한 요단을 공들여 제련한 법보였으니 그럴 만 했다. 극히 빠른 속도와 자취를 숨기는 효과는 예상했지만 앞으로 배양하면 더 큰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비침을 체내로 회수하고 그는 고개를 들어 푸른 손에 잡혀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배에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구멍이 뚫린 채 핏기 없는 얼굴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무표정한 한립의 시선에 노인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 이건 전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선배님의 실력이라면 절대 저희가 찾던 자가 아닙니다. 저희가 선배님을 몰라보고 실수를 한 것이니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희는 관녕의 공 씨 가문 수사들로 선배님께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노인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는 계속해서 지껄여 댔다. 이 중에 상대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 있어 목숨을 부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럴 필요 없다. 알고 싶은 것은 내가 알아낼 테니까.”

한립이 노인에게 부적을 날리자마자 그의 애걸복걸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노인의 시선이 흐리멍덩해졌다.

한립은 저택에 펼쳐진 진법을 간단히 날려버리고는 땅에 떨어진 법기들을 전부 모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푸른 손에 잡힌 노인이 그 뒤를 따랐다.

* * *

한립은 몽인술로 상대의 정신이 손상될 것을 고려치 않고 노인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그 노인의 몸은 재로 만들어 버렸다.

노인은 공 가가 진경에 보내 놓은 집사였다. 그는 풍전을 협박해 공 가로 귀순하게 만들고는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립이 풍악의 옥패를 갖고 찾아갔으니 그로써는 큰 공을 세울 기회였다. 노인은 풍전에게 풍 씨 가문의 큰 공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쾌재를 불렀고, 바로 함정을 파서 풍악을 잡을 준비에 들어갔다.

한립은 주루를 나서자마자 노인의 비루한 술법을 간파해 그가 수도자임을 알아차렸고 풍전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겨우 축기기 수사가 두려울 것도 없었고, 주루 근처에는 범인들이 많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적한 곳까지 따라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매복해 있던 축기기 수사들과 마주친 것이다. 한립은 노인의 의식에서 알아낸 어떤 사실 때문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관녕 삼 가에서 주최하는 삼왕회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공 가 가주의 몸에 사악한 마귀가 깃들어 수사들의 원신을 잡아먹는다는 수사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그러자 다른 두 가문은 연합해 고계 수사들을 불렀고 공 씨 가문의 가주는 그 자리에서 죽어 원영조차 빠져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수하가 죽임 당한 것을 안 현엽왕이 설릉산맥에 숨어 있다 대노해 놀랍게도 고대 무덤을 땅으로 끌어 올려 수천 구의 축기기 수행 강시를 방출하고 대놓고 황천귀진을 펼쳤다.

그 결과 세 가문과 도움을 주러 왔던 고계 수사들은 무덤 속의 세 강시들과 대전을 벌이게 되었다. 많은 강시들이 죽어 나갔지만 세 가문에서도 황천귀진에 잡아먹힌 저계 수사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다.

몇몇 원영기 수사들도 무덤과 진법에 힘입은 세 강시들과 싸웠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세 가문과 종문에서 파견 나온 수사들은 백 리를 밀려나 삼왕회가 열렸던 정상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놓은 진법으로 겨우 버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종문의 수사들이 현엽왕의 실력을 너무 얕봐서 벌어진 일이었다. 중상을 입어 처리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본래 원영 중기의 수행이던 현엽왕이 무덤의 힘을 빌려 거의 원영 후기 수사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두 강시들도 원영 초기의 수행을 발휘해 그들을 대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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